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36
737장. 큰 별이 지다.(2)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오정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장한수 비서실장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정신이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분명 회사에서 같이 일처리를 했던 임성철 회장이었다.
최근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버티던 임성철 회장.
얼마 전 장태산을 만난 직후부터 놀랍게도 병세가 호전되며 도리어 병증 진행이 멈췄다.
기력이 부쩍 회복된 게 느껴질 정도였다.
진료 때면 주치의들의 얼굴은 늘 심각했지만 임성철 회장의 표정은 좋았다.
몸이 괜찮아지자 밀려 있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오정이라는 거대한 몸집은 임성철 회장의 세밀한 지시가 필요했다.
현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정의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 영역에 중국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중국 시장에서의 몰락이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다.
민간 기업의 탈을 쓴 중국 국영 기업들.
그들은 하나같이 국가 보조금을 받고 염가로 스마트폰을 뿌렸다.
누가 봐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다.
적당한 성능 차이로는 가성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거대 중국 시장을 빼앗겼다.
디스플레이 쪽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교묘하게 한국 연구원들을 빼돌려 빠르게 추격해 왔다.
중국에 세운 제조공장의 노하우도 어느새 중국 손에 들어갔다.
특허법이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중국.
정부와 결탁한 기업들은 멋대로 한국 기업들의 기술을 빼돌렸다.
이 부분에는 미국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명분이 뚜렷하다 해도 이익 앞에서는 동맹의 불이익에 눈을 감았다.
특히 오바마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큰 사고를 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국의 수준을 과소평가했던 오정은 큰 코를 다친 셈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급속 성장한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오정에서 반도체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불신만 쌓은 중국과의 거래를 끊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결코 한국은 미국이 아니었다.
후폭풍을 감당할 만한 힘이 없는 만큼 오정은 최대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호시탐탐 중국은 이제 반도체까지 넘보고 있다.
다행히 초격차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자금을 아끼지 않은 오정은 그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
중국의 악랄함은 여타 다른 나라들과 차원이 달랐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 역시 이런저런 타격을 받게 될 게 빤했다.
그러다 보니 그룹의 수장인 임성철 회장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삐리리리.
장한수 실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금껏 애타게 기다렸던 통화.
“장 팀장. 회장님 상태는!”
– 지금 응급실에서 조치하고 있습니다!
회장을 보필하는 비서실 직원이 겨우 시간을 내 전화를 했다.
“병명은?”
장한수는 일분일초가 답답했다.
회장이 쓰러지면서 손발이 묶여버렸다.
비보와 동시에 임준형 직속 비서에게 통보를 받았다.
임 회장님이 위독하니 일이 수습될 때까지 회사에서 언론들 관리하며 대기하라는 지시였다.
거역할 수 없었다.
엄연히 회사의 주인은 임성철 회장이었지만 그가 쓰러진 뒤라면 자연스럽게 임준형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구조였다.
왕의 위기 시 세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
임 회장의 건강 문제는 외부에 공유되지 않은 가족만의 이야기로 국한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임성철 회장과 대비책을 세웠지만 그도 차질이 생겼다.
갑작스런 변수.
장한수 실장은 혼자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합니다. 뇌졸중 증상도 보인다고 합니다.
“시, 심근경색! 너희들 뭐 했어! 조치는 바로 한 거야?”
– 서재에서 중요한 통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중요한 통화? 누구?”
– KI그룹의 임동철 명예회장님이셨습니다.
“임동철!”
장한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때늦은 유산분배 소송에서 패배하고 이를 갈고 있던 임동철.
심심하면 전화를 해 임성철 회장을 괴롭혔다.
그래도 형이라고 전화를 꼬박꼬박 받아왔던 임성철 회장이었다.
그게 오늘과 같은 사달을 만든 것 같았다.
‘개새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엉망인 자였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가을 독사 같은 자다.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하기까지 했다.
큰 이익보다 작은 이익에 눈이 팔리는 스타일이었다.
거기에다 어울리지 않게 욕심도 많았다.
애초 협력이나 상생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여성 문제도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오정의 주인이 됐다면 오정전자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였다.
– 어떻게 할까요?
“상황은 누가 통제하고 있어?”
– 임준형 부회장님 라인인 오 팀장이 맡고 있습니다.
“……사모님은?”
– 정신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다른 자제분들은?”
–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
손발이 묶인 장한수 실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2인자 자리의 서러움이었다.
밀어주는 황제가 있을 때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
상속과 지분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어 당분간은 터치하지 않겠지만 곧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때가 다가왔음을 장한수는 직감했다.
– 실장님…… 다음 조치를…….
“계속 상황 파악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 넵!
통화가 끝났다.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가…….”
갑자기 밀려오는 허탈감에 장한수는 비틀거리며 책상을 손으로 짚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오정에 입사해 오늘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일생.
임성철 회장과 오늘의 오정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바로 장한수였다.
피를 묻혀야 하는 일에나 성가신 일을 처리할 때마다 그 중심에 장한수 실장이 있었다.
그 모든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정의 역사는 장한수 실장에게 삶의 전부였고, 인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날 때.
모시던 주인이 쓰러지면 충복도 같이 떠나야 함이 이 바닥의 불문율이었다.
“장태산…….”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임성철 회장의 지시가 남아 있다.
만약 자신에게 변고가 발생하면 장태산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던 임성철 회장.
급성 심근경색에 뇌졸중이라면 쉽게 깨어날 가망성이 없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 장태산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회장님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을 텐데…….”
임준형과 관계가 좋지 않은 장태산.
임준형이 버티고 있는 한 그가 회장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 있는 회장님을 본다고 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임성철 회장의 얼마 남지 않은 기운은 장한수 실장도 잘 알고 있다.
타다닥.
장한수 실장은 머릿속에 저장된 번호를 거침없이 눌렀다.
띠이이이이이이.
짧게 울리는 연결음.
– 장태산입니다.
“회장님, 오정의 장한수 실장입니다.”
얼마 전 임성철 회장은 뭔가를 예견한 듯 장태산의 직함을 회장으로 바꿔 호칭하라고 명령했다.
– 네. 실장님.
“방금 회장님께서…… 쓰러졌습니다.”
– 상황은 어떤가요?
‘뭐야? 벌써 알고 있던 거야?’
장한수는 내심 깜짝 놀랐다.
담담한 장태산의 목소리에서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합니다.”
– ……안 좋군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장한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 이 보고 이후 더 이상 장태산과는 연락할 수 없을 것이다.
임준형의 비서들이 모든 걸 감시하기 시작했을 게 빤했다.
오정의 정보력이라면 못 할 게 없었다.
장한수 실장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었다.
– 알겠습니다. 실장님도 조심하십시오.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장태산의 당부.
“회장님도…… 조심하십시오.”
– 걱정 감사합니다. 그럼.
통화는 의외로 짧게 끝났다.
“휴우우…….”
긴 한숨과 함께 털썩 의자에 주저앉은 장한수 실장.
그동안 지지해 주었던 버팀목이 사라진 후유증이 밀려왔다.
힘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창 밖 도심을 밝힌 불빛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누구? 장한수 실장?”
“네.”
“…….”
손대균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정보력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오정의 2인자를 통해 바로 소식을 전해들은 장태산이 괴물처럼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끈끈하군.’
성격 깐깐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장한수가 장태산을 향해 회장님이라고 정확하게 호칭했다.
웬만한 그룹 회장보다 파워가 센 장한수 실장.
그의 입에서 쉽게 나올 말이 아니었다.
“회장님 상태는?”
“심근경색으로 심각하답니다.”
“……안타깝군. 대한민국 재계의 기둥이셨는데.”
‘이 녀석도 꽤 놀란 것 같은데…… 언제 감정을 회복한 거야?’
앞선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듣고 놀랐던 장태산은 어느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빨 튼튼한 피라니아들이 파티를 준비하겠군요.”
“주가가 요동치겠지.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자들이 작전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거고…….”
손대균도 오정의 미래가 짐작됐다.
상속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오정은 경영권에 위협을 받는다.
만약 외국계 자본들이 대표를 선정하게 되면 그날로 오정전자는 끝난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유보금을 당장 배당하려고 할 것이다.
투자는 뒷전이 되고 몇 년 그럴싸하게 굴리다 중국에 고가로 넘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는 암울함에 빠진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오정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내에서 오정이 무너지는 순간 미래 먹거리 산업 반절 이상이 기반을 잃고 무너져 내릴 게 빤했다.
“선배님도 준비하십시오.”
“뭘?”
갑작스런 장태산의 말.
“오정 임성철 회장님이 쓰러지셨는데…… 느끼는 바 없습니까?”
“착하게 살라고?”
“제가 선배님 그래서 좋아합니다. 똑똑해서요.”
“환율과 선물도 못 하는 무식한 놈이라며!”
“무식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박판에 낄 선수는 아니라고 비유적으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끙…….”
손대균이 다시 한 번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말로는 장태산을 이길 수 없었다.
“앞으로 몇 년 안 남았습니다. 똥파리 뒤를 쫒아 화장실 주변만 맴돌지 마시고 꿀벌인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그럼 노년은 꽃밭에서 노닐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너 잘났다.”
즐거운 표정으로 씨익 웃는 장태산.
상황과 맞지 않게 참 태연했다.
“임 회장님 걱정 안 돼? 너하고 친분이 깊잖아.”
“돌아가실 때가 아닙니다.”
“네가 예언한 것처럼 쓰러졌잖아?”
“네. 쓰러지셨습니다. 그게 답니다. 문제 있습니까?”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장태산.
“임준형 조심해라. 너 찍어 넘기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선배님, 그 말은 임준형에게 들려줘야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장태산.
“!!!”
‘그래 내가 잊고 있었다. 임준형이라고 해도……. 안 돼.’
손대균은 장태산의 여유 있는 모습에서 그의 자신만만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오정과 맞짱 뜰 수 있는 존재.
그가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장태산이었다.
“오늘은 이만 자리를 여기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 갈 거야?”
“준비하러 가야죠.”
“무슨 준비?”
“그래도 아는 분이 쓰러지셨는데…… 병문안 준비는 해야죠.”
“병문안? 누구? 임 회장님?”
“네.”
“포기해. 장한수 실장도 못 만날 거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손대균은 진심으로 걱정됐다.
임준형의 지시로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을 임성철 회장의 병실.
대한민국 대통령도 지금은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제 영업 비밀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