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98
1007장. 납치(4).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됐다. 나는 니 믿는데이.”
“감사합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강지철은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번 실수했다고 그간 충성을 다 바쳐온 자신을 내쳐낸 최철혁.
진짜 배에 타게 됐다.
조직에서 전무 자리까지 오른 자신을 배에 진짜 태울 줄은 몰랐다.
배에 타는 순간 죽는 줄 알았다.
부산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고기잡이 배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과거 악명 높은 멍텅구리 배까지는 아니었지만 새우잡이 배를 탔을 때 경험했던 지옥 그 자체였다.
물때에 맞춰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물을 당겨야 했다.
그 무게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났다.
끼니도 잡은 물고기들 중에 폐기 처리할 수준의 것들로만 주어졌다.
생수도 고작 하루에 정해진 몇 병이 전부였다.
샤워는 빗물에 의존했고 거센 바람이 불어도 배에서 하선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감시가 심했다.
자신이 내로라하는 조직의 조직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선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구타했다.
첫날 개기다가 엄청 얻어 터졌다.
최철혁이 직접 관리하는 배이다 보니 배 타기 전의 지위 같은 건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무거운 그물을 끌다 줄에 걸려 왼쪽 손가락 마디가 끊어져 나갔다.
병원 치료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듯 놈들은 생살을 바늘로 꿰매고 빨간약을 발라주는 걸로 처치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켰다.
맞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육지에 내려서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발이 육지에 닿는 순간 사시미로 최철혁의 배를 뚫어 버리리라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잔혹하고 인정머리 없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헌신해 온 자신을 이렇게까지 패대기 칠 줄은 몰랐다.
배 위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보다 오기가 쌓였다.
하지만 배에서 하선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선원들 모두가 작심한 듯 자신을 감시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듯 눈에서 살기가 읽혔다.
자칫 잘못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 수장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참고 인내했다.
그렇게 영혼까지 빼놓고 버티던 중에 구원의 밧줄이 내려왔다.
갑자기 스피드 보트를 타고 구성파 조직원들이 배 근처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구성파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이번 기회에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
강지철은 구성파와 전쟁 당시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더 이상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손을 썼었다.
이제 하늘까지도 완전히 자신을 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성파 보스가 직접 자신의 손을 잡아줬다.
오히려 항구파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강지철이 필요했던 것이다.
원한이 쌓일 대로 쌓여 있던 강지철은 항구파를 박살내는 데 앞장섰다.
구성파는 그래도 의리라는 게 남아 있었지만 항구파는 그마저도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최철혁을 믿지도 않았다.
항구파가 구성파를 박살내는 걸 보고 중소조직에 몸담고 있다 스스로 투신한 자신이었다.
아쉬운 미련도 없었다.
“강 전무. 솜씨 한번 보여 주이소. 흐흐흐.”
“오늘 한번 보입시데이.”
구성파 조직원들이 이를 드러내며 걸걸하게 웃었다.
과거 잘나가던 행동대원들은 최철혁의 오른팔 최도철이 판 함정에 걸려들어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됐다.
그 이후 외곽으로 밀려난 구성파였지만 그간 이를 갈며 힘을 회복하고 기회를 노려왔다.
항구파와는 뭔가 달랐다.
이들에게서는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기다려 보십시오.”
강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입던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항구파 핵심 아지트로 사용 중인 냉동 창고 앞에 섰다.
안에서 문이 잠겼다.
비바람에 CCTV는 먹통이 됐다.
아주 튼튼했기에 밖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구조였다.
탕탕!
강지철이 주먹으로 문을 쳤다.
“누굽니꺼?”
안에서 들려오는 심드렁한 말투.
폭풍우가 불어 닥친 늦은 밤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찾아올 간 큰 인간은 많지 않았다.
“나 강지철 전무다.”
“네? 지철 전무님예?”
“문 열어.”
“아니 행님은 지금 배에…….”
“이 새끼가 너 나 무시해? 회장님 명령으로 지금 방금 복귀했어! 문 열라고!”
조직의 넘버3에 오른 강지철이 버럭 화를 냈다.
“알겠심더…….”
문지기 조직원이 안에서 쫄았다.
딸깍.
그르르르르르르.
내부에서 걸어놓은 걸쇠가 치워지고 육중한 문이 열렸다.
“전무님 어인 일입니꺼?”
문을 열며 조직원이 물었다.
강지철이 배를 탔다는 소문은 이미 몇 바퀴는 돈 상태였다.
그런 그가 야밤에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약간의 경계심을 품었다.
“다른 애들은?”
“회장님 부르셔서 별장에 갔음더.”
“안에 몇 명이나 있어?”
“20명 정도 쉬고 있습니더.”
“그래……. 잘됐네.”
“네?”
푸욱!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지철이 허리춤에서 날 선 짧은 사시미를 뽑아 조직원의 배를 빠르게 찔렀다.
“컥!”
단말마 비명을 토하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지철을 쳐다보는 조직원.
“너한테 원한은 없다. 다음 생에는 만나지 말자.”
“배, 배신…….”
칼 빵을 맞고 배를 붙들며 더듬더듬 무슨 말을 내뱉는 조직원.
처벅처벅.
강지철이 문을 완전히 열자 그의 뒤로 30여 명의 구성파 조직원들이 도열했다.
손에는 하나같이 사시미 한 대씩을 들었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놈들이 항구파의 핵심들이었다.
중간이 무너지면 올챙이들은 알아서 무릎을 꿇을 것.
“수고했다.”
“아닙니다. 형님.”
“됐다마.”
툭툭 강지철의 어깨를 몇 차례 두들기는 구성파 보스 방만식.
“가……. 담가라.”
“넵!”
타다다다다다닥.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성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10년 전 당했던 치욕을 갚을 기회.
“뭐야 씨발!”
“으아아아! 습격이다!”
우당탕탕.
“뒈져! 새끼들아!”
“사, 살려줘!!!”
“크아아아아아아아!”
욕설이 난무하고 기물이 파손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모든 소음은 돌풍을 동반한 비바람에 묻혔다.
“그런데 최철혁이는…….”
강지철이 구성파 방만식에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항구파 보스와 최측근인 행동대원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에 대한 공격 명령이 따로 없었다.
“기다린데이.”
“네?”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 차분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방만식.
그의 알 수 없는 행동에 강지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철혁과 똘마니들이 살아 있으면 오늘 습격은 말짱 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태평해 보이는 방만식.
‘최철혁이를 잡을 저승사자라고 했지.’
방만식은 그의 말대로 기다렸다.
최철혁을 처리할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접수하라는 전화.
누군가는 그 말을 미친 소리로 들었겠지만 방만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말을 믿었다.
방만식이 요즘 믿고 의지하고 있는 용한 무당이 어제 분명 그랬다.
‘내일 귀인이 전화를 할 텐데 그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
***
“그노마 참 씨그럽데이.”
최철혁은 빗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문짝 부서지는 소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정해진 승리였다.
어떤 놈들을 데리고 왔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키운 칼잡이들은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다.
과거 그 이름이 쟁쟁하던 부산의 구성파도 몰락시켰다.
그 이후로도 거침없이 사람들을 담가 왔다.
지금 밖에 있는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몇 명씩 사람을 담가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진짜 조폭이라 함은 목을 따 본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다.
아무리 덩치가 좋고 문신이 화려해도 사람을 죽여 본 자의 기세를 따라오지 못했다.
“우리 오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서련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덜덜 떨며 물었다.
자신을 구하겠다고 장태산이 현장에 온 게 분명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너무 두려웠다.
장태산의 실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진짜 깡패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서련의 마음은 불안했다.
“가시나. 참 궁금한 것도 많네.”
최철혁은 여전히 비릿한 시선으로 서련을 훑었다.
최철혁도 서련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
TV를 켤 때마다 여기저기 나오고 광고에서도 수시로 나왔다.
실물이 더 예쁘고 몸매도 실감나게 좋았다.
세컨드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었다.
“니는 조신하게 이 오빠 말만 듣거래이. 내 니를 부자로 만들어 줄기고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오빠’라 칭하는 최철혁.
서련은 자신의 몸을 훑는 징그러운 최철혁의 시선에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태산 오빠……. 무사하세요.’
공포에 떠는 중에도 장태산의 무탈함만을 바랐다.
탕! 타다다다당!
그때 느닷없이 총소리가 들렸다.
“머꼬?”
최철혁이 처음으로 당황해 인상을 썼다.
사시미로 제압이 안 될 때를 대비해 다음 파트로 나서는 놈들이 총잡이들이었다.
총을 지급하긴 했지만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뒤를 봐주는 경찰들도 총질에는 눈을 감아주지 못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의 총기 사건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행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라 총소리가 빠르게 묻혔다.
그 대신.
“크아아아아악!”
“컥!”
별장 안까지 들려오는 격한 비명.
소리는 별장 내실과 점점 가까워졌다.
“문딩이들……. 단디하랬더만 얼라 하나를 못 잡아서…….”
최철혁은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조직원들의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놈을 본보기로 삼아 손가락을 자르고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듯했다.
“…….”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비명이 끊겼다.
콰아아아앙! 콰르르르릉!
거친 천둥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앗.
연신 별장의 대형 창문을 때리는 거센 빗줄기.
“덕복아! 다 끝났노?”
밖에서 대기 중인 최측근 행동대원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
하지만 아무 대꾸가 없다.
“망태야! 득만아!”
최철혁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러나 평소라면 부리나케 대답했을 그들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무신…….”
심기가 불편해진 최철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능이 말해주는 경계심이 위험 상황임을 알려왔다.
그리고.
타다닷.
번개같이 몸을 움직여 서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아악!”
서련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끼이이이익.
그때 별장 내실 현관문이 조용히 열렸다.
“누꼬!!!”
예민해진 최철혁이 소리를 질렀다.
저벅.
안으로 들어서는 발 하나.
젖은 검은 운동화에 흙이 잔뜩 묻었다.
그리고 쓱 안으로 들어서는 키 큰 한 남자.
최철혁과 서련이 동시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니 뭐꼬!”
“오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