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01
908장. 로비스트.
“필립 앨런이 호색한의 파티에 참석한다고?”
“그렇습니다. 회장님.”
“왜?”
매릴랜드 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글로벌 우주항공기업 락히트 마린의 회장실.
전세계 대형 무기 제조업체 중 유일하게 여성 회장인 이레네 휴슨이 비서의 보고에 의구심을 표했다.
갑자기 전해진 경쟁업체 소식이었다.
아침마다 보고받는 주가 변동이나 주요 세계 국가들 간의 지난밤 사건, 그리고 바잉사의 중요한 동향.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었을 부분이 오늘따라 휴슨의 목에 걸렸다.
바잉사와 락히트 마린사의 회장은 다른 그룹들 리더보다 더 행동을 조심했다.
특히 정치와 연관 있는 자들은 대놓고 만나지 않았다.
각국 정부에서 엄청난 금액의 군사 장비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로비가 필수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가는 사업 총액의 20% 이상을 뒷돈으로 지불해야만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정상적인 국가도 10% 정도의 로비자금이 투입됐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을 다들 알고 있으면서 막상 로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해당 정부가 깨끗한 척 앞으로 더 나선다는 것이다.
과거 대대적으로 뇌물 사건이 문제가 되었을 때 락히트 마린사도 곤욕을 치렀다.
로비에 관련해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가 부패방지법을 들고 나와 회사를 공격했다.
바잉사도 로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로비스트들을 고용하고 페이퍼 컴퍼니, 조세 피난처를 단골로 이용했다.
바잉사와 락히트 마린은 서로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각각 손에 쥐고 있었다.
한쪽이 죽게 되면 다른 한쪽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경쟁하되 밀고하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암묵적 약속이다.
그런 관계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
트럼프는 요즘 들어 정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미국 대통령 전당 대회의 대선 주자로 거론됐다.
현 오바마 행정부와 대놓고 척을 진 셈이다.
레임덕이 발생했지만 오바마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바잉사 정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 과감하게 트럼프의 초대에 응한 필립 앨런.
토독.
이레네 휴슨은 책상을 중지로 토독 두들겼다.
복잡한 생각에 빠질 때마다 나오는 그녀만의 버릇이다.
‘필립 앨런이 왜?’
그녀가 알고 있는 필립 앨런은 보수주의자다.
트럼프 같은 호색한과 어울리는 걸 극도로 꺼려야 함이 맞았다.
게다가 평판이 별로 좋지 않은 트럼프의 파티.
트럼프는 젊은 시절에 포르노 배우들과 자주 파티를 벌인 것으로 유명해졌다.
“다니엘 장이라는 한국인이 중요 손님입니다.”
“아! 다니엘 장!”
다니엘 장이라는 이름에 휴슨이 크게 반응했다.
그녀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다니엘이라는 자의 명성.
락히트 마린 주식을 서서히 매집하고 있는 로버트 라이언과 친분이 두터웠다.
미국 정재계에서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자주 이름이 언급됐다.
“다음 선거에서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 쪽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 보고서가 사실이었군.”
미국 정치 동향은 그 어떤 사업보다 중요했다.
다른 국가들이 구매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미국 방위 산업 규모.
연간 40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는 락히트 마린의 주요 고객은 다름 아닌 미국 정부다.
‘이제야 이해가 돼.’
트럼프가 자신을 지지하는 다니엘 장을 이용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익이 되는 계산에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트럼프.
무모한 듯 보였지만 가끔 그가 보이는 그 무식한 투쟁력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였지만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았다.
토크쇼 주인공으로 시작해 골프장과 대형 호텔 체인의 주인이 됐다.
미국 부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 트럼프가 이번에는 대통령을 노렸다.
다들 품격이 떨어진다고 호색한 트럼프를 조롱하지만 그를 알 만큼 아는 이들은 주의했다.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트럼프가 어쩌면 신의 장난처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로버트 라이언도 참석하나?”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파티가 성대하겠네.”
“할리우드가 들썩거린다고 합니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초청장 가격이 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장사꾼이 능력 좋아.”
미국에서 정치인이 파티를 열면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됐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선거에 뛰어들지 않아 책정된 가격은 없지만 내년이면 판세가 달라진다.
트럼프가 진짜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하면 차라리 지금 티켓 값을 지불하는 게 저렴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얼마라고 했지?”
“5% 정도 됩니다.”
정치 연구소의 컨설팅을 수시로 받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정치인들의 당선 여부는 무척 중요했다.
미리 물자를 선점하고 돈을 뿌리면 뒤에 엄청난 이익으로 돌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를 통해 짭짤한 성과를 얻었다.
바잉사가 낙점된 한국 정부의 3차 FX 사업권을 운 좋게 빼앗았다.
여러 정보를 통해 최초의 한국 여성 대통령 뒤에 실권자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아냈다.
가능성은 적었지만 로비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주순자라는 일개 보통 사람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업체가 바뀌는 만큼 한국민을 현혹하기 위한 여러 조건을 부가조항으로 입력했지만 그것을 다 지킬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미국 법률과 충돌될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계약이 성사된 후여도 약소국인 한국이 따지고 들 만한 부분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엄청난 돈을 챙겼다.
로비 자금도 생각보다 적게 들었다.
주순자 하나만 공략하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었다.
“트럼프에게 연락해봐.”
“가실 생각입니까?”
“다니엘, 그자가 베토벤 재림자 맞지?”
“그렇습니다.”
“듣고 싶어.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해.”
이레네 휴슨은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2013년 보수 총액으로 2000만 달러를 획득한 이레네 휴슨.
연봉은 15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스톡옵션과 성과금이 엄청났다.
모든 것들이 돈으로 환산되는 미국 기업 시스템.
휴슨의 눈동자가 또 다른 사냥감을 발견한 흥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
– 오! 마이 갓! 스칼릿이에요! 파티에 참석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녀가 이곳에 왔어요! 으아아! 저 남자는 새뮤얼……. 와아아아아아! 와아아!
귀신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죽기 전까지 왕따 당하고 미련하게 공부만 하던 장립이 출세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트럼프의 해변 별장.
대규모 공사로 지난밤 야훼가 난리를 쳐놓은 곳들이 순식간에 원상복구 됐다.
불탄 나무들은 베어져 어디로 옮겨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곳곳이 파헤쳐진 잔디는 거짓말처럼 새것으로 교체됐다.
대형 차량 10여 대가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호텔 출장 뷔페가 세팅 됐다.
새하얀 면포가 깔린 탁자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
한눈에 봐도 솜씨가 대단해 보이는 쉐프들이 맛있는 요리들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수십여 명이 넘는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이 본격적으로 서빙을 시작했다.
모두 다 깔끔한 복장의 미남 미녀들이다.
유명한 배우들이 슈퍼카를 타고 속속 도착했다.
입구에는 레드 카펫이 깔렸다.
사설 경호원들도 대거 투입됐다.
티링 티링~♬.
현악 4중주뿐만 아니라 보기 드문 목관 5연주 앙상블도 준비됐다.
한 파트씩 돌아가면서 연주했다.
미국 럭셔리 파티의 끝판왕을 보고 있었다.
트럼프가 마음먹고 제대로 과시욕을 부렸다.
“하하. 어서 와요. 줄리아. 당신의 미소는 언제나 날 소년처럼 설레게 만드는군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꽤 많이 모였다.
다들 영화 안 찍고 집에서 놀고 있기라도 했는지 한껏 턱시도와 드레스로 맵시를 뽐냈다.
보는 눈이 즐거웠다.
– 이런 파티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죽은 귀신이 맨날 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망발을 내뱉었다.
정신 사납다.
회장님한테 가서 붙어 있어!
– 헤에. 형님 쪽이 훨씬 물이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갈수록 눈치가 빨라지는 귀신 장립.
하긴 임성철 회장도 바빴다.
에바와 니나가 다시 방문했다.
둘 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 비치는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임성철 회장 곁에 머물렀다.
로리아나를 직접 봐서 그런지 이후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같이 밤을 보낸 임성철 회장과 더한 친분을 쌓으려는 듯 훤히 보이는 교태를 부렸다.
임성철 회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행복해 보였다.
오정의 주인이었지만 이런 성대한 미국식 파티는 처음 경험할 것이다.
참석한 이들은 자신들의 매력을 뽐내느라 뜨거운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격식을 차린 정장 차림의 재계 인물들이 노출이 심하고 화려한 배우들의 복장에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콘셉트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사교 모임.
트럼프 스타일의 파티다웠다.
격식보다 실익이 중요시 되는 자리였다.
“좋아 보입니다.”
“왔습니까.”
“그럼요. 누가 계시는 파틴데.”
로버트 라이언이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와인 잔을 들고 품격 있게 그림처럼 옆에 섰다.
과거에 알던 로버트 라이언이 아니다.
월가를 지배하는 투자자답게 자연스러운 카리스마가 물씬 발산됐다.
주변에 누가 감히 다가오지 못할 만한 수준이다.
“로버트 라이언이야…….”
“세상에 소문이 진짜였어.”
“저 동양인이 다니엘 장이겠지?”
“베토벤 재림자라는 그 남자야.”
“멋있어.”
단박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내 이름을 알고 있던 이들이 눈을 맞추기 위해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무한 친절함으로 무장했다.
딱딱한 베이다이허 파티와는 완전히 달랐다.
나도 미국 스타일로 바꿨다.
나를 빛나게 하는 병풍이 끝장이다.
로버트 라이언은 포브스 지에도 얼굴이 몇 번이나 실렸다.
뿐만 아니라 각종 경제지나 TV에도 간간이 모습을 보였다.
내가 뒤에서 모두 지시한 사항들이었다.
로버트 라이언은 나의 경제계 활동에 있어서 얼굴 마담 같은 존재였다.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키워 확장시켰다.
한국과 달리 겸손함만이 미덕이 될 수 없는 미국.
능력 있는 자일수록 자신의 힘을 과시해야만 집중 받을 수 있는 아메리카 스타일.
“로버트! 여기서 다시 보는군요!”
트럼프가 희색을 띠며 다가왔다.
그 뒤를 졸졸 따라오는 몇몇 사내.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대부분 경제인들이다.
배우나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늘 파티가 중요했다.
미국 사회는 거의 모든 것이 돈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현실 끝판왕.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럼프.”
로버트가 여유 있는 자세로 응대했다.
분위기만으로 보면 마치 이 파티의 설계자가 로버트 라이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제가 더 영광입니다.”
트럼프의 입이 찢어져 귀에 걸렸다.
아직 이 자리에서는 나보다 로버트가 먹혔다.
주변에 운집한 이들의 시선과 귀가 한쪽으로 집중됐다.
“바이슨. 이곳에서 보는군.”
“하하. 월가에서도 보기 힘든 로버트를 이곳에서 만납니다.”
“지난 달 파티도 괜찮았어.”
“다음에 다시 날을 잡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분은…….”
로버트 라이언이 자연스럽게 트럼프와 동행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샴페인 잔을 들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난 판을 깔아주는 게 목적이었다.
굳이 메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트럼프도 그걸 원했다.
다만.
“오늘 날이 참 좋습니다.”
한 남자가 한발 물러선 나에게 다가왔다.
간간이 새치가 섞여 보이는 금발에 살이 적당히 붙은 전형적인 미국 중년 신사였다.
“파티하기에는 축복 같은 날입니다.”
자연스럽게 응대하며 그를 살폈다.
“다니엘님의 시원한 미소를 닮은 것 같습니다.”
나를 알고 있는 눈치다.
그렇다면 의도적인 접근.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누구십니까?”
“이런!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미국에서 작은 제조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작은 제조업?
스윽.
한국식 접대 문화를 아는 듯 명함을 먼저 건네는 남자.
명함을 살폈다.
응? 이 남자가 왜???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