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389)
389.
‘그 힘이 아마 리시나스가 페가수스와 계약을 맺지 못한 이유겠지.’
드래곤은 신의 시대부터 세계의 질서를 유지했던 종족이다.
신의 사자로서 세계를 수호하고 신의 뜻을 따랐던 자들.
그렇기에 그들은 용족 별로 고유의 의무를 지니고 있었으며 흑룡은 세계를 등진 모든 이를 말살시키던 용족이었다.
그러한 의무 때문에 흑룡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난폭했으며 또 잔혹했다.
특히나 재앙의 시대에서 어둠이란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
‘실제로 흑룡 중에는 타락하여 에레보스의 편에 선 자들도 많았지.’
다르다고 하여도 본질은 같은 어둠.
쉽게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는 자신의 손으로 어둠 속에 묻었던 수많은 타락한 흑룡들을 떠올렸다.
‘리시나스가 자신의 종족 특성을 싫어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
싫어하기 이전에 리시나스는 자신의 본질을 두려워했다.
그걸 알기에 레오는 리시나스를 대신해 서슴없이 어둠에 발을 담갔다.
리시나스가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게.
‘나에게 있어 녀석이 보여준 빛은 곧 희망이었으니까.’
레오에게 있어 리시나스의 의무를 짊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레오는 로디아와 함께 가드스론 내부를 걸었다.
가드스론의 가장 어두운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런 레오의 뒤를 따라 걸으며 로디아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요?”
리시나스의 세계를 몇 번이나 공략했던 로디아도 모르는 길이었다.
“공략을 위해 몇 번이고 이 시절의 가드스론에 대해 연구했는데. 역시나 이 시대를 직접 살아야 했던 카일님 만큼은 알기 힘드네요.”
“그래. 하지만 넌 내가 모르는 정보들을 알고 있어.”
“네.”
레오의 말에 로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영웅의 세계의 행동반경은 어떻게 돼?”
“일단 가드스론 내에서 못 가는 곳은 없어요.”
로디아는 차근차근 과거의 공략 경험을 레오에게 말해주었다.
몇 번이나 이 세계의 공략을 시도했던 로디아는 실패 조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사실 이 세계는 카일님이 아니시면 절대 클리어할 수 없어요.”
“무슨 뜻이지?”
“공략자가 올 클래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리시나스님께서 인지한 순간, 바로 공략 실패가 되어 버려요.”
이 영웅의 세계는 빙의형 영웅의 세계.
즉, 공략자는 카일의 몸에 빙의하여 리시나스와 함께 요르문간드와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카일의 몸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공략자가 카일이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카일의 흉내를 낸다고 해도 카일만이 가진 특성.
순수의 마력특성에서 기반한 올 클래스의 능력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로디아도 그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든 올 클래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며 공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올 클래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켜 실패했다.
“이상하긴 하네. 아무리 그래도 올 클래스가 아니란 걸 깨닫자마자 상황에 관계없이 공략 실패라니.”
“뭐, 지금 이 세계를 공략하고 있는 건 카일님이니까 그럴 걱정은 없겠지만요.”
로디아가 빙긋 웃었다.
의문을 느끼던 레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다.
로디아는 그 막다른 벽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카일님과 함께 온 게 아니라면 못 알아차렸을 것 같아.’
벽은 입구였다.
문제는 개벽의 용이라 불리는 로디아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그 입구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었다.
“순백의 왕의 결계, 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로디아의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피식 웃은 레오가 벽에 손을 뻗었다.
레오의 손에서 흘러나온 회색의 마나가 벽을 감쌌다.
잠시 후.
우웅-!
벽이 일렁이더니 입구가 생성되었다.
“역시 카일님이세요.”
“알부스의 능력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맹약자를 떠올리며 레오가 대답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새하얀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홀이 펼쳐져 있었다.
홀 안에서 우아하게 앉아 있던 남녀들은 레오와 로디아를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인간과 드래곤?”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만나고 싶은 페가수스가 있어 이곳에 왔다.”
레오의 말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레오 앞으로 다가왔다.
“그 얼굴…… 익숙하군.”
레오는 힐끗- 그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살아남는 영웅, 카일이군.”
레오 역시 이 페가수스를 알고 있었다.
‘알레네 프리레네와 계약한 페가수스였던가?’
가드스론을 수호하는 환수 술사 중 한 사람.
알레네 프리레네의 맹약자였다.
전장에서 몇 번이나 마주한 적이 있었다.
‘긍정적인 여자였지. 페가수스의 맹약자 답다고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3대 환수의 계약자들은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이 시대에 마족들과 맞서 싸운 이들은 대부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장에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시를 수호하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이 당시는 곧 도시의 수호자들이 귀족과도 같은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3대 환수의 계약자들은 보이지 않는 희망을 위해 도시를 수호했다.
알레네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서 희망을 찾아 헤매는 자들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언제 세계가 멸망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으니까.
살아남는 영웅 카일 역시 그런 이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이 페가수스는 자신의 고귀한 맹약자를 비웃는 카일의 모습에 크게 분노했었다.
페가수스, 아르피아는 혐오스럽다는 듯 레오를 바라보았다.
“부정하고 타락한 자여. 페가수스의 성역에 침입한 이유가 뭐지?”
“지금 누구에게 부정하고 타락한 자라고 지껄인 거지?”
아르피아의 말에 로디아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피아가 힐끗- 로디아를 바라보았다.
“어린 드래곤이군. 이 타락한 자와 같이 이 성역에 침입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페가수스. 지금 기회를 주지. 카일님을 부정하고 타락한 자라고 부른 것을 사죄해. 그러면 이번만큼은 너그럽게 용서해주지.”
“어린 드래곤이 건방지군.”
아르피아의 말에 로디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순간 로디아와 눈이 마주친 아르피아가 흠칫했다.
‘이게…… 어린 드래곤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란 말인가?’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느새 드래곤의 눈동자를 개방한 로디아는 살이 떨리는 기세로 아르피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개벽의 영웅들의 규합해 세계를 또 한 번 지켜낸 위대한 영웅.
지혜의 왕 리시나스의 후계자라 불리는 강대한 드래곤이다.
아무리 강력한 페가수스라도 간단하게 압도하는 건 당연했다.
일순간 주변의 페가수스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로디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르피아의 말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카일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시작의 영웅.
로디아가 알고 있는 가장 고결한 다섯 사람 중 한 명.
그런 카일이 부정하고 타락한 자라고 불리는 것을 모욕처럼 느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로디아의 머리를 꾹 눌렀다.
“진정해. 네가 몇 번이고 공략을 시도했다면 이런 취급에는 익숙할 거 아니야?”
“제가 당하는 것과 카일님께서 직접 당하는 건 달라요.”
“날 위해주는 건 고마운데 참아. 이 당시의 난 이런 취급을 당해도 할 말 없었으니까.”
로디아를 진정시킨 레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성역에 침입한 것과 적대감을 드러낸 건 사과할게. 하지만 나는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
“…… 그대가 이곳에 무슨 볼일인가?”
불신 어린 눈빛을 보내는 아르피아와 페가수스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순백의 왕을 만나러 왔다.”
“왕을 만나고 싶다고? 이유가 뭐지?”
“맹약을 맺기 위해서.”
“계약?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르피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뿐만 아니다.
모든 페가수스들이 비웃음을 날렸다.
이곳에 있는 페가수스는 레오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살아남는 영웅.
언제 세상이 멸망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그 멸망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겁쟁이.
희망을 비웃고 부정하는 자.
그것이 살아남는 영웅 카일이다.
그런 카일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존재인 순백의 왕과 계약을 맺고 싶다고 한다.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주제 파악을 해라, 살아 남는 영웅. 네놈은 우리의 왕의 맹약자로 결코 어울리지 않다.”
아르피아가 레오를 노려보았다.
“그대가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지금 이 가드스론에서 그대만큼 강한 자는……. 그래, 고결한 빛을 품고 있는 드래곤, 리시나스 뿐이겠지.”
“하지만 리시나스는 페가수스와 계약하지 못해.”
“그래, 그녀는 우리와 계약을 맺을 수 없어. 그래서 안타깝지. 그녀가 흑룡만 아니었다면 분명 왕의 계약자로 어울렸을 텐데.”
씁쓸한 미소를 지은 아르피아가 레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페가수스는 모든 환수 중 가장 고결한 존재. 절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게 우리 페가수스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이미 오래전 마음이 꺾여버린 그대 같은 자와는 계약이 불가능해.”
아르피아가 단언하듯 말했다.
“그대의 부름은 결코 우리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아르피아의 말에 로디아가 팔짱을 꼈다.
“계약하고 말고는 순백의 왕이 결정할 일이잖아? 만나게라도 해줘.”
“흥. 살아남는 영웅을 왕께 데려가는 것도 불경한 일이지만……. 왕께서는 지금 깊은 잠에 빠져 계시다. 증오스러운 타르타로스와의 사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잠에 드셨지.”
‘이때는 잠들어 있었구나.’
알부스는 재앙의 시대의 초창기 부터 타르타로스와 싸웠다.
그 오랜 싸움에 지쳐 힘을 회복하기 위해 잠이 들었다는 사실은 레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과 계약을 맺기 직전인 지금까지인 건 처음 알았다.
“자. 볼 일을 마쳤다면 성역에서 물러가라. 살아남는 영웅과 어린 드래곤이여.”
그 말에 로디아가 인상을 찡그릴 때였다.
우웅-
레오가 영력을 일으켰다.
레오의 손바닥 위로 소환진이 생성 되었다.
그걸 본 로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페가수스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는 짓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아르피아의 말에 로디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깨어나. 알부스.’
레오는 오래전 헤어진 맹약자를 불렀다.
‘네 힘이 필요해.’
우우웅-!
회색의 소환진이 강한 빛을 내뿜었다.
그 순간.
번쩍! 콰가가가가가강-!
순백의 벼락이 휘몰아쳤다.
그걸 본 페가수스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력한 영력의 폭풍이 레오 주변에서 일렁였다.
화악-!
소환진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새하얀 공간.
그곳에는 어느새 레오와 순백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만이 남아 있었다.
소녀, 알부스는 레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날 잠에서 깨울 수 있는 건 맹약자 뿐입니다.”
알부스는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난 당신과 맹약을 맺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어떻게 날 깨울 수 있었던 건가요?”
“글쎄.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운명?”
레오는 자신의 맹약자를 보며 웃었다.
“머지않은 미래. 넌 분명 나와 맹약을 맺었을 거야. 그게 조금 당겨졌을 뿐이지.”
“무슨 그런 황당한 말을.”
“중요한 건 내 부름이 너에게 닿았다는 거고. 내 영력이 너를 잠에서 깨웠다는 거야.”
알부스는 레오의 몸에서 느껴지는 영력에 눈을 크게 떴다.
‘이 영력은 대체 뭐지?’
페가수스의 왕으로서 수많은 고결한 존재들과 만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한 영력을 지닌 자들은 한 명도 없었어.’
어쩌면 맹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잠에서 깨어난 건 이 순수한 영력 때문일지도 몰랐다.
“당신은 제가 원하는 걸 이루어줄 수 있나요?”
“물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레오를 보며 알부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듣지도 않고 대답하시는군요.”
“재앙의 불꽃을 토벌하는 거잖아?”
레오의 대답에 알부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 힘이 필요해.”
레오가 알부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자.”
알부스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알부스는 눈앞의 남자가 낯설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
알부스 자신은 아직 모르는 미래에 자신의 맹약자가 될 이의 손을 알부스는 망설임 없이 잡았다.
“정말……. 오랜만이야.”
“네?”
놀라는 알부스에게 레오가 쓴 미소를 지었다.
“혼잣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