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29
730장. 초심.
“나국찬을 만나?”
– 그렇습니다. 장태산을 나국찬이 불러냈습니다.
“흐음…….”
리앤장의 이사 사무실.
손대균은 급하게 손에 들어온 보고서를 살피다 신음을 흘렸다.
국정원과 청와대 민정 라인에까지 리앤장 연줄이 제법 됐다.
장태산에 관한 정보라면 아주 작은 것까지 바로바로 보고하도록 전달돼 있었다.
국정원장과 비슷한 속도로 실시간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 손대균 이사.
– 국정원에서 직원들을 파견했습니다.
“대화 자료는?”
– 지금 녹취 중일 겁니다.
“겁도 없군.”
– 네?
“아니야. 수고했어.”
–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정보 더 캐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 넵!
힘찬 대답과 함께 통화는 짧게 끝났다.
손대균과 통화를 했던 자는 국정원의 고위급 간부.
검찰 출신으로 리앤장에서 힘을 써 국정원에 입사시켰다.
국정원은 물론 검찰과 청와대 곳곳에 리앤장의 눈과 귀가 심어져 있었다.
현 정권을 위해 긴 시간 동안 많은 투자를 해왔기에 당연히 나눠 먹어야 할 파이였다.
“나국찬이 미쳤군.”
손대균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나국찬은 야심이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권력의 1인자는 되지 못할 그릇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그도 기득권이 됐다.
여러 가지 흠 잡힐 말과 행동으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그렇다고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2인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권력 창출의 재주가 탁월해 대선 주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국찬은 가끔 주제 파악을 못 했다.
“장태산……. 건들면 무는데……. 크크.”
손대균은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예상 시나리오에 고소한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물론 일송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장태산이다.
햇병아리로 보이지만 엄연히 회장으로 불렸다.
임성철 회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경제계가 장태산 앞에만 서면 몸을 사렸다.
주순자도 멋모르고 장태산을 건드렸다가 피를 봤다.
그런데 일개 야당 의원이 장태산을 오라 가라 불러냈다.
좋은 말이 오가지 않았을 게 빤하다.
“내일쯤 술 한잔해야겠어.”
손대균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후배와의 약속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들어 더 바빠진 후배 장태산.
선배 앞에서 쓴 소리를 잘도 뱉지만 장태산과 있으면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국찬 의원. 당신의 명복을 미리 빌어야겠군.”
빙글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손대균 이사.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단축 번호를 눌렀다.
장태산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딸이 덩달아 보고 싶어졌다.
자신 때문에 첫사랑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프랑스로 떠난 딸.
– 아빠?
“그래, 아빠야~.”
손대균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며 딸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
“!!!”
나국찬은 심장을 옥죄며 밀려오는 거센 감정의 파도에 두 눈을 부릅떴다.
‘겨우 야당 국회의원 주제에?’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금배지를 단 이후 처음 겪은 모멸감이었다.
의원이 되는 순간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 중추가 된다.
야당 의원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더군다나 나국찬은 야당의 핵심 멤버.
지금도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 일개 투자회사 대표가 그런 자신을 눈앞에 두고 망발을 내뱉었다.
부르르르.
나국찬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온몸을 떨었다.
여당 장관 시절에는 같은 당 출신 대통령도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
정치적 스승으로 추앙받으며 원하는 것을 다했다.
그런 노련한 정치계 산증인인 자신에게 망발을 내뱉고도 꼿꼿하던 놈.
‘이 어린놈의 새끼!!!’
나국찬은 오랜만에 피를 끓게 하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지금 이 순간의 치욕을 해소하지 못하면 당장 화병에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제대로 똥을 밟았네. 훗.’
양우석은 차라리 마음이 개운했다.
나국찬의 표정으로 보아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건 이미 알았다.
장태산 회장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
그간 양우석이 경험한 장태산.
나이에 맞지 않게 분명 회장 직함을 달고 활동하는 사업가였다.
오정 같은 대기업도 장태산 회장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청와대도 몸을 사리는 판에 야당 다선 의원이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가.
꿀꺽.
양우석은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잔에 채워져 있는 술을 마저 비워냈다.
화끈하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도수 높은 소주.
이를 가는 나국찬과 태연한 장태산 표정에서 이미 승자는 판가름 난 상태였다.
대변인 자리를 얻기는 힘들겠지만 상관없었다.
장태산 회장이라면 3선에 원내 대표 정도는 충분히 만들어 주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
찌리릿.
인상도 안 좋은 양반이 고약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정치인은 이미지가 반절은 먹고 들어가는 직업군이다.
그 점에서 나국찬은 나에게 이미지 마이너스 점수를 받고 시작된 관계였다.
아니나 다를까 덕이 없는 관상이다.
전형적인 야당 체질.
그의 눈빛이 처음과 달리 매섭게 날 훑었다.
나를 이미 적으로 인식했다.
“양 의원님, 한 잔 따라주시죠.”
“네. 회장님.”
옆에 앉은 양우석 의원도 분위기를 눈치 챘다.
갈팡질팡하던 내심이 정리된 듯 얼굴이 평온하게 변했다.
2선답게 감정도 숨기고 행동도 제어할 줄 알았다.
또로로록.
잔에 채워지는 술.
은은한 주향이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룸에 퍼졌다.
“앉으시죠. 의원님.”
주객이 전도됐다.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삿대질 하던 나국찬 의원을 향해 다시 자리를 권했다.
메이저급 신을 상대하는 내가 일개 정치인에게 쫄 일은 없었다.
여차하면 힘 대 힘으로 붙으면 그만.
선택지는 차고 넘쳤다.
“의원님. 앉으시죠.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야! 양우석!!!”
양우석 의원의 내 편을 들자 나국찬의 불똥이 그에게 튀었다.
2선 의원에게 저급하게 야! 라고 소리치는 4선 의원의 끗발.
“이런 자리라면 회장님을 모시고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양우석이 정색하며 한마디 더 붙였다.
2선 의원 맷집이 제법이다.
양우석 의원은 나국찬을 보며 웃기까지 했다.
사람은 잘 고른 것 같다.
본래 간댕이가 커야 큰일도 하는 법이다.
“너…… 이 자식!”
2선 의원의 권고에 나국찬은 제대로 이를 갈았다.
“큰일 하실 분이 감정 조절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시지요.”
받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평소에는 내가 상대에게 권했던 큰일의 의미.
여러 가지로 사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
나국찬이 차갑게 나를 노려봤다.
“방금 전 말씀은 사과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과의 타이밍은 빠를수록 좋은 겁니다. 변명거리는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의원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4선 의원께서 그렇게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시면 됩니까? 큰일 하실 분이…….”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짚은 큰일이라는 말.
여지를 남겼다.
오늘 실수 정도는 잊어줄 수도 있다는 의미.
“…….”
나국찬이 고민하는 게 느껴졌다.
이 자리를 차고 나가는 순간 그에게서 기회는 사라진다.
그리고 뼈저리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진짜 무서움을.
“의원님. 잠시 의견이 어긋날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장 회장님께 그렇게 함부로 하시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오정의 임성철 회장님이나 청와대 VIP도 예의를 차리시고 존중하시는 분입니다.”
“!!!”
양우석 의원의 말에 나국찬은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이다.
눈치로 보아 아직 나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듯했다.
그러니 양우석 의원을 통해 나를 불러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은 용서해 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나는 아량이 넓으니까.
다만 선을 넘는 순간 그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가 져야 할 것이다.
털썩.
나국찬이 계산을 끝낸 듯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였다.
“제 말투가 불쾌하셨다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고개를 숙여 예의를 보였다.
그가 자리에 앉는 순간 다시 거래는 시작됐다.
어차피 몇 번 만나야 할 인물이기도 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작은 부딪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최선의 방법.
“끙.”
짧은 신음을 내뱉는 나국찬 의원.
“화해주 한 잔 올리겠습니다.”
내가 먼저 도자기 병을 들었다.
스윽.
대답 대신 잔을 내미는 나국찬.
머릿속은 터질 듯 복잡할 것이다.
자존심은 몹시 상할 테지만 내가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건 이미 눈치 챘을 테고.
잔에 술이 채워졌다.
“……정문일침(頂門一針)이 매서웠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겨우 야당 의원’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아주 정신이 번쩍 듭니다.”
따끔했을 한마디를 뼈아프게 각인한 나국찬 의원.
역시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희번덕거리는 정신 상태를 보면 누구는 정신병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불구대천지 원수를 보듯 했던 그의 분위기가 말 몇 마디에 전혀 다르게 바뀌었다.
서로의 빠른 계산 덕에 다시 재기된 자리.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제가 나이가 어려 타협의 미덕을 아직 다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4선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웃으며 오고가는 말속에 날카로운 뼈가 섞여 건네졌다.
“조금 전 막말은 미안했습니다. 사과합니다.”
나국찬은 태세전환이 빨랐다.
양우석 의원의 태도와 건네는 말들에서 나를 어느 정도 유추해 낸 듯했다.
“제가 말씀드렸듯 다 이해합니다. 요즘 같이 하루하루가 엉망인 세상 속에 섞여 살면서 성격이 예민하지 않다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돈 좀 벌었다고 소문이 나자 권력자들과 그룹 총수들이 저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스스로 다독이는 방법을 채득하지 않았다면…… 오늘 큰 사건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빙긋 웃었다.
“사소한 말들이 오해를 불러낸 것 같습니다. 의원님. 벌주를 마시겠습니다.”
양우석 의원도 분위기를 거들었다.
“어른으로서…… 내 실수지. 나도 마시겠네.”
나국찬도 눈치껏 기회를 살렸다.
꿀꺽 꿀꺽.
모두 술잔을 비워냈다.
“장 회장님. 대단하십니다.”
나국찬이 잔을 비우고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가 말입니까?”
“방금 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요?”
장단을 맞춰주었다.
“어느새 내가 요즘 말로 꼰대가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 회장님 말씀대로 감정 주체를 못 했습니다. 그토록 혐오하던 권력이 몸에 배어서인지…….”
생각보다 나국찬, 괜찮다.
사람은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감을 되찾는 법이다.
나국찬의 장점이 잘 드러났다.
저런 불같은 성격으로 정치판에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남았나 했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작은 것에 소홀하면 큰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선인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큰일 하실 의원님께서 오늘 일을 자주 되뇌며 생각한다면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문일침은 계속 됐다.
나름 내가 준비한 시험이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은 것이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정권을 빼앗기지 않았겠습니까…….”
나국찬은 말에서 힘을 뺐다.
“명심보감에 말하기를 처음으로 벼슬을 얻은 자라도 진실로 자신의 업을 사랑한다면 남에게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의원님은…… 어떠십니까? 그 초심…… 아직도 마음에 살아 있습니까?”
나직하지만 진중한 의미가 담긴 마지막 질문이자 시험.
나국찬이 선뜻 해석하기 힘든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난…….”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