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47
748장. 뒤통수와 뒤통수.
“상급 마력 기사들로 구성된 황실 근위 기사단?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믿을 수가 없군. 몇 년 만에 그런 기사단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대륙 심처에 위치한 갈기오 마탑.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탑주실에서 30대 초반의 금발이 꽤 눈부신 남자가 은밀하게 전달된 서류를 살피고 있다.
방금 전 전송된 보고서.
“베커 공작. 진정 정체가 무엇이더냐…….”
때 아닌 고민에 빠진 탑주 발몬.
젊은 외모와 달리 눈빛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현명한 노인의 것처럼 깊었다.
웬만한 혼란의 바람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바이클 국왕과 전면전이라. 설마 자신이 진짜 황실의 수호 공작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크크크.”
마나 샤워로 몸을 새로 구성한 탑주 발몬이 은근한 비웃음을 흘렸다.
올해로 나이 150세.
인간의 기본 수명을 훨씬 넘기고도 건강한 육체를 유지했다.
이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마나의 길을 걸었던 발몬 탑주.
8서클 마스터급 마법사다.
실력 있는 마법사나 기사를 떠나 인간 세상에는 아예 두려울 자가 없었다.
그런 발몬에게도 베커 공작은 의문스러운 존재였다.
보고서의 내용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베커 장이 겸비한 갖가지 능력들은 탁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일개 후작령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크로얀 제국 황실의 수호공작일 뿐.
제국의 마지막 핏줄인 황녀가 감히 검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바이클 국왕과 전면전을 준비했다.
대결의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기본 전력 차이에서 이미 압도적으로 바이클 왕국이 앞섰다.
미련하게도 베커 공작이 선택한 방법은 정공법이다.
“사르칸 마탑에서도 장로들 셋을 파견했다. 끝장을 보겠다는 의미인데…….”
경쟁 마탑의 과감한 참전에 발몬은 닥쳐올 여러 가지 파장을 생각했다.
“바이클 국왕이라면 황녀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야. 혹 왕세자와 결혼이라도 시킨다면……. 제국의 이름을 얻을 수도 있겠지.”
마탑주는 실력이 있다고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발몬은 누구보다 영민한 자였다.
시시때때로 전해지는 은밀한 각종 보고서를 통해 미래를 예측했다.
격동의 시기가 닥칠 때마다 처세를 잘해야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과거 제국 시절만 해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마탑들.
정치 중립을 선포하고 마법 수행에 최선을 다했다.
황실과 황실 소속 마법사들의 힘은 공포로 여겨질 정도였다.
당시 황실 마탑은 8서클 마법사가 둘이나 됐다.
그들이 움직이면 대형 마탑도 웬만해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8서클 마법사의 힘을 등에 업고 있던 황실이 사라지면서 자유를 만끽하게 된 마탑들.
그렇기에 더더욱 황녀를 가만둘 수 없다. 멸망한 줄만 알았던 제국의 마지막 남은 황실의 피.
이런 마탑들의 입장과 달리 각 정치 세력들은 황녀가 필요했다.
“라든 마탑은 과거처럼 중립을 지키겠지. 이렇게 앉아서 사르칸 마탑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지.”
발몬은 이런저런 계산을 하며 생각을 정리해갔다.
불씨가 될 제국 황실 핏줄인 여인 아린은 지나칠 수 없는 대단한 미끼였다.
“잡아다 팔면 돈 좀 되겠어. 그것도 아니면……. 우리 마탑이 황실 마탑이 될 수도 있겠고 말이야. 크크크.”
머릿속에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다양한 미래가 그려졌다.
최근에는 이렇게 좋은 큰 기회가 없었다.
“서로 치고받을 때…… 황녀를 빼돌린다! 이제 갈기오도 새로운 역사를 쓸 때가 됐다.”
결심을 확고히 한 발몬 마탑주.
파아앗.
거침없이 마탑 중앙에 위치한 통신 수정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장로들은 즉시 중앙 회의실로!”
***
“주군……. 이 전력으로 전면전은 무리입니다.”
충성스러운 기사 카르스가 내 계획에 얼굴이 핼쑥해졌다.
“흐흐흐. 죽더라도 폼은 나겠습니다.”
용병 출신 탈만의 눈빛은 반짝였다.
한 번 용병은 영원한 용병이라는 신조가 딱 어울렸다.
“카르스 경.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주군. 전력 차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팰트론 왕국군은 과거 제국 시절에도 대적할 자가 없을 만큼 무적이었습니다.”
웬만하면 나의 말을 따랐을 카르스 경이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전력 차, 인정한다.
황실로 사용되고 있는 후작성에 쓸 만한 병사들은 겨우 10만 명을 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몰려온 기사 지망생들까지 포함해도 기사들은 수백 명 정도 남짓.
용병으로 참전한 5서클 마법사와 하급 졍령사들 몇 명이 핵심 전력의 전부다.
아린을 호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근위기사단을 제외하고 진짜 믿을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력석의 마력을 뽑아 근위기사들에게 주입했다.
그리고 특별한 무공을 수련하게 만들었다.
그들만이 진짜 쓸 만한 나의 오른팔.
다른 기사들은 나의 직속 기사들이 아니다.
그 무리에는 여기저기서 파견해 놓은 세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물 세듯 줄줄 빠져나가고 있을 정보.
돌아가는 정황 모두 나의 계획 범주 안에 들어 있는 시나리오다.
“카르스 경. 왜 쫄고 그래. 우리 이 정도면 잘 살았잖아. 그리고 우리 아직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청춘이야.”
“탈만 경…… 청춘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엄마가 그랬어. 안 죽으면 다 청춘이라고.”
“네?”
탈만 경 어머니, 마음에 든다.
어차피 누구나 죽게 된다.
100년을 산 자에게 90년 산 자는 누가 봐도 청춘이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 주군이 전면전을 주장할 때는 다 이유가 있어. 주군! 그렇지 않습니까?”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유도 질문을 던지는 탈만 경.
은근슬쩍 떠보는 질문에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생에 자주 가던 대학로 주변 치킨집 사장님이 농담처럼 한 말이 있었다.
방금 먹어치운 치킨이 양념이었는지 후라이드였는지 모를 정도로 뼈를 완벽하게 발라 먹어야 치킨계의 진정한 고수라고 말이다.
요지는 다르지만 그 정도 심정으로 비밀을 엄수해야 했다.
측근들도 나의 계획을 굳이 알 필요 없었다.
오로지 나만 알면 되는 계획.
“주군…….”
카르스 경이 확인 차 나를 불렀다.
이럴 때는.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물품들은 완벽한가?”
“방한복을 비롯해 일체 군수물품들이 차질 없이 지급됐습니다. 식량 또한 넉넉합니다.”
카르스 경이 바로 대답했다.
접시 하나 바꿔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이번 같은 대규모 전쟁을 대비할 정도는 됐다.
“탈만 경. 팰트론 왕성에 보물이 제법 쌓여 있다며?”
“흐흐. 주군. 말도 마십시오. 국왕이 전쟁광이라 세금이 높습니다. 통행이 불가피한 교통 요지에 팰트론 왕국이 위치해 있어 상인들도 세금을 어쩔 수 없이 바쳐야 합니다. 왕국이 가진 국력도 대단해 귀족들도 알아서 세금을 바칠 정도입니다. 듣기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들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용병이었던 인물이라 아는 것도 많았다.
“마력석도?”
“왕실 마탑을 따로 운영할 정도라 하급 마력석은 물론 상급 마력석도 상당히 많이 있을 겁니다.”
“마음에 드는군.”
“흐흐흐. 터시게요?”
“당연하지. 전리품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야.”
“왕성 털 때 언제나처럼 선봉에 서겠습니다!”
탈만도 신이 났다.
귀족성 털이 전문가가 다 됐다.
“…….”
그에 반해 카르스는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국왕만 잡으면 끝이겠지?”
“자존심이 대단합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고요. 어떤 식으로든 자극하면 바로 달려들 겁니다.”
“역시 기대 되는군.”
이곳에 오면 이런 게 참 좋다.
지구에서처럼 이런저런 상황 생각해가며 눈치 볼 게 없었다.
이곳의 기준은 강한 자가 법이라는 것이다.
누구 하나 때려잡을 때도 힘만 있으면 장땡.
은근히 대전투가 기다려졌다.
“카르스 경.”
“넵! 주군.”
“곧 손님이 오실 것이야. 경은 성에 남아서 그분들을 정중하게 모시게.”
“손님요? 누구…….”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난 바보가 아니다.
혼란스러운 때를 틈타 자연스럽게 찾아올 여러 손님들.
그들을 위해 심심치 마시라 이벤트를 준비했다.
“첫눈치고는…… 눈이 많이 내리는군.”
창밖에는 벌써 눈이 제법 쌓였다.
피 터지게 전쟁하기에는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는 날씨다.
***
“대오를 맞춰라!”
“백인대 출발!”
히이이이이이잉.
척척척척.
쥬넨 후작가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성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 중 수만 명이 매서운 아침 추위를 뚫고 출병했다.
말들은 연신 콧김을 뿜어댔고 병사들의 발걸음은 사기충천해 장중하기까지 했다.
전쟁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성을 휘감았다.
대적을 상대하는 전쟁인 만큼 출병하는 병사들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탈영병은 극소수에 그쳤다.
다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두두두두두두.
성문 밖으로 먼저 움직인 기사단은 답답한 심정으로 달려 나갔다.
말발굽에 나부끼는 얼어붙은 눈송이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베커…….”
출병하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승리를 축복해 주고 방으로 돌아온 아린.
발코니에서 떠나가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아린의 시선은 점점 작아져가는 맨 앞의 한 사람을 향했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백마를 타고 멀어져 가는 베커 장 공작.
마음은 동행하고 싶었지만 황제 대행은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린이 곧 제국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가슴을 졸이면서 아린은 베커 공작의 승리 귀환을 빌고 또 빌었다.
모두가 앞서 패배를 점쳤지만 아린은 생각이 달랐다.
지금껏 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왔던 베커 공작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은 어떤 신들에 대한 믿음보다 더 컸다.
“내일이면 마주치겠지…….”
적을 깊숙이 끌어 들였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상태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와 운명은 내일 아침 결판이 날 것이다.
단 한 번의 전면전.
아린은 승리의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잠을 청하지 못할 터였다.
“베커…….”
망부석이 된 듯 아린의 시선은 이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진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좇았다.
***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잘들 따라나서는구나. 크크크.”
후작성에서 황실 업무를 보는 고위 귀족이 머무는 높은 층의 집무실.
멀어지는 병사들을 지켜보며 자라스 백작이 비웃었다.
“황실 보물이라도 있나 했더니…… 빈털터리 황녀라……. 정보라도 팔아먹지 못했다면 이대로 망할 뻔했어.”
자라스 백작은 아린 황녀에게 줄을 댄 것을 후회했다.
황녀가 당당하게 황실 복원을 선포하기에 전설로 내려오는 황가 보물 창고라도 확보한 줄 알았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보물은커녕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베커 장 황실수호공작이 아니었다면 후작성을 얻는 일도 불가능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재력을 투입해 지금 규모의 병사들을 키워낸 베커 장 공작.
능력이 없는 황녀 아린의 존재는 자라스가 보기에 모두에게 민폐였다.
파아앗.
그때 집무실 한켠에 위치한 마법 통신구에 빛이 들어왔다.
타다닥.
급하게 다가가 마나를 불어넣는 자라스 백작.
– 개미들은?
형체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전해지는 장거리 통신구.
“지금 떠났습니다.”
– 그자는?
“선두에 섰습니다.”
– 그럼 계획대로인가?
“그렇습니다. 방어 마법진도 없습니다.”
자라스는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 알겠다.
상대의 말이 끝났다.
동시에.
파아아아아아앗.
마법 통신구 옆의 텅 빈 공간에서 갑자기 강렬한 빛이 또 터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세 명의 로브를 착용한 마법사들.
“오셨습니까.”
백작 신분인 자라스가 그들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