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370)
370
레오는 눈앞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이 환락의 성 꼭대기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곳에 펼쳐진 환영들은 하나같이 목숨조차 빼앗을 수 있는 위험한 환영이 분명했다.
그러나 레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터벅- 터벅-
레오는 라르엘 앞으로 다가갔다.
라르엘은 그런 레오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지?”
라르엘의 환영은 환영에 발을 디딘 존재의 힘이 강하다고 파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힘과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시험’ 이었다.
그런 시험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쉽게 통과한 것이다.
라르엘의 물음에 레오가 말했다.
“이미 다 경험해 본 것들이라서 말이야.”
레오의 물음에 라르엘의 눈이 꿈틀거렸다.
“경험해…… 봤다고?”
“그래.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피식 웃은 레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레오의 붉은 눈이 라르엘을 직시한다.
“나를 끝까지 믿는 것도.”
터벅- 터벅-
“끝없는 절망 앞에서 용기를 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턱-
“불가능 앞에서 가능성을 추구한 것도.”
라르엘 앞에 선 레오가 말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했거든. 그래서 고작 환영 정도에는 꺾이지 않을 뿐이야.”
“웃기지 마. 그게 네 말처럼 절대 쉬운 게 아니라고!”
라르엘이 소리쳤다.
“그걸 하지 못해 수천년 동안 자신을 희생하는 자들도 있어! 함부로 말하지 마!
“개벽의 영웅들을 말하는 건가?”
“……!”
라르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레오는 세이룬을 제외하고 개벽의 영웅들은 만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각자가 설립한 학교에 교훈을 남겼는지는 알고 있다.
한계를 넘어라.
자신을 믿어라.
앞으로 나아가라.
가능성을 추구하라.
후대의 사람들은 이 교훈들이 개벽의 영웅들이 추구한 가치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루메른은 결국 자신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세이룬은 끝까지 자신을 믿지 못하고 포기했다고 생각했으며 아조니아는 끝내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데미안은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망치를 놨다.
각 영웅 사관학교의 교훈은 그들 스스로가 끝내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후대의 영웅들은 자신들과 달리 한계를 넘어서고 끝까지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 가능성을 실현해 달라는 비원을 담아 남긴 말들.
‘어리석은 녀석들.’
레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개벽의 영웅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레오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레오가 만난 개벽의 영웅은 세이룬뿐.
하지만 세이룬은 레오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때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저 죄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 뿐이었다.
개벽의 영웅들은 세계를 구했다.
‘하지만 녀석들 스스로가 그렇다고 생각을 못했지.’
에레보스를 쓰러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토벌에는 실패했다.
‘불멸의 힘을 가진 재앙의 불꽃은 끝없이 타오르니까.’
몇 번이고 타오르는 검은 불꽃을 보고 개벽의 영웅들은 어쩔 수 없이 에레보스를 자신들의 세계에 가두었다.
그리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히어로 레코드를 파괴했다.
개벽의 영웅들은 후대에 세계의 운명을 맡긴 자신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면 수천 년 동안 반복되는 루프를 버티지 못해. 자신을 믿지 못했다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저앉았을 거고. 용기가 없었다면 자신들을 희생하려는 선택을 못 했을 거야. 그리고 가능성을 추구했기에 희망을 미래에 전할 수 있었던 거야.’
세이룬을 만나 이후.
레오는 하루빨리 개벽의 영웅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녀석들은 우리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하면서 대체 뭘 본 거야?’
대영웅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한계에 부딪혔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좌절 한 건?
겁에 질린 적도 많고 가능성을 믿지 못한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한심한 꼴을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영웅들은 세계를 구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개벽의 영웅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단한 일을 해냈음에도 자신들을 비관하는 꼴이라니.
‘기회가 되면 잔소리를 좀 해줘야겠어.’
혀를 찬 레오가 라르엘에게 말했다.
“그래서, 넌 뭐지? 어떻게 개벽의 영웅들을 알고 있고 왜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시험하는 거지?”
“내 이름은 라르엘. 빛을 관장하는 광채의 대정령이다.”
“광채의 대정령이라면?”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벽의 용, 로디아와 계약한 정령인데?”
세계에는 무수한 대정령의 계약자들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3000년 전 이후부터 빛의 대정령과 계약을 맺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역사 속에서 빛의 정령은 특별했다.
그 특별함은 까마득한 과거.
신의 시대부터 통용되던 말이다.
빛의 대정령은 단순히 정령사로서의 자질만이 아닌 대대로 세계를 이끌어갈 자격이 있어야만 계약할 자격이 주어졌다.
리시나스와 계약을 맺었던 광휘의 대정령, 루미너스 역시 리시나스가 세계를 이끌어갈 자라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계약자로 선택했던 것.
그런 고결한 자만을 계약으로 삼는 만큼 빛의 대정령은 역사 속에서 그 존재만이 알려졌을 뿐.
실제로 등장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에 계약자가 수천 년 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대교체조차 이루지 않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로디아가 내게 부탁을 남겼으니까.”
라르엘의 눈이 서늘하게 변했다.
“세계를 구원할 영웅을 찾아 달라고.”
“과연, 그래서 그런 환영들을 만들었던 거군.”
왜 그런 강력했던 환영들이 앞을 가로막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험이었나?”
“……예전에는 그랬지.”
당장에라도 찬란하게 빛날 것 같은 옅은 황금색 눈동자에 어둠이 드리웠다.
그런 라르엘을 보며 레오가 팔짱을 꼈다.
“그럼 환영을 모두 돌파한 나는 맹약자로서 자격이 있는 건가?”
“……너무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레오 플로브.”
라르엘이 조소했다.
“환영은 시험의 일부분일 뿐이야. 환영 이외에도 여러 시험들이 남아 있어.”
“그래? 그 시험이란 게 뭐지?”
“딱히, 널 시험하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어.”
라르엘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다리를 꼬고 황금빛이 감도는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라르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영웅 후보생인 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영웅들이 나랑 계약을 맺고자 찾아 왔었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로 말이야.”
-레오 보다 대단한 영웅이라……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같은데요.
“넌 뭐니?”
-전 엘시라고 해요.
“어둠 속성 정령?”
-네. 만나서 반가워요, 광채의 정령 라르엘.
엘시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다소곳하게 인사했다.
그런 엘시를 보며 라르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난 어둠의 정령들이 싫어. 쓸데없이 음침하거든.”
-어둠의 정령들도 빛의 정령을 싫어해요. 쓸데없이 밝기만 해서요. 난 그 찬란함을 좋아하지만요.
라르엘은 엘시를 머리가 이상한 정령이라고 생각했다.
대정령은 하위 정령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지배의 권능을 가진다.
같은 계통의 정령이 아니더라도 하위 정령은 대정령에게 감히 반항할 수 없다.
하지만 엘시는 라르엘의 말을 망설임 없이 받아쳤다.
그게 가능한 것은 같은 대정령 뿐.
라르엘이 알고 있는 지금 어둠의 대정령은 심연의 정령 이그니트.
‘어둠의 정령이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말 따윈 들은 적 없어.’
라르엘은 엘시에게서 관심을 끊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라르엘을 보며 엘시가 살짝 쓰게 웃었다.
“불쑥 찾아 왔다고 시험을 치르지 않게 해주는 건 억울한데. 난 시험 중 하나를 통과했잖아?”
“내 맹약자라는 타이틀이 탐나는 모양이네? 욕심도 많으셔라. 넌 이미 3대 환수의 맹약자이기도 할 텐데? 아니면 뭐니? 소환수 수집 욕구라도 있는 거야? 애석하지만 난 이 세계를 포기한 지 오래라서 말이야.”
라르엘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른 영웅들처럼 빛의 대정령의 맹약자라는 타이틀이 탐난다면 다음 빛의 대정령을 기다리든지 해.”
라르엘의 비웃음에 레오와 엘시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레오는 큭큭- 웃음을 터트렸고 엘시는 입을 막고 쿡쿡 웃음을 참았다.
그 반응에 라르엘의 눈이 꿈틀거렸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당연히 웃음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 어떠한 정령보다 고귀하다는 빛의 대정령이 이런 어두운 도시의 지배자 행세를 하면서 하는 말이 ‘이 세계를 포기했다’ 라니요.
엘시의 말에 라르엘의 눈이 분노로 물들었다.
“너희들이 내 심정을 알기나 해? 수천 년 동안 맹약자를 찾아 헤매면서 세계의 온갖 추악한 꼴을 다 본 내 심정을?”
라르엘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라르엘을 보며 엘시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엘시는 빛에 대한 강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존재로 태어나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얻게 된 빛에 대한 열망.
당연히 자신은 가질 수도 볼 수도 없었던 빛을 한가득 품은 빛의 대정령을 동경했다.
재앙의 시대. 엘시가 눈을 떴을 무렵 빛의 대정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시대의 빛의 대정령과 만나기를 계속 염원해 왔다.
그런데 라르엘은 엘시가 생각하는 빛의 대정령과는 달랐다.
어둠의 대정령인 엘시이기에 라르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어둠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빛의 대정령씩이나 되는 녀석이 세계를 포기한 건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레오를 보며 라르엘이 소리쳤다.
“수천 년을 찾아 헤맸어! 내 맹약자를 구해줄! 세계를 구해줄 영웅을! 그런데 영웅이라는 것들은 자신의 위업에 심취해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아!”
라르엘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3000년 동안 제대로 된 영웅을 본 적 없어! 스스로 빛으로 나아가려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맹약자가 되어 스스로를 드높이려는 욕망만을 품은 녀석들뿐! 고작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 알량한 자만심에 심취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떠드는 그런 것들을 3000년 동안 보아온 내 심정을 너희가 알아!”
분노를 표출하는 라르엘의 목소리가 거칠게 떨렸다.
빛의 대정령으로서 세계를……. 자신의 소중한 맹약자를 결국에는 포기해야만 했던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치가 떨린 것이다.
“그래! 개벽의 세계에 도전하는 녀석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들 중 나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정령사는 없었어! 그리고 대단하고 고귀한 영웅들도 결국에는 실패만 반복할 뿐이잖아!”
좌절이 계속되면 어둠에 갇힌다.
“나와 계약을 맺을만한 녀석들은 내가 보아온 어둠의 일부분만 봐도 줄행랑치기 바쁘고!”
라르엘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소리쳤다.
“영웅뿐만이 아니야! 이 나라를 봐! 개벽의 용이 태어난 땅이 이렇게 추악해졌어. 이런 것들을 구할 가치가 있다는 거야?!”
세계에 어떠한 미래가 기다리는지 알고 있기에 그 고통은 더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 고작해야 백년 남짓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 그리고 애송이 정령! 너희들이 진짜 절망을 알기나 하냐고!”
응어리진 감정을 토해낸 라르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라르엘을 보며 레오와 엘시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너보다 훨씬 더 잘 알지 않을까?”
-당신보다 훨씬 더 잘 알지 않을까요?
“뭐?”
“심정은 알겠어, 근데 넌 알기나 해?”
레오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멸망하는 세계를 보는 심정을 말이야.”
“지금 무슨…….”
“에잉, 쯧쯧. 전에 만났던 심연의 정령인지 뭔지도 세상 추악한 꼴 다 본 것처럼 분위기 잡더니. 하다 하다 이제는 빛의 대정령까지 이러네? 요즘 것들은 왜 이래?”
-레오, 지금 그 말 엄청 꼰대 같은 거 알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엘시가 라르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한 번 볼래요? 내가 살아야 했던 시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