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194)
194
[그림자 정령이라고? 처음 듣는 정령이군.]이그니트가 엘시를 무미건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선명한 의지를 가진 정령인 걸 보아하니 상당한 힘을 가진 정령이군. 그래서,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지? 내 휘하로 들어오고 싶다는 건가?]그 물음에 엘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빙그레 웃었다.
[아니요.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그래도 저도 대정령인 몸. 지배의 권능을 가진 정령이라 다른 정령에게 머리를 숙일 수는 없답니다.] [헛소리. 한 시대에 같은 속성의 대정령이 둘 이상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 [네.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과거의 정령이랍니다.] [정신이 나간 정령인가?]모욕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엘시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대정령이었다면 이 말을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둠의 대정령이라고 한다면 모든 어둠의 정령들의 왕이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존재다.
그 지배력은 어둠의 정령뿐만 아니라 다른 속성의 정령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막강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심해의 정령 운디네처럼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는 절대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만한 모욕을 받았다면 대정령 사이에 전쟁 일어나 주변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엘시는 웃었다.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엘시는 히어로 레코드라는 신의 기적으로 현세로 넘어온 과거의 존재였다.
그 어떠한 이가 들어도 이그니트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테지.’
그러한 엘시의 반응에 이그니트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정말로 과거의 대정령이라고 치지. 그러나 나는 그림자 정령이라는 이름을 그 어느곳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네. 저는 아주 짧은 시간만 이 세계에서 살았으니까요.]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엘시가 빙긋 웃었다.
역사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대정령은 이 세상에서 엘시가 유일했다.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대정령이 나와 무슨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거냐?] [당신은 왜 사람을 싫어하는 건가요?] [추악한 존재니까.]이그니트는 딱 잘라 말했다.
[다른 대정령들은 말하지. 지상의 종족과 맹약을 맺어야 비로소 정령은 가치가 있다고. 자격 있는 존재들과 맹약을 맺어 힘이 되어줄 의무가 우리 대정령들에게는 있다고.]이그니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추악하기 짝이 없는 지상의 존재들에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어둠의 정령들은 모든 이들을 통틀어 가장 음울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령들이다.
한때 어둠의 정령은 불행과 불길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그들 자체가 타르타로스의 존재라고 지탄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다.
빛이 아닌 그늘 속에서 힘을 키울 수밖에 없는 정령.
그런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어둠의 정령을 외면했다.
어둠의 정령과 계약을 맺을 자질이 있다고 해도 그 자질을 부정한다.
그렇다 보니 어둠의 정령과 계약을 맺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힘이 필요한 불운한 운명을 가진 이들밖에 없었다.
이그니트는 1000년에 가까운 시간을 존속해온 대정령.
그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대의 계약자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이그니트는 레오를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루메른의 학생이지만 불행한 과거가 있겠지.]이그니트의 말에 엘시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엘시는 레오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어떤 길을 겪어 왔는지는 알고 있다.
[네. 레오는 아마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았을 거예요.]엘시의 말대로였다.
레오는 재앙의 시대를 살았다.
온갖 추악한 것들을 보며 살아남았으며 에레보스 토벌대로서 활약 할 때조차 추악한 자들을 역사 뒤편으로 묻어왔다.
동료들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할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동료들 몰래 스스로 더러운 일을 자처했다.
다른 대영웅들이 어둠을 떨쳐내고 빛을 향해 나아갔다면.
카일은 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어둠 속에 발을 담갔다.
그것이 다른 대영웅과 카일의 차이점이었다.
‘나도 모르는 과거의 나는 그런 카일의 모습에 끌렸을 테지.’
[나는 당신만큼 오래 살지도 못했고 당신만큼 불행한 일을 겪지 못했을 거예요.]엘시가 안타깝다는 눈으로 이그니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신도 어둠의 정령이라면 빛에 이끌리겠죠?]어둠의 정령이 빛에 이끌리는 건 본능.
[당신도 빛을 보고 싶지 않나요?] [빛이라.]엘시의 물음 이그니트는 스스로를 과거의 대정령이라 주장하는 이 왜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이해했다.
[나를 이해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건가?] [네.]고개를 끄덕이는 엘시를 보며 이그니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다면 증명해봐라.] [무얼……?] [그대가 내 어둠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이그니트의 주변에 스멀스멀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내 어둠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 심연 속에서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터.]조금 전 레오와 릴을 덮쳤던 어둠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그게 먼저겠지.]엘시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계약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 엘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엘시. 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물음에 엘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었다.
[‘살아남는 자’요.]“맞아. 그러니까 심연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내 걱정을 할 이유는 없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도 내가 짊어졌던 것들보다 무거울 리가 있나.”
한때 세상을 짊어졌던 남자의 말에 엘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그니트를 바라보았다.
[좋아요.]그런 엘시를 보며 레오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너무 착하다니까.’
그녀가 이그니트를 신경 쓰는 건 순수한 오지랖이었다.
그의 불행과 괴로움을 이해해서 정말로 이그니트를 측은하게 여긴 것이다.
그런 엘시였기에 세상을 증오하게 된 이후에도 끝끝내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것이다.
화악-!
이그니트의 심연이 레오를 덮쳤다.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정신 파괴인가.’
끝없는 심연이 레오의 정신을 잠식해 갔다.
이그니트의 정신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
그걸 인지한 순간.
뚜벅- 뚜벅-
[아니?]이그니트의 얼굴이 굳었다.
레오는 너무도 태연하게 심연을 빠져나와 이그니트 앞으로 걸어갔다.
[대체 어떻게?]“간단한 거 아니겠어?”
레오가 웃었다.
“너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거지.”
재앙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레오가 평화의 시대를 살았던 이그니트 보다 행복할 리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카일은 세상의 멸망 직전을 목격했다.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어둠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경험한 어둠의 깊이가 달랐다.
“그리고.”
레오가 힐끗 심연의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심연의 덩어리 주변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성되었다.
이윽고 그림자는 심연을 삼켰다.
그러자 심연이 날뛰었다.
하지만 이내 진정된 듯, 그림자의 품에서 고요해졌다.
그걸 본 이그니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 어둠이 지배를 당했다고?] [지배를 한 게 아니에요. 그저 당신의 어둠을 품었을 뿐이에요.]그림자가 걷히고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시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성숙한 여성의 모습.
마치 카일이 처음 만났을 때의 엘시와 같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힘 역시 강해져 있었다.
‘심연의 정령의 힘을 흡수한 건가?’
엘시는 대정령이지만, 지금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레오와 계약을 유지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종속 된 정령.
바꿔 말하면 레오의 역량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정해진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강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물론 과거 레오가 기억하던 힘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힘이다.
그런데도 엘시는 이그니트의 어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힘뿐만 아니라 특성조차 집어삼킨 건가?’
레오는 흑요석처럼 반짝이던 엘시의 한쪽 눈에 흐릿한 어둠이 깃든 걸 발견했다.
같은 검은 눈동자였지만 평소 엘시의 눈동자와는 달랐다.
[그대는 진정으로 대정령이란 말인가?]이그니트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정령들 사이에도 힘의 차이가 있다.
지배의 권능은 이그니트 보다 엘시가 훨씬 강대했다.
[네. 말했잖아요. 당신의 까마득한 선배라고요.]엘시가 빙긋 웃으며 이그니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럴수록 이그니트의 어둠이 엘시에게 흡수되었다.
이그니트의 힘을 집어삼키고 있는 엘시는 말 그대로 대정령의 위엄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반대로 이그니트의 몸은 점점 작아졌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이그니트가 엘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물음에 엘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까르르 웃었다.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엘시는 손을 뻗어 이그니트의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그저 당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엘시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엘시의 힘이 점점 이그니트에게 돌아갔다.
[당신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스스로 불행을 짊어지는 모습이 가엾게 느껴졌어요.]엘시는 밤하늘의 처음 본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토록 아름다운 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엘시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살면서 계약자도 없이 우울한 삶을 살다니.
엘시의 몸은 점점 소녀처럼 작아졌다.
겉모습은 어느새 이그니트와 비슷한 연령대가 되었다.
[좀 더 삶을 즐겨 보세요. 세상에는 분명 당신에게 어울리는 빛나는 계약자가 있을 거예요. 비록 당신보다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선배이기는 하니 흘려듣지 마세요.]환하게 웃는 엘시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이그니트가 말했다.
[그대는…… 빛의 정령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로군.] [후후- 고마워요.]어느새 손바닥처럼 작아진 엘시가 레오의 어깨 위로 날아가 앉았다.
그때.
화악-!
“푸하!”
어둠을 뚫고 릴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 지금 내가 구해주…….”
다급히 말하다가 멀쩡하게 서 있는 레오를 보고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가 저보다 먼저 탈출했군요.”
“운이 좋았어요.”
“으으…… 이번에야말로 선배의 위엄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우울한 표정을 짓는 릴을 보며 이그니트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은 뭐지? 괴수인가?]“괴수라뇨! 저에게는 질풍의 정령사라는 멀쩡한 별명이 존재합니다! 그런 이상한 별명으로 저를 부르지 마십시오!”
괴수녀라 놀림 받는 걸 싫어한 릴이 발끈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엘시가 중얼거렸다.
[저 정도면 진짜 괴수가 맞는 것 같은데요.]레오의 경우에는 애초에 이그니트의 어둠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탈출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하지만 릴은 다르다.
그녀는 이그니트의 어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도 그 어둠을 이겨내고 탈출한 것이다.
머나먼 과거의 대정령과 현재의 대정령.
그리고 대영웅조차 인정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확실히. 엘레나 선배랑 하르크 선배라 왜 괴수녀라 부르는지 이해가 되네요.”
“레오! 당신까지!”
릴이 울상을 지을 때였다.
쾅-!
“으랏차! 후배들아! 선배님인 내가 구하러 왔…….”
천장을 부수고 뒤늦게 등장한 진이 호기롭게 소리치다가 멀쩡하게 서 있는 둘을 발견하고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력으로 탈출한 거야? 너희 진짜 1, 2학년 맞냐?”
진은 정신을 파괴하는 심연의 정령의 특성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정령 군단을 돌파하고 최중심부인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후배들의 유능함에 혀를 내두르며 진이 이그니트 앞에 섰다.
“오랜만이군, 이그니트.”
[그래, 운디네의 기사.]“아무리 네가 사람을 싫어해도 이건 도를 넘은 건 알고 있지.”
살기를 내뿜는 진을 보며 이그니트가 말했다.
[초대에는 응할 테니 살기를 거두어라.]이그니트가 어둠을 거두었다.
그리고 레오와 릴을 보며 말했다.
[루메른 학생들과의 계약에 관해서도 고려해보지.]그 말에 릴과 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싫어서 계약자를 갖지 않았던 이그니트가 계약자를 고려해본다니?
“역시 레오 때문인가요?”
릴이 감탄하며 물었다.
자신이 자력으로 탈출하기 전 이미 레오가 이그니트와 대화하고 있는 걸 봤기 때문에 릴은 레오가 이그니트를 설득했다고 생각했다.
릴의 말에 이그니트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바람둥이에는 관심 없다.]‘바람둥이? 레오가 피닉스의 계약자라서 그런 건가?’
영문을 알지 못하는 릴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