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2
81장. 자수성가했습니다.
“차 가져왔어요? 헐. 요즘 신입생들 무섭다니까.”
그녀의 놀란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예비 소집은 생각보다 일찍 파장했다.
10조 원 전부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장기자랑에 대해서 의논했지만 다들 꿀 먹은 바보가 됐다.
다들 고등학교에서는 한가락 했겠지만 대학교 생활은 처음이다.
이번 생을 두 번 살고 있는 나만 빼고.
강아린 선배도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보였다.
며칠 후면 졸업 시즌이다.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녀석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각자 개인 장기를 생각해 문자로 보고하기로 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밴더와 카카오콩 같은 단체톡 기능들이 없을 때다.
아이펀은 발매를 시작했지만 안드레이드 진형의 대표선수인 오정그룹 갤루시1은 2010년도에나 한국을 휩쓴다.
전파인증 같은 시비로 오정그룹을 도와주는 한국 정부다.
국가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때 아이펀이 시장을 싹쓸이했다면 오정그룹은 구형 폴더 폰을 끌어안고 마터로라나 나키아와 함께 무덤에 들어갔을 것이다.
저녁밥을 사준다고 몇몇 애들과 강아린 선배가 사라졌다.
오만둥이인 난 선약이 있음을 말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강아린 선배가 생각보다 맹하고 순수해서 나에게 물었음을 안다.
그걸 가지고 뒤끝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무서우면 다음에 보도록 하죠.”
“헐……, 진짜 무서워요~.”
여자애가 끌려가는 건 딱 질색이다.
밀당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미대 누나 손유리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 열렬히 사랑한다는 건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관계다.
상호보완적으로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다면 모를까 손해 보는 장사는 싫다.
사랑도 이기적이고 싶었다.
“난 오늘 차 안 가져왔어요. 법대 뒤편 예술관 50번 건물 앞으로 와요. 바로 나갈게요~.”
손유리와 통화가 끝났다.
어느새 낮게 깔린 오후 햇살이 주차장을 덮었다.
마른 낙엽이 쌓여 있는 법학관 주변은 운치가 있다.
“선배! 술 사주세요!”
“그래! 무적 3조는 날 따르라!”
“장주 선배 짱!”
법대 곳곳에서 모임을 마무리한 다른 조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장이 성격이 좋거나 활달한 조들은 벌써 친해졌다.
얼굴에 활짝 웃음꽃들이 피었다.
“우리 조 장기자랑은 술 한 잔 깔고 시작하자. 내가 기가 막힌 곳을 안다.”
“넵! 선배님!”
기합이 바짝 들어간 조도 있다.
리더의 중요성이 이래서 중요했다.
강아린 선배가 끌기에는 무리다.
특히 변수인 내가 있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순진해도 그렇지 대놓고 오만둥이라 묻는 그녀는…….
띠릭 띠릭.
자동키로 차 문을 열었다.
법대 주차장에 유난히 때깔을 달리하는 내 차에 당연히 시선이 쏠렸다.
“쟤 아까 봤던 애 아냐?”
“맞아. 우리랑 같이 있었어.”
“포르쉐 맞지?”
“……, 재수생일까?”
“재수 없게……, 잘난 척이야.”
내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애들이 몰랐다.
질투는 가장 위험한 인간의 감정이라는 걸 아직 모르는 애들이다.
30년 넘게 인생 산 내가 참아야지 별수 없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는 애들하고 이런 걸로 싸우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어차피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편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충분히 예방주사 맞는 기분으로 버틸 수 있다.
사회생활에 비하면 저런 질투는 별다방 미스 김 애교 수준이다.
뒷자리에 가방을 던지고 차를 몰았다.
부우우우우웅.
페달을 밟자 차는 경쾌하게 법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히터를 켰지만 아직 엔진이 열을 받지 않아 차가운 바람만 나왔다.
시트 히터를 눌렀다.
기본 매너가 뭔지는 안다.
법대 주차장 코너를 돌면 바로 예술관이 나타났다.
음대와 미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예술관이라는 몇 개의 건물이 보였다.
한옥의 중정이라는 마당을 응용한 예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딱딱한 법학관과 달리 자유분방한 예술인들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미대와 음대가 서로 마주 보는 구조다.
50번 건물 앞에 차를 주차했다.
방학 시즌임에도 주차장에 차가 많았다.
예민한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곳답게 스포츠카나 개성적인 차들이 여러 대 보였다.
돈이 있어야 예술도 하는 법이다.
딱 봐도 부자 냄새가 났다.
난 그렇게 그녀를 기다렸다.
“!!!”
그러던 내 눈에 한 여인이 가득 들어왔다.
어깨에 기다란 화구통을 메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미대 건물에서 나오는 미대생.
쭉 빠지다 못해 완벽하게 라인을 형성하는 달라붙은 물 빠진 청바지에 하얀 털이 달린 카키색 야상 점퍼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모자를 눌러 쓸 때와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스니커즈 신발이 어울리는 발랄한 여대생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를 잠시 차 안에서 지켜봤다.
대학생이 된 걸 실감했다.
아니 이 순간에 감사했다.
이제는 나도 성인이다.
머릿속에서 몸을 금제하는 아청법의 저주가 끝나가고 있다.
미녀를 사랑할 줄 아는 나도 남자다.
손유리가 진한 선팅 때문에 나를 발견하지 못 하고 전화기를 꺼냈다.
그녀와의 거리는 10미터.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띠리리리리리리.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손유리 그녀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심쿵!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뭐야? 신입생이 운전해도 돼? 그리고 이 차는……, 뭐야.’
손유리는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요즘 마시는 캔커피가 법대에 있어 평소처럼 방문했다.
그곳에서 손유리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를 발견했다.
여자치고 키가 커 장신의 남자가 이상형인 손유리다.
키 때문에 지금껏 연애도 못 해봤다.
그런 손유리의 눈에 법대 로비에 서 있던 남자는 한 눈에 딱 들어왔다.
입고 있는 옷 스타일도 나쁘지 않았다.
캔커피를 꺼내기 위해 다리를 굽히는 남자의 허벅지가 탄탄했다.
평소라면 시크하고 도도하게 차례를 기다렸을 손유리다.
미래가 보장되는 법대생들 몇몇의 대시도 받았지만 모조리 거절했던 그녀다.
하지만 먼저 손유리가 다가갔다.
그리고 마주한 남자의 얼굴.
얼굴도 훈남이었다.
사내다움이 넘치는 아이돌 같았다.
특히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는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반짝였다.
그때 손유리는 용기를 내 남자에게 캔커피를 부탁했다.
수중에 돈이 있었지만 시치미를 뗐다.
손유리도 모르고 있던 여자의 본능이었다.
남자와 대화를 나눴다.
지금껏 만났던 남자들과 달랐다.
자신에게 빠져들지 않았다.
지금도 강남에 나가면 엔터테인먼트사의 명함을 몇 장씩 받았다.
손유리에게 쿨하다 못해 차갑게 대하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먼저 손유리가 연락처를 물어봤다.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더욱이 이제 법대 신입생인 남자였다.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대학 선배로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시켜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있는 집 자식이었어? 그것도 엄청!’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스포츠카였다.
보수적인 한국대, 그것도 고리타분한 법대생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조합이었다.
손유리는 잠시 당황했다.
이건 신입생이 아니라 잘못하면 클럽에서 놀아본 선수에게 자신이 당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전혀 지금 만남에 주눅 든 모습이 아니다.
여전히 표정은 쿨내가 진동했다.
기다리는 동안 실기실에 딸린 샤워실에서 씻고 정성스럽게 화장으로 꽃단장한 자신을 보고도 동요가 없었다.
“타세요.”
그래도 매너는 괜찮았다.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기본 에티켓은 소유하고 있었다.
“고마워…… 요.”
나이 많은 옆집 미대 선배의 특권으로 말을 놓으려 계획했건만 틀어졌다.
2년 후배가 아니라 마치 몇 년 선배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의자 히팅도 준비해 놓고……, 센스도 있는데?’
여자 한두 번 상대해 본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법대생이다.
‘내가 역작업 당한 건 아니지?’
안락하면서도 딱 잡아주는 스포츠카 조수석에 앉으며 손유리는 걱정이 됐다.
나쁜 남자들의 기본은 친절함이라고 친구들과 잡지에서 봤다.
고등학교 당시까지 엄한 집안 분위기 덕분에 모태솔로인 손유리 머리로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안전벨트 매세요.”
“네? 네.”
드라마처럼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척 다가오지 않았다.
마음을 다스리며 손유리는 벨트를 맸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꽃순이 할매 순대집요.”
“네.”
‘뭐야? 이 동네 살아? 거길 알아?’
한국대생들의 아지트로 널리 알려진 꽃순이 할매 순대였다.
일반 손님들과의 차별을 주인 할머니는 대놓고 했다.
상호명만 말했는데 남자 장태산은 차를 바로 출발시켰다.
내비게이션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길을 묻지 않는 건 허세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길을 찾았다.
‘운전은 왜 이렇게 잘해? 정말 신입생 맞아? 혹시 재수생이나 삼수생?’
드라이브 솜씨가 완벽에 가까웠다.
급가속, 급출발 따위는 없었다.
덜컹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
이렇게 몰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손유리도 타고 다니는 포르쉐라 잘 안다.
스포츠카는 핸들과 엔진이 예민해 운전할 때 더 주의를 요했다.
사실 손유리는 학교에 차를 가져왔다.
그러나 장태산이 차가 있다는 말에 없다고 말했다.
기껏해야 아버지 차나 국산 준중형 승용차를 끌고 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포르쉐 최고급 모델이다.
“운전 잘 하네요. 언제부터 했어요?”
“작년 고3 겨울 방학 때부터 운전했습니다.”
“아…… 고3……, 네? 고3요???”
고등학교 시절 남녀공학을 나왔던 손유리였지만 누구도 자가용을 끌고 다니지 않았다.
학교 교칙에는 없지만 암묵적으로 고삐리는 운전 불가능자 취급을 받았다.
양아치들이나 무면허로 아버지 차를 운전했다고 자랑하는 시기다.
그런데 발랑 까진 고3이 지금 옆에 있었다.
“만 18세 이상은 대한민국 법으로 운전 가능자입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혔다.
“…….”
그건 알지만 고삐리 중 누가 이런 자가용을 몰고 다니냐고!
“이게 본인 명의 차예요?”
“네.”
‘도대체 어느 집안이야! 애한테(?) 억대가 넘어가는 스포츠카라니!’
손유리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동원해 최근 한국대 법학과에 도전한 집안 자식들이나 손자들을 생각해봤다.
강남 소식통인 엄마가 손유리에게 말하지 않은 정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손유리가 알고 있는 한국대 법대 재벌 연관자는 오동성밖에 없었다.
강남에서 소문 자자한 망나니 오동성도 1학년 중반에야 차를 몰고 다녔다.
그 쓰레기 말고 아는 재벌집이나 강남 부자 중에는 없다.
“어디 살아요?”
“가까운 지방도시에 삽니다.”
“부모님이 좀 사시나 봐요.”
“아버지께서 사과 농사를 지으십니다.”
“아~ 사과 농사~ 농장이 큰가 봐요?”
손유리는 10만평 이상을 생각했다.
그 정도 돼야 아들 슈퍼카 사줄 형편은 될 것이다.
“뭐……, 동네에서는 큰 편입니다. 다만 유기농 사과라 잘 팔리지는 않습니다.”
‘유기농 사과 농사? 팔리지 않는다고? 그런데 웬 포르쉐?’
“어머니는 뭐 하세요?”
“그림 그리시는 가정주부십니다.”
“가정주부…….”
대놓고 엄마를 가정주부라 말하는 저 당당함은 뭐란 말인가.
“그럼 이 차는 누가 사줬어요? 비싼 차 아니에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가 룸미러로 손유리와 눈을 맞췄다.
“자수성가했습니다.”
“네??? 자, 자수성가요!”
# 8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