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79)
479.
레오가 패자의 무덤으로 돌아온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거대한 연병장에는 고아병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고아병들의 얼굴을 확인한 레오는 제레민 왕세자와 모닥불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릴에게 다가갔다.
“오오, 굉장히 맛있군요. 분명 특별한 비법으로 만들었겠죠?”
“그냥 평범한 군대식 조리법입니다. 왕세자인 제레민님 입맛에는 안 맞을 텐데 신기하군요.”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이죠. 하하하.”
“제레민님은 분명 훌륭한 왕이 될 겁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릴의 모습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던 제레민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흠흠. 그러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나라를 안정시키고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 훌륭한 배필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 겁니다, 아! 스…….”
방긋 웃으며 대답하던 릴이 레오를 발견했다.
그리고 반갑게 부르려다가 멈칫하더니 이내 소리쳤다.
“형님!”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릴을 보며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레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는 릴을 보며 어깨를 늘어트리던 제레민은 물론이고 그를 수행하기 위한 기사.
심지어 고아병들까지 밥 먹는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릴을 바라보았다.
“형님, 어디 갔다 왔어요?”
다시 한번 레오를 부르는 릴의 호칭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레오에게 향했다.
‘결국 남들 앞에서 날 저렇게 부르기로 한 거야?’
확실히 남들 앞에서 후배인 레오를 스승이라 부르는 건 이상했다.
그렇다고 해도 엄연히 스승인 레오를 함부로 부를 수 없다며 깊게 고민했었다.
그리고 기어이 호칭을 저걸로 정한 모양이었다.
-쟤도 확실히 특이해.
-삐약.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남성을 오빠라고 부르면 뭔가 굴복했다는 느낌이 나는데…… 형님은 별로 별로 흥분되지 않는 호칭이네요.
키르안과 피오라, 아티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왜요, 나름 귀엽지 않나요?
-전에부터 느낀 거지만 엘시도 감성이 참 특이하시네요.
엘시는 방긋 웃으며 말하자 라르엘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릴님. 레오님을 굉…… 아니, 조금 특이한 호칭으로 부르시는군요?”
제레민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릴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왕세자님께서도 아시겠지만, 형님은 비록 저보다 1년 후배지만 실력으로 보나 쌓아 올린 위업으로 보나 존경할만한 분이세요. 무려 루메른 학생회장에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영웅이니까요!”
“확실히 레오님은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오빠나 오라버니 같은 호칭도 있습니다만……?”
떨떠름한 제레민의 말에 릴이 정색했다.
“이미 후배 중에 형님을 오빠라 부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무척 귀엽거든요. 나이도 많은 데다 귀엽지도 않은 제가 형님을 그렇게 부른다면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겁니다.”
“이미 충분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혀를 찬 레오가 릴 곁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고아병들을 바라보았다.
“꼬마들을 완벽하게 굴복시킨 모양이군.”
“우리가 왜 꼬마야! 당신! 우리랑 나이 차도 얼마 안 나잖아!”
레오의 말에 멀지 않은 곳에 앉아 허겁지겁 빵을 먹던 소녀, 루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에 릴이 말했다.
“루. 형님께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윽! 아, 알겠어요. 대장.”
“대답은 짧고 우렁차게!”
“네!”
릴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치자 찔끔한 루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절도 있게 대답했다.
“음, 훌륭합니다. 이제 식사를 계속하세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릴을 보며 레오가 중얼거렸다.
“완전 군대잖아?”
“서열을 알려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했네.”
“아닙니다. 저는 저 아이들을 굴복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릴의 눈이 흐려졌다.
분위기로 본다면 고아병들은 릴을 따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근본은 바꾸지 못했다.
고아병들이 릴을 따르는 건 그녀의 강함을 인정했기 때문.
그리고 릴을 통해 더 강해지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전장에서 적을 죽이기 위해서.’
장송의 대공 아트칸이 계획해서 만든 고아병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애들은 5000년 전, 재앙의 시대를 산 것과 비슷할지도 몰라.’
5000년 전 자신의 제자를 포함해 이러한 비극을 겪은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비하르 역시 마음 깊숙한 곳까지 뿌리 뻗은 어두운 감정을 단번에 극복하는 건 무리였다.
‘어쩌면 평생을 안고 갈지도 모르지.’
“형님.”
“왜.”
“저 아이들, 조금만 더 제가 돌보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계약 조건은 저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거니까.”
레오가 제레민을 살짝 본 후 말했다.
“네가 좀 돌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
“네!”
“그리고 겸사겸사 수련도 같이할까?”
“수련이요? 좋습니다!”
릴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스승님과의 첫 수련!’
야심한 새벽.
릴은 연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릴 앞에 선 레오의 곁에는 백발의 작은 소녀가 서 있었고 소녀의 양 어깨에 작은 요정과 작은 병아리가 앉아 있었다.
‘스승님의 환수들.’
레오가 피닉스, 요정, 페가수스의 맹약자라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오늘 수련은 스승님의 환수들과 진행하는 건가요?”
-응? 아닌데, 우린 구경 온 거야.
-삐약. 삐약.
-멋진 모습을 보여주세요, 릴.
키르안과 피오라, 아티가 차례차례 대답했다.
대답을 마친 아티가 품에서 과자 봉지를 꺼내자 키르안과 피오라가 덤벼든다.
그 한 없이 방정맞은 분위기에 릴이 당황했다.
3대 환수라 하면 무릇 위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야! 내 거야!
-뺙! 뺙! 뺙!
아티 머리 위에서 키르안과 피오라가 과자 한 조각을 두고 서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때 손바닥 크기로 몸을 줄인 라르엘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손바닥으로 키르안과 피오라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켁!
-삐욱?
-3대 환수의 체통을 지켜. 꿈 많은 소환사의 환상을 깨부수지 말고.
라르엘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웃기고 있네! 우리 중에 제일 꿈도 희망도 없는 건 당신이잖아! 이 아줌마야!
-삐약! 삐약! 삐약!
-죽고 싶다는 거지?
라르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빛으로 만든 채찍을 키르안과 피오라에게 마구 휘둘렀다.
그걸 본 아티가 입을 떡-! 벌리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소리쳤다.
“키, 키르안! 나도 아줌마라고 불러줘요! 라르엘! 나도 그 채찍으로 때려 줘요!”
‘……꿈인가?’
릴이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릴 때였다.
스믈-!
바닥에서 어둠이 생성되더니 피오라와 키르안을 붙잡았다.
어둠에 감싸인 라르엘이 ‘윽!’ 하더니 이내 고분고분해졌다.
“엘시! 나도 속박 플레이를!”
-네, 네.
“꺄~”
어둠의 늪에 빠진 아티가 기뻐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엘시가 레오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에 레오가 릴 앞에 섰다.
“충격적이지?”
“네.”
“일단 자주 볼 사이니까 괜한 환상 안 가지도록 이 녀석들의 본성을 먼저 보여줘 봤어.”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꿈은 일찍 깰수록 좋으니까.”
“하하하.”
릴이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런 릴을 보며 레오가 엘시와 라르엘을 양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인사해라, 이쪽은 어둠의 대정령 엘시. 그리고 이쪽은 빛의 대정령 라르엘이다.”
“네? 빛의 대정령 라르엘이요?!”
릴이 경악한 표정을 지났다.
개벽의 용, 로디아 이후 지난 3000년 동안 빛의 대정령과 계약을 맺은 자는 없었다.
그런데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빛의 대정령은 정령사에게 있어 전설이자 로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역시 스승님!”
하지만 한편으로는 레오라서 납득이 갔다.
‘스승님이 뭘 하든 이제는 놀랍지 않다고 할까?’
레오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던 릴이 멈칫했다.
“잠깐만요, 그런데 어둠의 대정령이요? 어둠의 대정령은 분명 심연의 정령 이그니트님이시잖아요?”
작년에 레오와도 만났던 어둠의 대정령을 떠올리며 릴이 당황했다.
-엘시는 5000년 전 재앙의 시대 당시 대영웅들과 활약했던 대선배님. 그딴 은둔형 외톨이와 비교하는 건 엘시에게 실례야.
라르엘의 싸늘한 목소리에 릴이 움찔 몸을 떨었다.
-라르엘 역시 그렇게 따지면 은둔형 외톨이 아닌가요?
엘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지만 라르엘은 외면했다.
“엘시는 영웅의 세계 공략 보상으로 얻은 정령이야.”
“오오오! 그런 것도 가능하군요!”
릴이 감탄하며 박수쳤다.
그런 릴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릴, 너는 네 단점이 뭐라고 생각해?”
“음……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거요?”
“네 어디가 평범하다고 묻고 싶지만, 그건 제쳐두고.”
레오가 팔짱을 꼈다.
“네 단점은 단점이 없다는 거다. 그건 특출난 장점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랑 닮은 구석이 있지.”
올 클래스인 레오는 무엇이든 잘한다.
하지만 친구들처럼 궁극의 영역에는 닿지 못했다.
“우리 같은 타입의 수련법은 지극히 간단해. 그릇 자체를 키우는 거다.”
“정령사가 단기간에 그릇을 키우는 게 가능합니까?”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괴롭겠지만.”
“뭐죠?”
“상위 정령의 힘을 다루는 거다.”
“네?”
전혀 듣지 못한 생소한 개념에 릴이 당황했다.
그런 릴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지금부터 난 스피릿 아머드를 너에게 걸어 줄 거야.”
스피릿 아머드.
정령을 몸에 깃들게 하여 무구화 하는 상위 정령술.
릴 역시 스피릿 아머드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에 맹약자를 깃들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계약한 정령을 다른 이에게 깃들게 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가능한가요?”
“가능하지. 대신 스피릿 아머드를 유지하는 건 어디까지나 네 역량에 달렸어. 게다가 억지로 하는 것인 만큼 유지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러울거다.”
레오의 손바닥 위에 있던 라르엘이 어느새 동그란 빛으로 변했다.
“도중에 그만두면 아무 소용없어. 그래도 하겠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길이죠?”
“그래.”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릴이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그 모습에 빙긋 웃은 레오가 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뒤돌아 서.”
릴이 레오에게 등을 보여주었다.
“그럼 시작한다?”
릴의 등에 레오의 손이 닿았다.
레오의 손을 통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대정령의 존재감에 릴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흐윽?!”
신음성을 내뱉으며 릴이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스피릿 아머드가 전개되었다.
그리고.
“우웁!”
스피릿 아머드가 풀리며 릴이 입을 막고 연병장 구석으로 달려갔다.
“우웩!”
머리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허용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대정령의 힘은 순식간에 릴을 탈진시켰다.
“허억!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릴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이내 주저앉았다.
육체뿐만이 아닌 정신에도 과부하가 왔다.
“그만둘래?”
레오의 물음에 릴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
절걱- 절걱-
후드를 깊게 눌러 쓴 남자가 전장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키이이이잉! 콰아앙-!
멀리서 거대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쇠의 마찰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남자는 전장 한복판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언데드가 된 영웅이 한 무리의 영웅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저스티스의 길드의 영웅들은 후드를 눌러 쓴 기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새로운 언데드로군.”
“지독한 사기로군, 영웅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를 토벌한다.”
강경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영웅들을 보며 기사는 등에 매달린 대검을 뽑았다.
서렁-!
섬뜩한 소리와 함께 영혼마저 빨아들일 듯한 칠흑의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하나의 예술품이라도 보는 듯한 아름다운 검신이 그 자태를 뽐냈다.
“짐이 영웅의 이름을 더럽힌다?”
같잖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검을 고쳐 쥔 기사가 낮게 읊조렸다.
“히어로 레코드의 힘이 아니었다면 영웅이라고 불리지 못했을 버러지들이 감히…….”
후왁-!
기사가 대검을 휘둘렀다.
검은색 선이 허공을 수놓았다.
기사를 향해 덤벼들던 저스티스 길드의 영웅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지?”
“무언가…….”
푸확-!
일순간에 목이 날아갔다.
단 한 번의 검격에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철걱- 철걱-
기사는 자신의 공격에 휘말린 언데드 영웅에게 다가갔다.
“……지금 시대의 영웅들은 형편없군. 단 일격도 막아내는 자들이 없단 말인가?”
“당신이 너무 강한 겁니다, 황천의 기사.”
“장송의 대공.”
“당신의 한때나마 개벽의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영웅이 아닙니까?”
“한 때…… 나마?”
황천의 기사가 목소리를 뇌리 깔았다.
스각-!
날카로운 검격이 아트칸의 목을 날려 버렸다.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장송의 대공.”
“실언했군요.”
얼굴이 바닥을 뒹구는 와중에도 아트칸은 멀쩡했다.
그의 몸이 자신의 머리를 든다.
휘오오오-!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뒤집어쓴 후드가 날아갔다.
투구 속에는 있어야 할 얼굴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아트칸이 말했다.
“영웅들의 목을 자르는 건 당신이 목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다, 황혼의 기사는 건방지게도 짐의 목을 잘랐지.”
타무스가 톡톡, 목 아래를 두드렸다.
“이 시대의 영웅은 대부분 그 같잖은 영웅들이 세운 사관 학교 출신이라고 했던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모조리 목을 쳐 버려야지. 짐의 뜻을 거역한 놈을 따르는 녀석들에게는 피의 보복이 마땅해.”
타무스의 섬뜩한 말에 아트칸이 물었다.
“당신의 잃어버린 얼굴과 유산이 잠든 무덤을 찾아낸다면. 이들도 당신의 ‘군단’ 에 편입시킬 생각입니까?”
“이런 나약한 놈들은 영웅이라 부를 수 없지.”
타무스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인정한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다.”
“그런 당신에게 꼭 소개 해주고 싶은 영웅이 있습니다.”
타무스가 아트칸을 바라보았다.
“시답지 않은 지금 시대의 영웅에겐 관심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의 대선배 격인 영웅입니다.”
“호오? 누구지?”
“대영웅, 시작의 영웅 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