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26)
426.
완연한 여름.
워프 게이트가 번쩍였다.
그와 함께 주황색 머리를 가진 소년이 워프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서부는 중부보다 확실히 덥네.”
목깃을 잡고 흔들어 더위를 쫓으며 칼이 다른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쨍하게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이 여름을 확연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이럴 때 클로에라도 있으면 참 좋은데 말이야.”
얼음 마법사를 떠올리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칼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칼의 고향이 모이라 왕국이나 루메리아 시티는 이런 찜통 같은 날이면 거리에서 쉽게 시원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었다.
‘확실히 시골 왕국이라 그런가? 그런 게 하나도 없네.’
대륙 중부에 위치한 모이라 왕국은 나라는 작지만, 무수히 많은 인구와 물류가 오가는 요충지며 루메리아 시티는 말 그대로 세계의 중심이라 불릴 정도로 발달 된 도시다.
그만큼 도시의 인프라 역시 발전되어 있지만, 이곳, 서부 변방 왕국 델라드는 그런 것이 없었다.
‘여기서 사업하면 대박 날 것 같은데. 수도니까 나름대로 돈도 있을 거 아니야?’
칼은 델란의 거리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여름 방학 내내 이곳에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해봤지만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 오래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네.’
입맛을 다시며 칼이 걸음을 옮길 때였다.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말을 타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 하나를 호위하듯 걷고 있었다.
칼은 마차에 있는 깃발을 확인하고는 길을 비켰다.
델라드 왕가의 상징이 수놓아져 있었다.
‘왕족이 탄 마차군.’
칼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거기, 주황 머리카락.”
마차 쪽에서 칼을 불렀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교복 차림을 한 칼 또래의 소년이 말을 몰고 다가오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감히 왕족이 지나가는데 길을 막는 것이냐?”
소년의 말에 칼이 머리를 긁적였다.
칼은 마차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길을 비켰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나온 걸 보니 아무래도 귀찮은 일에 휘말린 모양이었다.
“제가 대륙 중부 출신이라서요. 관광을 와서 이 나라 법에는 어둡습니다. 왕족이 지나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왕족의 마차가 지나갈 때는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예의다.”
“예. 알겠습니다.”
왕국마다 예법도 다르다.
칼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느니 적당하게 넘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 칼을 보며 소년, 걸리번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흥. 아무리 평민이라도 다른 나라에 관광을 온다면 그 나라의 예법 정도는 파악하고 와라. 델라드에 온 기념으로 델란 왕립 학교의 최우등생인 내가 친히 예법 지도를 해준 걸 영광으로 알도록.”
“그거 고맙네요.”
칼이 빙긋 웃었다.
어딜 가나 귀족 중에는 이런 부류의 인간이 있다.
‘왕자님이랑 같이 안 와서 다행이야.’
칼은 자신이 태어난 왕국의 왕세자이자 아카데미 동급생에 같은 기숙사를 사용하는 듀란을 떠올렸다.
방학이 시작하고 다음 날, 아침.
칼의 방에는 초대장 하나가 날아와 있었다.
보낸 이는 무려 드래곤 로드.
탄성을 내지르며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할 때쯤.
‘칼 토마스, 네놈도 초대장을 받은 거냐?’
아침으로 나온 식빵을 막 한입 베어 먹었던 칼은 느닷없이 부엌으로 들이닥친 듀란을 보며 체할 뻔했다.
아침부터 갑작스러운 왕족, 그것도 왕세자의 방문에 난리가 났던 부모님을 떠올리며 칼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집안의 영광이네 뭐네 떠들며 칼은 자기 자리에서 쫓겨났고 듀란은 뻔뻔하게 칼의 집에서 아침까지 융숭하게 대접받았다.
‘엄마, 나 아침은?’
‘넌 왕세자 전하께서 다 드신 다음 먹어.’
남의 집에 당당하게 쳐들어와서 남의 밥을 뻔뻔하게 먹으며 식사 허락까지 하던 듀란을 떠올리며 칼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플로브 가문의 영토라면 레오 플로브의 영토를 말하는 건가?’
‘그렇겠지? 그나저나 마법 통신으로 너랑 친한 녀석들이랑 이야기하면 되지 왜 아침부터 쳐들어와?’
‘흥, 초대장을 받은 이는 극소수뿐이다. 여러 명에게서 확인을 이미 했다.’
꼭두새벽부터 루메른 동기생들에게 마법 통신을 보내 확인한 모양이었다.
대충 정보를 확인한 듀란은 그대로 떠나갔다.
하마터면 동행할 뻔했지만, 칼은 레오랑 놀기 위해 다른 학생들 보다는 일찍 레오의 집에 갈 예정이었다.
‘아마 같이 왔으면 난리가 났겠지.’
칼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마차에서 문이 열렸다.
마차를 호위하던 델란 왕립 학교 학생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며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칼에게 으스대던 델란 왕립 학교 학생 역시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칼을 힐끗 올려다보며 눈짓을 했다.
“델라드 왕국의 왕세자님이다. 얼른…….”
“루메른 아카데미의 칼 토마스 학생 아닌가? 레오 경의 친구.”
“왕세자님이셨군요.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칼이 예를 취했다.
지난 정상회의 당시. 레오를 통해 알게 된 델라드 왕국의 왕세자, 데벤 왕자였다.
루메른이라는 말에 칼에게 으스대던 델란 왕립 학교 학생, 걸리번이 눈을 부릅떴다.
“방학을 이곳 델라드에서 보낼 예정인 모양이군.”
“네, 레오에게 초대를 받았습니다.”
칼이 빙긋 웃었다.
평민이지만 능글맞은 데다가 명가 출신 학생들이 모인 노블의 소속이다 보니 예법에는 익숙해졌다.
그런 칼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던 데벤 왕자가 힐끗 걸리번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왕립 학교 학생이 실례를 저지른 건 아닌가 모르겠군.”
“모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칼은 능글맞게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걸리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플로브 가문의 저택까지 데려다주지.”
“번거롭게 안 그러셔도 되요.”
“사양하지 말게. 사실 그대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은 것도 있네.”
“자문이요?”
“그래, 히어로 레코드에 관한 것이지.”
히어로 레코드라는 말에 칼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우리 왕국 내에서 히어로 레코드 조각으로 의심되는 물건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서 말일세. 마침 오늘 그중에서 선별한 물건들을 왕궁으로 옮기고 있었네. 루메른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자네는 히어로 레코드를 많이 접해봤을 거 아닌가?”
데벤 왕자가 빙긋 웃었다.
“그 물건들을 자네가 한 번 봐주게.”
히어로 레코드는 발견만으로 나라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강력한 물건이다.
그런 만큼 무수히 많은 가짜가 쏟아진다.
‘그렇다고 한 나라의 왕세자가 부탁한 걸 거절할 수도 없고.’
볼을 긁적이며 칼이 말했다.
“아직 학생 신분인 만큼 제 눈을 그렇게 신뢰는 안 하셨으면 합니다.”
“그 부분은 걱정말게.”
칼은 데벤 왕자의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안에서 칼은 가운데 있는 고급스러운 함을 발견했다.
마법으로 봉인된 함에 데벤 왕자의 손이 닿자 마법진이 떠올랐다.
달칵-!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를 내며 함이 열렸다.
안에는 마나를 품은 수많은 종이조각이 있었다.
‘역시 이런 물건들이네.’
마력이나 영력을 품은 오래된 마도서나 소환서의 조각들이 보통 히어로 레코드로 의심을 많이 받는다.
‘성운의 시조 루나? 우와, 심지어 지혜의 왕까지.’
대영웅의 이름이 쓰인 종이조각까지 발견한 칼이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대영웅들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진위를 파악하기 힘드니 히어로 레코드의 위서 중에는 대영웅과 관련 된 게 가장 많기는 하지. 시작의 영웅과 관련 된게 엄청나게 많네.’
칼은 기록들을 살피며 가짜가 확실한 것들을 분류했다.
“제가 보기에는 이 기록들은 위서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이건 왜 제외하지 않은 건가?”
데벤 왕자는 거의 불타 사라진 종이조각을 들어 올렸다.
희미하게 ‘아르온’ 이라고 적힌 작은 종이였다.
“보통 대영웅과 관련된 기록들은 그렇게 작은 조각들이 많아서요. 뭐, 사실 저보다는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하는 게 좋겠지만요.”
칼의 말에 데벤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마차는 플로브 가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기회가 되면 레오 경과 함께 왕궁을 방문해주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이 떠나는 왕세자 마차에 인사했다.
“네가 왜 우리나라 왕세자 마차에서 내려?”
“오우! 레오! 방학은 잘 보내고 있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칼이 반갑게 인사했다.
“오다가 우연히 마주쳤어.”
어깨를 으쓱거린 칼을 보며 피식 웃은 레오가 정문을 열었다.
“방학은 잘 보내고 있냐?”
“그럭저럭.”
“숙제는? 한 것만이라도 좀 보여주면 안 되냐?”
“마음대로 해.”
“크~ 역시 너밖에 없다! 친구야!”
칼이 레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그런 칼의 뒷모습을 보며 레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아마 숙제할 시간 없을 거야, 칼.’
***
“집에 레오의 학교 친구가 놀러 온 건 첼시라는 아이 이후 처음이군.”
그날 저녁.
칼은 레오의 아버지인 데이드와 레이나에게 환대를 받았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이 데이드에게 인사했다.
“얘, 칼. 레오에게 기사학과 친구는 없니? 마법학과 아이들만 놀러 오니 아쉽네.”
레이나는 볼을 감싸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칼이 말했다.
“첸 시아라는 애랑 일리아나라는 애가 있긴 하죠. 그런데 레오가 학교생활 이야기 잘 안 하나 봐요?”
“응. 우리 아들이 친구들 이야기를 잘 안해.”
입맛을 다시던 레이나가 물었다.
“정말 여자친구 없니? 학생회장이라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여자친구는 없죠. 그래도 2학년에서 제일 인기 있는 남학생이에요. 하루에도 편지를 여러 번 받아요.”
“오호. 오호.”
레이나가 눈을 반짝였다.
칼은 레오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오는 그런 칼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나가 툴툴거렸다.
“쟨 가만 보고 있으면 정말 아저씨 같다니까.”
“어른스럽다고 해주세요.”
“어른스러운 것도 정도껏이지.”
레오의 말에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너 학교에서 별명도 영감이나 뭐 그런 거 아니야? 얘, 칼. 레오는 학교에서 별명이 뭐니?”
아들의 학교 이야기를 들은 레이나가 조금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에 칼이 덤덤히 말했다.
“마왕이요.”
“마왕?”
“예, 중간고사 때 보여준 포스 때문에 애들이 마왕 레오라고 불러요.”
“넌 어째 별명이 영웅과는 거리가 머니?”
레이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나저나 너희도 고생이다. 방학인데 놀지도 못하고 수련회라니.”
이미 수련회에 대해 알고 있는 레이나가 말했다.
“뭐, 친목 도모도 할 수 있어서 좋죠. 어디 위험 지역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플로브 가문의 영지에서 하는 거잖아요. 깨끗한 잠자리와 식사가 있을 텐데요, 뭐.”
‘얜 아직 모르나 보네.’
플로브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레이나는 드래곤 로드가 선정한 수련회 장소에 갔었다.
그리고 그 현수막을 봤다.
“얘, 칼.”
“네?”
“더 먹어.”
“아, 저 배부른데요.”
“아니. 맛있는 거 최대한 많이 먹어둬.”
칼은 측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나를 보며 불안감을 느끼며 옆에 레오에게 말을 걸었다.
“야, 레오.”
“왜?”
“너 수련회가 어떤 건지 대충 알고 있어? 너희 영지에서 하는 거잖아.”
드래곤 로드가 많고 많은 곳 중 플로브 가문의 영지를 고른 건 학생회장이라 올 클래스인 레오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런 만큼 칼은 레오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칼의 물음에 레오는 묵묵히 자신의 접시 위에 있던 메인 요리를 칼의 접시에 덜어 줬다.
그걸 본 칼이 구슬픈 미소를 지었다.
‘우린 죽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