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02
909장. 로비스트(2).
“갓 뎀!”
힐러리의 표정이 마귀처럼 변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주름살이 많아진 힐러리의 피부가 분노에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감히…… 대놓고 트럼프를 밀어줘? 다니엘……. 네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는구나!”
트럼프가 연 파티에 참석한 이들에 대한 세세한 보고서가 막 손에 들어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뿐 아니라 LA의 샐럽들이 대거 참석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더 컸다.
지금 현재도 소문을 듣고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자가용 비행기들이 떴다.
힐러리를 지지하던 경제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애써 무시하고 있던 힐러리도 긴장했다.
“로버트 라이언…….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 동양인과 함께 묻어 주겠어!”
힐러리가 평소답지 않게 독한 마음을 먹었다.
오바마가 왜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을 썼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하지만 지금은 힐러리가 전면에 나설 수 없었다.
최대한 숨을 죽여야 할 때.
행사할 수 있는 실권이 없었다.
미국 정재계 인사들의 관심이 트럼프의 별장에 쏠리고 있는 시점.
“트럼프. 웃고 있을 때가 좋은 때지.”
언제나 교양을 잃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인물로 철저하게 포장되어 있는 힐러리의 욕망은 남달랐다.
작은 행동 하나부터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있을 때는 거리낌 없이 감정을 표출했다.
트럼프와 로버트 라이언, 그리고 한국인 다니엘 장을 상대로 활활 타오르는 적개심을 드러냈다.
오늘 파티로 인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주자가 될 확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점잔을 빼느라 눈치를 보는 공화당의 다른 주자들과 확실히 달랐다.
IT와 SNS가 발달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성향도 바뀌고 있다.
과거 TV와 신문으로 선동 당하던 주류와 달랐다.
막상 변화된 세태가 민주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치 보고서에 의하면 보수층이 자신들만의 뉴스를 통해 더 단단하게 뭉치며 우익화 성향이 강해진다고 나와 있다.
미연방의 독특한 선거 방식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컸다.
“낸시가 놈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난 괜찮아. 그까짓 동양인 하나 처리하지 못하면……. 힐러리라는 이름이 아깝지.”
힐러리는 오늘의 일로 다니엘을 확실히 대적해야 할 상대로 규정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지는 파장이 이제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제대로 빨대를 꽂고 있는 트럼프.
“기회가 올 거야. 그때 단숨에 처리한다!”
독하게 눈동자를 빛내는 힐러리.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뒤에서 그동안 그녀를 지지해 오던 심령술사 낸시가 얼마나 몸을 사리며 떨고 있는지 말이다.
“……이 땅의 영혼들이 보호하고 있어! 어찌 이럴 수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위치한 성지 모누먼트 밸리.
깊은 밤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온 인디언 혼혈 여성 낸시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아메리카 북부 대륙은 온전히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드넓은 대지는 먹을 것들이 풍부해 동물들과 함께 인디언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하늘과 땅을 숭배하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던 인디언들.
오래도록 지속됐던 영광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유럽 백인 이민자들에 의해 대거 피를 흘리며 대지로 돌아갔다.
살아남은 후손들도 목숨만 부지했을 뿐 비참함으로 남은 생을 연명했다.
백인들의 노예가 되거나 무지한 인종으로 내몰려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다 대지의 흙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길고 긴 세월을 묵혀오는 동안 이 땅에 뼈를 묻은 선조들은 신이 되어 이 땅을 지켜봐 왔다.
그 선조들이 침묵을 깨고 분노를 드러냈다.
후손들의 멸망과 패배에도 침묵하던 선조들이었다.
운명이란 불어오는 바람과 흘러가 버린 강물과 같다는 걸 알기에 자연의 흐름에 순종했던 선조들.
그랬던 그들이 누군가를 위해 힘을 썼다.
그것도 강력한 타 민족의 신을 상대로 말이다.
“무슨 뜻이란 말인가……. 신들의 계약인가?”
기도를 위해 얼굴에 여러 자연의 색들로 무늬를 만들어 칠한 낸시는 성지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선조들은 과거처럼 특정인에게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예언을 하사하지 않았다.
그들의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일 만큼 깨끗하고 진정한 후손의 순수한 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혼혈인 낸시에게 오늘과 같은 기회가 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땅의 신들과 완벽하게 교감할 수 없는 낸시.
그저 어느 정도의 기운만을 느낄 뿐이었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위해 신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제대로 힘을 썼다는 것을 감지할 정도로 말이다.
***
‘놀라는 표정하고는.’
필립 앨런은 명함을 건네고 상대 반응을 살폈다.
세계 항공업계를 지배하는 바잉사의 회장.
한국과 달리 재벌 승계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막강했다.
일개 변방 국가의 투자자가 쉽게 대면할 수 없는 위치에 앉은 주인공이었다.
“바잉사의 회장님이셨군요.”
“하하. 부족하지만 그렇습니다.”
동양인들이 좋아하는 겸손함을 보이는 필립 앨런.
“그 정도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사업체입니다.”
“???”
‘이 자식 뭐라는 거야?’
뿌리 깊은 공화당 지지 텍사스 가문에서 태어난 필립 앨런.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지만 유색 인종에 대한 편견은 어릴 때부터 세뇌되어 깊이 각인돼 있다.
역겨운 향신료 냄새를 풍기며 돈만 밝히는 동양인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다니엘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비루한 자가 건방지게 대 바잉사의 회장을 앞에 두고 ‘적당한 사업체’라는 말을 내뱉었다.
어이가 없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 업체다.
상업용 항공기, 미사일, 우주선까지 비행기 부분에 있어서는 탑이었다.
그런데 겨우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사업체’?
“소문에 새로 작업에 들어가는 보급형 상업용 항공기가 있다고 하던데…….”
“맥스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보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발전하는 과학 설계를 바탕으로 무게를 상당히 줄였습니다. 엔진도 신형으로 교체해 이동 거리를 늘리고 효율이 비약적으로…….”
“안전합니까?”
“네?”
갑작스런 질문에 필립 앨런은 살짝 당황했다.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던 안전이라는 단어.
“이것저것 줄였다고 하면 한국인들은 의심부터 해서 말입니다. 한국 자동차 아시죠? 연식 변경할 때마다 기술 합리화네 원가절감이네 하면서 중요한 나사나 필수 부품까지 위험을 감수하며 줄입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
“…….”
‘뭘 알고 지껄이는 거야?’
필립 앨런은 내심 깜짝 놀랐다.
설계자들과 시험 비행 테스트 안전 요원들로부터 수십 차례 안전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안전장치들을 대거 줄였다.
전통 항공기 제작자가 아닌 사업가 출신인 필립 앨런이 보기에는 다 쓸데없는 부분들에 대한 지적이었다.
보고 내용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무게를 줄이라고 통보했다.
새로 개발된 합금은 무거운 쇳덩어리를 가볍게 대체할 수 있다.
그것을 배제하고도 이것저것 항공인증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다.
결단한 만큼 신속하게 진행했다.
인증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구를 상대로 로비도 펼쳤다.
모두 다 OK!
지금껏 생산된 바잉사의 상업용 비행기들은 큰 문제가 없었기에 형식적인 테스트만 진행 됐다.
자체적으로 인증하고 통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과정 중에 안전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던 사안이다.
하지만 극비로 처리했다.
괜히 밖으로 알려져 봤자 이로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극비사항을 아는 것처럼 다니엘이 콕 짚어 확인했다.
“그렇게 놀랄 필요 없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내수용과 수출용에 차별을 둬서 믿는 데 인색할 뿐입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나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미친!’
한국에서 만든 싸구려 자동차와 감히 바잉사의 비행기를 비교하는 다니엘 장.
필립 앨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애써 분노를 누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니엘 장 옆에서 재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로버트 라이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바잉사의 주인도 당장 바뀔 수 있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품들 모두 가장 까다로운 미국 정부의 항공인증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투자를 원하신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필립 앨런은 찾아온 목적을 드러냈다.
트럼프와의 연줄 만들기도 중요했지만 투자금 유치를 더 노렸다.
로버트 라이언에게 중요한 조언자로 알려져 있는 다니엘 장.
덩치가 큰 투자자인 만큼 탐나는 먹잇감이다.
“요즘은 유럽이나 미국 제조업체들에는 썩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부품들을 자체 생산하지 않고 중국 같은 저기술 저임금 국가에 배분해 생산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큰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바잉사의 협력 업체에는 한국 기업도 들어와 있습니다.”
다니엘의 애국심을 살짝 자극해 보는 필립 앨런.
대부분 동양인들은 개인의 이익보다 이런 애국적 대화를 선호했다.
“그래서 별로입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다니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바잉사의 주가는 여러 신용평가사 기준으로…….”
“고평가 됐지요.”
필립 앨런이 다니엘의 투자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드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
‘이레네 휴슨!’
필립 앨런은 예기치 못한 강적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만큼이나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 그녀였다.
트럼프라면 고개부터 내젓는 이레네 휴슨이 트럼프의 별장 파티에 나타났다.
“휴, 휴슨. 말이 심한 거 아닙니까?”
“앨런. 냉정한 평가라 듣기 거북할 거예요. 하지만 바잉이 우리 락히트 마린사에 비해 수익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밑지는 장사는 안 하거든요.”
파바밧.
나타나자마자 불꽃을 튀기는 두 그룹의 대표.
피식.
그들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들을 진짜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는 다니엘이 있다는 것을.
***
– 저분들 뭡니까?
귀신이 궁금한 듯 물어왔다.
비팔이들.
– 네?
영업사원들이 뒤에서나 쓸 법한 비속어로 두 사람을 언급하자 귀신이 이해를 못했다.
회장이라는 고위 임원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솔직히 합법적 무기 로비스트들에 불과했다.
– 로비스트요? 비팔이와 무슨 연관이…….
비행기 파는 사람들이라고!
– 아! 그 비팔이들요! 그런데 명함에 보니까 회장이라고 박혀 있던데. 진짜 바잉사 회장님이 직접 비행기를 파세요? 한 대 사시게요?
이해하는 수준이 아주 끝내준다.
이래서 잡귀와 말을 오래 섞으면 안 된다.
그사이에 홀연히 나타난 중년 여성.
바잉사 회장과 맞짱을 뜰 정도라면 락히트 마린사의 중요 임원이 확실하다.
최소 회장.
그렇다면 왜 이 두 사람이 나에게 접근하는 거지?
트럼프가 연 파티니까 트럼프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내년 선거자금 얘기나 주고받는 게 더 어울렸다.
개인적으로 바잉사와 락히트 마린과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다.
언젠가 로버트 라이언이 시선 분산용으로 투자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허락한 게 다다.
사람 죽이는 무기업자는 악업 생성기나 진배없다.
특히 미국의 군사복합 기업들은 그동안 지은 죄가 많다.
재고 처리를 위해 없던 죄목까지 만들어 타 국가를 침공하는 일도 많았다.
후에 침공의 빌미가 됐던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밝혀져도 누구 하나 솔직하게 인정하지도 않았다.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할 수도 있는 두 집단.
그들 집단의 리더가 동시에 등장한 것이 흥미로웠다.
“락히트 마린의 수단은 존경스러울 정도죠. 다 된 요리를 빼돌리는 데 선수들이니까요.”
“그게 능력 아닐까요? 빼앗긴 요리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아요.”
“양심은 기억할 겁니다.”
“호호호. 앨런. 그런 말을 어떻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할 수 있죠?”
별거 없는 대화임에도 불꽃이 튀었다.
한국 3차 FX 수주전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세계적 항공 기업들도 먹고 살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었다.
“실례지만…… 두 분 대화를 제가 계속 듣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맞아요! 영양가 없는 자리에 있지 말고, 저쪽 봐요. 미모의 모델들이 형님에게 시선을 날리고 있어요. 어서! 어서 움직여요!
잡귀가 흥분했다.
인간 세상 사는 맛을 이제야 알아버린 총각 귀신.
“소문처럼 대단하시군요. 락히트 마린 회장 이레네 휴슨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다니엘 장 대표님.”
예상대로 락히트 마린사의 회장이었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상대 바가지 씌우기 전문 기업체 회장님이시군요.”
“먹고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다른 국가보다는 저렴하게 모시고 있어요.”
어디서 헛소리야!
락히트 마린과 맺은 계약서는 온갖 불공정이 넘쳤다.
모든 게 돈에 눈먼 위정자들과 정치하는 군인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주순자 씨가 통이 작지요.”
“!!!”
주순자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레네 휴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설마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한 눈치다.
“제가 애국하는 사람은 아닌데 한 가지 경고는 하고 싶군요.”
“경청할게요.”
이레네 휴슨의 표정이 변했다.
봄꽃처럼 내 입가에 활짝 피어나는 차디찬 미소.
두 사람의 눈을 한 명씩 똑바로 마주쳤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 가지고 장난치면……. 당신들 다쳐.”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