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391)
391.
레오와 리시나스가 머무는 주점 여관.
여관의 주인, 틸라는 천으로 그릇을 닦아내며 하소연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어.”
“뭐가요?”
틸라의 곁에서 그릇 정리를 도와주던 로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일과 리시나스.”
틸라는 주점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오와 리시나스를 흘겨보았다.
“저 두 사람 때문에 손님이 끊겼잖아.”
살아남는 영웅 카일과 어리석은 자 리시나스.
두 사람 모두 압도적인 실력자인 만큼 가드스론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이들 중 두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자는 드물다.
하지만 함께 한 동료들이 죽는다는 징크스가 있는 카일과 세계를 구하자며 위험한 전장으로 뛰어드는 리시나스는 분명 엮이지 않고 싶은 조합이었다.
툴툴대는 틸라를 보며 로디아가 빙긋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두 분을 응원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응?”
“카일님이 그랬어요. 틸라님은 입으로는 투덜거려도 잘 챙겨주시는 분이라고요.”
“저 무례한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다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틸라가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로디아.”
“네.”
“넌 드래곤인데 왜 꼬박꼬박 나에게 존대를 하는 거니?”
“이게 편해서요.”
로디아가 빙긋 웃었다.
드래곤은 영웅을 선별하고 이끄는 전통을 가진 종족이다.
5000년 전. 재앙의 시대가 종식 된 이후부터 시작된 그 전통은 지금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드래곤은 다른 종족에 비해 숭고한 존재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신의 시대 당시 드래곤의 위상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신의 사자라 불린 신의 시대 당시에 드래곤의 위상은 신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틸라로서는 자신에게 깍듯이 대하는 로디아의 태도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로디아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머나먼 과거의 사람.
‘그리고 대영웅님들이 편히 휴식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셨던 분이니까 함부로 대할 수 없지.’
음음-! 로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그락- 달그락-
그릇을 정리하며 틸라가 말했다.
“그나저나. 어울리네.”
“뭐가요?”
“저 두 사람 말이야.”
틸라는 힐끗-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레오와 리시나스를 바라보았다.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면. 둘이 잘 맞는 것 같아.”
“틸라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래. 평화의 시대였다면 연인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죠? 누가 보더라도 카일님에게는 리시나스님이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죠?”
“세상에서 가장 어울린다는 말은 안 했어.”
“두 분은 천생연분이 분명해요!”
틸라는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혼자 기뻐하는 로디아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릇을 모두 정리한 후 로디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만한 숫자가 용케 모였군.”
“어려웠어. 네가 워낙 악명이 높았으니까. 그래도 목표로 했던 이들은 모두 합류했어.”
“두 분, 무슨 대화를 하고 있으세요?”
레오와 리시나스 사이에 냉큼 앉은 로디아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레오는 주황빛 눈동자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고 있는 로디아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리시나스는 그런 로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틀 후에 있을 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요 며칠.
리시나스는 로디아를 매우 귀엽게 여기게 되었다.
내용물은 어떨지 몰라도 겉모습은 아직 어린 드래곤.
리시나스로서는 로디아가 귀엽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리시나스의 말에 로디아가 카일에게 물었다.
“마물의 숲으로 향하는 이번 원정에 총 몇 명의 인원이 가게 되었나요?”
“11명.”
“11명이요? 그렇게나 많아요?”
카일의 대답에 로디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래 역사 속에서 원정대의 인원은 카일과 리시나스를 포함해 8인이었다.
분명 이 절망적인 시대에도 희망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자는 있다.
이 시대에 영웅이라 불릴만한 자들이 대영웅들만 있었다면 진즉에 멸망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카일과 리시나스의 여정에 뜻을 함께할 이는 극소 수밖에 남아 있지 않던 시절이다.
이 세계를 몇 번이나 공략 시도한 로디아조차도 어떻게든 원정대의 숫자를 올리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한정된 시간으로는 카일과 리시나스에 대한 평판을 바꾸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 원정대의 숫자가 세 명이나 더 늘어났다.
명단을 본 로디아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단해요!”
“카일 때문에 힘들었지만.”
“네?”
실제 역사보다 많은 동료를 모았음에도 한숨을 쉬는 리시나스를 보며 로디아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나 때문에 원정에 선뜻 나서지 않으려던 녀석들을 내가 설득해서 겨우 참여한 거야.”
“그렇군요. 카일님 성격이 얼마나 개차반이면…….”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 나쁘네? 너 요 며칠 너무 기어오른다?”
꽈악-!
“아, 아파요!”
레오가 머리를 틀어쥐자 로디아가 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시나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둘은 정말 친하네. 뭐랄까, 부녀 사이 같아.”
그 말에 로디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고 레오는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이만한 딸을 가질 나이는 아닌데?”
“응. 그렇지. 이지만 뭐랄까, 로디아는 널 굉장한 어른처럼 대하고 넌 로디아를 어린애처럼 대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전 리시나스님이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리시나스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아이가 있을 만한 나이는 아닌데?”
“얘가 보기에는 네가 늙어 보이겠지.”
“요 며칠 동안 무례한 말을 하지 않더니 본성이 어딜 가는 건 아닌가 모양이네.”
진심을 담아 말하는 레오를 보며 리시나스가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분명 부드럽게 웃고 있었지만, 그 여리고 아름다운 팔뚝에는 힘줄이 확실히 올라와 있었고 손은 거칠게 레오의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뒤 리시나스가 원정대를 불러온다며 밖으로 나갔다.
“아빠, 그래서 엄마랑 결혼은 언제 해요?”
“너 그 징그러운 어린애 흉내 언제까지 낼 거야?”
“로디아는요. 동생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너 계속 장난치다가 진짜 한 대 맞는 수가 있다?”
레오의 말에 로디아가 ‘쳇!’ 하고 혀를 찼다.
“왜 그렇게 혼자 신났냐?”
“틸라님이 카일님과 리시나스님이 천생연분이라고 하셨거든요!”
그 말에 레오는 카운터에 있는 틸라를 바라보았고 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 바보 같을 정도로 고집불통인 세이룬도 인정할 거예요.”
“세이룬이 뭘?”
“가장 어울리는 한 쌍은 리시나스님과 카일님이라는 것을요!”
로디아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대단히 진지한 표정을 짓는 로디아를 보며 레오는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라는 표정을 지었다.
로디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영웅의 세계에서 루나와 리시나스의 마음을 확인한 둘이 어떤 조합이 어울리느냐를 가지고 싸웠다는 거다.
“너희 그러고 노니?”
“엄청 중요한 문제거든요? 데미안은 제 편이었지만 아조니아 녀석은 세이룬 편이었어요! 루메른은 치사하게 중립이었고요!”
쓸데없는데 놀랍도록 심력을 낭비한 후배들을 보며 레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룬, 고 계집애는 자기 글솜씨가 좋은 걸 악용해서 이상한 소설까지 출간해서 사람들을 세뇌하려고까지 했어요. 악독한 녀석.”
“……이 망할 것들이 등신이니 병신이니 하는 소리를 그러면서 했군?”
볼을 꼬집힌 로디아가 울상을 지으며 허우적거렸다.
그러는 사이 여관 문이 열리며 10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레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모두가 아는 얼굴이다.
함께 전장에 나섰던 얼굴.
그리고…….
‘일찍 목숨을 잃었던 녀석들.’
그들의 힘이 나약해서도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저 함께 맞서 싸웠던 전장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뿐이었다.
로디아 역시 조금 전 가벼운 분위기를 벗어 던지고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다.
터벅- 터벅- 터벅-
리시나스를 제외한 아홉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중 대부분의 시선은 레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이었네요.”
레오 옆으로 한 여인이 앉으며 웃었다.
“카일, 당신이 리시나스의 여정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갈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경갑 차림의 여인.
알레네 프리레네 였다.
“오랜만이군.”
“음, 지난 전 전장에서 만났으니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것 같지만. 오랜만이네요. 카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알레네는 레오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훗, 살아 남는 영웅과 함께하는 여정이라.”
한쪽 눈에 검상을 입은 날카로운 눈빛의 엘프 마도사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모두 다 죽는 게 아닐지 모르겠군.”
“우하하하! 페리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카일 옆에 앉는군. 아까 전 카일의 말에 감동한 건가?”
페리크라 불린 엘프 마도사의 옆에 털썩 주자 앉으며 거대한 덩치를 가진 수인 전사. 알록스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흥. 단순 무식한 수인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난 리시나스을 돕기 위해 왔을 뿐이다. 이 녀석 옆에 앉은 건 그저 이 비관주의자 녀석이 왜 마음을 고쳐먹은 건지 궁금한 것뿐이고.”
페리크와 알록스를 보며 로디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시나스님이 원정대에 합류시키려 했지만 끝내 합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잖아?’
리시나스가 어떻게든 설득했지만 이번 원정에서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던 이들이다.
“어떻게 설득하신 거예요?”
로디아가 작게 웃으며 묻자 레오가 덤덤히 대답했다.
“이 두 녀석, 그리고 알레네 프리레네와는 잠깐 같이 파티를 맺은 있었어. 생각이 맞지 않아서 틀어졌지만.”
“크큭! 아주 삐딱하길래 어쩔 수 없이 갈라섰지! 지금 생각하면 잘 갈라선 것 같지만!”
알록스가 레오에게 어깨동무했다.
레오는 그저 술을 홀짝일 뿐이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변했군.”
알록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리시나스가 말했다.
“우선 이번 모임은 원정대를 나서기 전에 친분을 다지자는 의미에서 모였어.”
리시나스가 빙긋 웃었다.
“목숨을 걸기 전 즐겁게 마시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좋지!”
“우린 술을 위해서 사니까!”
와하하하! 주점이 떠나가라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일과 리시나스와 엮이고 싶은 이는 가드스론에 없다.
하지만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런 건 소용없었다.
지금 시대는 매 순간이 목숨이 오가는 시대.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상대가 누구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것이 곧 마지막 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자신에게나.
세계에게나.
모두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시작하기 전에 살아남는 영웅에게 이번 원정에 대해 묻고 싶은데?”
그때 살짝 장난기 섞인 야유가 들려왔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카일에게 향했다.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를 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아까 탐식왕에 대한 정보를 들었어.”
그 말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탐식왕 요르문간드.
최강의 군단장.
“놈이 가드스론과 엘프의 숲 사이를 지나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레오의 말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그 정보는 어디서 들었는데?”
리시나스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서. 아마 꽤 확실할 거야.”
모두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번 원정을 미루는 것도 상책이겠지.”
“그러자는 뜻인가?”
알록스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아니.”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놈을 토벌하자는 얘기다.”
“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탐식왕은 군단을 이끌지 않아. 그런데도 우리가 녀석을 상대하기 힘들었던 건 매번 다른 군단장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요르문간드는 최강의 군단장이며 그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
요르문간드 자신은 혼자 움직이려고 해도 어딘가를 공격하려고 하면 그를 돕는 다른 군단이 있다.
‘5000년 전, 요르문간드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원정대에게 요르문간드와의 조우는 엄청난 위기였지만 반대로는 최강의 군단장을 토벌할 기회였다.
리시나스는 도주가 아닌 전투를 선택했고 카일과 이들은 그 뜻에 따랐다.
무모하기까지했던 전투.
그 결과 기적적으로 탐식왕을 토벌할 수 있었고 그 승리는 희망의 서막이 되었다.
“그러니 말할게. 물러설 이들은 지금 여기서 물러서.”
그 말에 모두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네 뜻이 사실이라면.”
알록스가 씩 웃었다.
“가슴이 떨리는군!”
“무모하기 짝이 없군.”
페리크가 혀를 찼지만 그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레오 역시 알고 있다.
이들이 물러서지 않을 거란 사실을.
“요르문간드와의 전투인가! 목숨을 걸 가치가 있겠어!”
알록스가 기운차게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5000년 전에는 모두 죽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 여기서 그들을 살린다고 해도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이.
희망의 초석이 되기 위해 희망조차 보지 못한 그들이.
‘다시 한번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레오가 손을 쥐었다.
‘이번에는……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