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240)
240
뚜벅- 뚜벅-
길고 긴 샨의 황궁 복도.
레오는 그곳을 걷고 있었다.
안내역을 맡은 건 조금 전 레오를 마중 나온 황궁의 호위대장이었다.
“가디언입니다.”
타르타로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그림자.
물론 황궁의 호위 대장씩이나 된다면 지나칠 정도로 눈에 뜨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실력은 황궁 호위대장을 맡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루메른의 교수들만큼 강하군.’
루메른의 교수들은 대부분 히어로 레코드에 오를만한 위업을 이룰 실력을 갖춘 강자들이다.
그런 자가 이름을 알리지 않고 황궁 호위대장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림자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텁-!
그런 가운데 호위대장이 걸음을 멈추었다.
복도 끝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문은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이었다.
일순간 거대한 구멍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입니다.”
호위대장의 말과 동시에 문이 스륵-! 열렸다.
문 너머에는 깜깜한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살아있는 이로 하여금 꺼림칙함이 들게 만드는 어둠.
달빛조차도 비치지 않는 어둠이 펼쳐지자 프리츠는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레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레오님…… 아니, 선배님.”
프리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인도 놀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칠흑같은 어둠은 그림자 후보생인 두 사람에게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깊은 어둠이었다.
호위대장은 눈을 빛내며 그런 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프리츠는 재빨리 레오의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호위대장은 손을 뻗어 프리츠를 저지했다.
“황제 폐하와 알현할 수 있는 건 레오 플로브님 뿐입니다.”
그 말에 레오는 뒤를 보며 말했다.
“다녀올게.”
뚜벅- 뚜벅-
레오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스륵- 쿠우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레오는 발걸음을 옮기는 걸 주저 하지 않았다.
기민한 감각은 어둠에 잡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어졌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둠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재앙의 시대를 살았던 레오에게 어둠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친숙하지.’
뚜벅- 뚜벅-
고요한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화악-!
그때 레오의 옆에서 불꽃이 일었다.
촛불에 불이 붙은 것이다.
어둠 속에서 레오의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화악- 화악- 화악-
그것을 시작으로 방 안에 있는 촛불에 하나둘 불이 붙기 시작했다.
어둠이 걷히고 방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 내부는 온갖 사치스러운 물건으로 가득했다.
황금과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방 한가득 늘어선 온갖 종류의 예술품까지.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난잡한 방.
심지어 벽 한쪽에는 수많은 무구들이 늘어서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거대한 침대에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옆으로 누워 있는 건장한 체격의 미중년이었다.
그는 한쪽 발로 종아리를 긁으며 빈손에는 섭선을 흔들고 있었다.
붉은색 샨의 정통 복장을 한 남자는 검은 눈으로 레오를 직시하며 말했다.
“그대가 레오 플로브인가?”
“샨의 황제 폐하십니까?”
“샨의 74대 황제, 샤우라고 한다.”
감정이 깃들지 않은 검은색 눈동자가 레오를 직시한다.
그것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샤우는 존재는 자체만으로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영웅은 아니었지만 검성을 제외하고 그 어떠한 영웅보다 강했다.
“이리 가까이 와 보겠나?”
샤우의 부름에 레오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3m 남짓할 거리까지 다가갔다.
샤우는 미염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얼굴도 곱상하게 생긴 데다가 어린 나이에 루메른 학생회장이라…… 인기가 많겠군. 자네. 벌써 여자 여럿 울리고 다니고 있지 않나?”
그 뜬금없는 물음에 레오는 덤덤히 대답했다.
“루메른은 학생 간의 불건전한 이성 교제가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그 말에 샤우가 눈을 부릅떴다.
“그런 게 어디 있나! 한참 혈기 왕성한 나이의 애들이 한 공간에 있는데 아무 일이 없다니! 다 몰래 만나고 그럴 거 아닌가!”
버럭 소리치는 샤우를 레오는 멀뚱히 바라보았다.
다른 이였다면 벙찐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림자의 나라라고 불리는 샨의 황제의 또 다른 이명은 그림자 왕.
비록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당대 최고의 영웅들과 동등한 실력으로 인정받는 존재다.
황제임에도 대외적으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최강의 그림자.
실존하지만 만날 수 없는 신비로운 다크 히어로.
잔혹하고 막강한, 공포의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존재.
그게 바로 샨의 황제였다.
그런 존재가 대뜸 처음 만나는 소년에게 연애에 관해 캐묻고 있었다.
당황할 법도 했지만, 레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정말 여자를 사귀지 않았나?”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요.”
“따분한 우등생이군. 그래도 그 정도면 합격이라고 할 수 있겠어.”
‘뭐가 합격이라는 거야.’
의미심장하게 웃은 샤우가 섭선을 흔들었다.
“곤란한 질문을 한 것을 사과하지. 샨의 황제는 따분한 자리라서 말일세.”
그는 덤덤히 말했다.
“손님이 오는 경우도 드물어. 대부분은 날 두려워하거든.”
턱을 쓰다듬으며 샤우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기에 딸의 친구가 이렇게 방문해준 건 나에게 몹시 큰 즐거움이지.”
샤우는 레오를 똑바로 직시했다.
“그래서 시아를 데리러 온 것인가?”
“예.”
“시아는 자기의 뜻대로 그림자가 되는 걸 선택했다. 그런 시아를 설득하겠다는 건가?”
“그게 첸 시아의 순수한 뜻이라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레오는 샤우의 검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짐을 떠안은 채 한 선택이라면 데려갈 겁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그대와 시아는 단순히 학교 친구라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을 사이일 텐데?”
“첸 시아는 타르타로스를 멸망시킬 초석이 될 영웅 중 한 사람이 될 테니까요.”
“세상에 영웅 후보생은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역사 속의 위대한 영웅들도 타르타로스의 멸망이라는 위업을 이루지는 못했네.”
샤우가 비웃음을 날렸다.
“그런데 자네는 확신하듯 타르타로스의 멸망을 이야기하는군. 오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전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받아치는 레오를 보며 샤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에레보스를 완전히 멸망시킬 거라는 말을 했었던가?’
모든 동기생이 모인 자리에서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던 목표를 이야기했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이 소년은 어떤가? 고작 1년 만에 루메른의 학생회장 자리까지 올랐으며 검성의 뒤를 이어 차세대를 짊어질 영웅 후보생으로 평가받고 있지.’
샤우는 눈을 감았다.
‘미숙한 만용은 어린 사람의 특권이라고들 하지만…… 이 자의 경우에는 만용이라 느껴지지 않는군.’
“그림자로 태어난 아이를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내겠다는 건가?”
“예. 그러니까 첸 시아를 만나게 해주실래요? 설득해도 거절한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시아를 만나게 할 수 없지.”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지금 그대의 말을 듣는다면 그 아이는 분명 영웅의 길을 선택할 테니까.”
샤우가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영웅을 동경해 왔어.”
샤우가 몸을 일으켰다.
“레오 플로브여, 나는 어둠 속에서 많은 영웅을 보아왔다. 영웅은 말 그대로 특별한 존재다. 세계를 위해 목숨을 바칠 고결한 영혼들이지.”
터벅-
침대에서 내려온 샤우는 레오 앞으로 다가왔다.
레오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하고도 반은 더 클 것 같은 샤우를 올려다보았다.
스윽-
그의 거대한 손가락 끝이 레오에게 향했다.
“지금 알았네. 그중에서도 그대는 매우 특별해.”
리우의 검은 눈이 레오를 담았다.
“세간에서는 자네를 칼리안님의 뒤를 이을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닐세.”
리우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3000년 전, 영웅 사관학교의 설립자들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 대영웅에 가까운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지 모르지.”
레오는 말없이 샤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그대를 시아와 만나게 할 수 없네. 평생을 어둠 속에서만 살아온 그 아이에게 자네는 너무도 강렬한 빛일 테니까. 그래서 눈이 멀어버리고 말겠지.”
털썩-!
침대로 돌아간 샤우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영웅은 영웅, 그림자는 그림자.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게.”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건가요?”
“바로 그렇네.”
샤우가 씩- 웃었다.
“첸 시아는 샨의 숙원을 이루어 줄 재목일세.”
“그림자로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알고 있군. 리이나. 그녀가 말한 건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지.”
샤우가 큭큭- 웃었다.
“우리 일족으로서는 신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낙인에 가까운 저주일세.”
어느 시대나 그림자는 필요한 존재다.
그리고 샨 제국의 황족은 수천 년 동안 그림자로서 살아왔다.
물론 인정받으려고 그림자로서 살아 온 건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일족의 정통성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신에게 외면받아 왔기에 더더욱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의 인정을.
“그림자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지 않습니까?”
“자랑스러운 그림자의 왕, 비하르의 후예로서 그럴 수는 없지.”
“비하르?”
익숙한 이름에 레오가 멈칫했다.
“그래. 재앙의 시대부터 활약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위대한 그림자일세.”
‘그 비하르라고?’
샨 제국의 근원에 대해 알게 된 레오가 놀라고 있을 때였다.
“게다가 시아를 그림자로 남겨두는 건 미래의 자네에게도 좋은 일일 텐데?”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시아는 장차 샨을 짊어질 아이일세.”
샤우는 능글맞게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네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샨의 또 다른 비원과 지향점이 같네. 시아는 그림자로서 자네를 따를 걸세. 샨이라는 거대한 나라 자체가 자네의 것이 되는 거지.”
“첸 시아가 날 따르는 것과 샨 제국이 무슨 상관인데요?”
“……자네 바보인가?”
샤우가 떨떠름한 눈으로 레오를 보았다.
“시아가 자네에게 마음이 있는 걸 정말 몰랐나?”
“아, 그랬어요?”
레오가 놀랍다는 듯 감탄했다.
생각 이상으로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는 레오를 보며 샤우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왜 그렇게 덤덤한가? 내 딸이 그렇게 매력이 없단 말인가!”
“어린애를 어떻게 연애 대상으로 봐요?”
“시아는 자네보다 연상이네만?”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짓는 샤우를 보며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겉으로 연상이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속은 아저씨인데.’
시큰둥한 레오의 모습에 샤우는 순간 뒷목을 잡았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일족의 염원을 짊어져야 할 딸이기에 딸의 꿈을 응원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다.
그런데 이따위 반응이라니!
“어쨌든 첸 시아를 만나게 해주세요.”
“거절하지.”
샤우는 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샨에 있는 동안 자네는 귀빈일세. 극진히 대우하겠지만 시아를 만날 수는 없네.”
“강제로라도 만나겠다면?”
레오의 말에 샤우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디 한 번 해보게. 빛에서 사는 사람이 어둠 속에서 사는 이를 절대 찾을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