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66
767장. 인연은 돌고 돌아.
“회장님, 바람이 차갑습니다.”
장주시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종합 연구소.
엄청난 규모였다.
상주하는 인원수만 해도 어느새 1,000단위가 넘어갔다.
왕성 같은 큰 규모로 건설된 단지이지만 막상 이곳을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
철저하게 언론에서 차단했다.
무단으로 사진이나 정보가 포털에 오르는 즉시 저작권 위반과 민사소송이 동시에 진행됐다.
현장에 근무 중인 연구소 직원들도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다.
직원들의 가족들도 출입이 불가한 종합 연구소.
한눈에 연구 단지를 살필 수 있는 뒷산은 아예 입산이 금지됐다.
설사 드론을 날려 촬영을 시도하더라도 소리 소문 없이 해킹을 당해 추락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 장주시 종합 연구소.
해외 자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만큼 정부도 어떤 형태로든 터치 하지 못했다.
그런 현장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
눈이 내린 뒤 더 매서운 한파가 몰려왔다.
추운데도 차 밖에 서서 코트만 걸친 채 연구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비서들도 덩달아 차 밖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답답해서 그런 거니까 자네들은 안에 들어가 있어.”
“…….”
회장의 지시에도 비서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세상에 어떤 간 큰 자가 모시는 회장이 추위 속에 서 있는데 배짱 좋게 차 안에 들어갈 수 있겠나.
‘실패인가?’
고자룡은 답답했다.
장태산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엘자는 굼떴다.
무려 100억 달러가 넘는 투자였다.
반도체를 빼앗긴 이후 오랜만에 제대로 시작해 보는 신사업.
자기 자본도 거의 들지 않았다.
명목상 이름만 빌려주고 얻는 이득이 엄청났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도 신선했다.
중국에 건설 중인 LCD 공장으로 인해 자본금이 쭉쭉 빠져나갔다.
국내에서 생산하고자 했지만 최대 소비처인 중국 정부 입장이 강경했다.
한때는 중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영역을 확대해 가던 가전 사업이 밀렸다.
신기술을 눈앞에서 베끼는 중국 기업들의 뻔뻔함에 속만 뒤틀릴 뿐이었다.
말도 법도 안 통하는 공산주의 국가.
끙끙 앓으면서도 생존하기 위해 계속 투자해야만 했다.
라이벌 격인 오정도 무섭게 치고 나왔다.
오정 가전 사업부는 엘자에게도 공포로 다가왔다.
영역 확장 능력과 자본금 규모가 달랐다.
어깨를 나란히 했던 때도 분명 있었지만 이제는 넘사벽 수준이 됐다.
한때는 성장 발판이 돼 주었던 가족 중심 경영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회사 경영 감각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정부 정책으로 IMF 때 넘겼던 하이넥스가 매물로 다시 나왔을 때 사들였어야 했다.
헐값에 나왔지만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쉽게 덤비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때의 선택이 엄청난 패착이 됐다.
오정전자의 경영 시스템처럼 굴러가야 맞았다.
휴대폰 쪽 매출이 안 좋으면 반도체 쪽에서 수혈을 하고 반도체 쪽이 부진하면 휴대폰 쪽에서 수혈을 하며 경영해 나가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탄탄하게 모아진 자본으로 재투자를 해야 옳았지만 그게 안 됐다.
화합의 상징이었던 그 가족 경영으로 인해 결국 알짜 기업들이 다 쪼개져 나갔다.
엘자 이름을 달고 있지만 대주주가 각기 달랐기에 회장으로서의 위신이 서지 않았다.
이번 장태산 투자 건이 그 대표 사례.
본인들 밥 그릇 때문에 막상 힘을 실어주어야 할 순간에 형제들과 사촌들이 더 태클을 걸었다.
고연지가 대표가 된 것을 두고 다들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다.
투자자인 장태산의 뜻이었다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이어 배터리 분야에도 뛰어든 장태산.
본인들 밥그릇인 사업체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선뜻 투자 받기를 꺼려했다.
때를 같이 해 KI그룹 주가가 요동 쳤다.
장태산이 KI그룹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더 긴장했다.
합자 회사 측에서는 음모가 아니냐며 반발하는 기류가 거세졌다.
“하아아…….”
답답함에 긴 숨을 내쉬는 고자룡.
요즘 들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룹에 산재한 과제들이 많은데 몸은 금방 피로해졌다.
휴대폰 사업부분은 세계 순위가 뒤로 밀린 지 오래다.
LCD에 대한 미래도 부정적인 상황.
가전 부분에서도 수출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동남아로 생산 기지를 옮겨 버티고 있긴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에 뒤통수를 맞을 게 뻔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엘자그룹 경영진들은 계열사 구조조정을 두려워하고 있는 처지.
본인과 자식들 사업체를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바보 같은 짓만 골라 했다.
고자룡도 어쩔 수 없이 대세를 따라야 했다.
냉혹한 지분 경쟁에서 그도 한 사람의 약자일 뿐이었다.
“연지야……. 미안하다.”
고자룡은 밀려드는 자괴감에 마음이 아팠다.
아끼는 막내딸을 장태산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벌한 전쟁터에 밀어 넣었다.
남은 희망을 온전히 고연지에게 걸고 있는 고자룡.
장태산이 쌓아 올린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딸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기다려도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
휘리리링.
차가운 겨울바람이 고자룡의 코트 깃을 날렸다.
***
“손님?”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고연지의 방문도 생각지 못했는데 다른 손님까지 동행한 모양이었다.
“누가…… 오셨어?”
아버지가 물었다.
“저어 그게…….”
자리에 주저앉는 고연지.
재벌가 치고 별나게도 국문학과를 졸업할 만큼 사업과는 거리가 멀고 감수성이 충만했던 고연지였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얼굴 하나.
“날이 추운데…… 회장님이 고생이시네.”
“!!!”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고연지가 크게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회장님? 누구……?”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부모님.
“설마 고자룡 회장님이 오신 거야?”
그제야 임윤아도 눈치를 챈 듯 놀라며 물었다.
“엘자 고자룡 회장님?”
엄마가 확인 질문을 했다.
“회장님이 오신 거야? 연지 양, 어서 오시라고 그래. 눈까지 내려 밖이 추운데…… 먼 곳까지 오셨으면 당연히 얼굴을 뵈어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연지를 채근했다.
서울이 아닌 장주시 본가는 아버지의 영역.
“감사합니다.”
한시름 놓은 듯 고연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한쪽으로 몸을 돌려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고연지.
“태산아, 네가 가서 모셔 오는 게 좋겠다.”
“그래. 연지 양이랑 같이 가서 모셔 와라.”
특유의 시골 인심이 넘치는 부모님의 배려와 권유.
“알겠습니다.”
“나는 어머님과 저녁상 차릴게~.”
임윤아는 센스 있게 눈치껏 행동했다.
“회장님 있는 곳 알지?”
“어.”
“가자.”
“…….”
어렵게 이곳까지 찾아왔을 것이다.
개인적인 인연을 떠나 사업 파트너로 급부상 중인 고연지.
숨길 수 없는 고마움을 눈에 한가득 담은 채 나를 바라봤다.
오늘 밤도 평범하게 보내기는 어렵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회장님. 누가 이쪽으로 옵니다.”
손발이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았지만 가슴이 답답해 바깥에서 한참을 서 있던 고자룡 회장.
경호원들의 말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차를 봤다.
대기업 오너도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쉽게 몰 수 없는 벤틀리 차량이 다가왔다.
끼이익.
벤틀리는 눈 내리는 어둠 속에 조용하게 멈췄다.
딸깍.
문이 열렸다.
선팅이 진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경호원들이 더 긴장했다.
“아빠…….”
열린 문으로 밝은 얼굴의 고연지가 내렸다.
덜컥.
그리고 운전석 쪽에서 장태산이 모습을 보였다.
‘성공이다!’
순간 고자룡 회장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초대 받지 않는 손님으로서 고자룡은 앞뒤 재지 않고 승부수를 띄웠다.
여러 번 연구소 방문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장태산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종합 연구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 수가 필요했다.
도박이 반쯤 성공했음을 알았다.
“회장님, 공기가 몹시 찹니다.”
장태산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미안하네.”
고자룡은 솔직하게 답했다.
여러 의미가 담긴 사과였다.
처음 인연을 당시 두 사람 사이의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자신을 상대로 서슴없이 엘자그룹의 운명을 말하던 그가 괘씸했다.
“부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이렇게나 고마울 때가…….”
고자룡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장태산의 부모가 인정이 많다는 건 이미 수집한 정보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아빠…… 손이 차가워요.”
고연지가 고자룡 회장의 꽁꽁 언 손을 잡았다.
고자룡 회장이 어떤 심정으로 이곳에 서 있었는지 고연지는 잘 알았다.
엘자 계열사 오너가 되고 보니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장태산이 왜 엘자그룹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는지도 확실하게 알았다.
말 그대로 무늬만 지주회사였다.
각 계열사별로 최종 결정을 하는 대표들이 제각각 따로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일일이 설득하다가 적기를 다 놓쳤다.
대처가 빨라야 하는 글로벌 격변기에 엘자는 과거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 차를 타십시오.”
“부탁하네.”
장태산이 벤틀리 뒷좌석 문을 열었다.
따뜻한 훈기가 훅 치고 나오는 차량 내부.
고자룡은 엘자그룹 회장을 역임하고 있지만 벤틀리는 처음 타봤다.
“출발하겠습니다.”
장태산이 운전을 시작했다.
“안 추웠어?”
조수석에 앉은 고연지가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퇴짜 맞을까 걱정하느라 추운지도 몰랐다.”
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고자룡이 웃으며 답했다.
“누가 보면 제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그럼 아닌가?”
장태산의 웃음 섞인 말을 고자룡은 진담으로 받아쳤다.
“KI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들도 벌벌 떨고 있어. 밥 그릇 빼앗길까 봐.”
“그렇습니까?”
빙긋 웃으며 모른 척하는 장태산.
부우우웅.
벤틀리는 빠르게 연구소를 지나쳤다.
지시가 내려진 만큼 따로 검문은 없었다.
고자룡 회장 비서와 경호 차량들도 무사통과.
‘드디어 와 보는군…….’
고자룡 회장은 감개무량한 시선으로 장태산의 왕성을 스치듯 바라봤다.
멀리서 본 것보다 더 거대한 규모였다.
한양 도성보다 성벽이 높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위축이 됐다.
스치듯 본 외관에서부터 경외심이 들었다.
세워진 지 불과 몇 달밖에 안 된 종합 연구소지만 엄청난 것들이 숨어 있다는 소문이 속속 들려왔다.
“다 왔습니다.”
왕성 안에 자리한 별채 같은 장태산의 본가에 도착했다.
끼이이이익.
고자룡 회장의 차량들도 연이어 멈췄다.
타다다닥.
비서들이 빠르게 트렁크를 열고 선물 보따리를 꺼냈다.
평소 청렴을 인생 모토로 삼는 고자룡이었지만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오정 임성철 회장이 명절 때마다 장태산 부모에게 공을 들였다는 정보가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끼면 바보였다.
말리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는 장태산.
당연히 예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들어가요.”
고연지가 고자룡 회장에게 팔짱을 걸었다.
든든한 아버지의 등장으로 고연지도 마음의 짐을 덜었다.
저벅저벅.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개량 고택 마당을 지나쳤다.
‘나에게도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는 복이 있을까?’
고자룡 회장은 심신을 평안하게 해 주는 고택을 바라보며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도련님으로 불렸고 이제는 기업의 회장이 됐다.
나름 치열하게 살다보니 어느새 인생 뒤안길.
늘 흔들리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그룹과 못 미더운 자식들을 놔두고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는 걸 고자룡은 잘 알고 있었다.
띠릭.
안채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장태산의 부모.
“밤늦게 실례가 많습니다.”
고자룡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 했다.
“밖이 춥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사람 좋은 표정으로 어서 들어오라 안내하는 장대국.
“약소하지만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처저적.
비서들이 양손에 든 선물 보따리를 들고 따라왔다.
“그냥 오셔도 되는데…….”
주설란이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안주인의 모습이었다.
아들과 관련된 사업 때문에 방문한 엘자그룹 회장.
이럴 땐 건네는 선물을 받아야 상대가 미안한 마음이 덜하다는 것도 알았다.
계획대로 장태산의 본가에 무사히 입성한 고자룡 회장.
기품 있고 단아한 거실 풍경에 내심 속으로 경탄했다.
갑자기 엄청난 재력을 소유했다는 사람들 치고 절대 졸부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한쪽에 걸려 있는 풍경화는 물론 안주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장식품들.
웬만한 그룹 안주인들도 흉내 내기 힘들 만큼 엄청난 기품이 느껴졌다.
“앉으십시오.”
거실 중앙에 자리한 고목으로 만든 협탁 한쪽 자리를 권하는 장대국.
“감사합니다.”
고자룡은 이 집안의 대주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장대국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
‘뭐지? 이 익숙함은…….’
평안한 인상의 중년 남자 장대국을 자세히 보던 고자룡.
다소 눈에 익은 장대국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오랜만입니다. 고 전무님.”
“헉…… 자네는!!!”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