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8
689장. 독립운동.(2)
“이런…….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다들 뭐 하고 있었습니까! 도대체 관리를 하고 있는 게 맞는 겁니까!”
쩌렁쩌렁 소리가 울리는 곳은 일본 총리 관저의 집무실.
아베와 그 밑의 중요 각부 대신들이 모였다.
외무성, 법무성, 경제산업성, 국가공안성의 핵심 측근들이었다.
입헌군주제에 의한 내각책임제인 일본.
국가원수인 일왕을 필두로 행정수반은 중의원 다수당의 당수가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2013년 현 일본의 행정수반 아베가 고래고래 호통을 쳤다.
평소와 달리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속을 보여주지 않기로 유명한 일본인이라지만 오늘은 달랐다.
“워낙 은밀하게 움직였습니다.”
국가공안성의 대신 기무라가 고개를 숙였다.
“외무성은 뭘 하고 있었답니까? 한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이들은 눈이 없답니까?”
아베의 눈길이 외무성 대신 아키라에게 향했다.
“죄송합니다. 한국 여당 쪽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라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한국 국회는 내내 당쟁에 몰두하다가 몰아서 법안을 처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이 넘는 법안을 간단히 처리하는 무지한 자들입니다.”
“변명 그만 두십시오! 이건 우리의 무능입니다!”
아베의 호통이 기세를 몰아 더 크게 울렸다.
그는 손에 들려 있는 보고서를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놀랍게도 한국 국회가 일본의 노모즈쿠리 기본법과 유사한 산업 부품 소재 기술 진흥법을 통과시켰다.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쪽은 그동안 일본에 불이익이 될 만한 법안 처리하지 못하도록 막아오고 있었다.
오정과 엘자, NK 같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관련한 세계적 기업들이 성장할 때 일본이 한몫 거들어왔다.
들어가는 핵심 부품들 70%가 일본 제품이었다.
한국이 설계와 양산화 기술을 개발하면 뒤에서 중요 부품들을 일본이 팔았다.
재주는 한국 곰들이 부렸고 돈은 일본 기업가들이 벌어들이는 구조였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다.
기술 진흥법 내용이 일본의 노모즈쿠리 기본법과 아주 유사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가, 대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지금까지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학교가 따로 놀랐다.
그 부분에 있어 국가의 지원은 미비했다.
돈 벌고 싶으면 스스로 알아서 기술 개발하고 팔라는 식의 한국 정부.
몇 푼이면 영혼도 파는 한국 국회의원들은 이런 법안에 분명 까막눈이었다.
국가를 위해 공부한다기보다는 일단 당에 충성하는 이들만 오래도록 의원으로 살아남았다.
그간의 신뢰로 방심하고 있던 사이 사고가 터졌다.
“유우토 대신 우리 측 피해는 없습니까?”
아베가 경제산업성 대신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당장 피해가 오지는 않습니다. 한국 정부 일처리는 생각보다 늦습니다. 정부 수반이 아베 총리님처럼 국가를 위한 열정이 없지 않습니까. 형식적 요식 행위에 불과합니다. 이 법안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도 없습니다.”
유우토 대신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냈다.
“맞습니다. 뭔가 성과를 내기 위해 제출한 법안일 뿐입니다. 그자들이 나라를 위했다면 진작 제출했어야 할 법안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제출 의원들에게 알아봤더니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한국 대통령의 치적을 위한 광고성 법안이라는 해명을 들었습니다.”
이구동성 대신들이 입을 열었다.
이들에게 한국 국회의원들은 싸움개에 지나지 않았다.
일은 뒷전이고 정치 이익만 좇아 살아가는 투견들.
“쯧쯧.”
아베가 혀를 찼다.
대신들과 달리 법안을 쥔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다들 아베 노부유키의 조선에 대한 유지를 잊었습니까!”
“!!!”
아베 노부유키라는 말에 모두들 정색했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잊을 수 없는 정치인.
제9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했던 아베 노부유키.
그가 조선을 떠나며 남겼던 말은 아직도 일본 정치계에 명언으로 회자됐다.
아베의 입술이 움직였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총리 관저에 울리는 끈적끈적하고 진득한 아베의 목소리.
지옥에서 올라온 탐욕의 악마 음성 같았다.
그리고.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떼창을 하듯 네 명의 대신들은 노부유키가 남긴 마지막 말을 함께 내뱉었다.
파바밧.
대신들의 눈동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총독부에서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던졌던 이 말을 다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노부유키의 유지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이!”
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대지가 병 들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과 비교할 수 없는 방사능이 서서히 땅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새로운 땅으로 신민들을 이주시키라고 말입니다!”
광기에 번들거리는 아베의 눈동자.
“제 외조부이셨던 기시 노부스케 대 일본 56, 57대 총리께서 추진하셨던 꿈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만주국을 세우고 일본의 대동아제국을 주창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열 차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천황폐하를 모시고 아시아를 점령하는 그 날까지 한 걸음 한 걸음 거인처럼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조선을 더 분열시키고 경제적으로 목을 움켜쥐어……. 항복을 받아내고 우리 땅을 되찾아내야 합니다! 그게 우리 대일본제국인의 의무이자 생존 목표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마작과 여자, 빨간 스포츠카를 몰며 청춘을 보냈던 아베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이 된 이후로는 일본만을 생각했다.
특히 외조부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 아베.
“자금을 아끼지 마십시오. 조선인들의 정신을 더 오염시키고 서로 싸우도록 만드십시오! 우리와 손잡은 한국 언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식민사관을 주창하는 학자들을 키우고 조선은 안 된다는 열등감을 조장하는 포털 사이트를 밀어 주십시오! 보이지 않는 정신전쟁!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선거 유세보다 더 격렬하게 발언하는 아베.
“총리님의 뜻을 받드옵니다!”
핵심 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기다려라……. 조선! 너희들이 선 땅을 반드시 무릎 꿇려 대일본 제국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천황폐하의 궁전을……. 서울 경북궁으로 옮길 것이다!’
***
“허 참…….”
전문구는 혀를 찼다.
연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된 후에 누구를 이렇게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더욱이 만나면 불편한 상대를 말이다.
“덕분에 바다 구경을 하는군.”
당황스럽게 약속 장소는 속초해수욕장이었다.
한 번 만나자는 말에 장태산은 단번에 동해 바다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본인이 강원도에 볼일이 있다던 장태산.
아쉬운 입장의 전문구는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촤라라라랏 촤아아아아아아아.
바람이 부는 동해안의 바닷가.
거칠게 몰려오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산산이 부서졌다.
평일의 바닷가는 한적했다.
백사장에 마련되어 있는 흔들의자에 앉은 전문구.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 여성들과 섞여 놀러오기도 했던 그 해수욕장.
잊고 있었던 추억 한 자락이 자동 재생됐다.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빠져나와 자동차를 몰고 이곳에 와 마음껏 놀았다.
따스하게 나눴던 연인과의 밀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죽어서도 잊을 수 없었던 전문구만의 인생 편린이었다.
“가슴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
뒤에서 들려오는 오만한 그자의 목소리.
전문구는 속을 들킨 듯 놀라며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언제 왔나.”
막 꿈에서 깬 듯한 표정의 전문구는 꽤나 당황했다.
“조금 됐습니다.”
“진작 부르지 않고…….”
“회장님이 추억 속을 걷고 계신데…… 깨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
넉살을 떠는 장태산.
‘이 녀석 앞에만 서면 갈수록 초래해지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식사하셨습니까?”
“아직이네.”
“가까운 곳에 맛집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업 이야기를 하고자 만남을 청하고 달려왔다.
급할 것 없는 입장의 장태산은 밥부터 먹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옥수수 막걸리를 팔더군요.”
“그래?”
전문구는 옥수수 막걸리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반색했다.
바다와 파도를 보니 식욕이 돌긴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동해안의 기가 전문구를 은근히 자극했다.
“가시죠.”
장태산이 앞장섰다.
‘건방진데…… 당연하다는 생각은 왜 드는 걸까?’
아버지와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 평생 갑으로 살아왔던 전문구 회장.
분명 을이 된 이 순간이 어색해야 하건만 당연한 듯 뒤를 따랐다.
앞서 걷는 장태산의 뒷모습이 큰 이유였다.
“큼큼.”
헛기침을 뱉으며 장태산 곁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경호원들이 거리를 두고 사방에 있었다.
체면은 지켜야 했다.
“여깁니다.”
“오! 물회집이군.”
“해산물로 한치와 해삼, 멍게가 들어 있습니다. 육수도 제대로 시원하고 깔끔합니다.”
“입맛이 도는군.”
전문구는 편하게 마음을 먹었다.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과거부터 접대를 많이 해왔다.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룸도 자주 갔다.
오늘 접대는 양반 수준이다.
“어서 오세요~.”
밝은 인상의 식당 여주인이 인사를 해왔다.
“이모. 물회 두 그릇하고 옥수수 막걸리. 모듬전 대자로 부탁합니다.”
“네~.”
식당 여주인과 안면이 있는 듯 장태산의 주문은 거침없었다.
“단골인가?”
“제가 투자한 공장이 강릉에 있습니다. 그곳 사장님과 몇 번 왔습니다.”
“맛집처럼 보이는군.”
“그런 것도 아십니까?”
“그럼, 손님을 접대하는 주인장 눈빛이 맑고 깨끗해. 종업원들도 마찬가지고. 안에 있는 화분들도 잘 자랐군. 대부분 맛집들을 둘러보면 키우는 화분들이 싱싱하지.”
인생을 살면서 몸소 체득하고 깨달은 전문구 회장의 맛집 정론.
“한 수 배웠습니다.”
“공짜는 아니야.”
“오늘은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
“고마워. 내가 카드를 놓고 와서 말이야.”
전문구는 장태산과 적당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격식 있는 자리라면 결코 불가능한 대화였다.
“맛있게 드세요~.”
음식 한상이 금세 차려졌다.
“한 잔 받으십시오.”
“고맙네.”
쪼로로록.
연노란 빛깔의 옥수수 막걸리가 잔에 금세 채워졌다.
“자네도 받게.”
“감사합니다.”
장태산의 잔에도 채워지는 막걸리.
“앞으로도 잘 지내세.”
전문구가 빠르게 건배사를 읊었다.
“물론입니다.”
여느 때처럼 씨익 웃는 장태산.
‘에휴. 내가 어쩌다…….’
로템 빅딜을 끝내고 난 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장태산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엘자에 쏟아 부어진 엄청난 투자 자금.
장태산에 대한 정보는 수시로 보고가 됐다.
무거운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대로 가만히 손 놓고 있다가는 연대가 망할 것 같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특히 테슬러 미국 공장 옆에 신축된다는 엘자배터리 공장은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서서히 태동하고 있는 하이브리드를 비롯한 친환경 자동차.
수소전기차를 밀고 있는 연대 입장에서 테슬러는 미래의 가장 두려운 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적과 동업자가 된 엘자그룹.
어렵게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엘자와 테슬러 합작에 장태산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었다.
참고 참다 전화를 했다.
꿀꺽 꿀꺽.
막걸리로 급하게 목을 축이는 전문구 회장.
“크으.”
짧은 신음을 내며 답답한 속을 달랬다.
“회장님. 천천히 드십시오. 누가 안 뺏어 먹습니다.”
조용히 잔을 비운 장태산.
“내가 보이는 덩치만큼 욕심도 많아.”
전문구는 굳이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래 보이십니다.”
반면 웬만해서는 속을 드러내지 않는 괴물 같은 청년 장태산.
전문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장 대표. 아니 장 회장. 나에게도 투자 좀 해주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