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141)
141.
“세르지아님. 허리를 곱게 펴시지요.”
“네.”
“미소를 조금 더 자애롭게 지으십시오.”
“……네.”
“목소리가 떨리십니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안 좋은 일? 안 좋은 일이라면 많지.’
세르지아는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진정시켰다.
‘이 개 같은 예법을 주입하는 댁이 있으니까!’
탈의실로 들어가며 세르지아는 속으로 소리쳤다.
세르지아, 아니 루니아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은 너무도 끔찍한 시간이었다.
수십 명의 하녀가 오직 그녀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계속해서 가져왔으며 그걸 루니아에게 입혔다.
모두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값비싸 보이는 옷들이었다.
괄괄한 성격의 루니아지만 한참 꾸미기 좋아할 나이대의 소녀.
예쁜 옷과 아름다운 장신구에 흥미가 없을 리 없었다.
‘그래도 정도껏 이란 게 있잖아!’
영웅 던전에 들어온 지 벌써 수 시간.
처음 자신의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긴장하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눈앞의 상황에 수긍했다.
조금이라도 책잡힐 일은 하지 않았다.
엘프의 예법을 답답하게 여기는 루니아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영웅 명가의 후계자로 살아왔다.
최근에는 세이룬의 학년 대표로서 어딜 가든 빠지지 않는 우등생 연기를 해왔다.
답답하게 여기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
그렇기에 루니아는 엘프식 예법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숨을 좀 크게 쉬면 그거 가지고 난리! 눈 깜빡이면 눈 깜빡인다고 지적질! 안 웃으면 안 웃는다고 지랄! 아니! 숨 돌릴 틈 정도는 줘야 할 거 아니야! 심지어 지금은 준비 중이잖아!’
눈앞에 있는 남자의 쉴 틈 없는 예법 수업에 루니아는 노이로제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심지어 그걸 파티 준비랍시고 당하고 있으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대체 파티에 가면 얼마나 더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돌아 버릴지도.’
깐깐하기로 소문난 세이룬의 예법 선생들도 이 남자에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진정하자, 진정해.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해.’
루니아는 거울 앞에 선 자신이 빙의 된 세르지아라는 여성의 얼굴을 보았다.
전체적으로 물빛을 연상시키는 푸른 머리카락에 커다란 호수 빛 눈동자.
루니아 또래의 소녀였다.
거울 앞에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루니아가 빙긋 웃었다.
‘내가 공주병이 걸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확신할 수 있어. 내가 더 예뻐.’
루니아는 이 소녀보다 자신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난 마음씨까지 곱다고.’
레오가 들었다면 마음씨를 곱게 빻은 거냐고 물었겠지만 애석하게도 레오는 이곳에 없었다.
‘그나저나 지금은 대체 어떤 시대고 얘는 신분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한정된 공간에서 루니아는 최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수십 명의 하녀 중 누구 하나 친근하게 말을 거는 이가 없었다.
말을 거는 건 고사하고 루니아와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마치 세르지아를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듯했다.
루리아는 그 사실이 몹시 불쾌했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하녀들의 반응은 비상식적이야.’
지금 시대에도 권위적인 가문은 얼마든지 있고 자신들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은 세이룬에서 지겹도록 봐 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동족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자들은 없다.
엘프 사회에서 지나친 권위는 흠이다.
신분의 벽을 세우는 건 천박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루니아 역시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하게 신분이 나뉘어 있는 느낌이었다.
손짓 하나하나에도 하녀들은 흠칫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손찌검을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자신이 들어온 이 소녀가 평소에 얼마나 히스테릭한 패악을 부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인성이 바랜 여자인가 보네. 대체 얼마나 구닥다리 시대인 거야?’
모르긴 몰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거란 건 알겠다.
‘그렇다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물어볼 수도 없고.’
괜히 이상한 말을 했다가 의심을 사면 던전 공략이 꼬일 수도 있다.
지금은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촤악-
탈의실 커튼을 열고 나간 루니아는 현재 자신과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남자의 앞에 섰다.
그 남자는 루니아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이게 제일 낫겠군요.”
그는 드레스 한 벌을 가리켰다.
“아까 전에 입었던 옷이네요.”
그건 루니아가 영웅 던전에 들어오고 제일 먼저 입었던 옷이다.
“예. 역시 아무리 봐도 저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루니아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그럼 왜 날 이때까지 개고생시킨 거야!’
들이박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으며 루니아가 다시 탈의실에서 드레스를 갈아입었다.
탈의실에서 나온 루니아가 드레스에 맞춰 장신구와 화장을 고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들어와라.”
“에테르님.”
“무슨 일이지?”
“작은 문제가…….”
“무슨 문제가 일어났다는 거지?”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기사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 루니아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 루니아를 힐끗 본 에테르가 턱짓으로 방 밖으로 나갔다.
‘흐응. 비밀 이야기인가 보네.’
찰칵-
방문이 닫혔다.
정보를 얻을 기회가 왔다.
사소한 것이라도 루니아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쫑긋-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며 청력을 키웠다.
“지하 감옥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
“예. 오늘 수업에서 세르지아님의 약혼자에게 해를 입힌 자가 탈옥했습니다.”
“뭐라?”
‘후후! 다 들린다! 이것들아.’
루니아가 속으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청각이 뛰어난 엘프라도 훈련이 되지 않은 이는 저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 사관후보생인 루니아는 달랐다.
비록 오러를 다루지는 못하지만 마력을 이용해 감각을 예민하게 각성시키는 훈련을 열심히 해왔다.
‘이런 수련을 하지 않으면 녀석을 따라잡지 못할 테니까.’
레오를 떠올리며 루니아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엿듣는 데 집중했다.
‘저렇게 무방비로 대화를 나누는 거 보면 이 애는 마나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닌 모양이네. 남들 앞에서 마법이나 정령 사용은 자제해야겠어. 그리고 약혼자가 있다라…….’
사소한 것으로도 단서를 얻으며 루니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기 있잖아.”
“네, 넵!”
말을 걸자 루니아의 볼에 화장을 해주던 하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하녀를 보며 루니아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탄했다.
‘이 애는 대체 얼마나 막돼먹은 삶을 살아온 거야?’
겨우 부른 것만으로도 저렇게 경기를 일으키며 사과하다니.
“잘못한 건 없어. 그러니 사과할 것도 없어. 그저 궁금한 게 생겨서 묻고 싶을 뿐이야.”
“네, 넵!”
“내 약혼자는 괜찮아? 다쳤다고 들었는데.”
하녀는 아직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대답했다.
“예…… 히르키안님께서는 오늘 수업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하의 탄신 파티에는 참가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
“예.”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루니아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벌컥-
그러는 사이 에테르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과 변함없는 무표정을 한 그는 준비를 끝낸 루니아를 보며 고개를 조아렸다.
“왕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세르지아님.”
‘왕녀? 왕녀라고?’
엘프에게도 왕녀라는 신분이 있었던 시절이 있다는 건 루니아도 알고 있다.
문제는 그게 5000년 전. 그것도 재앙의 시대 이전이라는 것이다.
‘잠깐! 왕녀라니? 그러면 이게 5000년 전 시대란 말이야?’
“파티장에 가기 전 전하를 뵈러 가시죠. 세르지아님.”
에테르가 고개를 조아리며 루니아를 에스코트했다.
에스코트를 받으면서도 루니아의 머릿속은 맹렬하게 돌아갔다.
‘이게 만약 재앙의 시대 이전의 세계라면…… 우리가 들어온 세계는 셋 중 하나야.’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된 영웅 중 공식적으로 재앙의 시대 이전을 살았다고 알려진 영웅은 단 세 명.
지혜의 왕 리시나스.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
그리고 성운의 시조 루나.
‘지금 세계는 아무리 봐도 엘프와 연관된 세계야! 즉! 재앙의 시대 이전이라면 여긴 루나님의 세계란 소리야!’
일전에 루나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켈레톤 킹을 쓰러트리고 찰나의 순간 만났던 성운의 시조.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지녔던 위대한 시조의 모습.
그때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아아! 여기서는 시조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몰라!’
루니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시조와 대화를 나눈다!
이 얼마나 꿈같은 단어란 말인가?
‘루나님과 마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루나님에게 마법에 대한 조언을 듣고! 루나님에게 칭찬받고! 그럴수 있다는 거잖아! 제발 루나님의 세계여라!’
루니아는 콩닥거리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예법을 완벽하게 지켰다.
복도를 걷던 루니아는 나무 그림이 새겨진 거대한 방문 앞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언뜻 보기에도 굉장한 실력을 지닌 기사들이 서 있었다.
기사들은 루니아에게 예를 표한 다음 거대한 문을 열었다.
끼익-!
순간, 문 너머로 심연과도 같은 어둠이 보였다.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그걸 본 루니아는 얼굴이 굳는 걸 느꼈다.
‘이건…… 대체 뭐야?’
빠르게 태연함을 되찾았다.
그러는 사이 어둠은 사라지고 눈앞에 알현실의 풍경이 펼쳐졌다.
‘잘못 봤나?’
헛것을 봤나 싶었다.
하지만 루니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해라고.
루니아가 숨을 크게 심호흡했다.
“세르지아님.”
에테르가 힐난의 시선을 보냈다.
방금전 같으면 짜증을 느꼈을 루니아였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에테르를 무시한 루니아가 조심스럽게 알현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떨리려는 몸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그리고 태연함을 가장했다.
하지만 마음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여긴…… 여긴 대체 뭐야!’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
숨이 턱 막히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압박감을 느끼는 건 오직 루니아 뿐이었다.
“어서 오거라, 내 딸, 왕녀여.”
높은 권좌에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생신 축하드리옵니다.”
고개를 들어 엘프왕, 에르겐을 본 루니아는 말을 아끼고 신분 높은 왕녀를 연기했다.
방긋- 어여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루니아는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이 공간에서 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이해했다.
넓은 알현실은 거대한 고목의 내부였다.
루니아는 몰랐지만 이곳은 하이 엘프의 도시, 바르하르룬의 최중심부였다.
바르하르룬에 있는 세계수 내부.
오직 엘프왕이 바르하르룬을 방문했을 때만 열리는 신성한 장소.
엘프들의 보물이라 불리는 세계수 내부는 말 그대로 광활했다.
그곳을 엘프왕의 알현실로 쓰는 것이다.
엘프왕의 왕좌 뒤로는 거대한 빈공간이 있었다.
최소한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곳을 빈공간으로 인식했다.
루니아는 에르겐 뒤로 보이는 것을 보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이 시시나무 떨리듯 떨릴 게 분명했다.
‘……저건…… 대체…… 뭐야…….’
빈공간에는 루니아로서는 처음 보는 기형의 괴물이 잠들어있었다.
이 거짓된 세계의 주민의 눈에는 절대 보일리 없는 괴물.
오직 진짜인 루니아의 눈에만 보이는 괴물.
비명 튀어나올 걱정은 하지 않았다.
비명은 고사하고 숨조차 내뱉기 힘들었다.
가빠지는 숨을 가까스로 숨겼다.
그리고 눈앞의 괴물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 감사했다.
‘타르타로스의 괴물인가?’
괴물은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를 선사했다.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불태울 것 같은 검은 불꽃을 온몸에 휘감은 괴물.
거기까지 생각한 루니아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문득 어릴 적부터 너무도 좋아했던 동화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루니아가 영웅을…… 위대한 시조를 동경하게 만든 동화책.
그 동화책에는 나쁜 악당 하나가 나왔다.
‘그 나쁜 태초의 악은 대영웅들에게 소리쳤어요. ‘크아앙-! 네놈들을 모조리 잡아 먹어주마!’라고!’
‘진부해! 진부해!’
왜일까? 갑자기 어머니가 익살스럽게 읽어주던 동화책의 내용이 갑자기 떠오른 건?
그 악의 화신을 향해 야유를 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오른 이유는 대체 뭘까?
‘어차피 대영웅님들이 쓰러트릴 텐데 뭐!’
어쩌면 주마등?
아니면 더 이상 그 태초의 악을 쓰러트릴 대영웅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이유는 상관없다.
어쨌든 눈앞의 이 괴물이 무엇인지 루니아는 알아 버리고 말았다.
‘동화책이랑…… 너무…… 똑같잖아.’
루니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에레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