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4
73장. 제가 먼저 답하겠습니다!
‘예린 선배?’
내 첫사랑이자 다시 사는 인생에서 나에게 물 먹인 그녀가 내 앞에 서 있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었다.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 따뜻한 아이보리 스웨터를 입고 있는 예린 선배는 그 사이 분위기가 또 변했다.
처음 보았을 때 순수했던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위험스러운 요염함이 예린 선배에게서 풍겼다.
여름휴가 때 마주했던 모습도 아니다.
여배우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씬한 몸매와 새하얀 피부, 아름다운 얼굴은 주변의 남자 시선들을 쑥 빨아들였다.
은은한 화장과 살짝 붉은 입술이 매혹적이다.
수컷 수십 마리가 혼을 빼서 내놓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우다.
그런 예린 선배가 내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예린이 선배들에게 생긋 웃는다.
“어, 어어.”
공부만 하던 쑥맥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예린의 팜므파탈적 매력에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했다.
예린 선배 미모는 이곳에서 압도적으로 치명적이다.
오동성이 침을 흘릴 만한 미모다.
“무슨 일이야? 우리 도와주려고? 너 신림동 들어가지 않았어?”
조교를 비롯해 남자 선배들이 신성한 면접장 앞에서도 흑심을 감추지 않았다.
“잠깐 나왔어요. 고향 후배가 면접 본다고 해서요~.”
예린 선배 목소리는 그동안 세상사는 걸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애교가 살짝 들어갔지만 가볍지 않은 듣기 좋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쟤가 네 후배야?”
“네~.”
대답하며 예린 선배가 날 봤다.
“태산아. 반가워. 논술 때는 시간이 없어 못 왔다. 이해해 줄 거지?”
자연스럽게 예린 선배가 나에게 반말하며 친근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내가 아직도 애로 보이나?
내 안에 30대 아저씨가 산다는 걸 모르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아마 내 나이 또래라면 섹시 도발로 다가온 선배에 대해 무척 당황했을 거다.
그러나 난 인생 다시 사는 장태산이다.
여기서 헬렐레 바보 인증은 사절이다.
“제 이해가 왜 필요하죠?”
“어?”
무심하고 시크한 내 물음에 예린 선배가 당황했다.
“!!!”
주변에 있던 시선들 모두 깜짝 놀랐다.
누가 봐도 내가 예린 선배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태산아~ 삐친 거야? 피이~ 알았어. 오늘 면접 끝나고 밥 먹자. 우리 할 얘기 많잖아. 나도 할 말이 있고 말이야.”
예린 선배를 내가 너무 얕봤다.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한국대 법대생이다.
뼈저리게 남자에게 배신도 당해봤던 그녀가 순순히 물러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그녀를 묵묵히 올려다봤다.
웃고 있지만 눈빛은 울려고 준비 중이다.
내가 여기서 더 그녀를 무시하면 확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분위기다.
이곳에 오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렇게 무시당하고도 나를 찾아온 예린 선배의 용기가 가상했다.
“전화할게요.”
“그래? 그럼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
예린 선배 얼굴이 활짝 펴졌다.
완전 개쪽을 줄 수 있었지만, 첫사랑에 대한 마지막 예의는 보이고 싶었다.
“지금 면접 앞에 두고 있습니다. 끝나고 연락하겠습니다.”
더 이상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이따가 봐.”
예린 선배가 다시 한 번 확인 받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교님들, 선배님들 다들 수고하세요~.”
“어? 그, 그래.”
바보들이 합창하듯 대부분 안경 낀 선배들이 예린 선배의 인사에 정신을 못 차렸다.
예린 선배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녀가 남기고 간 진한 향기가 공간을 잠식했다.
“뭐야? 진짜 예린이 후배야?”
“저 새끼……, 왠지 기분이 나쁜데.”
“예린이 동성이랑 쫑 났지?”
“소문 쫙 났습니다. 동성이 그 놈 워낙에 바람둥이잖아요.”
“예린이가 순수했지. 안타까워.”
“대시하는 놈들이 줄을 섰어요. 선배도 한 번 서 봐요.”
“예린이가 받아준다면야……, 흐흐.”
어이 형씨들 정신 차리세요.
사법고시 패스해도 어림도 없어요!
예린 선배가 욕심이 많다는 걸 동성이 쓰레기와 나만 안다.
여기 보이는 사법고시에 인생을 건 남자들에게 예린은 1도 관심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예린 선배가 돈 냄새를 맡는 돈코가 달렸나?
예린 선배가 사라졌지만 전혀 관심이 없다.
죽기 전 인생이었다면 목숨 걸고도 남았을 것이다.
저기 못난 수컷들 대열 순위 안에 당당하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예린 선배에게 인생을 걸기에는 내 삶이 아까웠다.
끼리릭.
그 사이 첫 번째 면접자들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흐윽…….”
우는 여자애가 보였다.
“아아.”
영혼이 탈탈 털린 사내놈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훗~.”
그에 반해 면접을 잘 본 녀석은 입가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 저러다 떨어지면 누굴 원망하려고 겸손을 버렸는지 모르겠다.
“6번부터 10번까지 들어가세요.”
겁먹고 긴장한 경쟁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순서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내 면접 순서가 다가왔다.
“41번부터 45번까지 들어가세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들이 꺼리는 숫자 44.
어깨를 쭉 펴고 걸음도 당당하게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것보다는 쉬웠다.
***
“하아아.”
예린은 법대 건물에서 나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쉽지 않은 걸음이었다.
지금껏 20년을 버텨왔던 자존심 모두를 내려놨다.
가장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옷으로 코디했다.
태산이 함께했던 휴게소 그녀처럼 보이기 위해 야함을 무릅썼다.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소화하지 않았던 패션이다.
태산에게 다가가기 전에 수없이 최면을 걸었다.
과거 버스에서 자신에게 초콜릿을 건네던 태산을 생각했다.
‘잘했어. 이예린! 이제 한 고비 넘은 거야!’
친구들을 통해 장주 고등학교 장태산에 대해 알아봤다.
집이 갑자기 부자가 됐다.
재벌 집 자손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돈 때문이 아니다.
예린은 태산의 행동과 눈빛에서 다른 사내들과 다른 엄청난 야망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바람둥이에게 홀렸지만 정신을 바로 차렸다.
어릴 때부터 판사였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던 안목의 힘이 작용했다.
한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면접에서도 나쁘지 않을 거야. 교수님들 눈빛은 나보다 더 확실하니까.’
한국대 법대 면접을 경험해봤던 예린은 교수님들의 성향을 알고 있다.
공부만 잘하는 수재보다는 야망이 큰 제자를 원했다.
학교와 법대, 동문에게 힘이 될 인재를 선별하는 게 교수님들이 추구하는 합격생이었다.
사회경험이 일천한 젊은이가 아닌 정치와 권력 핵심 인재들을 배출하는 교수들의 눈은 달랐다.
예린도 과거 면접 점수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어! 예린아! 학교에 무슨 일이야?”
예린과 친하게 지내는 여자 동기가 말을 걸어왔다.
“아는 동생 면접 때문에 응원 왔어.”
“아는 동생? 친척?”
“아니, 전에 살던 동네 후배.”
“철벽녀 예린이 네가 관심을 둘 정도야?”
“그냥 동생이야.”
“아닌 거 같은데?”
“너는 무슨 일이야?”
“소문 확인하러 왔어.”
“소문? 뭐?”
“세상에 우리 학과에 모델 같은 사내놈이 나타났다는 거야. 면접 지원 나왔던 애들이 문자 돌리고 난리도 아니다.”
“!!!”
예린은 깜짝 놀랐다.
벌써 태산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범생이들이 넘쳐나는 한국대에 태산 같은 남자는 거의 없다.
앞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은 태산과의 인연.
예린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
“학과장님. 올해 애들은 그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똑똑한 놈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올해가 마지막 학부 제자인데…….”
나이가 쉰 이상의 한국대 정교수들 다섯 명이 의견을 나눴다.
2008년 신입생을 마지막으로 한국대도 로스쿨로 전환이 된다.
이제 한국대 법대 동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순서만 남았다.
로스쿨 대학원생과 법대 동문은 그 의미가 달랐다.
끈끈하게 이어져 오는 대한민국 권력 핵심층 대다수가 한국대 법대 동문들이다.
발에 치이는 판검사 말고,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이나 장차관급 인재가 될 싹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한국대만의 카르텔이 있었다.
한국대 법대 교수는 일개 대학교 교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치의 조종자들 역할을 맡았다.
동문의 힘으로 뜻대로 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국회에서 피 튀기며 싸우는 야당과 여당 의원들도 동문의 이름 아래서는 똘똘 뭉쳤다.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은밀한 거래가 성사됐다.
그 축에 교수들이 존재했다.
그런 교수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대한민국 수재들이라 불리는 인재들이 모였지만 확 끌리는 면접생이 없었다.
쓸 만한 애들은 존재했지만 확실한 리더가 보이지 않았다.
스르르륵.
문이 열리고 새로운 면접생들이 들어왔다.
“!!!”
“???”
면접 서류를 보다가 고개를 들던 교수들이 이채를 띠었다.
체대나 연극영화과에나 어울릴 법한 탄탄하고 쭉 뻗은 미남자가 들어왔다.
면접 번호 44번 장태산.
지방의 작은 시에서 올라온 시골 촌놈이다.
파바밧.
교수들과 장태산의 눈빛이 마주치며 작은 불꽃을 튀겼다.
긴장하거나 쫄아서 위축된 면접생들 중에 유일하게 어깨를 쭉 펴고 떨지 않았다.
차분하게 교수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까지 띠는 여유를 부렸다.
‘이 녀석……, 뭐지?’
학과장이자 헌법 학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교수 주태열이 가장 놀랐다.
그동안 만났던 제자들 중에 저런 체격 좋고 얼굴까지 잘생긴 놈은 없었다.
더욱이 녀석은 면접 응시생이 아니라 면접관처럼 교수들을 살폈다.
한국대 법대 교수 자리는 공부만 해서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다들 정치와 인연이 있는 교수들이 그 시선을 모르지 않았다.
녀석의 태도와 눈빛에서는 연륜과 여유가 묻어났다.
결코 이 나이 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반갑습니다. 형법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복이라고 합니다.”
서글서글한 둥근 인상과 달리 형법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상복 교수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긴장들 하지 말고 편안하게 말하면 됩니다. 이곳까지 왔다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인재들이라는 건 우리와 여러분 모두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과 달리 이상복 교수의 시선은 매서웠다.
응시생들이 움찔거렸다.
사자에게 포위된 어린 사슴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 면접 주제는……, 아주 간단하고 기초적인 질문입니다. 마음껏 토론해 주시면 됩니다.”
이상복 교수가 웃었다.
면접 응시생들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여러분들은 왜 한국대 법대에 응시하셨습니까?”
너무나 뻔한 질문이었다.
“솔직하게 답변해 주면 됩니다.”
솔직하게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는 이상복 교수였다.
응시생들 모두 서로 눈치를 봤다.
아주 기초적으로 묻는 질문 형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답변을 요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스윽.
그때 44번 응시생이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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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