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88)
488.
마법학과 최고의 우등생이라고 평가받는 클로에와 연금술에 관한 발상력과 창의력이 기발한 칼.
그리고 그림자로서 어릴 때부터 독을 다루는 법에 관한 교육을 꾸준히 받아 온 첸 시아.
세 사람의 조합은 북부 마탑에서 의뢰한 의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덕분에 다른 학생들에 비해 일찍 의뢰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의뢰 완료 후 마법학과인 클로에와 칼은 북부 마탑에 며칠 더 머무르기로 했다.
어차피 아직 남아 있는 의뢰 기간동안 루메른에서 수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일찍 의뢰를 마친 학생들의 경우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그렇기에 클로에와 칼은 북부 마탑에 남아 여러 가지 마법 실험을 하기로 했다.
그런 두 사람과 달리 첸 시아는 곧바로 루메른으로 돌아왔다.
기사학과였기에 마탑에서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그림자들에게 레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게 결정적이었다.
‘그런 큰일이 있었는데 레오 도령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다니.’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첸 시아는 기숙사에 혼자 있을 레오의 옆에서 쉬는 걸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거기에는 다소 타산적인 생각도 있었다.
‘단둘이 있을 기회이기도 하고.’
루메른 자체가 단체 생활이다 보니 레오와 단둘이 있을 시간은 드물었다.
물론 불만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생활은 몹시 즐거웠다.
‘모든 게 레오 도령 덕분이지.’
1학년 때까지 첸 시아는 루메른에서의 생활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당시의 첸 시아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지만 스스로에게 영웅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기에 어찌 보면 마음이 무거운 건 당연했다.
레오에게 긍정 받고 그 짐을 훌훌 털어 버린 지금은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또래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레오와 좀 더 긴밀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른 새벽에 루메른에 도착한 첸 시아는 기숙사 앞에서 교복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다.
레오가 자고 있을 것을 생각해 자연스럽게 기척을 죽였다.
‘응?’
그러다가 휴게실 쪽에 기척을 느끼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소파 위에 누워 있는 레오에게 안기는 엘프 소녀의 모습을 보고 굳었다.
“뭐야?”
“죄, 죄송! 억?!”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던 엘프 소녀, 에이란은 누워 있는 레오 위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첸 시아는 상황 파악을 위해 생각에 잠겼다.
‘에이란 양은 왜 루메른에 있을까?’
세이룬 2학년 차석인 에이란이 루메른 2학년 기숙사에 있는 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첸 시아가 슬쩍, 고개를 돌려 휴게실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빈 술병과 후각을 자극하는 술 냄새.
거기에 더해 레오 위에 올라탄 에이란까지.
‘응,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어.’
결국 첸 시아는 상황 파악에 실패했다.
“죄송해요! 레오님! 죄송해요!”
패닉에 빠져 사과하는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상체를 일으켰다.
“헉?!”
숨이 맞닿는 게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지자 에이란이 숨을 들이켰다.
레오는 자기 위에 올라탄 에이란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에이란을 들어 바닥에 내려주었다.
몸을 일으킨 레오가 첸 시아에게 물었다.
“일찍 왔네? 클로에랑 칼은?”
“두 사람은 북부 마탑에 조금 더 남기로 했어요. 그나저나 에이란 양이 왜 여기 있는 건가요. 그리고…… 대체 뭘 하고 계셨던 거예요?”
첸 시아가 조금 의심스럽다는 듯 말하자 에이란이 허둥지둥 변명했다.
“아, 저는 당분간 교환 학생으로 루메른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교환 학생이요?”
“네.”
“그럼 조금 전 상황은요?”
“아! 그건 제가 레오님을 밤새도록 못 자게 괴롭혀서 레오님께 담요를 덮어 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네? 밤새도록 뭘 해요?”
첸 시아의 눈이 일순간 흔들렸다.
훌륭하게 상황을 더 꼬아 버린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상한 오해 하지 마. 밤새도록 옛날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 줬을 뿐이니까.”
“아.”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야?”
“두 분 자세가 워낙 남사스러워서 혹시나 했어요.”
첸 시아의 말에 귀까지 빨개진 에이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에이란을 보며 입을 막고 웃은 첸 시아가 말했다.
“루메른에 온 걸 환영해요, 에이란 양.”
***
“루니아 양은 교환 학생으로 오지 않은 건가요?”
그날 아침.
영웅의 탑 중앙에 있는 식당가 앞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 세 사람은 카페에 도착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첸 시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네, 루니아 양은 이번에 학생회장이 되었거든요. 인수인계를 때문에 매우 바쁜 상황이에요.”
“루니아 양은 성실하네요. 레오 도령은 실무는 전부 선배들에게 떠넘겼는데 말이죠.”
“능력 있는 선배들이 있는데 2학년인 내가 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레오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전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황혼의 축제 기간에 맞춰 루메른에 교환 학생으로 올 수 있었으니까요.”
에이란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곧 황혼의 축제였지?”
턱을 괸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황혼의 축제.
그건 5년에 한 번씩 루메리아 시티에서 열리는 황혼의 기사 루메른을 기리는 축제였다.
축제 주기가 5년인 이유는 루메리아 시티와 루메른 아카데미가 완성되는데 걸린 기간이 5년이기 때문이었다.
이 축제 기간 동안은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주말에만 외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풀려 학생들이 자유롭게 루메리아 시티를 오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루메른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심지어 아예 작정하고 놀려고 루메리아 시티에 숙소를 잡고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축제 기간에도 수업은 진행되니 말이다.
“사고 치는 학생들도 많죠. 그거 때문에 교수님들도 축제 기간에는 골머리를 앓는다고 해요. 실제 걸려서 징계받는 학생들도 많아요.”
첸 시아와 에이란이 황혼의 축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어머, 레오 학생, 첸 시아 학생. 그리고…… 에이란 학생이죠?”
누군가 빙그레 웃으며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레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멜이 서 있었다.
“멜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첸 시아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에이란도 함께 일어나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멜이 레오를 보며 말했다.
“식사 전에 레오 학생.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예.”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올게.”
그렇게 레오가 멜을 따라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
에이란과 첸 시아.
두 사람이 남게 되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안면은 있지만, 친분은 따로 깊게 없는 사이였다.
첸 시아는 턱을 괴고 음식과 레오를 기다렸다.
에이란은 힐끗- 힐끗- 첸 시아를 계속해서 곁눈질했다.
그걸 알아차린 첸 시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네?! 아, 아뇨! 그, 그게 아니라…….”
에이란이 당황하더니 이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첸 시아 양이 인형같이 예뻐서요. 마치 어릴 때 선물 받았던 공주님 인형 같아요. 물론 첸 시아 양은 진짜 공주님이지만요.”
“고마워요. 하지만 저보다는 에이란 양이 더 인형 같은걸요?”
첸 시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에 에이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첸 시아 양. 저랑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저는 좋죠.”
“와!”
에이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그 순수한 모습에 첸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에이란 양은 레오 도령을 굉장히 따르네요?”
“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넋을 잃고 말았어요. 레오님은 마치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영웅 같았거든요.”
레오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에이란이 웃었다.
“나랑 같네요.”
“역시 첸 시아 양도 레오님을 많이 좋아하시는군요?”
“네. 많이 좋아해요.”
“역시 첸 시아 양은 저랑 많이 닮았네요.”
에이란이 순수하게 기뻐했다.
“닮아요?”
상대방과 자신이 상당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첸 시아는 에이란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네, 레오님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 조상님 모두 시작의 영웅 카일님의 제자였다는 것도 그렇고요.”
“……제 선조님이 카일님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제가 말한 적이 없는데요?”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에이란이 살짝 당황하더니 허둥지둥 말했다.
“레, 레오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그림자의 서에 비하르님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된 걸 봤다고요! 베르키아님처럼 비하르님도 카일님의 제자였다는 걸요!”
“아하, 그렇군요.”
첸 시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에이란 양과 난 깊은 인연이 있지.’
첸 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인연은 아니다.
5000년의 세월이 지나.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대영웅들과 연관된 자들의 핏줄이니까.
하지만…….
‘레오 도령이 함부로 개인사를 다른 사람에게 해줄 사람이 아닌데.’
첸 시아가 알고 있는 레오라는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든 개인사를 첸 시아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아무리 특별한 인연이 있고 또 사이가 깊다고 해도 말이다.
고민하던 첸 시아는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에이란 양은 나보다 레오 도령에 대해 깊이 알고 있구나.’
첸 시아는 날카롭게 레오와 에이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유추할 수 있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레오 도령의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네.’
***
“왜? 혹시 무슨 일 생겼어?”
“아뇨, 심각한 일이 일어나거나 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멜이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륙 동부에 조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상한 일?”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갑자기 기상 이변이 발생했어요. 아직 늦가을인데도 불구하고 혹한이 찾아와 폭설이 내린 곳이 있는가 하면.”
그 말에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또 숲 전체의 나무와 풀이 시들어 버렸다는 보고도 올라오고 있어요.”
“사령왕인가?”
“그건 아니라고 해요. 사령왕과 수하들이 내뿜는 특유의 죽음의 기운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저 갑자기 생명력을 잃은 듯 시들어 버렸다고 해요.”
멜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숲 전체가 봄이 된 것처럼 꽃이 핀 곳이 있다고 해요.”
“꽃?”
꽃이라는 단어에 레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꽃이라고? 누가 꽃을 피우는 마법이라도 썼나?’
루나가 만든 꽃을 피우는 마법의 술식은 레오가 복원했다.
‘하지만 지금 그 마법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의아한 표정을 짓던 레오가 문득 물었다.
“동부라고?”
“네.”
“혹시 지금 세계 지도가 있어?”
레오의 물음에 멜은 아공간에서 세계 지도를 꺼내 펼쳤다.
“그 꽃이 피었다는 숲이 어느 부근이야?”
“이곳입니다.”
멜이 손가락으로 대륙 동부의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은 샨 제국의 영토 중 한 곳이었다.
주변에는 도시가 없는 완벽한 외지.
레오는 그 지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략 이곳이겠네.’
5000년 전.
대영웅들이 에레보스를 토벌하기 위한 마지막 원정을 떠나기 전.
지도는 필요하지 않았다.
멸망 직전의 세계에는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검은색 불기둥이 솟아 있었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보이기 시작한 불기둥은 말 그대로 멸망의 상징이었다.
대영웅들은 그 불기둥을 향해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그렇기에 레오는 동료들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동 경로와 시간을 예측하여 대략적인 위치만 알 뿐.
‘50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 녀석들의 무덤이 남아 있을 리도 만무하지.’
아무리 레오라고 해도 대략적인 위치만 가지고 5000년 전의 무덤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상 사태가 일어났다는 위치와 또한 그중 하나가 ‘꽃’이라는 것이 걸렸다.
지금 동부에서 이상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곳.
‘이 부근에서 루나가 숨을 거두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