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4
83장. 그 남자의 집
뭘 그렇게 놀라나?
강아린 선배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날 봤다.
그리고 시선이 손유리를 향했다.
이 장면 이해하는데 힘들 게 확실했다.
“유, 유리야. 얘 알아?”
“어? 그게 그러니까…….”
술 때문인지 당황함 때문인지 손유리 얼굴이 다시 불콰하게 달아올랐다.
신입생 꼬셔서 술 마시는 모습이 썩 추천되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유리 선배에게 한눈에 반해 제가 술 한잔하자고 했습니다.”
내가 독박 쓰는 게 나았다.
손유리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봐서 신입생인 나를 술집에 데려왔다고 말하면 이미지가 망가질 게 빤하다.
아직 이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 사회 인식이 그랬다.
“와아……, 장태산. 너 정말…….”
강아린 선배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뒷말 예상 답안은 대충 이럴 것이다.
너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오만둥이 너 연애하러 학교 왔냐?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다!
그런데…….
“진짜 능력 좋구나! 유리는 친구보증 모태솔로인데 어떻게 엮었어? 와아~ 진심 능력 부럽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유리는 내가 꼬셨을 거다!”
어라? 이 선배 지금 뭐라는 거야?
날 칭찬하는 거야?
“무, 무슨 소리야.”
손유리가 당황했다.
“잘됐다. 안주도 다 조리된 것 같은데 여기서 마시자. 얘들아, 앉아.”
“네……, 선배.”
갑자기 합석하는 분위기가 됐다.
아린 선배를 따라온 애들은 남자 셋에 여자가 둘이다.
명찰은 뗐지만 이름은 모두 외웠다.
옆 테이블 하나를 붙여서 앉았다.
“오! 이거 누가 볶았어? 할매가 볶아 준 거야? 오늘 인심 쓰셨는데~.”
강아린이 젓가락을 들고 순대와 야채를 맛봤다.
“대박! 진짜 죽음이네~. 역시 요리는 손맛이라니까.”
착각도 자유다.
“유리야 니 맥주 내가 마신다.”
허락도 없이 강아린이 손유리의 소맥을 빼앗아 벌컥거리며 마셨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친한 것 같았다.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손유리는 눈치도 빨랐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관계를 말했다.
“크으으~. 죽인다! 이거 뭐야? 맥주 새로 출시됐어? 왜 이렇게 뒷맛이 시원하고 달달한 거야?”
술맛 좀 아는 법대 여선배가 감탄을 터트렸다.
“아가들. 니들도 술 한잔할 수 있지?”
“네? 네.”
“그럼 뭐 해. 잔들 빨리 들어.”
강아린이 탁자 옆에 쌓여 있는 잔을 들어 후배들에게 술을 권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유리와의 오붓한 술자리는 파투났지만 동기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았다.
“태산이는 소주? 맥주?”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어머. 우리 태산이 목소리도 멋지다니까.”
강아린 선배는 진짜 성격이 무난한 것 같다.
금세 분위기를 주도했고 아이들에게 술을 따랐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세요?”
안경 낀 동기 놈이 손유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유리? 예쁘지? 미대 서양학과 올해 3학년. 내 고등학교 동기에 집안끼리 잘 아는 사이야.”
“반가워요. 후배님들. 손유리라고 합니다.”
손유리가 살짝 웃으며 답했다.
풋풋한 꼬맹이들이 보이는 관심이 싫지 않은 것 같았다.
묵묵히 폭탄주를 제조했다.
“뭐야! 짬뽕하면 다음날 머리 아파~.”
“바보야. 방금 너도 그거 마셨잖아.”
“뭐? 내가 마신 술이 저거야?”
“소맥이라고 불러. 그것도 몰라?”
“오~ 유리 너 많이 컸다. 고삐리 때 소주 한 잔에 뻑 가던 꼬맹이가!”
“내가 너보다 이제 잘 먹거든!”
“어머머머. 그런 구라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할 수 있어? 무적 법대의 명예를 걸고 너에게 도전을 신청한다!”
“창조 미대의 이름으로 도전을 허락하노라!”
애들 참 잘들 논다.
“용범이 술 마실 줄 아냐?”
“어? 내 이름 알고 있었어?”
“내가 바보냐. 지혜 너도 마실 거지?”
“네…….”
“동기끼리 네는 무슨~ 태산이라고 편하게 불러.”
“그래도 돼?”
눈에 서클렌즈를 착용한 여자 동기생이 놀라 물었다.
“당연하지.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까자.”
과거 군대도 다녀온 내가 주도적으로 나갔다.
대학 생활은 이제 시작이다.
아웃사이더로 학교 시절 보내는 건 비추다.
다시 사는 두 번째 인생은 더 다채롭게 살고 싶었다.
“연아도 괜찮지?”
“그래~.”
“준식이, 형주도 오케이?”
“나이도 같은데 말 트자.”
“나도 좋아!”
이렇게 처음으로 동기 다섯과 친구가 되었다.
나이가 같다는 말에 심히 동감할 수는 없지만 민증 상으로 친구는 맞았다.
“다들 한 잔들 하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잔을 들었다.
이런 술자리가 그리웠다.
고삐리들과는 매일 피자나 치킨이나 뜯었다.
“태산이……, 너 진짜 남자다. 유리야 뭐 해. 우리도 먹고 죽자.”
“다들 만나서 반가워요. 남자분들은 내가 소개팅 책임질게요~.”
“언니. 우리도 미대 오빠 만나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이 언니만 꽉 믿어!”
“유리 너 뭐냐? 친구인 난 뭐야! 나도 해줘!”
“넌 연식이 삭았어. 거울도 안 봐?”
“닥쳐! 그렇게 잔인한 말을 대놓고 할 수 있어! 모태솔로인 주제에 누구에게 충고야!”
“난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법대 선배들이 나에게 얼마나 들이대는 줄 알기나 하는 거야?”
“증거를 보여 줘봐~.”
“즈, 증거…….”
친한 친구가 확실했다.
과는 달랐지만 오고 가는 눈빛과 대화에 정이 깃들어 있다.
“선배님들, 증거는 공평하게 주량으로 해요.”
“그거 좋다!”
“나도 찬성! 마셔라 친구!”
“어림없다. 친구!”
둘은 그렇게 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셨다.
“소맥이 왜 이렇게 늦어요? 빨리 만들어 줘요~.”
갑자기 불이 붙은 두 여대생의 일기토는 생각보다 치열했다.
그리고 난 열심히 소맥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 맛보게 될 그들의 지옥 체험에 안타까운 경의를 표했다.
***
타닥 타다다닥.
규칙적인 칼질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치이이이잇 치이이잇.
밥이 되어가는 듯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흐으음~.”
뭔지 모르지만 코로 파고드는 시원하고 칼칼한 냄새가 기가 막혔다.
입안에 침이 돌았다.
물먹은 솜 같은 축 처진 몸뚱이가 나른하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얼굴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이불이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향긋한 이불 냄새 또한 마음에 들었다.
평소 맡았던 방의 이불 냄새와 달랐다.
뭐? 이불 냄새가 달라!!!
손유리는 번쩍 눈을 떴다.
“헉!”
보이는 광경에 비명이 터졌다.
커튼 사이로 맑고 투명한 겨울 하늘이 얼핏 보였다.
자신의 방보다 몇 배는 큰 공간은 아주 낯설었다.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킹사이즈의 커다란 침대가 손유리를 반겼다.
사과밭이 그려진 대형 그림 한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을 줄 아는 상당한 대가의 유화그림이라는 걸 손유리는 알았다.
창가 옆에 편안한 원목 흔들의자 이외에 다른 가구는 없다.
담백한 방주인의 성품을 알 수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야?”
납치나 감금은 아닌 것 같았다.
손유리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젯밤 고등학교 시절 어울렸던 법대 친구 강아린과 끝장을 내겠다고 꽃순이 할매 순댓국집에서 달렸다.
입에 착착 감기는 소맥에 취했다.
법대 신입생들과 주거니 받거니 잔을 나눴다.
태어나서 처음 어울려보는 유쾌한 술자리였다.
친구까지 있기에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소맥 제조가 늦다고 장태산에게 구박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암전이 찾아왔고 필름이 뚝 끊겼다.
“서, 설마!”
급히 이불을 들춰 몸을 살폈다.
“휴우…….”
다행히 어제 입고 있던 옷 그대로다.
몸에서 기분 나쁜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아린이네 집은 아닌 것 같은데…….”
손유리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르르르릇 통유리를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었다.
“아!”
걷자마자 보이는 시원한 한강.
‘뭐야? 여기 강남이잖아?’
한강이 보이고 길 건너 익숙한 대교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 건너 강변북로를 따라 많은 차들이 오고 갔다.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한강의 물결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워 보였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여자 방은 아닌데…….”
다행히 집에는 어제 연락을 해 놨다.
교수님 특별 과제를 수행하느라 학교에서 날을 샐 수 있다고 알렸다.
미대 특성상 그런 날들이 많았기에 방학 중에도 오케이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외박은 당황스러웠다.
눈치를 보며 손유리는 조심스럽게 살짝 열린 방문 앞에 다가갔다.
‘누구 집이야? 아……, 정말 미치겠네.’
손유리는 손톱을 깨물며 바깥 동정을 살폈다.
최근 건축된 건물이 확실했다.
강남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청담동 빌라촌이다.
그것도 한강 조망이 됐다.
대단한 재력가가 확실했다.
“깼으면 씻고 나와요.”
“!!!”
그때 부엌 쪽에서 귀에 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장태산? 으아아아아! 이게 뭐야!’
놀랍게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제 만났던 법대 신입생 장태산이다.
손유리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멘붕이라는 표현이 딱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 같았다.
그냥 호기심에 던졌던 몇 마디와 술자리가 외박까지 이어졌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은 먹먹했다.
누가 봐도 미대 3학년 여대생이 뭣 모르는 신입생 꼬셨다는 결론 밖에 안 났다.
손유리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후다닥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학교 야간 실습을 위해 가방에 항상 여벌의 속옷이 있어 다행이었다.
욕실은 깔끔하고 넓었다.
아는 친구 집 같았다면 마음껏 여유를 부리고 싶은 아침 시간이지만 빨리 씻고 나왔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해서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일단 부딪쳐보자!’
다행히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
여자에게 중요한 하룻밤을 원나잇으로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낯선 남자의 집과 방에서 하룻밤을 잤다는 건 손유리 자신에게 욕먹을 짓이다.
‘거실 풍경도 예쁘네…….’
바깥으로 나오자 거대한 통유리로 한강 전체가 보였다.
침실과 또 다른 풍경이었다.
가슴이 뻥 뚫렸다.
“식탁으로 와요. 다 준비됐어요.”
장태산이 부엌에서 불렀다.
손유리는 늦잠 잔 새색시마냥 참새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
‘이게 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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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