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99
800장. 불벼락.(3)
“부장님, 넥타이 되게 센스 있다. 오늘 사모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는데?”
“그래? 공 프로가 봐도 괜찮아?”
“네~ 사랑 받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
“요즘 내가 마누라한테 잘해. 흐흐.”
“화목한 가정의 비결이 뭘까요? 저한테도 알려주시면 안 돼요?”
“큼큼. 그건 노하우라 안 돼.”
“부장니이이이이임~.”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구내식당에 있던 중앙지검 남자 검사들과 직원들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중앙지검의 꽃으로 불리고 있는 공수진 검사.
빼어난 외모와 살살 녹는 애교에 남자들 모두 그녀 앞에만 서면 반쯤 넋이 나갔다.
누가 봐도 연예인 포스.
몸매도 착하고 얼굴은 더 착했다.
검사가 아닌 배우라 해도 믿을 정도로 빛이 났다.
파바밧.
반면 여 검사들과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완전 여우야.”
“세상에……. 근엄한 조 부장님까지 넘어갔어.”
“조 부장님뿐만 아니라 남자 검사님들 다 그래.”
“하아.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갖출 거 다 갖췄는데 거기에 검사라니…….”
야근 때문에 저녁 식사 중이던 여직원들이 현장을 보며 쑥덕거렸다.
검찰청 여직원이라면 밖에서는 선망의 직업군에 들긴 했지만 결국 검사 밑에서 일하는 사무직에 불과했다.
“양 계장님. 저분은 누굽니까?”
일이 쌓이면서 저녁이 늦어진 손주혁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물었다.
눈에 띄는 미모의 여성을 발견하고 눈빛을 빛냈다.
“형사부 공수진 검사님입니다.”
“검사요?”
“미국에 있다 오셔서 모르시나본데 검찰에서 아주 유명해요. 아마 검찰 여 검사님들 중에 미모로는 탑일 걸요.”
손주혁 검사실에서 근무하는 양 계장이 공수진 검사를 쳐다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것 같군요.”
‘괜찮네.’
손주혁은 공수진을 유심히 쳐다봤다.
“손 검사님 진짜 멋있지 않니?”
“내 이상형이야…….”
“집안도 대단하대.”
“정말?”
“할아버지가 대법원장이셨대. 아버지는 리앤장 이사님이고.”
“헐…….”
공수진을 향해 질투심을 드러내던 여직원들 눈빛이 손주혁에게 향했다.
손주혁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인사 나눠보실래요?”
“잘 아세요?”
“검사님 오기 전에 형사부에서 공 검사님과 안면 텄습니다.”
“그래요?”
“가시죠.”
양 계장이 눈치 빠르게 선수를 쳤다.
이미 중앙지검에 소문이 쫙 한 바퀴 돌았다.
손주혁 검사가 지검장과의 독대를 거쳐 거물을 쳤다는 소문이었다.
말이 좋아 독대지 부장검사도 손주혁 검사처럼 직진하기 힘들다.
중앙지검은 모든 검사들이 꿈꾸는 욕망의 전쟁터였다.
그곳의 수장과 일개 검사가 독대를 했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손주혁은 단번에 지검장을 움직여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그 일을 양 계장은 직접 눈으로 확인했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손주혁 검사의 파워에 흥분했다.
잘나가는 검사를 알아두는 건 검찰 일반 행정직 직원으로서도 축복이었다.
모시는 검사의 능력이 곧 그 아래서 일하는 직원들의 힘이 된다.
굵직한 사건을 맡으면 정보를 캐기 위해 로펌이나 변호사들이 두툼한 돈 봉투를 들고 드나들었다.
엄연히 불법적인 음성거래지만 암암리에 묵인되어 온 오래된 관행이기도 했다.
다른 공무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검찰직에서는 괜찮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최정점에 선 검찰.
무엇보다 제 식구 보호하는 일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범죄자 윤곽이 완벽한 강간 동영상을 불기소 처분으로 처리해 버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집단.
싹수부터 눈에 띄는 손주혁 검사는 이대로라면 검찰에서 왕이 될 가능성이 컸다.
“공 검사님.”
“양 계장님~.”
공수진이 자신을 부르는 양 계장 목소리에 돌아보며 반가워했다.
“공검, 나 먼저 올라가 있을게.”
“네 부장님~.”
형사부 조 부장이 멀리서 지켜보는 손주혁을 발견하고 발을 뺐다.
그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단 손주혁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손국중 회장의 권력이 엄청나다고는 하지만 검사들의 위계질서는 엄연히 존재했다.
그렇게 수십 년 간 유지돼 온 질서가 손주혁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금이 갔다.
당연히 부장들 사이에서 안 좋은 말들이 오고 갔다.
승진만 아니었다면 진작 불러다가 조인트를 깠을 것이다.
“공 검사님. 인사드리시죠. 이번에 제가 모시는 조세범죄수사부 손주혁 검사님이십니다.”
조 부장의 모습이 사라지자 양 계장은 공수진을 손주혁에게 인사시켰다.
남자는 남자가 잘 아는 법.
손주혁이 공수진을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손주혁입니다.”
손주혁은 자신만만하게 손을 내밀었다.
블랙 투피스 정장이 완벽하게 미모와 매치되어 더 빛이 나는 공수진.
씨익.
깊은 지리산 속에서 도를 닦은 여우가 웃었다.
“선배에 대한 소문 많이 들었어요. 공수진이라고 해요.”
손을 마주잡는 공수진.
꾸욱.
손주혁이 힘을 살짝 담아 공수진의 손을 쥐었다.
부드럽게 한 손에 잡히는 공수진의 가느다란 손.
‘느낌 좋은데?’
찌릿 전해지는 기운에 손주혁은 공수진이 자신에게 쉽게 넘어올 거라 확신했다.
자신을 동아줄로 잡는 순간 미래가 보장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특히 검사들은 모두 승진 욕심이 남달랐다.
“양 계장님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래요?”
공수진의 갑작스런 부탁.
“네? 네.”
두 사람의 불꽃 튀기는 접점에 할 일을 마쳤다는 걸 깨달은 양 계장이 조용히 퇴장했다.
“손 검사님.”
공수진이 뜨거운 시선으로 손주혁을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군데군데 앉아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향했다.
거리가 있어 대화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후후. 당분간 심심하지 않겠네.’
최근 맡게 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손주혁.
자신의 매력 넘치는 모습에 공수진이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스윽.
공수진의 얼굴이 손주혁에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입술을 귓가에 바짝 붙여왔다.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수 냄새가 훅 맡아지며 손주혁을 자극했다.
아직 잡고 있는 손이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그 순간 귓가에 느껴지는 공수진의 입김.
“그만 쳐 웃어라. 이빨에 고춧가루 꼈어 X만 한 씨댕아.”
“!!!”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살벌한 욕설에 정신이 혼미해진 손주혁.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미모의 여검사 입에서 조용히 터진 진득한 욕.
“앞으로 아는 체하지 마라. 밥 맛 떨어지니까.”
뒤통수를 치듯 경고를 해온 공수진.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정신을 빼놓더니 아무렇지 않게 방긋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손 검사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고개까지 숙여 보이며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둘 사이에 밀어가 오고갔을 거라 오해를 살 만한 장면.
생긋거리는 공수진과 달리 손주혁은 그녀가 내리꽂은 불벼락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또각또각.
손주혁의 멘탈을 반쯤 날려 버리고 하이힐을 신고 요염하게 돌아서는 공수진.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백일홍 꽃처럼 피어났다.
‘네가 장태산을 건드려? 미친 새끼.’
공수진에게도 접수된 손주혁의 장태산 공격 사건.
그 일을 알고도 공수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저 따위 일개 검사의 빽이 아무리 든든하다 해도 장태산에게는 어림없을 거라 믿었다.
***
– 조국일보 측에 경고 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총장이 적극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듬직한 목소리다.
“수고하셨습니다.”
– 아닙니다. 당연히 회장님을 보필하는 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장한수 실장은 정말 쓸 만한 인물이었다.
연륜과 경력, 그리고 능력이 출중했다.
손대균이 빠진 자리를 충분히 메꾸고도 남았다.
“출국금지는 풀렸습니까?”
– 물론입니다. 방금 해제 조치 확인했습니다.
겁도 없이 손주혁이 사방을 쑤시고 다녔다.
손국중이 일궈놓은 모든 권력이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해 물불 가리지 않고 버릇없이 굴었다.
미안하지만 손대균 이사는 자식 농사를 반만 성공한 듯했다.
손유리와는 결도 다르고 인성도 차원이 다른 손주혁의 행실.
놈의 선제공격은 계획대로 착착 봉쇄됐다.
내 주변에 포진한 충신들이 알아서 움직였다.
사업적으로 연관돼 있는 오정과 연대, 엘자가 지원군이 되어 조국일보를 압박했다.
거기에 더해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으로 주순자를 활용해 일송회를 후려 쳤다.
현직 대통령을 등에 업은 주순자.
그녀만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좋은 칼이 없었다.
권력에 취해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순자 아줌마.
아직 그녀는 일송회의 무서움을 몰랐다.
오늘의 이 사태로 때가 되면 일송회는 주순자 제거 작전을 펼칠 것이다.
2017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또 다른 시발점.
권력욕과 돈 욕심에 눈이 먼 주순자.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쥐락펴락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송회는 어차피 언젠가 크게 부딪칠 세력들이었다.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누지 않는 것이라 했다.
“출근하는 사무실은 마음에 드십니까?”
–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장한수 실장 앞으로 사무실을 내줬다.
한번 내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나는 확실하게 챙겼다.
평생 2인자로 살 사주인 만큼 장한수 실장은 나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강남 중형 빌딩 한 채를 구입해 사무실로 사용하라고 통으로 선물했다.
오정에서 그를 따르던 이들도 그곳에서 같이 근무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씨큐리티 경호원들을 파견해 밀착 보호해줬다.
오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을 수준.
나이를 불문하고 뛰어난 인재에게는 언제든 일할 기회를 주고 고용하는 것이 내가 정한 원칙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번 손주혁 압수수색 사건으로 나의 사람이 될 만한 이들이 추려졌다.
일송회의 정체를 알면서도 기꺼이 손을 내민 오정과 연대, 엘자 등.
그들은 이제부터 나의 전폭적인 도움을 확실하게 받게 될 것이다.
반면 상황 파악하지 못하고 사나운 이빨을 드러낸 놈들은…….
– 회장님.
장한수가 날 조심스럽게 불렀다.
“네.”
– 외람된 말씀이지만 싸움의 끝은 봐야 합니다. 일송회 뿌리가 꽤 단단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뒤섞여 공생해 온 탓에 보이지 않게 썩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분부터 도려내야 합니다.
“방법은요?”
– 먼저 핵심 뿌리 중 한 명인 손국중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합니다.
“킬러라도 보낼까요?”
– 섭외하겠습니다.
“…….”
장한수 실장에게도 로버트 라이언 같은 면이 있었다.
난감하게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됐습니다. 제 손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머릿속에 착착 세워지는 계획.
수순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그리고 일송회의 진정한 주인을 조심하십니다.
“!!!”
생각지 못한 솔깃한 정보가 들어왔다.
“누군지 아십니까?”
– ……그건 저도 아직 파악 못 하고 있습니다.
“실장님도요?”
– 초대 장로들이라 불리는 반영조, 손국중, 전일권. 정확히 정체를 알고 있는 인물들은 이들뿐입니다. 고인이 된 반영조는 그 동생인 반영훈이, 전일권은 전운택에게 그들의 역할이 넘어갔습니다.
천하의 오정 비서실장도 일송회 회주는 알지 못한 모양이다.
“정보는…… 그게 답니까?”
– 죄송합니다. 현재의 일송회 회주는 나이도 성별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실장님이 모를 정도라면 대한민국 내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 다만…….
“네?”
–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을 거란 사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짐작요?”
– 제 감이라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장한수 실장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나도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모습을 감추고 있는 진정한 친일파의 대부.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 속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상생활을 함께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저도…… 그런 직감이 스쳤습니다.”
– 최대한 빨리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언제나 하명하실 일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장한수는 완벽하게 나의 사람이 되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진심.
병상에 누워 있는 임성철 회장이 이런 사실을 알면 무척 서운해할 것 같다.
“고맙습니다.”
– 그럼 명을 기다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공격과 반격, 그리고 불벼락이 순차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이제는 끝을 봐야 할 시점.
스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창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일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
“손국중…….”
지워지지 않은 더러운 얼룩 같은 친일파의 이름.
그 이름을 입안에서 천천히 곱씹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