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0
69장. 셀프 신선과 고려 대장군
‘여기는 또 어디야?’
원하는 게 없었음에도 난 신들의 세계로 또 초청이 된 것 같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화려한 건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고고히 흐르는 푸른 강이 보였다.
맑고 푸르러 인세에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러나 강 건너편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아른거렸다.
하늘은 맑았는데 특이한 현상이다.
“배?”
바로 강가 옆 나루터에 나룻배 한 척이 매여 있다.
수양버들 곱게 늘어진 풍경이 기가 막혔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
“헛!”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새하얀 도포자락에 단정하게 새하얀 머리칼을 묶은 멋쟁이 할배다.
콜라텍에 가면 할머니들 마음 뒤집어 놓을 외모다.
“누, 누구십니까?”
“조 아무개라 합니다.”
“네? 조 아무개요?”
할배는 풍채가 좋았다.
혈색도 누가 보면 30대 청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탱탱했다.
“곧 삼도천을 건너야 할 이가 이름이 무에 중요합니까.”
“사, 삼도천!”
기억에는 없지만 나도 건너봤던 게 분명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삼도천이다.
한마디로 죽어서야 건널 수 있는 강이다.
강 건너가 보이지 않는 게 이제 이해가 갔다.
아우씨!
‘저승사자는 아니지? 아우! 나 방금 3조 먹었는데 이건 아니잖아!’
괜히 심장이 쫄렸다.
다시 태어나 죄를 지은 게 없지만 죽음 앞에서는 언제나 경건해지는 법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타고 갈 배입니다.”
“아……, 네.”
할배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괜히 쪽팔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럼 신이 아니시라는 건데 어찌 저를 부를 수 있었습니까?”
오늘도 특이한 사례를 경험하고 있었다.
신이 아닌 죽어 저승 가는 이가 나를 불러냈다.
“신이라……, 한때는 그렇게 불렸습니다.”
“네? 신이셨어요?”
내 물음에 조 아무개 전직 신선이 빙그레 웃었다.
“삼도천은 진작 건너시지 않았습니까?”
“우화등선한 신선은 저 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아! 우화등선!”
살아 있을 때 신선이 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인간의 육신까지 완벽하게 포함된 우화등선은 고수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왜 지금 그 강을 건넌단 말인가?
“삼도천의 다른 이름은 윤회의 강입니다. 저 강을 건너야만 다시 윤회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신선의 연이 다 끝났습니까?”
나도 조금 알고 있는 신선계다.
카르마 포인트가 다 떨어지면 다시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요.”
이 전직 신선 할배 모습이 상당히 수상하다.
왜 자신이 삼도천 건너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작별할 친구가 없나?
그렇다고 바쁜 나를 부르는 건 말이 안 됐다.
“저 그런데 저와 무슨 인연으로…….”
“진심으로 우러러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이고! 내가 조폭도 아니고 90도 인사는 아니지요!
나도 전직 신선 할배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기분이 참 묘했다.
윤회의 강을 건너 윤회의 길로 가려 한다는 신선 할배를 마주하는 이 기분…….
정말 비추천이다.
“우화등선을 추구하여 긴긴 세월을 가족을 버린 채 도를 추구하였습니다.”
인사가 끝나자 회환에 젖은 조 아무개 할배가 입을 열었다.
귀를 활짝 열고 경청했다.
신선 할배들 이야기는 그냥 들어도 재미 보장이다.
“인간 나이 100세에 금강산에서 도를 이뤄 신선이 됐습니다.”
오래도록 도를 공부한 것 같다.
금강산, 계룡산, 백두산이 과거부터 신선들에게 유명한 후보지다.
“옥황상제배 우화등선 출신이십니까?”
아는 체 좀 했다.
“아닙니다.”
“그럼…….”
“독학으로 셀프 신선이 됐습니다.”
“아! 셀프!!!”
젠장, 신이 되는 방법이 참 많기도 많다.
이제는 하다못해 독학파 출신 셀프 신선이 등장했다.
“신선계는 제가 상상하던 대로 참 좋은 곳입니다. 쌓아 놓은 카르마 포인트로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신선주를 마음껏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선녀들과 미팅도 시시때때로 이뤄졌습니다.”
‘미, 미팅까지!’
노바 형님이 신선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어느 정도 짐작은 갔지만 한국 신선도 그럴 줄은 몰랐다.
세상에 신선들이 미팅이라니!
선녀들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울까.
“육신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에 기로써 오욕칠정의 감정을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알아요. 저도 신선들 오욕칠정을 맛보기로 견식 해 봤습니다.
정말 고마운 노바 형님~.
새로운 최신 버전을 언제 들고 올지 기대가 됐다.
“그러나 그것도 다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네? 신선이요?”
“신선도 인간처럼 번뇌가 많다는 걸 아시는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대충 안다.
“전생에 쌓았던 카르마 포인트가 많아 마음껏 놀던 그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하계를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제가 뿌린 인연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 잊은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식을 버리고 신선의 도를 찾아 떠난 저를 삼신께서 탐탁지 않게 여겼음인지 대대로 아들 하나로 손이 내려 전해져 왔습니다.”
“!!!”
삼신 할매 파워가 상당한 것 같다.
신선들도 마음에 안 들면 후손들에게 점지의 축복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 같다.
“아니 보려 하였지만 삼도천의 강물을 마시지 않아 생의 기억을 다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괴롭더군요. 어쩔 수 없이 정에 끌림에 의해 자꾸만 후손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의 맥이 무엇이라고……, 허허.”
신선이 되어서도 자손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할배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 또한 그런 까닭에 정체 모를 할배에 의해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었다.
“직접 도와주지는 못하는 겁니까?”
“신들은 인간계에 직접 개입을 할 수 없습니다. 가끔 세상사에 미련이 남은 신들이 제자들에게 강신하여도 그때뿐입니다. 깨닫지 못한 어린 제자들과 동거하다 신의 자격까지 박탈당하는 신들이 많습니다.”
‘어? 그럼 나는 뭐야?’
꿈속 할배가 역천의 거울을 문질러서 나를 회귀시켰다고 말했다.
인간 세상에 직접 개입한 걸로 볼 수 있다.
“물론 상제급 같은 최상위 천신들 같은 경우는 직접 개입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최상위 신들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자칫 세력들의 균형이 깨질 수 있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력들요?”
“……, 그 이상은 천기누설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아! 복잡한 신들의 세계여~.
일단 내가 상제급 최상위 신의 도움을 받은 건 확실해졌다.
그런데 세력들의 균형?
이건 또 뭐야!
“저기 사공이 오는군요. 이제 갈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사공? 저승사자?’
이거 기분이 매우 섬뜩했다.
전직 신선 할배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헛!”
저분이 무슨 사공이야!
일반적으로 저승사자를 생각하면 검은 삿갓에 올 블랙 도포를 착용한 음침한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저승사자는…….
쓱쓱.
배도 없는데 물 위를 쓱쓱 걸어서 오셨다.
영화에 나오는 고수들보다 더 멋졌다.
‘옷차림은 또 뭐야!’
저승사자들의 패션 아이템인 올 블랙은 맞는데 도포가 아니라 가죽 재킷과 쫙 달라붙은 쫀쫀 가죽 바지 차림이었다.
터질 듯한 근육은 꿈틀거렸다.
검정 긴 머리칼을 질근 동여맨 저 짐승 냄새나는 거친 훈남 상남자!
세상에 저분이 무슨 저승사자야! 홍대 락커들 전설의 형님 같았다.
“어르신께서 삼도천행 예약하셨습니까.”
“그렇네.”
오! 저승사자에게 할배가 반말했다.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늘 배정받은 저승 가이드 리차드 강이라고 합니다.”
헐! 리차드 강이란다!
저승사자 리차드 강은 아주 정중했다.
이제 가자, 쯧쯧 이생에 미련을 못 버린 중생 같으니라고 대사를 남발하던 차가운 저승사자와 완전 달랐다.
이제 더 할 말이 없다.
저승사자에 대한 인식이 확 전환됐다.
“먼 곳까지 와줘서 감사하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오랜만에 구 항구에 와보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요즘은 쾌속선으로 다 이동하는데 나룻배라……, 참 세월이 무상합니다.”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게 상책 같았다.
이상한 저승사자와 전직 신선 할배에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이분은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저를 아십니까?”
저승사자 리차드 강이 나를 아는 체했다.
“아니요. 오늘 처음 뵙습니다.”
나도 덩달아 조심스럽고 정중해졌다.
괜히 저승사자에게 찍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어디선 뵌 분 같은데…….”
눈치가 엄청 빠른 것 같다.
나에 대해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하……, 하하하. 제가 좀 평범한 얼굴이라 그럴 겁니다.”
얼굴 근육을 억지로 당기며 웃었다.
저승사자의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나를 훑는데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그래요? 이것도 인연인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차피 100년 동안은 이곳에 발령받았으니까 다음에 오실 때 연락 주십시오. 특별하게 모시겠습니다.”
“특별하게요?”
“삼도천 건너려면 뱃삯을 내셔야 합니다. 가이드 특별 할인을 적용해 드리겠습니다. 무자격 가이드를 만나면 지옥길에서 헤맬 수도 있습니다. 정식 가이드를 이용하셔야 안전하게 염라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몇 푼 노잣돈 아끼려다 떠돌이 잡귀들에게 강도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죽어서 저승에 안전하게 가는 것도 큰일이라는 걸 방금 깨달았다.
아는 저승사자 한 명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이런 도대체 이 주둥이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다음에 예약 잡자는 말이 나오려는 순간 입을 겨우 다물었다.
리차드 강이라는 저승사자가 그 정도로 믿음이 갔다.
“괜찮습니다. 전 우화등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 대단하십니다. 아직 어린 나이로 보이는데…….”
“아닙니다. 꿈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우화등선을 준비 중이시라면 되도록 살생은 피하십시오. 손에 피를 묻히면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습니다.”
“…….”
회환에 젖은 목소리로 저승사자가 나에게 충고를 날렸다.
뭔가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허허허. 강 차사. 그 피는 손에서 진작 지워졌다네. 자네 마음속에 남아 있어 문제라네. 임금과 백성을 위해 도적떼들의 피를 묻혔던 자네를 누가 뭐라 하겠는가? 1,000년 동안 사자직을 수행했다면 이제 깨달을 때도 되었거늘…….”
“죄송합니다.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0년 전 거란군과의 전쟁 때 너무 많은 피를 묻혔습니다.”
“강 차사의 위치가 총 대장군이 아니었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제 마음을 놓게.”
1,000년 전 사연이 두 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거란군 침입이라면 고려 때 일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당시 총 대장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었다.
그것도 성이 강 씨면…….
강감찬 대장군???
“다 부질없음이네. 마음속에서 스스로 죄를 잊으면 그만인 것을……, 강 차사 배를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선관도사 어르신.”
“이제 선관도사는 없네. 저승에 가 윤회의 길을 걸어야 할 똑같은 혼백이라네.”
선관도사? 아~ 이 전직 신선 할배 직책이 신선계 고위직이었던 게 분명했다.
저승사자가 저리 조심할 정도라면 보통 분은 아닐 거다.
“공자. 이제 떠나겠소이다. 부디, 그 선한 마음 변치 마시고 두루두루 아이들을 살펴주시오.”
신선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공자의 공덕으로 내 후손의 앞날이 바뀌었으니……, 그 공은 반드시 갚겠소이다.”
후손이 도대체 누구야?
내 주변에 조 씨는 딱 두 명이다.
조 변호사님과 친구 형석이다.
느낌은 형석이 쪽 조상신이라고 전해왔다.
“아닙니다. 공이라니요. 뭘 바라고 한 적 없습니다.”
“하늘의 이자법은 이승보다 냉정하다오. 우리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그때……, 나를 한 번 생각만 해주시오. 공자.”
뭐지? 저 확신에 찬 눈빛은?
“가시지요. 어르신.”
“그럽시다. 공자, 부디 원하는 바를 다 이루기를 기원하겠소이다.”
“살펴 가십시오. 어르신.”
“다음에 뵙겠소이다.”
“강 장군, 아니 차사님도 살펴 가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둘을 배웅했다.
스윽.
둘의 신형이 나룻배에 올랐다.
순간 이동의 술법이다.
어느새 강감찬 장군으로 의심되는 사자의 손에 노가 들렸다.
찌그덕 찌그덕.
배가 움직였고 느린 듯 보이지만 순식간에 저 강 건너 보이지 않는 세계로 둘의 몸은 사라져갔다.
신선이었다가 망자가 된 할배와 전직 거란군 때려잡던 대장군 사자.
그들과의 인연도 강물 위로 두둥실 흘러갔다.
# 7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