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39
841장. 집 청소.
“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 나 사장.
“넵! 선배님!”
–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오월호 침몰 문제로 지금 골치가 아파. 여기에 돌덩이를 올리면 누가 좋아하겠어?
오월호 사건 여파는 계속 됐다.
전국민이 비통함 속에서 한마음으로 자식들을 떠나보냈다.
안일하게 대응하던 청와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누가 봐도 무능하기 짝이 없는 비상 대응.
그 틈에 대웅조선 문제도 함께 터졌다.
수천억을 넘어 수조에 달하는 분식회계 사건.
과거 대웅그룹도 분식회계로 쫄딱 망했다.
대기업들은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처리해 오던 비리의 온상이었지만 정권에 밉보인 대웅이 그 본보기가 됐다.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분식회계라 손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나광태는 변명을 늘어놨다.
하지만 나광태 입장에서도 억울한 점이 많았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쓰고 연줄까지 대서 왔지만 막상 까보니 대웅조선은 개털이었다.
선임자들이 이미 단물을 쭉쭉 빨아 마시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분식회계뿐만 아니라 저가 낙찰로 선주들로부터 커미션까지 챙겼다.
이 일 역시 업계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본전이라도 찾나 싶었더니 매각이 진행됐고 뒤이어 분식회계 비리가 터졌다.
피눈물을 삼키며 그간 긁어모았던 돈을 풀었다.
다행히 혐의는 전임자들에게 돌아갔다.
–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현 대웅조선을 책임지고 있는 나 사장도 관련 있다고 믿어.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대웅조선 사장 나광태의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지금 통화하고 있는 사람은 우연히 지역 사회에서 연이 닿은 선배였다.
여당 쪽 중진 다선 국회의원도 나광태이 뿌린 돈을 받아먹었다.
청와대에 입성한 고위직들 인사들 몇도 마찬가지.
알게 모르게 나광태의 돈은 잘도 흘러가 그들의 배를 불렸다.
그런데 막상 사건이 터지자 도리어 앞에 나서서 죄를 물으려 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추진하고 있는 수주가 끝나면 여론도 좋아질 겁니다.”
– 수주?
“카타르에서 발주한 대형 원유 수송선 수주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소 5척 정도로 국면전환용으로 그만입니다.”
– 그래?
“선배님이 힘 좀 써주십시오. 지방 선거 기간에 지역구 관리도 하셔야 하고……. 제가 도울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몇 달 남지 않은 지방선거, 바로 코앞이었다.
민심이 요동치고 있지만 여전히 여당 쪽 지지자들이 강세였다.
그럼에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
여당에서는 선거자금을 비밀리에 모았다.
– 나 사장, 충정이야 잘 알지.
“이번 한 번만 더 믿어 보십시오. 다시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광태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특히 옛날 양반들이 좋아할 법한 단전에 힘이 들어간 크고 씩씩한 목소리.
– 목청이 좋아. 내가 후배 한 번 더 밀어주지!
“조만간 모시겠습니다.”
– 알았어. 다른 건 모르겠고, 검찰 쪽은 당분간 내가 잡고 있을게.
“감사합니다!”
나광태 입장에서 가장 꺼려지는 부분이 바로 검찰이었다.
수사권과 종결권, 영장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
그들의 입에 재갈만 물릴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었다.
언론 쪽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했다.
대웅조선 행사 때마다 조국일보를 비롯해 여러 대형 일간지 기자들을 초청해 섭섭지 않게 대접해왔다.
– 수주는 꼭 따도록 해. 내가 민정 라인 쪽에도 얘기해 볼 테니까.
이쪽저쪽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건 다 목적이 있다는 뜻.
“선배님의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
– 무슨 백골난망은……. 알았으니까 수고해. 조만간 거제에 내려가면 연락하도록 하지.
이 말은 따로 돈을 준비하라는 의미.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럼.
띠릭
전화는 상대 쪽에서 먼저 끊어졌다.
“아우! 썅!”
나광태는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거지새끼들도 아니고 내가 봉이야? 개새끼들……. 이렇게 하고 니들이 나중에 잘되면 내가 성을 간다.”
정치권에서 특히 선거철은 언제나 돈이 오가는 중요한 때였다.
지역구 관리를 위해서 국회의원들은 동분서주하느라 바쁜 시기.
그런 상황에 물주로 걸린 나광태.
절로 써진 입맛을 다셨다.
“상표는 입막음이 됐는데……. 문제는 DW 놈들이란 말이야.”
대웅조선 인수를 맡은 컨소시엄 이름도 DW였다.
대놓고 대웅을 상징하는 이니셜.
TS그룹을 비롯해 여러 회사가 연합한 형태다.
외국계 투자회사도 인수에 하자가 없을 만큼 세팅이 됐다.
자금력도 빵빵하다.
산업은행에 연줄이 닿아 있는 듯 인수 절차가 술술 풀렸다.
나광태는 그래서 돈으로 노조를 회유해 방해 공작을 벌였다.
“딱 1년만 버티자! 그 안에…… 제대로 챙기는 거야!”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금이 쭉쭉 들어오고 있다.
세금으로 밀어주는 그 자금도 모두 눈이 먼 돈.
빨대를 꽂고 대기 중인 나광태는 부풀어 오른 희망에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
“이걸 먹으라는 거지…….”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의 지청장실.
한 남자가 고뇌에 찬 표정으로 두툼한 서류봉투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어제 날아든 투고.
날름 한입에 삼키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다.
일개 지청장이 혼자 삼켰다가는 입이 찢어질 게 확실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먹느냐…… 그냥 죽느냐. 이것이 문제인데.”
지청장 윤대호.
한창 잘나갈 때 그는 서울동부지청 차장검사까지 올랐다.
지방대 출신으로 검찰청에서 진골이나 성골로 불리는 공안부나 특수부도 아니었음에도 승승장구했다.
한국그룹의 스폰을 받았다.
또한 눈치 빠르게 상사들의 비위도 잘 맞췄다.
고위 검사들의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처가 쪽 자금을 끌어다 약을 쳤다.
이리저리 구르고 굴러 동부지검 차장검사까지 올랐지만 단 하룻밤 사이에 꿈처럼 무너졌다.
한국그룹 사모의 주문을 들어주다 도리어 당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이름, 장태산.
만만하게 접근했다가 제대로 콧대가 내려앉았다.
그 일로 중앙에서 쫓겨나 여수지청을 거쳐 여러 지방청으로만 돌고 있다.
방랑객처럼 흐르다 이번에는 통영지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후배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피했다.
위에서도 눈치를 주기는 마찬가지.
전 동부지검 차장검사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급의 지청장 자리.
갖은 수모를 견디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흐른 시간만큼 독해진 독기로 똘똘 무장했다.
홧김에 나가봤자 받아주는 로펌도 거의 없다.
중앙 권력에서 밀려난 전직 차장검사 정도는 로펌의 사냥개로도 쓸모가 없는 존재였다.
독하게 맘먹고 독을 쌓아오며 기회를 노리던 윤대호.
자신 앞에 굴러온 큼지막한 뼈다귀를 보니 입맛이 돌았다.
사건 관할로 취급될 수 있는 대웅조선 대표 리베이트 수사건.
횡령죄 배임을 비롯해 걸려고 들면 죄목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분식회계와 또 다른 사건.
증거들도 완벽하게 첨부돼 있었다.
익명의 제보였지만 오랜 시간 준비한 듯 꽤나 완벽한 상태.
“흠.”
윤대호의 얼굴에 고심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어제부터 계속된 고민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제보 내용을 터트리는 순간 전국적으로 큰 사건이 될 게 자명했다.
어쩌면 이 지옥 같은 통영을 빠져나갈 유일한 구명줄이 될 수도 있었다.
큰 사건으로 여론의 관심을 모으면 검찰에서도 쉽게 자르지 못했다.
“영웅은 되겠지만…… 조직에서는 또라이 취급을 받겠지.”
검찰은 대한민국 유일의 합법적 준 폭력 조직단체.
엄격한 선후배 간의 규율과 정당화할 수 있는 폭력이 살아 있는 곳이다.
조인트 까이는 건 일도 아니다.
단정한 슈트 차림 뒤에 감춰진 온갖 욕망은 국민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저열하고 유치했다.
타인의 목숨까지 법이라는 올무로 당당하게 엮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
안으로 들어가면 라인과 라인 간의 파벌이 살벌할 정도다.
과거 조선시대 당파 싸움은 명함도 못 내밀었다.
힘깨나 쓰는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 각각 미는 라인에 줄을 댔다.
검찰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인간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검찰청 캐비닛에 잠자고 있는 고급 비리 정보는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꺼내 먹는 맛있는 간식과 같았다.
종종 검찰 권력 제한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그 캐비닛이 열렸다.
당연히 개혁파 모두 다 참패.
하물며 대통령도 당했다.
그런 조직을 상대로 미움을 살 만한 행동을 개시하려 준비하는 윤대호 지청장.
“나광태 사장 뒤에는 청와대와 여권 실세들이 줄줄이 엮여 있을 건 뻔하고……. 고위 검찰들도 마찬가지……. 보수 언론도 덤인데…….”
대웅조선을 치는 순간 나광태는 엄청난 외압에 직면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권력과 조직이 두 손 놓고 있지 않을 터.
초대형 말벌집을 흔들어 놓는 대사건이 될 판이다.
“오월호 때문에 뒤숭숭한 판에 대웅조선의 각종 비리사건이 연달아 터져주면…… 지방 선거가 볼만 하겠네.”
앞으로 벌어질 판에 피식 웃음을 짓는 윤대호.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심장이 뜨거워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지방을 전전하며 받았던 수모와 멸시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충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동아줄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 하늘로 던져야 할 판.
“조인화! 그 X년은 반드시 내가 손본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마다 떠올랐던 한국그룹 사모.
지방 순회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윤대호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아주 사냥개가 집을 나간 듯 취급했다.
이대로 잊혀질 수 없었다.
복수라도 하고 싶었다.
그 대상은 몸담고 있는 조직과 온갖 권력층.
“삼우에서 날 봐준다고 했으니…… 뒤는 든든하고.”
윤대호도 겁은 났다.
대한민국 상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걸려온 삼우에서 잘나가는 옛 선배의 전화.
무슨 일이 있으면 삼우에서 책임지겠다는 뜻을 넌지시 전해왔다.
“DW컨소시엄의 매각 법률 담당이 삼우로펌이니…… 얼추 그림은 그려지는데……. 이 찝찝함은 뭔지 모르겠네.”
이 정도 촉 없인 정치 검사로 성장할 수 없었다.
똑똑하고 잘난 놈들이 넘치는 검찰 조직.
그 집단의 상위 1% 정도만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톡! 톡! 톡!
중지로 책상을 찍는 윤대호.
더 이상 결단을 늦출 수 없었다.
특히 내일은 날이 좋았다.
영장을 친다면 받아 줄 통영지원 영장 담당 판사가 연수원 동기다.
그 역시 고지식하게 원리원칙을 따지다 이곳까지 밀려난 친구.
이런 사건 정도면 윗선의 눈치 같은 건 안 보고 바로 영장을 허락할 것이다.
“고냐 스톱이냐…….”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꼼꼼히 따져보는 윤대호.
꾸욱.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
“인생 뭐 있어! 씨발 고다!!!”
결정을 내렸다.
통영지청장으로 물러나는 것보다 대형 사이즈의 사회적 사건을 터트리고 퇴임을 하면 정치적으로 딜을 할 여지가 있었다.
현 야당 정치인들과의 인맥 관리에 섭섭지 않게 공을 들여온 터.
다음 대 정권이 바뀌면 다시 복귀할 수도 있었다.
윤대호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라인을 정했다.
삐잇.
인터폰을 눌렀다.
– 네. 지청장님.
“형사 1부장 들어오라고 그래.”
– 알겠습니다.
파바밧.
결심이 서자 먹이를 눈앞에 둔 독사처럼 눈빛이 예리하게 살아나는 윤대호.
“나광태. 너 죽고 나 살아 보자!”
***
뿌우우우우웅! 뿌우우우우웅!
긴 뱃고동 소리가 한참 울렸다.
크고 작은 배와 탁 트인 항구, 물씬 풍기는 비린내가 나를 격하게 반겼다.
“야경 죽이네.”
대웅조선소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올랐다.
탕탕! 탕!
굵은 쇳소리가 밤을 깨웠다.
철컥철컥.
온갖 기계 소음이 파도 소리와 묘한 조화를 이뤘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야간 근무를 하는 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바다 위에 띄워진 크레인도 멈출 줄 모르고 연신 움직였다.
도크에서 조립되는 거대한 배들 사이사이에서 용접 불꽃이 튀었다.
이 시간까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산업 역군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이 시간이면 욕망의 불야성이 들불처럼 번져 있을 서울의 밤과 많이 달랐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동맥은 이 같은 산업 현장.
곧 내 품에 안기게 될 거대한 몸집의 아름다운 선을 자랑하는 배들.
미녀의 화려한 몸짓처럼 조명까지 받아 자태가 더욱 더 빛났다.
“평수가 제법이야.”
흐뭇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얼마 뒤면 내 품에 쏙 들어올 대웅조선.
“화끈하게! 집 청소 GO!”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