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61
762장. 새로운 주인.
– 속보입니다. KI식품에서 수입하는 식용유와 사료의 원재료인 옥수수와 콩 상당량에서 국제적으로 금지된 농약 다이포르단과 파라티온이 검출되었다고 식약청에서 발표했습니다. 이 두 가지 농약은 강력한 살균제와 살충제로 장기 섭취 시 각종 암과 혈관 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에 식약처와 농식품부는 긴급히 해당 원료로 가공된 식용유와 사료 반출을 금했습니다. 이에…….
갑작스런 속보가 떴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뉴스.
– 뭐야? 식용유와 사료에 발암물질 농약이?
– 미친 거 아냐! 나 오늘 아침에도 KI식품 콩 기름 식용유로 돈가스 튀겨 먹고 나왔다고!
– 와아아……. 개지린다. 그 사료 먹은 소와 돼지를 우리가 먹은 거 맞지?
– 뉴스에 발암 걸리겠다.
– 도대체 정부는 뭐하다 이제 나서는 거야! 우리 다 암 걸리면 책임질 거야?
– KI그룹 폭망. 오늘 뉴스 터지자 전 계열사 하한가.
– 으아아! 먹는 걸로 장난치는 새끼들은 공개 처형하자고!
– 우리 애들이 불쌍해요.
– 내 두부우우우우우우우우!
– 크크크. 어차피 헬조선 그냥 먹고 죽자아아아아아!
해당 뉴스에 줄줄이 달린 댓글은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 탑을 달리는 식품 회사의 파렴치한 행동에 국민 모두 분노했다.
– 저 회사에 다니는 형이 말하는데 원재료들 다 싸디 싼 유전자 변형 원재료란다……. 젠장.
– 유전자 변형에 발암 물질? 식품이 아니라 내장 파괴자네.
– KI그룹 회장이 과거 밀수 파동 일으켰던 그 인간이지?
– 맞네! 임동철!
– 임동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음. 현 회장은 횡령과 탈세로 감옥에 가 있습니다.
– 서민은 도대체 뭘 먹으라는 거야! 있는 것들은 유기농 처먹고 서민은 발암 식품만 먹으라는 거야?
– 검찰 니들 지금 뭐 하니? 이런 파렴치범들 잡아야지!!!
여론이 들불처럼 일었다.
먹거리에 민감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 욕을 퍼부었다.
유전자 변형 식재료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됐다.
농약 범벅인 식용유는 바로 판매가 금지됐다.
불똥이 KI그룹 전체로 튀었다.
뉴스가 터진 시점부터 투매가 일어났다.
그룹 계열사 모두 파란색 하한가로 내려앉았다.
“어, 엄마…….”
얼굴이 노랗게 뜬 임서라가 노트북으로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두 모녀는 병원에 입원했다.
장태산을 만나고 나온 직후 터진 설사 폭탄.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이 싸지른 참사로 차는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게 됐다.
집에 들어와 목욕을 해도 이상하게 몸에 밴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장이 다 비워질 정도로 쏟아냈지만 계속 주르륵거리며 흘러내리는 슈퍼 설사.
다급하게 챙길 것만 챙겨 은밀히 특실을 잡아 입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병원에서는 지사제를 계속 투입했다.
그래도 잡히지 않는 설사.
병원 관계자들도 곤혹스러워했다.
다른 설사와 달리 유별나게 고약한 냄새가 동반되는가 하면 지사제를 처방해도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간호사들이 뒤에서 설사장군모녀라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아도 괴팍했던 성격은 설사로 인해 더 예민해졌다.
특실 담당 간호사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스트레스를 부리며 지내고 있는 두 모녀.
간호사들도 그런 두 사람을 좋게 볼 리 없었다.
귀가 있으니 끊이지 않는 뒷말이 들려올 수밖에 없는 노릇.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병원을 뛰쳐나갈 수도 없었다.
링거를 맞아도 설사는 그대로였다.
누구를 만나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아예 대한민국을 떠야 할 판이었다.
“개자식…….”
사람의 기본 욕구인 식욕과 평안한 주거를 강탈당한 한선옥의 얼굴은 누렇게 뜨고 수분기 하나 없이 바짝 말랐다.
쭉쭉 설사를 하는 통에 음식을 일절 먹지 못했다.
그럴수록 신경은 더 예민해졌고 원망은 온전히 한 사람에게 향했다.
“엄마. 장태산 그 자식이 우리 이렇게 만든 거 맞지?”
임서라도 장태산이 한 짓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설사 샘플을 검사했지만 독이나 기타 바이러스 같은 건 검출되지 않았다.
의사들도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다 했다.
스트레스성 급성 크론병이라는 진단만 받았다.
“죽여 버릴 거야…….”
한선옥은 눈에 잔뜩 독기를 품었다.
회사 일에 전혀 신경을 쓸 상황이 되지 않았다.
시간 단위로 쏟아지는 설사에 온 신경이 꽂혔다.
거래 되는 모든 주식이 하한가를 치고 있었지만 시아버지 임동철을 믿었다.
그동안 닦은 인맥으로 충분히 버텨낼 게 확실했다.
“할아버지가 가만있지 않겠지?”
“아마도 그럴 거다.”
모녀는 한 병실에 나란히 붙어 지냈다.
VVIP 특실이라 손님용 화장실이 따로 있는 만큼 불편함도 덜했다.
“엄마 이게 다 악몽 같아……. 그 개자식하고 전생에 내가 무슨 원수를 졌는지…….”
임서라는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부린 질투 한 번으로 시작된 일의 파장이 이렇게 커졌다.
반성보다는 원망을 더 키워내고 있는 임서라.
“우리만 악몽을 꾸지는 않을 거다. 그 개자식……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거야!”
뭔가 확신에 찬 듯한 눈빛의 한선옥.
그녀는 누구보다 시아버지를 믿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지만 뜻한 목적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임동철 회장.
아마 장태산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실 것이 분명했다.
“하아……. 미치겠네. 도대체 장태산 그 녀석 욕심은 어디까지야?”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의 와인을 마시며 손대균은 고개를 저었다.
장태산 행적에 관한 보고가 연달아 올라왔다.
리앤장의 고객인 KI그룹과 장태산이 제대로 척을 졌다.
임동철 회장이 직접 일송회에 SOS를 날렸을 정도다.
오늘의 KI그룹 성장 뒤에는 일송회의 도움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됐다.
오정의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후원자금을 받고 일을 도왔다.
그런 KI그룹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한 장태산.
“명복을 빌어줘야겠군. 쯧.”
꿀꺽.
시원하게 레드 와인을 입에 털어 넣으며 손대균은 누군가의 명복을 빌었다.
한 번 걸리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의 두 남자.
이번 일에 대한 결과와 승패를 손대균은 이미 알았다.
그래도 나름 기대가 됐다.
“장태산, 난 이번에도 너한테 배팅한다. 후훗.”
***
치이이이익.
얇고 쫀쫀한 돼지 껍데기가 연탄불에 고소한 기름을 떨구며 노릇하게 구워졌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마포의 한 골목 식당.
격자무늬의 오래된 창문 너머로 소복이 쌓이는 눈이 보였다.
운치가 아주 그만이다.
다만.
“데이트를 방해한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다 알고 연락한 거 아니십니까?”
“그럴 리가요. 저 요즘 아무 힘도 없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오늘 밤 먹기로 했던 뜨거운 라면 한 사발이 날아갔다.
임윤아만큼 나도 아쉬웠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들려오던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했던 오정그룹의 2인자가 돼지 껍데기를 손수 구웠다.
내가 가위를 잡았지만 자기가 전문가라며 선수를 쳤다.
말대로 그는 껍데기를 기가 막히게 잘 구웠다.
은은한 화기를 자랑하는 연탄 불 위에 놓인 굵은 석쇠에서 구워지는 돼지 껍데기.
보기만 해도 군침을 흘리게 만들었다.
매일 진수성찬만 먹고 살 것처럼 생긴 사내의 음식 취향이 의외였다.
“여기가 제 40년 단골입니다.”
“네?”
“저기 벽에 걸려 있는 할머니 사진 있죠? 영자 아주머니라고 불렸는데 참 정이 넘치셨습니다. 6.25 사변이 터지기 전 자식 셋을 이끌고 월남했답니다. 남편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는데 공산주의에 빠져 북한에서 상당히 이름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나온 껍데기 주인집의 과거사.
“그런데 어느 날 따르던 일성이에게 배신당하고 숙청됐답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주인을 잘못 선택한 죄죠.”
“…….”
별 걸 다 아는 남자.
몇 달 못 본 사이 하얀 머리칼이 늘었다.
모시던 주인이 병원에 누워 생사를 오가니 그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영자 아주머니는 큰일이 난 걸 알고 야밤에 자식들과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착같이 전쟁을 버티고 이곳에 자리 잡아 자투리 고기와 껍데기를 구워 팔며 생계를 꾸린 겁니다.”
남자는 나이가 꽤 많았지만 절대 하대를 하지 않았다.
처음 볼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천하에 두려울 것 없어 보이던 당당한 기세는 사라졌다.
“대학교 시절 단백질과 지방이 고플 때마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영자 아주머니께서 자식들과 나이가 비슷한 저희들을 많이 챙겨 주셨습니다. 저도 어머니 같아서 좋았습니다. 제 어머니도 바닷가에서 생선을 팔았거든요. 새벽부터 일어나 물고기를 떼다 팔았는데 모든 생선이 팔리는 늦은 저녁까지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을 한결같이 보내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오정의 2인자인 남자의 과거사.
“첫 월급 타서 이곳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빨간 내복도 사드리고…….”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아련한 눈빛의 남자.
오정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보게 되는 게 의외였다.
그의 몸 안에도 가족에 대한 뜨거운 피가 흘렀다.
“회사 생활이 바빠 점점 이곳을 찾지 않게 됐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자투리 고기와 껍데기를 먹기에는 제가 지나치게 성공한 셈이었지요. 참 오만했습니다. 승승장구하다보니…… 입맛도 변하더군요.”
조용히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굳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의 고백으로 지금과 다른 순수성이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서 제대로 깨졌습니다. 과장에서 부장으로 넘어가던 시절일 겁니다. 임성철 회장님이 사업에 두각을 나타날 때……. 당시 임동철 회장님을 보필하던 비서실장에게 생선이나 팔아 빌어먹던 촌놈이 건방을 떤다는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선대 회장님께서 뒤로 물러날 때라 임동철 회장님의 권력이 장난 아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남자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한잔하시죠.”
티잉.
잔을 부딪쳤다.
꿀꺽.
“크으…….”
남자는 시원하게 소주잔을 비워냈다.
조용히 나도 잔을 비웠다.
껍데기와 소주, 겨울과 눈처럼 한 쌍의 완벽한 짝궁이었다.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다 나도 모르게 이곳을 다시 찾게 됐습니다. 한 10년 만이었을 겁니다…….”
과거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남자.
그의 아스라한 눈빛에서 과거의 시간과 공간이 엉켜 보이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왔는데…… 어제 온 것처럼 반겨주시던 영자 아주머니. 묵묵히 앉아 있던 저에게 고깃덩어리 하나 던져주시고 힘내라고 하시더군요. 세상 살면 누구나 위기가 찾아오는 거라고……. 그때를 뛰어 넘느냐 못 넘느냐에 따라 인생의 승패가 달라진다고 말입니다. 자신이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널 때가 딱 그런 순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허투로 인생을 살지 않은 어른들의 말은 경청해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혜가 넘치기 때문.
사진 속 영자 아주머니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었던 것이다.
월남해서 아이들 셋을 키워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승리한 삶의 증거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약해지던 마음을 다시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복수했습니다.”
멋진 복수는 오정의 주인을 바꿨다는 의미.
임성철 회장이 형을 밀어내고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썼을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오늘의 2인자라는 위치.
“그 뒤로 모든 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쭉쭉 뻗어나갔습니다. 절대 주인의 자리 같은 건 노리지 않는 착실한 충견이 됐습니다.”
스스로를 충견이라 말하는 남자.
결코 쉽게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숨겨 놓은 재산이 조 단위는 될 것이다.
부와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절대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충견.
차라리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남자로 태어나 1인자가 되려는 욕망을 누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들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임성철 회장의 부재가 뼈저리게 피부에 와 닿았을 것이다.
새 왕이 들어서면 옛 왕을 모시던 최측근 가신들은 알아서 물러나야 하는 법.
토사구팽 수준은 아니더라도 권력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임준형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줄 아는 사람이다.
“주인 없는 충견은 참 외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고 보니 충격이 의외로 컸습니다. 아직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피가 뜨거운데…… 세상은 나를 흘러간 강물 취급하더군요.”
씁쓸한 한 남자의 고백.
“그래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이번 위기를 뛰어넘기 위해?”
또로록.
그의 빈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고하게 대답했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패기가 느껴졌다.
“충고를 해주시던 영자 아주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전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뭘 말입니까?”
“장태산 회장님…….”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이 장한수의 마지막 남은 인생을 마지막으로 활활 불태울 수 있도록…… 새로운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