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52
753장. 싸가지는 싸가지를 낳는 법.(2)
‘뭐야?’
주아는 당황했다.
요즘 들어 더 바빠진 오빠와 겨우 시간을 맞춰 쇼핑을 나선 날이다.
먼저 입학했지만 사법시험과 여러 사업으로 바빠 아직 졸업을 못한 오빠 장태산.
데이트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졸업 핑계를 대며 이것저것 쇼핑을 했다.
주아도 어엿한 여성이 됐다.
가벼운 쇼핑을 즐기며 그동안 졸업 작품 제작 중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렸다.
예과를 마치고 가장 힘들다는 본과 2년을 보내는 동안 영혼이 탈탈 털릴 지경이 된 주희도 함께 끌고 나왔다.
의대는 아무나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졸업 작품 때문에 날을 새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된 의대생들의 공부 양.
주희는 그래도 꿋꿋하게 해내고 있었다.
오빠가 건네준 물약을 먹고 체력만큼은 누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가 한가롭게 쇼핑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분명 피한다고 피했는데 고의로 핸드백을 앞뒤로 세차게 흔들며 걸어오던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흔들어댄 핸드백에 주아가 맞고 말았다.
당황스럽게도 여성은 사과는커녕 먼저 짜증을 냈다.
“눈은 뜨고 다니는 거야?”
실내임에도 짙은 선글라스를 낀 채 표독스레 쏘아붙이는 여성.
이목구비는 제법 예쁘장한 게 몸매도 날씬하고 눈에 띄는 미모였다.
하지만 뭔가 전체적인 조화가 어색했다.
말할 때마다 부자연스러운 입매는 성형 수술한 듯했고 때문인지 얼굴이 굳은 듯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니 뭐야? 왜 그래?”
주희가 다가와 주아의 팔을 만졌다.
“당신 뭐죠? 먼저 사과를 해야 맞지 않나요?”
주희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방금 전 도도하게 걸어오던 여성을 비껴주던 주아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넓은 로비 한가운데서 의도적으로 부딪쳐 온 여자.
“사과? 너 뭐야. 니가 뭔데 나한테 사과를 하라 마라야!”
어이없이 목소리를 더 높이는 상대 여성.
‘미쳤나? 아니면 또라이?’
주희는 어이가 없는 시선으로 여성을 흘겨봤다.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했다.
어울리지 않게 걸친 화려한 액세서리와 명품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지존급 허영 싸가지.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이 살아온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뭘 노려봐!”
“하아…… 미치겠네.”
학교에서 한 성깔하기로 소문난 장주희가 답답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시비 털기였다.
“미쳐? 야! 너 뭐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버럭 악을 쓰는 여자.
“무슨 일이야?”
“싸움 난 거야?”
한창 대학교 졸업이 연이어 있는 시즌 주말이었다.
그만큼 백화점에는 쇼핑객들이 많았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옥타브가 올라간 여성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2층 A블럭 3코너 로비. 고객님 사이에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조치 바랍니다.”
– 상황 접수했습니다.
주변 매장 매니저가 센터로 신고를 했다.
“모니터 띄우세요.”
곧바로 보안팀 팀장이 CCTV로 상황을 살폈다.
종종 쇼핑을 하던 고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먼저 증거 자료 확보를 위해 고성능 CCTV가 작동 됐다.
“VIP들이야?”
“차림으로 보아…… 그런 것 같은데요?”
“어떻게 된 일이야?”
“잠시만요.”
녹화된 CCTV 화면을 돌려보는 보안팀 직원.
“다소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먼저 선글라스 낀 여성분이 가방으로 비켜주는 상대 여성의 팔목을 가격했습니다.”
“뭐? 왜?”
팀장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저야 모르죠. 여자들 심리를 제가……. 자기보다 예뻐서 그랬나 보죠? 아니면 다른 데서 뭔가 심사가 뒤틀렸다거나…….”
“미치겠네. 주말에 저러면 매출에 지장 있는데.”
가장 핫한 코너에서 이벤트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보안 팀장이 인상을 썼다.
VIP들의 신경전에 잘못 끼어들면 당일 백화점 매출에 타격이 컸다.
상류층 고객들은 특히 서로서로 연결돼 있어 더욱 민감했다.
파워가 센 집단의 구성원이 보이콧을 하면 거짓말처럼 VIP 매출이 확 떨어진다.
일반인 100명보다 VIP 한 명이 백화점에 가져다주는 이익이 더 컸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손 쓸 상대가 아니다.”
팀장은 화면에 보이는 네 사람의 차림을 살피다 고개를 저였다.
이름만 알고 있는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것도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상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VVIP가 확실했다.
“부지점장님 연결해.”
“넵!”
VIP들 다툼에는 일반 직급 직원들이 나설 수 없었다.
저 정도면 빤히 지점장부터 찾을 게 확실했다.
그런 타이밍에 꼭 필요한 부지점장.
– 부지점장님. VIP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VIP들? 어디야?”
– 2층 A블럭입니다.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안아 갤럭시 명품 백화점 부지점장 안태정이 보안팀 연락을 받고 곧바로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요즘 들어 매출 상승 곡선이 한풀 꺾였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백화점에 근무하는 임직원의 운명은 파리 목숨 같았다.
특히 강남에 위치한 명품 백화점은 입소문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사소한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하면 바로 소문이 돌았다.
다음 기수 지점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안태정에게는 특히 VIP에 관련된 일인 만큼 끔찍한 사태였다.
슈트를 점검하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섰다.
“VIP 누구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리급 비서에게 바로 묻는 안태정.
“방금 명품 매장 직원으로부터 KI 그룹 임주혁 회장님의 첫째 따님인 임서라 씨라고 확인했습니다.”
“KI그룹?”
‘임서라라……면 그 꼴통 아냐.’
안태정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
백화점 업계에는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는 임서라.
KI그룹 일가인 것만 믿고 오만방자하기가 그지없었다.
갑질 전문에 성격도 괴팍한 다혈질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언제나 특별 한정판만을 고집하는 임서라.
한 달에 1억 넘게 카드를 긁어주는 것 말고는 반가울 일이 없는 여성이다.
씀씀이가 워낙 크다보니 그 만큼 콧대가 아주 높았다.
한 번 심사가 뒤틀리면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장에서 난동을 부리기 일쑤인 그녀.
명품 백화점 VIP 특별 리스트에 올라 있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상대는?”
“아직…… 파악 못 했습니다.”
“그런데…… VIP라고 한 거야?”
“착용하고 있는 액세서리들이 초고가 한정판이라고 합니다.”
“한정판?”
한정판이라는 말에 안태정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충 사건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딱 봐도 임서라가 미처 손에 넣지 못한 물건을 상대 여성이 들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갖겠다고 마음먹은 물건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임서라.
오늘 그 고질병이 제대로 발휘된 듯했다.
“골치 아픈데…….”
저벅저벅.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안태정이 혼잣말을 뱉었다.
느낌이 아주 싸한 오늘.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진 것 같아 불안하기만 했다.
***
갑자기 시비가 붙은 여자 때문에 난장판이 된 백화점.
도도하다 못해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여성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스윽.
가는 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벗는 여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계산적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아랑곳 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안하무인으로 막 자란 티가 팍팍 났다.
딱 봐도 수술은 했는데 팍 치켜 올라간 사나운 눈매는 어쩌지 못한 듯하다.
눈빛에서 풍겨오는 전투력이 아주 수직상승 중이었다.
쌍둥이들과 마주하며 만만치 않게 기세를 풍겼다.
“누구? 막말? 여보세요. 저 아세요?”
주희가 말발 연사를 쏘아붙였다.
“네까짓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 흥!”
네까짓 것?
아무래도 간이 강철로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이성의 끊을 놓지 않고 있는 주희.
하지만 서서히 쌍심지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우리 집안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장주희다.
“네 까짓 거? 조카의 18색 크레파스로 시베리안 개스키 그려 봤어?”
오! 나왔다 18색 크레파스!
“뭐, 뭐라고????”
상대 여성의 두 눈이 쫙 찢어지며 커졌다.
공부 잘하는 의대생들은 욕도 참 잘한다는 거 익히 알고 있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때 욕으로 밥 세끼를 다 챙겨 먹다보니 저절로 장착하게 되는 능력.
그야말로 세대를 거듭해 전해지는 의대 전설이라고 했다.
본과에 올라간 주희도 많이 변했다.
오빠 앞이라는 것을 잊었는지 무시하는 건지 과감하게 본성을 드러냈다.
해부로 시체 몇 구는 손수 만져봤을 장주희.
상대에게 고품격(?) 욕을 찰지게 투척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 안 들려? 귓밥 찬 것 같은데 이비인후과 가봐. 요즘은 젊은 것들도 말 귀를 못 알아먹어 난청이 온다더라. 선배 소개시켜 줄까?”
이죽거림은 덤으로 도가 튼 장주희.
“야!!!”
선글라스를 낀 게 더 나았을 그녀가 소리를 쳤다.
“야가 아니라. 내 이름은 장주희야. ‘여보세요’나 최소한 ‘당신’ 정도의 말을 사용할 품격 같은 건 못 갖춘 거야? 여기가 시장통도 아니고…… 교양 없게.”
18색으로 기선 제압을 한 후 조곤조곤한 말로 확인 사살에 들어가는 장주희.
“너…… 너!”
상대 여성이 온몸을 분노로 떨었다.
여성들 싸움, 나까지 나설 일도 없었다.
“누구야?”
“정말 교양 없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아! 맞아! 한 여사 큰 딸이잖아.”
“맞네! 한 여사 큰 딸.”
“아니 말 많은 아가씨가 백화점에서 이런 소란을?”
“그 집안…… 목소리가 큰 걸로 유명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쯧쯧.”
한 여사?
역시 강남이라 있는 집 사모님들 정보력이 빨랐다.
대번에 선글라스녀의 정체가 파악됐다.
들리는 소리로 보아 평범한 집안 자제는 아닌 것 같다.
“비켜주십시오.”
그때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제법 덩치가 큰 경호직원.
“아가씨.”
“최 비서! 너 뭐야! 내가 이런 것들한테 수모를 당하고 있잖아!”
“죄송…….”
쫘아아악.
선글라스녀는 나타난 경호원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아직 갑질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지지 않은 시절이기에 가능한 행동.
“죄송합니다.”
수치심을 참고 덩치 큰 남자가 얼굴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은 됐고. 이것들 정리해.”
경호원이 나타나자 더 의기양양해진 선글라스녀.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듯 자연스레 행동했다.
“아가씨에게 사과하십시오.”
최 비서라는 자가 주희를 향해 말했다.
“사과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 분이 핸드백으로 제 언니 팔을 먼저 가격했거든요! 그리고 욕도 당신 아가씨가 먼저 했구요.”
주희가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따지고 들었다.
“……사과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그럼에도 경호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경고해 왔다.
싸가지를 호위하는 싸가지 경호원.
“재수 없어. 어디서 저런 게 레티아노 한정판 빽을 들고 다녀…….”
그때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선글라스녀의 목소가 귀를 파고들었다.
주아 졸업 기념으로 로버트 라이언이 뉴욕에서 특별히 보내 온 선물.
딱 봐도 명품은 확실했지만 사실 어떤 제품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에게는 더 이상 명품의 의미가 없었다.
타다다닥.
“죄송합니다. 잠시만 비켜주십시오.”
그리고 두 명의 사내가 더 나타났다.
깔끔한 슈트가 어울리는 중년 사내와 비서로 보이는 백화점 직원.
중년 남자 슈트 상의에 부지점장 안태정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는 금색 명찰이 달려 있다.
“안아 갤럭시 백화점 부지점장 안태정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오자마자 고개부터 숙이며 정중하게 물어오는 부지점장.
차림이나 행동 모두 깔끔했다.
“부지점장? 지점장 없어요?”
선글라스녀는 자연스럽게 지점장을 하인 부리듯 찾았다.
“지금 본사 회의에 들어가셨습니다.”
“나 누군지 알죠?”
“알고 있습니다.”
부지점장이 알고 있다면 확실히 평범한 집안은 아니다.
싸가지가 한층 더 기세등등해졌다.
“그럼 간단히 말할게요. 나와 부딪치고도 사과하지 않은 뻔뻔한 저 두 여자한테 사과와 심심한 위로를 받고 싶어요.”
심심한 위로를 받겠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시선은 주아의 가방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밉상을 영접한 것 같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저렇게 무식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예의와 도덕규범이 저 여자의 머릿속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혹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겠습니까?”
쌍둥이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는 부지점장.
그 와중에도 쌍둥이들의 차림과 착용한 액세서리들을 빠르게 훑었다.
어쩔 수 없는 직접적 선입견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회생활의 한 단면.
씁쓸했다.
보이는 게 다인 것처럼 돼 버린 세상.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사회적 신분을 판가름하는 가장 큰 도구가 되어 있었다.
“보행 도중 저분이 제 팔을 핸드백으로 쳤습니다.”
주아가 조용히 설명했다.
“니가 부딪쳤잖아!”
역시 싸가지는 개과천선이 힘들 것 같다.
“우리 언니한테 반말하지 마세요. 조카의 18색 크레파스야.”
“야!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주희의 웃음 띤 갈굼에 백화점이 떠나가라 악을 써대는 싸가지.
이제 판을 정리할 때가 된 듯했다.
난감한 표정의 부지점장 앞으로 조용히 나섰다.
“법대로 하죠.”
“……누구십니까?”
부지점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스윽.
명함을 꺼냈다.
“JS로펌 변호사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변호사님이셨군요.”
“변호사? 최 비서. 우리도 법무팀에 연락해 그룹 변호사 불러.”
나마저 핫바지로 보는 싸가지.
“넵!”
지시하는 싸가지와 대답하는 최 비서.
“변호사님…… KI그룹 회장 큰 따님입니다. 웬만하면 조용히…….”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부지점장.
“KI그룹요?”
큰 목소리로 KI그룹을 언급하며 싸가지를 쳐다봤다.
“이미 늦었어. 당신들 이제 끝났어!”
그녀는 나의 자연스러운 연극에 더더욱 어깨뽕이 되었다.
KI그룹이라는 위세를 믿고 제대로 까부는 싸가지.
씨익.
그녀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잘됐군요. 진짜 힘으로 한번 해보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