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392)
392.
끼이이이이이익-! 쿵-!
가드스론의 성벽이 열렸다.
그 문을 통해서 12인의 영웅이 나아갔다.
“엘프의 숲으로 간다고 했던가?”
“어리석은 자의 말에 정말로 목숨을 건다고?”
“차라리 이곳이나 잘 지켜주지.”
“저것 봐, 살아남는 영웅도 있어.”
“다 죽을지도 모르겠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웅성거렸다.
레오와 리시나스를 향한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 로디아의 서늘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레오는 손을 뻗어 그런 로디아의 머리를 꾹 눌렀다.
“신경 쓰지 마.”
“대놓고 저러는데 화나지도 않으세요?”
“난 익숙하니까. 그리고.”
레오가 피식 웃었다.
“뭐랄까, 세상을 구한 위인이라고 떠받들어지는 데 익숙해졌다가 과거로 돌아오니 오히려 저런 반응도 신선하네.”
“카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어쩔 수가 없네요.”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철저하게 응징하려고 했죠.”
로디아의 말에 레오가 혀를 찼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리시나스가 다가왔다.
“로디아, 정말 괜찮겠어?”
“물론이죠! 리시나스님!”
로디아는 괜찮다는 듯 가슴을 쫙 폈다.
“리시나스님과 카일님의 여정에 따라갈 수 있다니! 제게 무한한 영광인걸요?”
“로디아, 너 치유마법을 쓸 수 있다고 했지?”
“응.”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알레네가 묻자 로디아가 그녀에게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리시나스가 말했다.
“저런 애를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
“보면 볼수록 요즘 애들답지 않네.”
“지금 그 말, 엄청 나이 들어 보이는 거 알아?”
그 말에 리시나스가 레오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시선에도 킥킥 웃는 레오를 리시나스가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레오는 예상했다는 듯 간단하게 그 공격을 피했다.
“기분 나빠.”
“뭐가?”
“마치 날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잖아.”
리시나스가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그런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가 음을 터트렸다.
“다 이해한다는 듯한 그 웃음도 마음에 안 들어.”
눈을 흘긴 리시나스는 한숨을 쉬며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내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것 같아.”
원정대의 목표는 엘프 숲의 루나와 합류하는 것에서 탐식왕의 토벌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원정대를 이끄는 리더인 리시나스로서는 그 선택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카일, 너는 불안하지 않아?”
“불안해.”
레오는 리시나스처럼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괜찮아. 해낼 수 있어.”
레오가 손에 뻗어 리시나스의 손을 잡았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활로를 열어줄 동료를 만날 거야.”
레오의 말에 리시나스는 손의 떨림이 차츰 잦아드는 걸 느꼈다.
“커다란 두려움과 마주했을 때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는 동료도 만날 거고.”
리시나스의 검은 눈이 레오의 얼굴을 담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믿을만한 무구를 만들어 줄 동료를 우린 꼭 만날 거야.”
어느새 떨림은 사라졌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당연하지. 누구 선택인데.”
그 말에 리시나스가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오호? 뭔가? 이 므훗한 분위기는?”
수인, 알록스가 눈을 빛내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뭔가 기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군? 두 사람, 그렇고 그런 관계인가?”
“아니.”
리시나스가 딱 잘라 대답하며 잡힌 손을 뺐다.
“후후! 부정하지 말게! 리시나스여! 그건 전혀 부끄러운…… 커헉?!”
“네네. 수인 아저씨. 분위기 좋은 거 알면 방해하지 마세요.”
어느새 나타난 로디아가 작은 주먹을 알록스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쓰러진 그를 끌고 가며 레오와 리시나스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로디아는 왜 계속 나와 너만 보면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는 걸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낸 들 아냐.”
***
가드스론을 떠나고 반나절 후.
원정대는 안전한 가드스론의 권역을 벗어났다.
온갖 몬스터와 마물이 득실거리는 지역.
운이 나쁘면 고위 마족과 조우할 수도 있다.
원정대는 긴장된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나아갔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야영 준비를 마치고 불을 피운 후 식사를 했다.
간단한 보존식으로 배를 채운 원정대는 불침번을 정하고 잠에 들었다.
제일 처음으로 불침번을 서게 된 건 레오와 알레네였다.
“오랜만이네요. 가드스론을 떠난 건.”
“그래. 그러니 긴장을 늦추지 마.”
“늦추지 않아요.”
재앙의 시대의 밤은 위험하다.
전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상황.
달빛과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밤하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했다.
타닥- 타다닥-
모닥불이 타들어 갔다.
“카일, 순백의 왕과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알레네가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그 물음에 레오는 대답 대신 알부스를 소환했다.
순백의 원피스 차림의 알부스는 이곳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가드스론의 바깥이군요.”
알부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 알부스를 보며 알레네가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순백의 왕이시여.”
“당신은 아르피아의 맹약자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알부스는 알레네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런 알부스의 소환에 반응해서일까?
잠들어 있는 리시나스 쪽에서도 환수와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진이 펼쳐지기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네.”
카타리우는 몸을 둥실 띄운 채 레오 쪽으로 날아와 말했다.
“이봐, 인간. 환수왕과 계약을 맺은 게 자랑할 일인 건 알겠는데. 자랑거리로 삼는 건 자제해 줄래?”
카타리우는 카일이 지난 시간 동안 리시나스에게 범한 무례를 봐왔기에 까칠하게 말했다.
또 다른 리시나스의 맹약자인 루미너스의 경우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삐딱한 성경의 카타리우는 아니었다.
“순백의 왕, 당신도 구경거리가 되려고 이 작자와 계약한 건 아니잖아?”
“저에게 계속 무례하게 굴면 후회하실 텐데요, 염제.”
“진정해, 저 닭다리는 원래 저래. 말은 저렇게 해도 챙겨 줄 땐 챙겨.”
레오가 손을 뻗어 알부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떨쳐내려던 알부스가 레오의 손길에 멈칫했다.
뭔가 묘하게 익숙하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이 좋았다.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던 알부스의 눈이 살짝 풀렸고 어느새 레오의 쓰다듬을 즐겼다.
“카타리우, 말이 너무 심해요.”
루미너스가 나무라듯 말했다.
그에 카타리우가 코웃음을 쳤다.
“그 루나라는 엘프도 요정왕 후계자의 맹약자라고 했던가? 엘프라면 교양이 있겠지. 카일보다는 기대가 되네.”
“그 교양 있는 엘프는 널 기름에 튀겨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만들자고 할걸?”
“엘프들이 너처럼 교양 없는 종족인 줄 아니?”
‘최소한 내가 아는 엘프 중에는 제정신이 제대로 박힌 녀석들이 잘 없는데.’
레오가 전생과 후생을 통틀어 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엘프들을 떠올리는 사이.
스윽-!
잠들었던 리시나스가 몸을 일으켰다.
“미안해, 리시나스. 우리가 떠들어서 깼니?”
알레네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리시나스는 대답하지 않고 모닥불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 저 너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스릉-!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
알레네 역시 무언가 일이 생겼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너흰 여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카타리우, 루미너스. 너희도 마찬가지야.”
그 말을 남기고 리시나스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리시나스의 반응에 가장 놀란 건 카타리우와 루미너스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뻐끔거리는 둘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내가 따라가 볼게.”
“어둠 속에서 리시나스를 쫓아가는 건 불가능해요.”
흑룡인 리시나스는 그 누구보다 어둠에 친숙한 존재다.
달빛과 별빛조차 사라진 재앙의 시대의 깊은 밤.
이 시간대에 리시나스를 쫓는 건 루미너스의 말 대로 불가능했다.
“보통은 그렇지.”
레오가 어둠 속으로 향하며 말했다.
“하지만 난 가능해.”
***
재앙의 시대 당시.
깊은 밤 시야를 밝히는 마법을 쓰는 건 매우 위험한 행위다.
하지만 레오에게는 어둠이 조금의 장애도 되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레오는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초감각.’
오러를 이용해 초감각을 개방했다.
용자 아르온의 기술.
어둠 속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레오는 은밀하지만 빠르게 리시나스가 남긴 마나의 흔적을 쫓았다.
잠시 후.
‘대체 얼마나 빠르게 간 거야!’
리시나스의 뒤를 쫓으면서 레오가 속으로 소리쳤다.
레오조차도 지금의 리시나스를 쫓아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리시나스 녀석,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5000년 전과 지금.
원정대의 이동 경로는 똑같다.
하지만 5000년 당시 이 구역에서 전투는 없었다.
‘적이 있었다고 해도 난 전혀 느끼지 못했어.’
말 그대로 돌발상황.
당황한 표정을 짓던 레오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초감각에 의해 날카로워진 시야에 의해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탓에 이미 야영지에서 한참 벗어났다.
그때 레오의 눈에 널브러진 시체가 보였다.
몬스터나 마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타르타로스의 마족도 아니었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인간들.’
세계를 등진 배신자들.
그런 그들이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어진 것처럼 참혹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레오는 그 시체에서 느껴지는 마나가 매우 낯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의 마나인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리시나스.’
일순간, 레오는 당혹감을 느꼈다.
지혜의 왕 리시나스.
지혜롭고 자애롭던 에레보스 토벌대의 리더.
세계에 희망을 안겨준 고결한 대영웅.
그녀는 본디 흑룡이었다.
신의 시대까지만 해도 어둠 속에서 배신자를 척결했던 용족.
하지만 흑룡의 의무를 행하기에는 리시나스는 너무 착했다.
배신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의 목숨을 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런 시대가 아니었으면 이 사람들에게도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몰라.’
레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오는 리시나스를 대신했다.
그 손을 배신자들의 피로 더럽히지 않도록.
자신은 배신자를 연민하지도 안타깝게 여기지도 않으니까.
심판자로서 자신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혹시나 리시나스가 어둠에 물드는 게 무서웠으니까.’
레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고통에 찬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하늘 높이 흑룡 한 마리가 치솟았다.
온몸에 불길한 검붉은 기운을 내뿜는 흑룡의 몸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참혹한 상처투성이의 흑룡은 증오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숨을 들이켰다.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주변을 덮쳤다.
브레스.
레오가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화악-!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운 어둠이 하늘로 치솟았다.
댕겅-!
어둠의 칼날이 흑룡의 목을 참수했다.
후우우웅-! 콰아아앙-! 철벅-!
이름 모를 흑룡의 몸이 허무하게 추락했다.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전 마법.
‘리시나스의 마력.’
하지만 레오는 모르는 마법이다.
레오는 흑룡이 죽은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피바다 한가운데 온몸이 동족의 피를 뒤집어쓴 여인.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오랜 세월 같이 싸웠던 레오조차도 본 적 없는 모습을 한 리시나스는 그녀답지 않은 싸늘한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레오의 존재를 인지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일?”
“무슨 짓을 한 거야, 리시나스.”
레오는 침음을 삼키며 물었다.
리시나스는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그래, 해야 할 일인 건 알겠어. 그런데 네가 이런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 어둠 속에서 배신자를 처단하는 건 네 일이…….”
“그건 내 일이야, 카일. 난 흑룡이잖아.”
리시나스가 무슨 소리냐는 듯 대답했다.
“넌 빛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해. 그게 네가 해야 할 일 이잖아?”
리시나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카일, 그건 네가 해야 할 일이잖아.”
“뭐?”
믿음과 확신에 찬 그 얼굴을 한 리시나스가 말했다.
“넌 세상을 구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