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13
714장. 다섯 악마의 시험.(2)
‘시험?’
모디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신전에 도착했다.
디왈리 축제는 힌두교 태음력 일곱 번째 달린 아슈비나의 마지막 이틀과 카르티카 달의 셋째 날까지 총 닷새 동안 열렸다.
인도와 네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힌두교와 자이나교, 시크교도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축제였다.
모디는 구자라트주의 주지사라 오늘 하루 동안 방문해야 할 신전이 열 곳이 넘었다.
주권자들마다 섬기는 신이 달랐다.
지역별로 축제 기간마다 숭배하는 신들 또한 달랐다.
그렇다 보니 힌두교에서 새해를 의미하는 축제 첫날임에도 모디는 밖에 나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날 듣게 된 뜻밖의 말, 시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
“어차피 인생 자체가 하루하루 모두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일뿐입니다.”
다니엘의 말에 모디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신탁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행하는 이방인이었다.
말주변도 대단해 더 이상 말려들기 싫었다.
딸깍.
차문이 열렸다.
차자작.
경호원들이 모디를 밀착 경호했다.
“주지사님이시다!!!”
“모디님이 오셨다.”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주지사님을 응원합니다!!!”
수만 개의 작은 촛불이 사방에 깔려 있는 힌두교 신전.
축제 첫날 가족과 인사를 나눈 이들이 신들에게도 인사를 위해 사원을 찾았다.
“나마스테.”
모디는 고개를 숙이고 사방을 향해 합장했다.
과거와 달리 SNS가 엄청난 속도로 발달했다.
파바바바밧.
지금도 터지는 스마트폰 카메라 불빛.
과거처럼 엄격하게 사원 주변을 통제하지 않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자유롭게 주지사와 사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저벅저벅.
그 틈에도 모디는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앞으로 나갔다.
경찰들의 호위는 사원 입구까지.
우르르르르.
수많은 사람들이 모디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자칫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는 환경인만큼 경호원들은 예민했다.
하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을 함부로 제지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사전 선거 운동과 맞먹었다.
자칫 과한 저지 행동 하나로 모디가 패배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디는 활짝 웃으며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도를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모디 주지사.
신접 입구에 놓인 코끼리와 원숭이 조각상이 그런 모디를 지켜보고 있었다.
***
세계 5대 축제에 들어가는 디왈리.
어제와 오늘의 인도는 참 많이 달랐다.
우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건기가 시작되자 인도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설날처럼 새 옷을 입고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다들 신들께 경배를 올렸다.
살면서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 악마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사히 방어를 한다면 신들이 포인트를 지불할 것입니다.
모디 주지사와 함께 신전에 도착한 순간 들려온 알림음.
대응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리 마법 물품까지 동원했다.
문제는 상대가 악마라는 것.
경호원들 뒤쪽에서 따라가며 사방을 주의 깊게 살폈다.
신전을 찾은 이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들떠 있었다.
그믐에서 초승달로 이어지는 시기에 시작되는 디왈리 빛 축제.
어둠은 거짓, 무지, 악이라 믿는 힌두교 신자들은 특히 빛의 축제에 열광했다.
빛은 진실이며 밝은 지식이고 선이라 믿었다.
특히 비슈뉴 신의 아내이자 부(富)의 여신 락슈미에 대한 경배가 다수를 이뤘다.
인간 세상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재물이 최고였다.
파아아앗.
커다랗고 웅장한 사원 내 곳곳에 수만 개의 빛들이 밝혀져 있다.
고푸람이라 불리는 수십 미터 높이의 탑문이 보였다.
원숭이와 코끼리가 사원 입구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떡하니 쳐다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물원에 갇혀 바나나를 받아먹고 있을 동물들이 이곳에서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온갖 희귀 동물들이 죄다 신으로 불리는 인도.
수천 개가 넘은 신과 악마, 아수라들이 탑문에 잔뜩 각인되어 있다.
장관이다.
신을 향한 믿음과 열정이 없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대공사.
웅장한 탑문만 봐도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신이 아닌 신을 향한 인간들의 무한한 열정에 탐복했다.
모디를 따라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악마의 시험은 시작되지 않았다.
열성적인 모디 지지자들도 거짓말처럼 신전 안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외국인들은 입장이 불가합니다.”
“What?”
사진기를 들고 신전 안으로 들어서던 미국인들이 제제를 당했다.
“이곳은 신들이 숨 쉬는 곳. 이교도들로 인해 그분들이 노할 수 있습니다.”
사원 입구에서 외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컷 당했다.
단호한 표정.
“미개한…….”
젊은 미국인 남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다른 곳에서는 모르겠지만 인도에서는 가능한 일.
외국인은 천민과 같은 신분.
아무리 잘나가는 미국 시민권자라고 해도 다를 게 없었다.
대번에 신앙심을 건드리면 인도인들은 당장 핵미사일 버튼을 누르라고 총리를 압박할 것이다.
그들과 달리 나는 무사통과됐다.
마법으로 턱수염도 만들었고 얼굴형도 변형해 외국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모디 주지사를 앞장세운 상황이니 누가 봐도 무사통과.
사박사박.
발걸음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신발을 벗었다.
사원 내에서 신발 착용은 금물이었다.
맨발로 사원의 돌바닥을 걷는 기분은 참 기묘했다.
앞에 소가 보였다.
바닥에 누운 신상.
그 앞으로 수백 개의 초가 잔바람에 흔들리며 타올랐다.
소머리에는 화관이 씌워져 있고 바닥에는 황금 칠한 풀들이 보였다.
팔자 좋은 소.
윤기 자르르 흐르는 한우에 비해 포스는 한참 모자랐다.
스윽.
무리지어 오가는 여성들.
전통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낸 인도 여인들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를 힐끔 거리며 쳐다보는 그녀들.
전통 복장의 새 옷을 입고 허리 살이 드러난 타이트한 복장을 한 그녀들은 절로 눈길을 끌었다.
씨익.
스치는 여인들을 보며 입가에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다.
신전에서 스치는 이국의 미녀들은 모두 신의 축복을 흠뻑 받아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결코 이마에 붉은 점이 찍힌 여인들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들은 다 유부녀였다.
“어서 오십시오. 주지사님.”
“나마스테.”
주지사 모디에게 사제들이 다가왔다.
다들 비만인이다.
거기에 상의를 탈의해 두툼한 가슴까지 훤히 드러냈다.
이마와 배에 쌀가루를 묻혔다.
왼쪽 어깨에 걸쳐있는 황금 줄.
바라문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정화 의식의 시간입니다.”
사제들은 왼손에 종을 들고 오른손에는 잔에 담긴 여러 개 촛불을 쟁반 위에 올려 들고 있었다.
특별한 의식이 펼쳐지는 시간.
“신께서 예비하신 것 같습니다.”
모디는 경건하게 합장하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몇몇 경호원들도 모디를 따라 비켜섰다.
때가 때인 만큼 소규모 경호는 허락됐다.
둥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신의 계시, 전승, 주문, 주술, 신적인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북소리.
태초 절대자의 최초 진리를 잉태한 창조의 순간을 나타낸다고 했다.
“마하습벌레…… 마하가로 온다야……. 사바스.”
사제들이 춤을 추듯 청동 시바상을 따라 빙글 돌기 시작했다.
휘릭 휘리릭.
수인을 맺고 있는 시바신.
왼쪽 손가락은 반달 모양을 취하고, 손바닥 위에는 불길을 들고 있었다.
불을 사랑하는 시바.
사랑과 파괴도 불길처럼 뜨겁고 시원하게 선사하는 신이었다.
휘리릿 뤼리리릿.
사제들은 쟁반을 들고 종을 흔들면서도 춤을 잘 췄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가 날렵했다.
시바신의 상징인 춤.
시바신이 춤추기를 멈추면 우주의 활동도 정지한다고 믿는 이들.
–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정화되었습니다.
– 선한 카르마 포인트로 정산되었습니다.
– 시바신이 적정 수수료를 떼어갔습니다.
시바……신…….
순간 당했다.
고위급 신들만 아는 신들의 비밀 계약.
눈 뜨고 오늘도 난 얼마간의 포인트를 뺏겼다.
하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시바신을 향한 사제들의 춤은 보기 좋았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사제들의 춤.
과거처럼 포인트가 궁하지 않아 넉넉하게 인심 쓴다 여겼다.
대한민국의 조상들은 대대로 잔칫집에 갈 때 빈 손으로 가지 않았다.
“시바신의 가호가 있기를.”
어느새 춤이 끝났다.
사제들이 쟁반 위의 초를 높이 들자 사람들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화가 끝난 신성한 불인만큼 모두 경외했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괜히 튀고 싶지 않았다.
“이 음식들은 시바의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신께 올렸던 요리가 회향됐다.
푸자라 불리는 요리.
쌀과 감자 마살랴 향이 가미된 음식은 쟁반 위에 들려 사람들에게 배분됐다.
“감사합니다.”
주변에 있던 힌두교 신자들이 돈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음식을 받아갔다.
천주교의 성찬 예식 때 나오는 포도주와 밀떡 같은 의미였다.
절에서 부처님 전에 올려졌다 내려오는 공양물과 같았다.
신성한 힘이 깃들었다 믿는 신도들은 모두 다 경건한 자세로 건네진 음식을 받아먹었다.
순서는 공평했다.
오늘만큼은 카스트 제도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스으윽.
사제들 중 한 명이 깨끗한 쟁반 위에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주지사님께 특별한 신의 사랑이 함께하십니다.”
다른 사제들보다 조금 더 뚱뚱한 사제가 푸자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모디 주지사도 다른 이들처럼 지폐를 쟁반 위에 놓고 푸자를 받아들었다.
다른 음식들보다 유난히 윤기가 흘러 보이는 푸자.
마치 화려한 독버섯처럼…….
응? 독버섯?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사제를 보았다.
음흉한 눈빛이 흘러 넘쳤다.
재빨리 모디에게 다가갔다.
“주지사님.”
조용히 그를 불렀다.
“???”
의식의 마무리 순서였기에 상당히 놀라는 모디.
결코 내가 끼어 들 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말려야 했다.
목사, 신부, 스님이라고 모두 선한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똑같은 인간.
순간순간 일어나는 욕망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신을 팔았다.
그런 점에서 이곳 인도도 다르지 않았다.
브라만이라 해도 모두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일 수 없다.
모디는 간치 출신.
브라만 계급 중에서도 이런 모디를 대놓고 멸시하는 자들이 있을 터.
“그 음식은 제 것 같습니다.”
모디의 손에 들려있던 푸자를 빼앗듯 낚아챘다.
크게 놀라는 사제.
“이런 불경한!”
사제가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악에 찬 시선.
자칫 낯선 이국 땅 신전에서 몰매를 맞아 죽게 될 수도 있는 순간.
이럴 때는.
“네 이노오오오오옴!!!”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