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85
891장. 불공평 속의 공평.
“내가 잊으라고 했잖아. 그놈 죽었을 거야…….”
“아니거든요! 립은 안 죽어요!”
“어떻게 안 죽어! 와칭 애들이 끌고 갔잖아. 아무리 진봉을 꺾었다 해도 총알은 못 피해.”
“주방장님! 립은…….”
설영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립은 바람처럼 나타나 사라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죽은 줄만 알았던 립의 생환과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있던 데이트 신청.
잠시간의 춘몽(春夢)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여여가 립을 다시 빼앗아 버렸다.
게다가 뒤이어 들이닥친 와칭 조직원들.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과 달리 장립이 진봉을 쓰러트렸다.
주방 식구들도 몰래 숨어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봤다.
모두 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 전개에 깜짝 놀랐다.
과거 립은 허우대만 멀쩡한 샌님처럼 파리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았다.
그랬던 장립이 와칭 조직에서도 알아주는 고수 진봉을 한 방에 날려 쓰러뜨렸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진봉이 대동하고 왔던 와칭 조직원들이 총을 들이대고 장립을 끌고 갔다.
설영의 오랜 기다림은 하룻밤 꿈처럼 날아가 버렸다.
“오늘 장사는 다했네요.”
“그러게…….”
“주방장님 어떡해요?”
“뭘 어떡해. 접어.”
주인의 아들인 주방장이 접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서진 탁자와 집기들.
식사 시간도 한참 지났다.
분위기도 뒤숭숭해 일할 맛도 사라졌다.
“그런데…… 여여는 어떻게 됐을까?”
“……보스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안타까워.”
주방 직원들이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모의 여신 여여를 다시는 못 보게 되리라 직감했다.
장립이 실종된 이후로도 가끔 혼자 나타나 그와 같이 먹었던 딤섬을 주문해 놓고 술잔을 기울였던 여여.
그녀의 지고한 사랑을 이곳의 직원들 모두가 잘 알았다.
그러나 여여 역시 와칭 조직원들 손에 끌려갔다.
앞으로의 일을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립과 여여.
‘립……. 당신 또 가버렸나요.’
설영은 또 다시 상처를 받았다.
여여와 립 사이에 끼어 들 수 없음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된 꼴이었다.
끼이이이익.
그때 가게 앞에 빨간 스포츠카가 멈춰 섰다.
손님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라 텅 비어 있던 주차장.
LA에서도 보기 드문 한정판 슈퍼카였다.
딸깍.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식당의 넓은 유리창 너머로 선명하게 보였다.
“어어!”
“립???”
놀랍게도 차에서 내린 남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 장담했던 장립이었다.
스르륵.
가게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장립의 모습은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처럼 멀쩡했다.
“립……!”
설영이 크게 놀라며 이름을 불렀다.
뚜벅뚜벅.
설영에게 직진으로 다가온 장립.
“받아.”
장립의 손에 순수한 안개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 안개꽃.
설영이 꽃을 받아들었다.
“이것도.”
설영이 평소 즐겨먹는 쌉싸름하고 달콤한 초콜릿도 함께 건넸다.
“……립.”
설영은 다시 한 번 립의 이름을 불렀다.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지금 립이 어떤 말을 하려는지 공기가 다 말해주고 있었다.
“데이트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립이 담백한 표정으로 웃었다.
“응.”
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는다고 될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안다.
지금 립은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그 마음……. 영원히 잊지 않을게.”
설영의 짝사랑에 대해 장립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응…….”
설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설영……. 넌 좋은 여자야.”
장립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가 이어졌다.
처음으로 제대로 느껴보는 장립의 따뜻한 손.
“갈게.”
“응…….”
설영의 입에서는 말이 길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 설영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립.
“손해배상은 와칭에서 해줄 겁니다. 다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장립은 끝까지 예의가 발랐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식당 직원들에게도 꾸벅 인사를 했다.
저벅저벅.
그리고 들어왔던 문을 열고 사라졌다.
부우우웅.
빨간 스포츠카는 금세 눈앞에서 멀어졌다.
“흐으으윽.”
그때서야 설영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몇 년 간의 짝사랑이 이렇게 끝나 버렸다.
그러나 원망의 마음은 전혀 없었다.
설영을 끝까지 배려해 주고 떠난 장립.
‘고마워요……. 립. 당신에 대한 사랑은……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완성할 거예요!’
설영은 다음 생의 사랑을 다짐했다.
배시시.
그런 설영의 입가에는 아쉬움이 아닌 홀가분한 미소가 번졌다.
두 줄기 눈물 속에서 환한 안개꽃처럼 피어났다.
***
“그동안 미안했다.”
“???”
여여는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주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식당에서 장립을 기다렸다.
그가 다시 살아서 눈앞에 나타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와칭 보스 주걸이 배신자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때 장립을 끌고 갔던 조직원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보스 주걸의 전갈을 전했다.
여여는 주걸의 만나자는 전갈에 입술을 깨물고 따라나섰다.
장립이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직접 그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고 싶었다.
가슴에 들어찬 슬픔을 달래며 도착한 주걸의 저택.
역시 장립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걸이 자신을 보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해왔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의미를 알지 못해 여여가 다시 물었다.
“말 그대로다. 여여……. 널 새장 속에 가둔 걸 사과한다.”
꾸욱.
여여가 가슴에 전해는 통증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에요……. 당신 덕분에 제 부모님도 편하게 가셨어요.”
여여는 제 잇속만 차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주걸이 자신에게 베푼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했다.
어차피 이 시간 이후부터는 여여 역시 세상을 더 살 의미가 없었다.
장립의 시체를 수습하고 나면 그를 따라 세상에서 흔적을 지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도대체 왜?’
여여는 주걸의 돌변한 태도가 계속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렇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남자였다.
생사여탈권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주인과 같은 주걸.
스윽.
주걸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뭐죠?”
“그동안 수고한 비용이다.”
“됐어요. 당신에게 받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여여…….”
“립은 어디 있나요? 그의 시신이라도 온전하게 수습할 수 있게 해준다면 모든 걸 용서해 드리겠어요.”
여여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었다.
“네 마음이 그렇다면 알겠다.”
주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립, 어디 있나요?”
“밖에.”
“벌써 시신을 처리해 버렸나요!”
여여는 깜짝 놀랐다.
“아니야.”
“네?”
“……그분은…… 엄청난 능력자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주걸의 목소리에서 두려움과 존경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게 무슨…….”
“시간이 다 됐구나. 떠나라. 오늘 이후로 너와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보스…….”
“립은 살아 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나가봐.”
“네?”
“내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주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자신의 아버지다.
그런 이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
“아!”
장립이 살았다는 말에 여여는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타다다다닥.
주걸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고 다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부럽군. 교주님이…….”
한 여자의 마음을 온전히 얻은 교주 장립.
“그럼 이제 나도…… 뜨겁게 살아볼까!”
진짜 부러움도 잠시.
주걸은 자리에서 힘 있게 일어났다.
교주 덕에 다시 찾게 된 진정한 남자의 삶.
이제 세상에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
–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설영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장립이 고마워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사함은 진심이었다.
“이별도 기술이 필요해. 특히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다면 상처주지 않고 헤어져야 다음 업을 만들지 않아.”
– 존경합니다!
존경?
장립에게 이런 존경 백번을 받아봐야 포인트도 없다.
그렇다고 물질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장립이 나고 내가 장립이었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설영과 이별한 후 바로 주걸의 저택 앞으로 왔다.
시간과 동선을 계산해 계획했다.
부하이자 열성 신도가 된 주걸에게 여여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립에게 들어보니 주걸이 여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것도 사실이었다.
서로의 은원 관계가 깔끔하게 끝나야 미래에 가서도 얽히는 운명을 만들어 내지 않는 법이다.
타다다닥.
그때 저택 안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정문을 열고 나타나는 실루엣.
LA에서 사용하는 내 전용 스포츠카 앞에서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리, 립!”
반신반의하며 내 이름을 강하게 부르는 여여.
타다다다다닥.
그녀가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덥석.
품에 가득 안겼다.
두 번째 이루어진 진한 포옹.
좋다.
– 하아.
다만 귀신의 한숨 소리가 거슬렸다.
아무리 내가 립이고 립이 나라지만 이건…….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접촉.
“여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
입술에 느껴지는 뜨거운 촉감.
말릴 시간도 피할 틈도 없었다.
그대로 입안을 파고 들어오는 여여의 뜨거운 마음.
– 어어! 으아아아아아아! 내…… 첫 키스!!!
뭐야? 여여랑 도망쳤다면서 키스도 안 했어?
– 난 순진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으아아아! 너무해요! 이건 불공평하잖아요!
아니 공평해.
장립 너 때문에 나 개고생했다.
그런데 이렇게 뜨거운 대가가 주어지다니…….
장립, 그거 하나 알려줄까?
인생은 본래 불공평 속에 공평이 편재해 있는 거란다. 흐흐흐.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