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58
966장. 인연의 그물.
“또 다른 나 같은 놈이야. 수법에 빈틈이 없어. 그리고 잔혹해. 절대 평범하게 살아온 놈이 아니야.”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TV를 지켜봤다.
– 검찰은 기업 인수합병 전문 기업 B&S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물들을 확보했습니다. 동시에 정관계 로비에 사용된 비밀 장부를 찾고 있으며, 신태주 대표의 스마트폰을 포렌식으로 검사해 증거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TV에서 강남 B&S 사무실 압수수색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푸른색 박스를 들고 나오는 10여 명의 검찰 직원들.
“후훗.”
남자는 TV 화면을 지켜보며 비웃음을 내비쳤다.
증거는 이미 모두 폐기 처분 됐다.
저들이 압수해 가는 모든 자료들은 다 눈속임용에 불과했다.
우매한 국민들은 저런 액션들을 지켜보며 철석같이 진짜로 믿었다.
이번 일에 연루된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입막음.
구형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틱 티딕.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토사구팽]돌아온 답변은 없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은 본래 비밀스럽게 진행이 됐다.
결정과 지시만 내리면 그만.
나머지는 아랫것들의 몫이었다.
회주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꾸려져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점조직.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었지만 그 존재에 대해 대부분 알지 못했다.
뿌리가 깊은 만큼 절대 밖으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일송회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고 앞으로도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장태산……. 알면 알수록 넌 참 재밌는 놈이야. 크크크.”
***
“구형은 5년입니다.”
“동생! 그건 너무 길지 않나? 3년 정도로 낮춰주면 내가 법원에 수를 써서 집행유예로 나올게. 이러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투자 사업 하겠어?”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지검장! 내가 윗분들에게 얼마나 충성과 정성을 바쳤는지는 지검장이 더 잘 알잖아!”
서울 중앙지검 검사장실.
음색이 굵직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래서 이 정도입니다. 재산 정리할 시간도 벌어주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협조한 것 같은데 아닙니까?”
몇 달 전 새로 부임한 중앙지검장이 안경을 매만지며 무감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신태주가 앉아 있었다.
초췌한 얼굴로 피로가 많이 쌓인 모습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대로라면 오늘 저녁 구치소에 수감될 게 뻔했다.
삽시간에 번진 여론이 불길처럼 들끓었다.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그간 행해온 수법이 무척 자세하게 낱낱이 까발려졌다.
증거 자료도 명백했다.
신태주에게 당했던 기업체 사장들과 그의 가족이 곳곳에서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치권을 비롯해 법조계와 언론, 금융권까지 모두 다 연루됐다.
서둘러 검찰이 신태주 신병을 확보했다.
코너에 몰려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기 전에 입단속이 필요했다.
띠리링.
그때 지검장의 스마트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토사구팽]티릭.
지검장은 문자를 확인하고 바로 삭제버튼을 눌러 내용을 지웠다.
“이런 식이면 나 그냥 못 죽어. 토사구팽도 아니고 내가 복날 개야?”
신태주가 이를 악물고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거친 감정을 드러냈다.
“개 맞잖아.”
피식 웃으며 지검장이 대꾸했다.
“뭐, 뭐라고?”
신태주는 적잖이 당황하며 깜짝 놀랐다.
지검장이 되기 전에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신태주가 바로 중요 스폰서 중 한 명이었다.
사석에서는 형 동생으로 호칭을 트고 지낼 정도였는데 갑자기 안면을 바꾸는 지검장.
“신태주 씨,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나?”
느긋하게 소파에 허리를 기대며 지검장이 비열한 눈빛을 보냈다.
“야! 공창석!”
“야? 신태주 너 돌았어? 내가 누군 줄 알고 반말이야!”
쾅!
책상을 사건 서류철로 내리치는 공창석 지검장.
“!!!”
지검장의 기세에 신태주가 순간 움찔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검장 모습이 아니었다.
같이 여자들을 옆에 끼고 술 마시며 노래를 불렀던 공창석의 모습은 없었다.
수십 년 조식 생활이 몸에 밴 날카로운 엘리트 검사의 모습을 드러냈다.
“10년.”
흥정하듯 구형량을 늘리는 지검장.
‘개새끼들!’
신태주는 피눈물을 삼켰다.
이런 날을 대비해 그렇게 많은 돈을 퍼부었는데 탈이 났다.
벼락이 떨어지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몸을 피했다.
“억울하나? 그러니까 누가 비밀 장부 같은 걸 작성하래. 관리라도 잘했으면 모를까 그걸 또 들켜? 선수가 쪽팔리게.”
지검장이 곤죽을 올렸다.
그 부분에 있어서 신태주는 할 말이 없었다.
비밀 보안 사이트는 이쪽 바닥에서 유명했다.
세계적 해커들도 뚫기를 포기한 사이트인데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털렸다.
가장 의심 가는 존재는 물론 장태산이지만 확증이 없었다.
답답해 미칠 지경의 심정이 된 신태주.
얼굴이 어둡게 굳어갔다.
“구형 10년이면 변호사 잘 쓰고 여론만 잠잠해지면 5년 정도 선고형 나올 테고……. 그때쯤이면 세상이 변했을 테니까 남은 돈 잘 챙겨 여생을 편안히 보내면 되겠네.”
지검장은 신태주의 앞으로 처신에 대해 계획을 읊었다.
“거절한다면?”
신태주는 벼랑 끝에 몰린 것을 알고 마지막 딜을 던졌다.
“거절이라……. 장부를 믿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는 안 통해. 적당히 사건 뭉개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증거 제출. 판사도 알아서 맞춤 세팅할 거니까 전혀 상관없고. 언론사는 두 말 하면 입만 아프고……. 문제는 당신인데…….”
검사장이 신태주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조용히 닥치고 재판에 임하면 와이프하고 자식은 봐줄게. 처가댁으로 빼돌린 30억 정도는 퇴직금 정도로 처리해 주고.”
“…….”
신태주는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졌다.
검찰은 신태주의 모든 걸 꿰고 있었다.
“이것저것 빼돌린 거 전부 털리고 싶지 않겠지? 나이 먹고 시립 요양병원에 갈 수는 없잖아. 골프라도 치면서 틀니 끼고 고기라도 씹으려면 말 잘 들어야지. 후후훗.”
지검장의 협박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공소권을 쥐고 있는 검찰은 형사 재판의 무소불위 권력자였다.
“그런데 거부하면? 없는 죄도 만들면 되는 거야. 캐비닛에 보험용으로 들어 있는 공소시효 10년짜리들도 하나둘씩 푸는 거지. 형량은 점점 늘어나겠지. 어차피 꼬리 자를 정도 선수들은 준비되어 있어. 그럼 당신만 독박 쓰는 거야. 최소 15년은 뺑이 치다 나올 거야. 돈 귀신 마누라에게 이혼당하고 애들은 어디에서 몸이나 팔겠지. 의사 동생도 몇 년 썩다 나오면 시골에서 페이닥터로 일하며 늙은 노인들한테 파스나 처방하면서 인생 마무리 하게 될 처지 같은데…….”
신태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 권력 판.
지검장의 태도로 보아 최대한 봐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냥개인 검찰들만 물어뜯는 게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 국세청과 언론이 난도질할 게 뻔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건 자명한 일.
“……승낙하지.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
신태주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자기 하나 희생하면 그나마 남은 가족과 집안은 편안해질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내가 이래서 태주 형이 마음에 든다니까. 얼마나 깔끔하고 쿨해?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검찰 조서 잘 꾸미시고 재판에 성실히 임하세요. 갈비탕 먹고 싶으면 언제든 담당 검사한테 부탁해요.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얼굴을 바꿔 호탕하게 웃는 지검장이 다시 경어를 사용했다.
신태주는 두 눈을 감았다.
한때는 든든한 동지들이었던 저들이 이제는 모두 배신자가 됐다.
‘장태산……. 나 혼자 못 죽는다!’
신태주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뿌려 놓은 것들 중 마지막 덫.
이제 곧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
– 진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이번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귀신 장립이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다 툴툴거렸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 완전 특혜지 않습니까? 여동생에게 어떻게 그렇게 퍼줄 수 있죠? 세상에 그렇게 큰 포인트를 낭비하면서 지식 전이를 해주다니…….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다.
내가 병원에서 펼쳐놓은 능력은 엄청났다.
황승재 교수도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희가 병원에 돌아가면 사건이 터질 게 확실했다.
천재에서 바보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특혜를 베풀었다.
신 레벨에 오르자 가능해진 기억 전이.
대신 카르마 포인트를 상당히 지불했다.
과감하게 주희를 위해 사용했다.
어차피 사람 살리는 일에 투자하는 거였다.
쌓인 지식이 늘었다고 주희가 공부를 게을리할 인간형도 아니다.
투자비용이 상당했지만 아깝지 않았다.
주희는 내 피붙이다.
그리고 날 신처럼 여기는 동생이다.
은혜를 베푸는 건 당연한 일이다.
– 그런데…… 진짜 여기는 물이 좋습니다. 흐흐흐.
금세 장립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대한민국 관문인 영종도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주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학 동안 유럽 명화 투어를 마치고 오늘 들어오기로 되어 있는 여동생.
무탈한 건 확인했지만 친히 직접 마중을 나왔다.
주희처럼 주아에게도 감춰진 비밀이 있을 수 있었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가족은 챙기고 싶었다.
부모님을 대신해 서울에서는 내가 동생들의 보호자였다.
주아를 기다리는 중에 장립은 호시탐탐 눈요기하기에 바빴다.
몸매가 확 드러나는 승무원복을 착용한 각국 미녀들이 수시로 로비를 지나갔다.
단정한 외모와 화사한 화장은 장립의 영혼을 뜨겁게 만들었다.
– 제가 많은 곳을 다녀본 건 아니지만 외모는 단연코 한국 승무원들이 탑입니다! 저기 보세요? 확 비교되지 않습니까.
장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여러 국가의 승무원들 사이로 유난히 빛나는 대한민국 미녀들.
후광이 달랐다.
– 물론 형님 주변의 미녀 분들에게는 다들 한참 못 미치지만…….
장립이 부러운 듯 말을 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미녀들이 무시로 오갔지만 눈에 딱 들어오지는 않았다.
– 다들 형님을 곁눈질로 훑고 가는데요? 역시 남자는…… 잘생기고 봐야 합니다.
청바지에 가벼운 셔츠와 카디건 한 장 걸쳤을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었다.
오고 가는 여인들이 날 한 번씩 눈에 담고 지나쳤다.
남자나 여자나 마음은 다 똑같은 법이다.
– 저기 쌍둥이 언니 주아가 옵니다!
장립이 활짝 열린 입국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주아를 보고 소리쳤다.
쌍둥이다 보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은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 헐……. 저 분위기 쩌는 엄청난 미녀 분은 누구죠?
주아와 대화를 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나란히 나오는 한 여인.
“!!!”
보는 순간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때.
“유리 씨!!!”
가까운 곳에 있던 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힘차게 불렀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