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
7장. 계약
“태산아. 엄마가 낮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다. 맞지?”
어머니 그 도깨비는 나중에 강고은과 전국민을 홀린답니다.
2006년이면 아직 강고은은 중학생이다.
도깨비가 업어 가기 전에 확 내가 꼬셔?
순수하게 보이면서도 은근히 도발적인 매력이 넘치는 강고은을 생각하자 마음이 훈훈해졌다.
과거로 돌아오자 이게 좋았다.
미래에 뜰 스타들에 대한 프로필이 좌르륵 머리에서 굴러다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했다.
“엄마. 커피 맛 괜찮아요?”
“응. 맛있네. 이렇게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홍인대 미대 졸업생 엄마가 저렴한 믹스 커피만 마셨다.
비 오는 날 커피 한 잔 들고 밖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아릿하게 기억에 남았다.
미대 누나가 농부가 됐다.
학교 다닐 때 홍인대를 누비고 다녔을 엄마였지만 이제는 시골 아낙이었다.
아빠를 따라 왜 시골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비밀이 많았다.
얼음이 녹아내린 커피가 아까운 듯 엄마는 천천히 음미했다.
커피 한 잔이 엄마에게는 비싼 과소비 식품이었다.
“이제 우리 자주 나와 데이트해요~.”
“그래. 아들. 고마워…….”
엄마는 내 말을 들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커피 한 잔에 감동하는 순수한 엄마.
자식을 위해 희생을 덕으로 삼고 사는 엄마의 눈빛은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내가 죽기 전까지 저 눈빛에 보답하고자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나 준비하지 못한 청춘은 사회에서도 생존을 허락지 않았다.
‘이제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옆자리에서 5권까지 원고를 최 사장님과 편집장님이 훑는 사이 난 어머니와 커피를 마셨다.
처음 앉았던 자리에서 두 남자는 뚫어져라 화면만 바라봤다.
빠르게 원고를 보고 있었다.
고수들이라 대충 봐도 견적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느긋했다.
“휴우.”
“하아…….”
잠시 후 들리는 두 마디의 한숨은 기다림이 끝났음을 알렸다.
‘한숨은 무슨~ 좋으면 좋다고 말하세요!’
오타 몇 개와 비문 수정한 게 전부였다.
워낙 재밌게 읽었던 의 복사판이었다.
재미없다면 눈이 썩은 거다.
“장 작가님…….”
다가와 말을 거는 최웅천 사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를 향한 존경심까지 느껴졌다.
“계약하겠습니다. 선금으로 2천만 원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땡잡은 겨!’
시대가 보증하는 작품의 운명이 그렇게 결정이 됐다.
최 사장은 수정된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내가 마음이 변할까 봐 재촉했다.
을에서 갑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계약서에 사인하시죠.”
펜을 건네는 최 사장님 긴장하는 게 보였다.
“태산아…….”
2천만 원이 확정되자 엄마가 다시 놀랬다.
엄마는 아직도 이해를 못했다.
USB에 담긴 원고가 그렇게 비싸다는 걸 일반인이 짐작하면 그게 이상했다.
우리 집 일 년 총수입이 이 당시 2천만 원도 안 됐다.
그걸 단박에 획득했다.
“세금 계산서는 정확하게 발행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증판 시에는 계약서대로 바로 통보 지급해 주세요.”
“그럼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장르 시장에서도 양심적인 경영자입니다.”
그건 잘 모르겠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믿겠는가.
난 내 통장에 꽂힌 돈만 믿을 것이다.
스슥.
확인해뒀던 계약서에 난생처음 사인을 했다.
팔자에도 없는 작가가 됐다.
엄마도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사인을 마쳤다.
“방금 계좌에 이체했습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최 사장이 내 계좌로 돈을 쐈다.
죽을 때까지 최대 2백만 원 찍어본 게 맥시멈(Maximum)이었던 불쌍한 내 계좌.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올라 했다.
아! 통장아! 이제 너에게 배고픈 시절은 갔다.
앞으로 형아가 평생 빵빵하게 책임지마!
“잘 부탁드립니다. 장 작가님.”
최 사장이 서류를 챙기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
이제 어엿한 돈 버는 사회인이었다.
본업은 학생, 부업은 작가다.
“감사합니다. 진짜 땡 잡으신 겁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최 사장은 솔직했다.
진실한 점은 높이 살만 했다.
“작가님. 총 몇 권이나 집필하실 생각이십니까? 내용을 보아하니 최소 10권은 넘어갈 것 같은데 말입니다.”
편집장이 눈빛을 빛냈다.
확 마음 같아서는 20권 안에 끝내고 싶지만 그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이었다.
“60권요.”
“허억! 6, 60권요?”
“작가님…….”
내 말에 최 사장과 편집장은 경악에 빠졌다.
그 정도 출판되는 책이 드물었다.
그런데 어떡하랴 59권까지 원고가 머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걸 자를 자신이 없었다.
난 어디까지나 의 어둠속 대타였다.
“원고는 걱정 마세요. 스토리가 60권까지 잡혀 있습니다. 늦어도 매달 한 권씩 출간할 겁니다.”
머리에 들어 있는 내용을 그대로 복사기처럼 손으로 두들기면 끝이다.
대타 작가지만 근면성실할 생각이다.
쭉쭉 써내며 60권에 반드시 완결을 지을 것이다.
전생부터 이어온 내 독자로서의 한이다.
“원고 진행 상황 보면서 그때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장이 수를 썼다.
훗, 누구 마음대로.
이 작품은 연속 증쇄를 하게 된다.
저물어가는 대여점에 마지막 선물이 될 작품을 미래를 모르는 저 두 사람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증판 하면 내가 왕이다.
며칠 후면 100권도 괜찮다고 나올 게 뻔했다.
“엄마, 이제 가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점심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모르는 사람과 식사하는 게 엄마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에 먹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운 게 없었다.
쿨내 진동하게 인사를 건넸다.
정당하게 계약은 끝냈고 통장에 돈이 꽂혔다.
종잣돈을 받았기에 아쉬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작가는 회귀한 내 인생 목표가 아니다.
“연락은 어떻게 드리면 되겠습니까?”
“당분간은 메일로 주고받았으면 합니다. 며칠 내로 핸드폰 개통 예정입니다.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버지와 두 여동생에게는 비밀이었다.
그들이 알아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나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엄마는 괜찮았다.
“어머님. 다음에 장 작가님과 서울에 올라오시면 출판사로 찾아오십시오. 거하게 한턱 내겠습니다.”
“네…….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오늘 실례가 많았습니다.”
“실례라니요. 오늘 장 작가님과의 만남은 저와 출판사에 행운입니다.”
엄마는 내가 대차게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댜.
엄마 쫄지 마세요.
이 작품으로 나이스미디어는 저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겁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죠.”
엄마 손을 잡고 난 밖으로 나왔다.
오늘 할 일이 많았다.
종잣돈이 통장에서 썩는 일이 없어야 했다.
“태산아 어디를 가는 거야?”
“동사무소 들러 은행에 가야 합니다.”
“왜? 무슨 일 있어?”
“네~ 중요하죠. 그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심장이 떨렸다.
내일 오후부터 작업이 시작되는 주식이 있었다.
오늘 안에 증권계좌 개설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
돈이 있어도 미성년자라 부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과거로 회귀해도 좋지 않은 점도 있었다.
이제 마음대로 술을 사서 마실 수도 없었다.
기분이 꿀꿀할 때 생각나는 시원한 캔 맥주는 당분간 바이바이였다.
“태산아 이런 일은 아버지와 상의를 해야 맞지 않을까?”
엄마가 엄청난 목돈을 쥔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 같았다.
차비 포함 한 달 용돈 10만원을 사용하던 나였다.
당연한 엄마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제가 겉모습만 고삐리지 청춘을 제대로 진흙 밭에서 뒹굴다 온 역전의 용사입니다.
“엄마. 저 믿어주신다 했죠?”
“그, 그래. 그랬지.”
“그럼 오늘 일은 아버지께 비밀로 해주세요. 당분간 저와 엄마만 아는 비밀입니다.”
내가 말하자 엄마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래. 네가 노력해서 번 돈이니까 태산이가 관리해야지. 미안해 아들.”
엄마가 말하고 싶었던 바를 잘 알았다.
2천만 원이면 아버지가 농협에 진 빚과 이자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아버지께 돈을 줄 수 없었다.
날 부자로 이끌 씨암탉 같은 마중물이었다.
“한 달만 기다려 주세요. 그 때,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요.”
“알았어. 아들. 엄마는 널 믿는다.”
엄마가 방긋 웃으셨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엄마다.
부모들 중에 미성년자 아들에게 처분 권한을 넘겨 줄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 엄마니까 이 정도였다.
“점심은 아들이 짜장면을 쏘겠습니다!”
“에이~ 너무 약한데? 탕수육 더 얹어줘.”
“콜!”
유쾌한 설란 씨가 팔짱을 꼈다.
회귀하니까 이게 좋았다.
어리광을 아직은 부려도 될 나이였다.
‘눈먼 돈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형아가 간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 작전을 그렸다.
허접 재료로 개미들을 털어먹는 양심 빨간 작전세력들.
그들이 이제 나에게 설계를 당해 피똥까지 빨릴 차례였다.
# 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