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82)
482.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롱소드를 쥔 기사와 대검을 쥔 기사가 대치하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무구로 무장한 대검의 기사, 타무스가 말했다.
“용케 혼자 나왔구나, 황혼의 기사여.”
타무스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의 무지렁이들은 지껄이고는 하지.”
타무스가 손에 쥐어진 녹스를 루메른에게 겨누었다.
“황혼의 기사가 시작의 영웅, 카일의 후계자라고.”
시작의 영웅 카일.
2000년 전.
세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최후의 대영웅.
무수히 많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수없이 한계를 넘어섰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세계를 구해낸 카일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영웅의 귀감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영웅의 이명은 신들이 내리는 것.
말 그대로 카일은 신들이 인정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 셈이다.
그렇기에 영웅이라면 누구나 카일의 후계자라 불리기를 원한다.
“나는 인정할 수 없다.”
타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작의 영웅은 가장 위대하고 존귀한 최강의 영웅. 노예 출신인 네놈이 그런 분의 후계자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그 말에 루메른은 눈을 감았다.
“또한 네놈은 시작의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고도 공략 보상을 얻지 못했지. 그런 네놈이 시작의 영웅의 후계자로서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시작의 영웅의 후계자로서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타무스의 말에 루메른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내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으니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루메른이 말했다.
“넘어서지 못하고 포기한 내가 카일님의 후계자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카일의 세계를 공략하고도 루메른은 공략 보상을 얻지 못했다.
자신이 카일의 후계자로서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공략 보상을 얻지 못했다고 루메른은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그분을 동경하고 존경했지. 그래서 그분의 뜻을 잇고 싶었어.’
하지만 그와 가까운 위치에 올랐음에도 결국 닿지 못했다.
그것이 자신의 한계였다.
친우들은 각자의 몫을 해냈다.
대영웅들의 후계자에 걸맞게 각 대영웅의 힘을 계승했다.
‘하지만 카일님의 힘을 계승하지 못한 나는 내 역할을 해내지 못했어. 그래서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지.’
아무리 손을 뻗어도 카일에게 닿을 수 없다.
애초에 근본부터가 달랐다.
카일은 올 클래스고 자신은 마검사니까.
“주제 파악을 잘하는군.”
타무스가 루메른을 비웃었다.
“카일의 세계를 공략하는 자리에 네놈이 아닌 내가 있었다면…… 나는 분명 카일의 힘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아니, 당신도 카일님의 힘을 계승하지 못했을 거야.”
“뭐라?”
“애초에 내가 카일님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해서 당신이 카일님의 후계자라고 생각하는 건 웃긴 이야기 아니야?”
“감히 누구 앞이라고 천한 노예 출신 따위가 망발을 지껄이는 거냐?”
“로디아는 끝까지 당신을 기다렸어, 당신이 와줄 거라고 믿었다고.”
루메른의 눈이 서늘하게 변했다.
“로디아뿐만 아니야. 세이룬도 아조니아도, 데미안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당신이 영웅인 이상 분명 와 줄 거라 믿었어 의심치 않았어.”
“네놈…….”
“세상 모두가 당신을 기다렸지.”
재앙의 재림이 종결되는 그 순간까지.
세간에서 황천의 기사는 최강의 영웅이라 평가받았다.
그 명성은 개벽의 영웅보다 높았다.
또한 개벽의 영웅 보다 강한 영웅이라고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개인의 무력뿐만이 아니다.
그가 가진 세력은 대륙의 패권을 뒤흔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르타로스조차 위협할 정도로 강대했다.
두려움과 멸시의 대상으로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들조차 샨 제국을 필두로 하여 타르타로스의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힘을 합해서 재림한 재앙에 맞섰어. 2000년 전, 우리가 왜 멸망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모두가 알았으니까.”
재앙의 시대 당시 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치달은 이유.
그건 단순히 에레보스라는 재앙적 존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분열되었던 세계는 타르타로스의 진군 앞에 무력했다.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재앙의 시대가 종식되고 새 시대가 열린 후.
세계는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분열과 갈등은 있었지. 종족 간의 분쟁, 세력 간의 전쟁은 끊임없었어. 하지만 과거를 잊은 건 아니었어. 지난 2000년 동안 세계는 타르타로스가 준동할 때마다 서로를 향한 칼날을 거두고 악에 맞서 싸워왔어.”
개벽의 영웅들과 황천의 기사의 갈등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세계의 위기 앞에서는 한 대 힘을 모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최강의 영웅이라 불리는 황천의 기사가 악을 멸하기 위해 검을 들어 줄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사람들은 깊게 절망했다.
그런 가운데 개벽의 영웅들이 에레보스의 조각을 토벌하고 세계를 구했다.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사람들은 황천의 기사와 그의 제국, 타림을 향해 분노했다.
분노는 곧 조롱으로 바뀌었다.
“당신의 죄는 단순히 세계의 위기를 방관한 것뿐만이 아니야. 당신은 지난 20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유대를 끊은 거야.”
루메른의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대영웅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를 너의 손으로 망가트린 거다. 그런 주제에 감히 카일님의 후계자라고 주장할 셈인가?”
“흥. 하찮은 노예다운 생각이로군.”
타무스가 코웃음 쳤다.
“결국 에레보스의 조각을 토벌하지 않았나? 최고의 영웅인 이 몸이 나서지 않았는데도 너희 손에 처리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위협이 아니었다는 소리겠지.”
타무스는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이 이 몸의 손에 쓰러진다면 곧 사람들도 깨달을 것이다. 최고의 영웅은 여전히 이 몸이라는 걸.”
고오오오오-!
타무스의 몸에서 칠흑의 오러가 쏟아져 나왔다.
“네놈들이 이룬 위업이 별것 없다는 걸. 그렇게 된다면…… 로디아. 그 계집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걸!”
번뜩-!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몸에서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짐의 뜻을 따르는 영광스러운 영령들이여! 일어서라! 짐의 위엄에 도전하는 이 오만한 자에게 하늘이 높다는 사실을 알려주어라!”
타무스의 포효 소리와 함께 아공간이 열리며 영웅의 무구가 쏟아져 나왔다.
무구에서 소환된 영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무스가 자랑하는 영웅 군단.
자신의 손에 쓰러진 영웅, 혹은 자신을 따르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영웅들.
타무스는 그런 영웅들과 계약을 맺어 영령으로 사역하고 있었다.
영웅의 시대 이후 2000년의 역사에서 최강의 영령술사라 불리는 그만이 가능한 기술.
그가 최강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하지만 영령들은 타무스의 명령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엄한! 어찌하여 이 몸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이냐!”
타무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말했잖아, 당신은 세계의 믿음을 배신한 거라고.”
루메른이 검을 타무스에게 겨누었다.
“그런 당신을 영령들이 따를 것이라 생각한 건가?”
루메른의 싸늘한 말에 타무스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같잖은 놈들. 감히 이 몸을 배신하다니.”
화악-!
영령들을 되돌려 보낸 타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상관없다. 이 몸이 최강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는 영령술 때문이 아니니까.”
타무스가 자세를 낮추고 녹스를 고쳐 쥐었다.
“네놈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네놈의 위업은 그저 이 몸의 과거 동료들에게 기대어 이루어낸 위업일 뿐.”
루메른이 로디아와 함께 된 건 불과 5년 전.
처음 루메른을 만났을 당시를 타무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루메른은 분명 혼자서 대영웅의 세계를 공략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장]에 불과했다.
당시를 생각한다면 루메른은 영웅의 칭호조차 얻지 못했던 약자였다.
고작 5년.
자신의 일격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던 약자가 강해져 봤자 얼마나 강해졌겠는가?
콰악-!
타무스가 루메른을 향해 돌격했다.
스걱-!
그리고 시야가 뒤집혔다.
“뭐라?”
타무스가 멍한 소리를 내뱉었다.
타무스는 몰랐다.
모든 개벽의 영웅이 쓰러졌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에레보스 조각의 목을 베어낸 것이 황혼의 기사 루메른이라는 것을.
루메른의 힘이 이미 오래전 타무스를 압도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루메른의 검술은.
‘……시작의 영웅…… 카일?’
타무스는 카일의 세계에 들어간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대영웅의 세계에서 그와 만난 적은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 전 보여줬던 루메른의 검의 궤적이 카일의 것과 똑같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뒤집힌 시야에서 루메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카일과 겹쳐 보였다.
‘거짓말로 이 몸을 우롱하다니! 카일의 힘을 계승했잖느냐!’
타무스의 눈에 핏발이 솟았다.
‘어째서 단기간에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거지?’
타무스는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에 휩싸였다.
‘그런가! 스스로의 힘이 아닌 히어로 레코드의 공략 보상으로 힘을 키운 것이군! 용납할 수 없다! 가짜 영웅놈!’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한 타무스가 증오를 쏟아냈다.
‘모든 게 네놈 때문이다! 이 몸이 영령들에게 배신당한 것도! 로디아가 나를 버린 것도! 내가 대영웅의 힘을 계승하지 못한 것도! 카일의 힘을 계승하지 못한 것도! 모든 게 네놈 때문이다!’
의식이 멀어져 간다.
‘네놈만 없었어도! 그 자리는 내가……!’
***
“미친놈.”
“뭐라…… 고?”
“네가 왜 내 후계자야? 난 너 같은 후계자 둔 적도 없는데.”
“당신 역시 루메른이 당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놈은 하찮은 노예 출신이오! 당신의 위명에 어울리는 후계자가 아니오!”
타무스가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고귀한 신분인 나! 타무스야 말로 당신의 후계자로 어울리는…….”
“난 딱히 루메른 녀석도 내 후계자라고 생각한 적 없어. 후계자인 게 뭐가 중요해. 세계를 구하려는 사람은 다 우리의 뒤를 잇는 녀석들이야.”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넌 내 후계자는커녕 영웅조차 아니야.”
“뭐라?”
레오의 선언에 타무스의 몸이 분노로 떨렸다.
“그래, 알겠다. 네놈은 시작의 영웅 카일이 아니군.”
“좀 전에는 자기 입으로 나보고 카일이라고 하더니.”
“시작의 영웅이 나를 인정하지 않을 리가 없지.”
“진짜 미친놈이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레오는 그저 헛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후드 속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나는 신의 인정을 받아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네놈 따위가 어째서 신에게 인정받은 나에게 영웅의 자격을 운운하는 것이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만.”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도 넌 영웅이 아니야.”
“오만불손하군.”
타무스의 몸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히어로 레코드의 힘을 빌려 탄생한 가짜 영웅 주제에 이 몸을 평가한단 말인……!”
타무스가 격노하는 순간.
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사시나무 떨리듯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타무스는 경악한 얼굴로 눈앞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영웅의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