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115)
115.
레오는 에헴! 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엘시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령이 자신과 계약을 맺었던 그림자 정령 엘시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너무 다르잖아?’
“그래서, 리시나스는 어디 있나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엘시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지금 레이사르로 오고 있어.”
“아! 그럼 제가 찾아갈 필요 없겠네요?”
“그렇지.”
“다행이네요! 오늘이나 내일 리시나스를 찾아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길이 엇갈리지 않아서요!”
그 말을 듣고 엘시는 마치 면접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처럼 옷을 고쳐 입고 머리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런 엘시에게 레오가 물었다.
“왜 리시나스와 계약하고 싶은 거지? 이름 날리는 녀석들은 얼마든지 있잖아?”
“그녀가 광휘의 정령의 선택을 받았다고 들었으니까요.”
“겨우 그거 때문에?”
“그뿐만이 아니죠. 바람의 정령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신들이 군단장 요문가르드를 쓰러트렸다고! 맞죠?”
“그래.”
“그것 보세요!!”
엘시가 자리에서 핑그르르- 턴을 하며 허리에 척!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군단장을 쓰러트리고 에레보스를 토벌하겠다고 선언하는 자! 내 계약자로 딱 어울리는 사람 아닌가요!”
‘너무 달라서 적응이 안 되네.’
“왜 세계를 구하고 싶은데?”
“나는 재앙의 시대에 태어난 정령이에요. 그래서 꼭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어요!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고 들었거든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엘시가 상상에 빠져들었다.
소름 끼치는 붉은 달이 떠오르는 재앙의 시대의 밤에는 별빛마저 모습을 감추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계약을 나눈 사이지만 레오는 엘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엘시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밤하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조금 관심을 보였었어.’
언제나 침묵하던 엘시가 재앙의 시대 이전, 별빛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만큼은 관심을 보였었다.
“그래서! 리시나스는 언제 오나요?”
“아직 오려면 한참 멀었어.”
“그런!”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짓는 엘시에게 레오가 진지하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넌 대체 언제부터 이 지역에 있었던 거야?”
“10년 전부터 이곳에 있었어요. 이건 아곤에게는 비밀인데요.”
어둠을 먹는 검, 샤텐이 바로 저에요.”
웃으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 엘시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
“아곤이 내 말을 거부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레바이튼을 보며 레이사르의 영주 로데안의 손이 떨렸다.
“아곤! 어찌하여 전우인 나의 부탁을 거부하는 것인가!”
드워프인 로데안이 분노를 드러냈지만 그 분노는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키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가진 드워프는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전사였다.
수인이 야성의 힘을 이용한 용맹한 전사라면, 드워프는 뛰어난 기술과 무기를 이용하는 노련한 전사였다.
하지만 로데안의 초췌하고 깡마른 모습에서 전사의 풍모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역시 한때는 전상에서 활약했던 전사이며 칭송받는 영웅이었다.
그러한 위업이 있었기에 레이사르의 사람들은 그를 영주로 추대했던 것이다.
혼란의 시대인 만큼 영웅이 권좌에 오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로데안은 권력을 잡고 변했다.
정확하게는 영주로서 최초의 원정 토벌을 나간 이후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가 영주의 자리에 오른 건 10년 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영웅 연합이 결성되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영웅 연합이 에레보스를 토벌하고 세상에 평화를 찾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대패였지.’
에레보스의 힘은 전율스러웠고 수많은 영웅이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은 자들조차 의지가 꺾였다.
로데안 역시 그런 영웅 중 한 사람이었다.
공포에 질린 로데안은 이후 내성 깊은 곳에 숨어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주받은 땅의 고아들을 여전히 신경 쓰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리석은! 그 시답지 않은 것들을 지키겠다고 대의를 따르지 않겠다니!”
“이상에 사로잡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이지 않습니까.”
레바이튼이 고개를 조아렸다.
“특히 지금 그 저주받은 땅에는 역병이 창궐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역병?”
로데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많은 난민이 모여든 레이사르에서 역병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도시 전체가 휘청거릴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도시의 방어선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어, 어찌하면 좋은가! 레바이튼이여!”
“역병이 퍼지기 전 싹을 자르는 것입니다.”
결연한 표정을 짓는 레바이튼을 보며 로데안이 숨을 들이켰다.
“역병이 퍼지면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집니다. 그걸 사전에 막는다면 시민들 역시 기뻐할 것입니다. 물론 갈 곳 없는 고아들을 베어내는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레바이튼이 입을 꽉 깨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대의를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 역시 우리의 뜻에 따를 겁니다.”
“하, 하지만 아곤이 가만 있지 않을 텐데?”
“아곤님은 로데안님의 오랜 지기. 레이사르의 미래를 위해 잠시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한다면 내성에 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곤을 그곳에서 떼어내는 게 문제가 아닐세! 그 고아들을 모두 처리하면 아곤이 날뛸 것이 분명하네!”
이미 나이를 먹고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당대 최강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아곤이다.
그가 분노하여 창끝을 레이사르에 들이대기라도 한다면…….
도시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대의는 영주님께 있습니다.”
레바이튼이 거침없이 말했다.
“역병에 대한 소문은 이미 도시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역병을 막는 건 대중이 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아곤이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를 위기에 빠트리게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레바이튼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찌 되었든 그 역시 일단은 ‘영웅’ 이니까요.”
“화, 확실히…….”
“게다가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레바이튼을 보며 로데안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늘 했던 대로 자네의 뜻에 맡기겠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그리고 영주님. 일이 잘 풀린다면 샤텐은…….”
“자네가 가지게. 나를 이토록 생각해주는 자네가 아니면 그 강대한 검을 누가 가지겠는가?”
“영주님의 성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린 레바이튼이 영주방을 나섰다.
‘한때 영웅이라 불렸던 강대한 전사도 지금은 늙고 타락한 패배자에 불과하군.’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레바이튼.
그는 이 도시의 영주인 로데안을 뒤에서 조정하는 이 도시의 실권자였다.
레이사르 도시의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했다.
단 한 번도 전장에 나선 적 없는 그였지만 사람들은 그가 도시를 여러 번 구해낸 젊은 영웅이라 생각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레바이튼이 게걸스럽게 공적을 탐하는, 영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올렸다고 알려진 공적은 혼란의 시기를 틈타 부풀려지거나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멍청한 놈들. 그저 눈앞에 희망을 흔들어 주면 찬양하기 바쁘지.’
이번 역병의 소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저주받은 땅이라고 소문을 내 왔지.’
레이사르의 남부 끝자락은 저주받은 땅이 아니다.
왜 그렇게 변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 사는 아곤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기 위한 술책이었다.
대중은 쉽게 잊는다. 설령 그것이 목숨 걸고 한때 자신을 지켜줬던 영웅이라 할지라도.
‘역병에 대한 소문은 이미 흉흉해졌어. 이걸로 그 너저분한 곳을 쓸어 버릴 대의와 명분이 생겼어. 흐흐흐.’
역병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상관없었다.
‘불안감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겠지. 그리고 나를 찬양할 거야. 역시 레바이튼이라고!’
그의 눈에 야망이 번뜩였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
‘어차피 불가능한 일에는 관심 없어. 그저 레이사르를 지키며 편한 여생을 보내면 되는 거야. 재앙의 시대도 권력만 있다면 모든 걸 누릴 수 있으니 말이야!’
웃음을 터트린 레바이튼이 생각했다.
‘이 땅을 손에 넣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엘시와 이야기를 나눈 레오는 곧바로 레이사르의 남부 지역을 벗어나 정보를 모았다.
거리, 술집 등을 오며 고아원이 있는 구역에 대한 소문을 확인했다.
“저주받은 곳? 미치겠어! 역병이라니!”
“영주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역병이 이곳까지 퍼지면 어쩌려고! 조치를 취해야 할 거 아니야!”
‘이미 도시에는 역병이 터졌다는 소문으로 가득해.’
고아원으로 돌아온 레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생각에 잠겼다.
‘엘시는 샤텐에 깃든 정령으로 십 년 전 검이 부러진 후 이곳에 정착했어.’
이곳에서 세계를 구할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늘. 리시나스를 만나러 가드스론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레오의 눈에 공터에서 다른 고아들을 챙겨주고 있는 엘시의 모습이 눈에 비쳤다.
겉모습은 엘프 소녀 리아와 비슷했기에 고아들 사이에서 그녀의 위치는 리아와 같은 큰언니, 큰누나였다.
엘시는 아이들을 돌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는 1년 후에 만나 게 될 엘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상에 환멸감을 느끼고 있었어, 그리고 아곤.’
처음 만났을 때 의지가 꺾였던 아곤.
리시나스는 그가 증오를 품고 있다고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오의 얼굴이 굳었다.
‘이 애들은 역병으로 죽은 게 아니야.’
주먹이 꾹 쥐어졌다.
‘레바이튼, 그 개자식이 죽인 거야!’
레바이튼이라는 인간에 대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레오는 이런 일을 꾸민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이 갔다.
샤텐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무구로 무장했었다.
물론 가지고 있는 무기에 비해 실력은 형편없는 쓰레기였다.
오직 대중의 머리 위에 서기 위해 공적을 탐했다.
그러면서 목숨이 위험해지면 망설임 없이 동료를 버렸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자들을 비웃으며 모독했다.
‘결국 타르타로스와 내통했다는 게 들켜 대중들에 의해 처형당했지.’
가짜 영웅.
변절자.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억울하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치던 레비아튼의 얼굴을 떠올리며 레오의 얼굴에 혐오감이 떠올랐다.
‘전생에는 그 자식이 어떻게 영주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레오가 고아들을 보았다.
아르온에게 있어 이 아이들은 동생과도 같았다.
자신이 겁쟁이였기에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혐오하던 아르온을 떠올랐다.
레오의 눈에 살기가 어릴 때였다.
“검은 토끼, 여기 있었구나? 저녁 준비 좀 도와.”
“그 전에. 아곤 씨는?”
“아곤 씨? 아까 영주라는 사람이 불러서 영주성에 갔는데?”
“뭐?”
어느새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철컥- 철컥- 철컥-
그때 쇠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예민한 아르는 귀를 쫑긋하고는 눈이 사나워졌다.
잠시 후 공터에 아까 전 보았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기사단의 서슬 퍼런 기세에 떨기 시작했다.
엘프 소녀 리아가 허둥지둥 앞으로 나섰다.
“나으리들, 아곤 아저씨는 조금 전에 영주성으로.”
“역병 걸린 더러운 계집이 어딜 다가와!”
기사단 한 명이 윽박지르며 리아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걸 보며 리아가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너 미쳤냐?”
아르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기세에 검을 휘둘렀던 기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레오가 물러서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리아를 뒤에서 잡아주었다.
덜덜 떠는 리아를 똑바로 일으켜 세워준 레오가 말했다.
“걱정 마.”
“네?”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