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32
939장. 오랜만이다.
“왜 이렇게 바빠? 이러다 장 회장 얼굴 잊어먹겠어.”
“제가 없으면 편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 장 회장 없으면 대한민국이 조용하지.”
– 뭐죠? 이분. 입으로는 회장이라고 하면서 왜 형님한테 이렇게 말을 막합니까?
귀신 목소리가 유난히 까칠하다.
인간관계의 진정한 묘미를 겪어보지 않고 죽은 티가 났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가르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장립!
귀신을 불렀다.
– 넵! 형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지금 잘나간다고 고개 뻣뻣이 쳐들고 다녔다가는 언제 단칼에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법이다.
너도 나중에 신 됐다고 잘난 척할 생각 마라.
신들 위에 또 신 있더라.
– ……형님의 조언 금과옥조로 삼겠습니다.
금과옥조는 됐고.
조용히 좀 있어! 아니면 다른 룸 구경이나 하든가.
– 흐흐. 사실 그 말씀을 진작부터 기다렸습니다.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아들을 만나러 간 임성철 회장을 기다리며 조윤태 이사를 소환했다.
매 순간을 초 단위로 쪼개서 사는 것 같다.
장한수 실장에게 모종의 지시도 내렸다.
장막 뒤로 숨었지만 그는 대한민국 경제의 산증인이자 음모꾼이다.
정치인, 법조계, 언론인들 및 재계 인물들 상당수가 그의 인맥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검.
나에게 장한수 실장은 그런 살수와 같다.
그에 반해 눈앞의 조윤태 이사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심 좋은 형 같다.
고등학교 때 이미 인연이 된 전직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
만나자고 하니 그가 곧바로 룸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룸입니까?”
평소 보이지 않던 행동이다.
“왜 싫어?”
“여기 애인 있습니까?”
잘나가는 대형 로펌 이사 신분이니 그럴 수도 있다.
나로 인해 대표 권한을 행사 중이다.
실력 있는 변호사나 기타 법조계 인사들을 이런 곳에서 접대할 게 뻔했다.
아직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활동하는 영업 세계는 어둠의 세계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장 회장 접대하려고 불렀잖아.”
말이 접대지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솔직히 말하십시오. 남자로서 이해해 드리겠습니다.”
“됐어. 이해는 무슨. 흐흐흐.”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는 조윤태 이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신태주는 어떤 자입니까?”
“신태주……. 말했듯이 좋은 말로 하면 기업인수합병 전문가고 나쁜 말로 하면 사기꾼이지. 그것도 학벌 좋은 MBA 출신.”
예상대로다.
불법이 합법이 될 수 있는 세상이 현재 대한민국이다.
“구체적으로 요즘 뭘 작업하고 있습니까?”
“장 회장은 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피라미들은 관심이 없어서요.”
“피라미? 푸하하하하. 그래 장 회장 스케일에 비하면 다 피라미지.”
조윤태 이사가 호탕하게 폭소를 터트렸다.
틀린 말이 아니다.
크게 터트려봐야 몇천 억 단위 수준이다.
그것도 권력자들에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1000억 건지기도 힘들다.
판은 작고 욕심 많은 놈들은 수두룩했다.
“바이오.”
이것도 예상했다.
“의약품 쪽이겠죠.”
“알고 있었어?”
“미래 사회에 의약 바이오만한 사업이 어디 있습니까. 돈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생명 연장밖에 없습니다.”
“선견지명이 뛰어나다니까. 그래서 장 회장도 한 발 걸치고 있잖아.”
시은 선배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이오 업체가 무럭무럭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가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대박을 쳤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나에게는 그런 겸손한 말 안 던져도 좋아. 내가 장 회장 능력 다 알잖아.”
길게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공격하면 넘어트릴 수 있습니까?”
“정리하려고?”
“사기꾼이 넘치면 개미들만 고생합니다.”
“뒷배가 만만치 않아.”
“가장 강한 뒷배가 어딥니까?”
주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위해서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M&A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사기를 치는 놈들이 천지다.
자기 자본 없이도 멀쩡한 상장 업체 하나 후려치며 본격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작업이 시작된다.
정치인과 금융권 고위 공무원, 상류층들이 발을 걸쳐 개미들의 눈먼 돈을 쓸어 먹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작전대상이 바뀔 뿐이다.
요즘은 바이오가 대세.
작업 선수들을 모아 호재로 주가를 뻥튀기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미들은 장밋빛 환상에 젖어 우르르 달려든다.
언론사들은 뻥카를 더하고 돈을 투자한 작전주 주포들이 증권 전문가들에게 화력 지원을 맡긴다.
각자 한 발씩 걸친 그들은 개미들을 홀려 사기판에 끌어들인다.
그 와중에 눈치 빠른 프로들은 다리에서 구입해 가슴 쪽에서 팔고 나간다.
그쯤 운 좋은 개미들도 어느 정도 건더기를 건져 먹는다.
뒤늦게 뛰어든 일반 개미들은 당연히 살아남지 못한다.
진짜 실력이 아닌 조작된 가짜는 곧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나며 진실이 밝혀진다.
언제까지 주식이 오를 줄 알고 멍하니 쳐다보다 ‘어어’ 하는 순간 하한가를 맞는다.
그러다 고소가 들어가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결국 바지사장들만 잡혀 들어간다.
이것도 다 한통속이다.
검찰 고위층도 관련되어 있는 건 당연한 일.
여론이 나빠지면 그때 서야 정의의 사도처럼 그들이 등장한다.
주식 매매는 거래정지가 되고 마지막에는 상폐 수순을 밟는 게 일반적이다.
그 사이사이에 공무원들은 차명 계좌를 통해 수익의 일부에서 한 토막을 받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강남 상류층에 합류하며 살게 된다.
너무나 뻔한 스토리 전개지만 거짓말처럼 개미들은 빠져든다.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현대판 한양 절도 사건인 셈이다.
“푸른 기와집.”
“VIP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주순자?”
“순자는 멍청해서 이런 거 싫어해. 기업에서 알아서 바치는데 뭐 하러 이런 짓 해. 동계 올림픽 쪽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럼…….”
“청와대 비서실장 이하 금융감독원장. 그리고 경제 부총리.”
“큰 대가리들은 다 붙었군요.”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알만 한 놈들은 다 아는데 나서는 자들이 없어. 쯧쯧.”
조윤태 이사가 혀를 찼다.
더구나 상류층에는 소문이 더 빠르게 퍼진다.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도 연관되어 있다.
언론에서는 서로 잡아먹을 듯 패악을 부리지만 국회 사우나에서는 은밀히 뒷거래가 진행된다.
갈아엎어야 할 대한민국의 오래 묵은 정치판.
그럼에도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기다린다.
“이사님이 나서시죠.”
“나? 장 회장 왜 이래. 나 길고 오래 살고 싶어. 장 회장이면 모를까 나 같은 피라미가 어딜 판에 끼겠어.”
“전직 차장검사께서 불의를 보고 참으시면 안 되시죠.”
“이 나이 먹어 봐. 불이익은 못 참아도 불의는 충분히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어. 손주들 용돈이라도 주려면 눈 감고 살아야 순간이 많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장 회장 같은 젊은 사람들이 나서. 내가 뒤에서 팍팍 밀어줄게.”
“그럼 이번에도 잘 도와주십시오.”
“자료는 계속 수집 중이야. 제법 깔끔하지만 구린 냄새가 사방에서 나.”
의심하던 바가 확실하다는 의미다.
차장검사 명함은 그냥 장식으로 딴 게 아니다.
조윤태 이사가 조용히 움직였다.
로펌의 힘이 강해진 만큼 정보력도 달라졌다.
손대균 선배가 사라진 만큼 조윤태 이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얼마 정도면 됩니까.”
“넉넉잡고 한 달?”
“기다리겠습니다.”
“나만 믿어. 흐흐흐.”
“동생 신상주 교수도 털어 주십시오. 병원 자료를 알아보니 리베이트 건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한 달이면 돼.”
“믿겠습니다.”
“그럼 겨울 휴가 길게 줄 거야?”
“물론입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은 언제나 확실합니다.”
아는 사람이 나서주면 이런 일이 편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대화가 부드럽게 넘어갔다.
– 혀, 형님! 이곳이 도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그때 구경 나갔던 잡귀가 다시 나타나 말을 더듬었다.
대충 짐작이 갔다.
촌놈이 처음으로 한국식 룸 문화를 구경했다.
그것도 나도 처음 출입한 텐프로를.
왜?
알면서 모른 척 물었다.
– 파라다이스! 세상에 룸 이름처럼 진정한 파라다이스입니다! 어떻게 TV에서 보던 미녀들이 다 이곳에 있는 겁니까!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귀신도 놀랄 만한 이곳 종업원들의 미모.
연예인급이라는 소문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만나본 적은 없다.
조윤태 이사와 들어온 VIP룸에는 양주와 맥주를 비롯해 안주가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이 자리 역시 여성들만 함께한다면 바로 파라다이스가 열릴 것이다.
좋아?
– 형님! 돈도 많으신데 하나 구입하시죠. 제가 확실하게 물 관리하겠습니다!
귀신이 몸뚱이도 없이 뭘 관리해?
어이가 없다.
그리고 이런 곳에 투자하면 돈이 욕한다.
나를 밀어주고 있는 조상님들도 가만있지 않을 터.
게다가 내 자존심도 허락지 않는다.
조윤태 이사가 아니라면 오늘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런데 형님. 의문이 있습니다.
뭐?
장립 귀신은 매번 궁금한 것도 많다.
– 정말 엄청난 미녀들인데 말입니다. 다들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뭡니까? 미인들이 평준화된 느낌이랄까?
후훗.
귀신도 혼란을 느낄 만한 한국의 의료 기술.
같은 병원 출신이라 그런다.
– 네? 같은 병원요? 엄마들이 산부인과 동기라도 된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성형외과 동기!
–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럼 저분들 모두 말로만 듣던 성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미인들이시다.
굳이 비하하고 싶지 않다.
여성들에게 미모는 생존 무기나 다름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갈수록 남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성형 미인은 인류 진화의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모습일 뿐이다.
– 그래도 좋습니다! 저 여기서 뼈 묻을랍니다!
꿈도 야무지다.
네 뼈는 고속도로 옆길에 묻히지 않았나?
없는 뼈를 어떻게 또 묻어?
– 그래서 억울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억울해요! 억울해!
장립 잡귀의 가벼운 한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인생 종을 친 일개 귀신일 뿐이지 않는가.
“장 회장, 왜 이렇게 피식거려?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요. 저도 이곳이 처음이라 기대가 됩니다.”
“조금만 참아. 아직 손님 안 왔어.”
“손님요?”
조윤태 이사가 시계를 확인했다.
똑똑.
그때 문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
“오! 왔다!”
조윤태 이사가 최근 본 적 없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스르륵.
두툼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한 남자.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장태산. 오랜만이다.”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