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9
78장. 난 우리 엄마가 좋다
대기하고 있던 여직원을 불렀다.
순자 아줌마의 독설에 직원들은 눈치를 봤다.
고객들 싸움에 괜히 끼어들었다 불벼락 맞는다는 걸 아는 눈치다.
“네. 고객님.”
조심스럽게 매니저 직함을 달고 있는 여직원이 다가왔다.
“어머니께 어울리는 옷들 좀 골라주세요.”
“네?”
“오늘은 딱 다섯 벌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다, 다섯 벌요?”
여직원이 깜짝 놀랐다.
조금 전 봤던 상의 하나에 기백이 넘는 정찰표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럭셔리 수입 부티크답게 가격이 상당했다.
그런 옷들 다섯 벌이면 세트에 수천만 원 이상이라는 의미다.
“가격은 구애받지 마시고 마음껏 코디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제게 너무나 소중한 분이십니다.”
“네! 고객님!”
직원들이 활짝 웃으며 하이톤으로 네를 연발했다.
“!!!”
나를 보고 눈망울을 크게 뜨시는 엄마.
돈 벌어서 뭐 하겠는가.
엄마 옷 사고 남으면 소고기 사 먹는 거지.
‘이제부터 어머니의 명예와 행복은 이 아들이 지켜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천천히 고르세요~.”
여유로운 자세로 엄마를 봤다.
“사모님. 자태가 너무 고우세요. 뭘 입으셔도 완벽할 것 같습니다.”
매니저가 웃으며 엄마를 이끌었다.
“이이!!!”
보고 있던 주순자 아줌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아들 학벌도, 얼굴과 분위기도 돈도 안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다.
얼굴에 심술보들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옷 구입하러 오신 거 아니세요? 어머니 친구분이신데 한 벌 사드릴까요?”
실실 웃으며 염장질을 시작했다.
입은 미소를 띠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됐어! 내가 거지로 보여? 난 여기 옷 줘도 안 입어!”
말과 달리 딱 봐도 이곳 제품을 입고 있다.
속과 겉이 다른 순자 아줌마와 완전 똑같았다.
얼굴에 쌩쌩 찬바람이 불었다.
“다음 주 토요일 7시에 팰튼 호텔에서 부부 모임 동창회 있다! 그때 꼭 나와!”
‘이 아줌마 끝장을 보네. 쯧.’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 몰랐다.
엄마를 동창회에 불러 기를 팍팍 죽이고 싶은 것 같다.
안타깝지만 과거의 엄마가 아니다.
엄마가 동창회에서 기죽을 그럴 분이 아니다.
“…….”
하지만 엄마가 잠시 망설였다.
근 20년 만에 동창들 모임에 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네~. 어머니 꼭 동창회 나가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가실 거죠?”
“어? 어…….”
내가 한쪽 눈을 찡긋 윙크를 날렸다.
날 믿으라는 표시였다.
어머니가 날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보자! 너 꼭 나와야 한다! 동창들 전부에게 연락해 놓을 테니까!”
동창회가 청문회장도 아니고 저렇게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다음에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순자 아주머니~.”
순자라는 이름을 꼭 강조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더 봐야 내 성격만 버릴 것 같았다.
“흥!”
순자 아줌마가 거친 삐침 소리를 내고 등을 돌렸다.
아유! 저 돼지 뒤태 봐라.
이름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드는 꼴이 하나도 없다.
결정적으로 저 이름에 마가 낀 게 확실했다.
‘이제 멀리 꺼져 주세요.’
엄마와 단둘이 즐기는 데이트 시간을 저런 허접 싸가지 아줌마 때문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 해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우! 재수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집에서 쫓겨난 주제에 아직도 잘난 척이야!”
이를 갈며 나가는 순자 아줌마가 나와 엄마 들으라고 큰소리로 퍼부었다.
엄마 안색이 확 변했다.
외가 이야기는 엄마의 아킬레스다.
‘기다려요. 아줌마. 내가……, 확실히 밟아 줄 테니까!’
이거 이자까지 계산해 복수료를 받아내지 못하면 엄마 아들 자격 때려치워야 한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져드는 순자 아줌마가 안타까웠다(?).
과거와 다른 사건이 나에게 다가왔다.
참는 게 미덕인 세상은 지났다.
뼈저리게 자신이 했던 짓거리에 대한 보상을 받게 만들 것이다.
저런 인간들에게 용서는 사치일 뿐이었다.
***
“사모님, 이곳이 정말 괜찮습니다. 청담동에서 한강뷰가 이렇게 잘 빠지게 나오는 매물 몇 개 없습니다. 올림픽대로와도 떨어져 있어 소음과 먼지도 완벽하게 차단됩니다. 여름에도 강바람 시원하게 들어오는 명당은 이곳뿐입니다.”
정 실장이라 불리는 사내가 열심히 침을 튀겼다.
엄마와 함께 집을 보러 왔다.
‘명당은 명당이네.’
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던 남사고 어르신의 지식 덕분에 땅과 하늘, 강과 바람 길이 보였다.
강이 흐르는 곳에 완만하게 놓여 있는 궁수자리에 있어 덕과 부가 쌓이는 곳이다.
바람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아 일들이 멈추지 않고 잘 풀리는 명당이다.
하늘이 시원하게 보이는 만사가 형통하는 장소다.
튼튼한 암반 위에 자리 잡아 큰 변고를 당하지 않는 좋은 위치다.
그렇기에 딱 찍어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아이보리색 사모님 정장으로 한 벌 쫙 빼입은 어머니는 누가 봐도 강남 사모님이었다.
백화점 액세서리 몇 개 달았더니 우리 엄마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복덕방 업자도 어머니께 알랑방귀를 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태산아, 넌 어때?”
엄마가 날 봤다.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신호다.
“3층 옥상은 누가 사용합니까? 공용입니까?”
“아닙니다. 펜트하우스 거주자 소유입니다. 잔디가 깔려 있어 운치가 아주 그만입니다. 주차장도 가구당 5대까지 보장이 됩니다.”
“아직 미분양이죠?”
“……, 물건은 참 좋은데……, 하필 미국 서브 프라임 때문에 경기가 팍 죽었습니다. 부동산도 심리 싸움인데 밀렸습니다.”
이제 갓 분양한 올림포스라는 강남 최고급 빌라다.
업체 사장이 자신감으로 후분양을 선택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청담동에서도 위치가 절묘했다.
살짝 높은 구릉 위에 떡하니 왕좌처럼 자리를 잡았다.
눈앞에 강물이 도도하게 흘렀다.
시원한 대형 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 조망이 아주 그만이다.
마음에 딱 들었다.
신들이 거주한다는 올림포스 이름을 사용할 만했다.
“한 채당 얼마라고 했죠?”
“임대면적이 450㎡에 전용면적이 398㎡입니다. 분양가가…… 세대당 39억입니다.”
실 거주지는 130평에 평당 3,000 정도다.
39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진짜 괜찮은 가격이다.
미래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명당과 입지 조건은 없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고급 이태리 대리석을 쫙 깔았습니다. 자재들 모두 특S급입니다. 자체 경비와 보완시설도 완비되어 있습니다. 12명의 최고급 경비 요원들이 3교대로 근무합니다. 모두 다 시공사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달에 관리비가 300만 원이 넘었다.
“총 몇 가구죠?”
“지금 보시고 계시는 로열동이 3채고, 나머지는 5층짜리로 6동 30채입니다.”
“음…….”
조망뿐만 아니라 시설도 훌륭했다.
모든 층이 탐이 났다.
1층 로비에는 굵은 소나무 정원수가 멋지게 자태를 자랑했다.
저층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서비스 면적이 주어졌다.
“바로 입주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대금을 납부하시면 오늘이라도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정 실장이 손을 잡고 공손하게 답했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아담하니 괜찮네.”
헐! 아, 아담이란다.
내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엄마가 살던 옛 주거지가 양평에 1,500평 정도 된다고 들었다.
노년에 얻은 아내와 딸을 위해 외할아버지가 거주하던 장소다.
“하…… 하하. 좀 아담한 편이죠.”
실장이라는 남자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부자들의 단위가 다르다는 걸 잘 아는 것 같다.
“펜트하우스는 45억이라고 했나요?”
“네. 올림포스 단지에서는 최고가입니다. 아니, 현재 대한민국 빌라와 아파트들 중에 최고가 분양입니다.”
비싸야 팔린다는 걸 아는 분이다.
돈 냄새를 맡는 것도 능력이다.
2008년도 당시에는 최고가가 맞았다.
“어머니, 그럼 여기 사는 걸로 하죠.”
“그래. 학교 다니기에는 딱이겠다.”
“하, 학생이십니까?”
딱 보면 학생 같지 않나?
정 실장 아저씨가 놀라 물었다.
“네. 이번에 한국대 법학과 신입생입니다.”
“한국대!!!”
잘났다고 광고하는 거 아니다.
이렇게 간판을 깔아야 상대가 더 조심하는 세상이다.
대번에 엄마와 나를 대하는 기운이 달라졌다.
돈만 많은 사모님이 아니라는 걸 안 거다.
아들을 한국대 법대에 보낼 정도라면 강남에서도 특급 사모나 가능한 일이다.
“정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네, 행운 부동산 컨설팅 정운찬 실장입니다.”
“얼마나 디스카운트 가능합니까? 솔직하게 알려 주십시오.”
“…….”
솔직이라는 말에 정 실장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다.
구입은 할 것 같은데 눈탱이는 못 칠 것 같은 분위기라는 걸 안 눈치다.
그리고 좋다고 돈 지랄하는 건 비추다.
돈은 가치 있게 사용할 때 아름다운 물질이다.
“1, 10프로 정도는 가능합니다.”
말 한 마디에 10억 이상이 깎였다.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통으로 여기 로열동 3채를 구매하면 얼마나 가능합니까? 솔직하게~.”
“3채 전부 다요?”
뭘 그리 놀라시나.
어머니 거주할 공간도 필요했다.
딱 보니까 1층 정원 쪽이 딱 엄마 스타일이다.
통으로 구입해야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다.
로열동 전체가 내 집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동생들도 서울로 학교 다니려면 이만한 장소가 없다.
청담동이 나름 교통의 요지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타고 서울 시내 곳곳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엄마는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 빙긋 웃기만 했다.
한때 외할아버지가 나처럼 돈을 지르고 사셨을 테니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이 아들을 그냥 대놓고 믿었다.
“경기가 언제 풀릴지 모릅니다. 미국 서브 프라임 여파가 아직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 물건들 처치하지 못하면 내년까지 비싼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이자 물면서 버텨야 한다는 거 아시죠? 이자가 대충 10프로는 넘지 않나요?”
“!!!”
줄줄 나오는 경기 전망과 부동산 용어에 정 실장이 한 번 더 놀랐다.
이래서 배워야 하는 거다.
모르면 눈탱이에 아구창까지 맞고 쓰러지는 게 게임의 법칙이다.
“시공사도 빨리 털고 가는 게 편할 겁니다.”
느긋하게 정 실장을 압박했다.
정 실장은 그렇게 큰 권한이 없는 인물인 게 확실했다.
분양사와 연결된 복덕방 업자일 뿐이다.
“그럼 원하시는 조건이…….”
“취득세를 포함한 모든 등록비 포함 100억에 맞춰주십시오.”
“헛! 1, 100억요?”
“일시불 현찰 가격입니다.”
일시불 현찰이라는 말에 정 실장 눈동자가 살아났다.
“나머지는 능력껏 챙기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추진하겠습니다!”
돈은 귀신도 부리는 법이다.
정 실장이 내 부하라도 되는 양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안에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어머니~ 그럼 우리 쇼핑이나 하러 가요. 이것저것 가구도 들여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까?”
엄마가 웃는다.
100억이라는 돈에도 엄마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돈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초탈한 분위기다.
그래서 난……, 우리 엄마가 좋다.
# 79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