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89)
489.
‘우연이겠지.’
기나긴 세계의 역사 속에서 계절을 거스르는 이상 사태는 종종 있다.
당장에 강대한 물의 기운을 지닌 자 근처에는 비가 자주 온다거나.
폭설이 내리는 지역에 강한 불의 기운을 지닌 자가 나타나면 눈이 멈춘다거나.
이러한 경우가 많은 건 아니지만 드물게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사령왕이 과거의 영웅들을 살릴 수 있는 지금.
‘어쩌면 놈에 의해 그만한 강자들이 되살아났을 수도 있어. 아니면 그 일대 정령들이 대이동을 했거나. 루나와 연관이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지금은 수업도 없다.
물론 학생은 외부에 함부로 나갈 수 없지만, 레오에게 나갈 명분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멜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자리로 돌아온 레오에게 첸 시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에이란 역시 궁금한 듯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그런 둘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너희. 꽃구경 안 갈래?”
느닷없는 말에 첸 시아와 에이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타닥타닥-
장작이 불타고 있었다.
“드웨노님! 한 잔 받으세요!”
“음, 고맙네.”
“아르온님도요!”
“아, 네!”
가드스론은 축제가 많은 도시였다.
하루하루 세계가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지금 시대에서.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에 맞서는 영웅들의 승리 소식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언제 멸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된다.
하지만 오늘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가 아니었다.
“자자! 다들 주목!”
단상 위로 올라간 루나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내일이면 우리는 에레보스를 토벌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을 떠날 거야!”
에레보스의 토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숙원이지만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었던 말.
그 염원을 가벼운 말투로 언급한 루나가 말을 이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겠지.”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루나를 보며 축제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루나가 씩- 웃었다.
“하지만 우릴 믿어! 우리는 세계를 구할 거야! 그 빌어먹을 불덩이에게서 푸른 하늘을 되찾을 거야! 아름다운 별들을 되찾을 거라고!”
“우오오오!”
“그리고 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라고 불리게 되겠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될 이 루나님을 위해 모두 건배!”
“건배!”
루나의 외침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날아갔다.
축배를 드는 사람들을 보며 카일이 말했다.
“왜 하필 중요한 연설을 저 녀석에게 맡긴 거야?”
“분위기를 살리는 대는 루나가 제격이니까.”
카일 옆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던 리시나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드웨노를 시키면 이상한 변태 소리를 할 거고, 아르온은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 할 거야. 넌 축제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들 게 분명해. 내가 하면 재미없을 테니까.”
“마지막 축제가 될지도 모르니까 실컷 즐겨 둬라?”
“또 재수 없는 헛소리를 하고 있군.”
“카, 카일! 역시 네가 보기에 이번 원정은 가망이 없어?”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드웨노가 혀를 찼고 아르온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연설을 끝내고 온 루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번 축제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왜 마지막이야? 에레보스를 날려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맞아, 세계는 구원받을 거야 카일.”
루나가 이상하다는 듯 카일을 바라보았고 리시나스 역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확신에 찬 대답을 들으며 카일은 시선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꼭 그랬으면 좋겠네.”
“왜 계속 분위기를 깨는 걸까나? 이 망할 인간은.”
“이럴 때라도 동조하면 죽는 거야?”
루나는 카일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리시나스는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자자, 다들 그만하고 축제나 즐기세. 이 친구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퍽!
드웨노는 두꺼운 손으로 카일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 망할 드워프 자식아. 넌 살살 친다고 치는 거지만 맞는 쪽은 아프다고.”
“아파하라고 친 걸세.”
“오냐, 그러면 나도 명치 한 대 세게 쳐도 되냐?”
카일이 으르렁거리자 드웨노는 태연하게 말했다.
“싸, 싸우지 마.”
아르온이 허둥지둥 두 사람을 말렸다.
그렇게 작은 소란이 있은 후.
혼자 남게 된 카일이 술을 홀짝였다.
‘분위기 좋네.’
활기차게 웃으며 축제를 즐기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옆에 술잔을 놓은 카일이 턱을 괴었다.
‘그래, 너희는 분명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란 건 다섯 명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카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카일은 그 기척의 주인공이 베르키아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얜 또 왜 이래?’
무슨 짓을 하나 싶어 지켜보고 있는데 베르키아는 카일의 술잔에 무언가를 넣었다.
“카일 스승님, 루나 스승님이랑 같이 건배해요.”
그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냉큼 카일 옆에 앉으며 태연하게 말하고는 루나를 불렀다.
“루나 스승님.”
“응? 왜 부르니?”
“건배해요, 우리.”
“그럴까?”
루나가 밝게 웃으며 술잔을 들고 다가와 건배했다.
루나는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 소리쳤다.
“캬! 좋다~!”
“안 마시세요?”
카일은 시치미를 뚝 떼는 베르키아를 붙잡고 자신의 술잔에 있는 술을 강제로 먹였다.
“우웁!”
“너희 뭐해!”
“이 바보 녀석이 내 술에 뭘 탔어.”
“베르키아 뭘 탄 거야?”
루나의 물음에 베르키아는 황급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드, 드웨노님이 만든 사랑의 묘악을…….”
그 말에 루나가 혀를 찼다.
“그거 효과 없어.”
“네?”
베르키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런 효과 없는 멍청한 변태 약이야.”
신랄하게 말한 루나가 획-! 하고 떠났다.
그 말에 베르키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넌 마지막까지 날 골탕 먹이고 싶냐?”
“그런 거 아니거든요?”
베르키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 때였다.
“스승님.”
비하르가 카일 앞으로 다가왔다.
베르키아와 비하르를 잠시 바라보던 카일이 말했다.
“너희 둘, 이 앞에 앉아 봐.”
그 말에 베르키아와 비하르가 카일 앞에 앉았다.
카일은 그런 두 사람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한테 배우느라 수고 많았어.”
“왜 마지막인 것처럼 말하세요.”
베르키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이상한 소리 마세요.”
베르키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비하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스승님은 에레보스를 쓰러트리고 돌아오실 거라고! 스승님이 에레보스를 토벌하지 못한다는 거야?”
베르키아가 비하르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아니, 믿고 있어.”
비하르가 작게 미소 지었다.
“스승님이 에레보스를 쓰러트릴 거라는 걸.”
그 말을 듣고 만족한 베르키아가 콧김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둘을 보며 카일이 말했다.
“너희는 평화의 시대가 되면 뭘 할 거야?”
“스승님들을 도와 세계를 재건할 거예요.”
베르키아가 환하게 웃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 힘내라.”
“물론이죠.”
“베르키아. 이리 와 볼래?”
“네! 루나 스승님!”
베르키아가 루나의 부름을 듣고 달려갔다.
루나는 자신의 제자에게 커다란 꽃다발 하나를 건넸다.
“이건 선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와, 너무 예뻐요! 루나 스승님!”
꽃다발을 받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베르키아를 보며 비하르가 웃으며 말했다.
“베르키아는 분명 이 세상을 밝게 만들 거예요.”
부드럽게 미소 짓던 비하르의 얼굴에서 순간 무표정으로 변했다.
“스승님.”
“왜?”
“평화를 되찾은 후에도 지금 처럼 세상을 좀먹는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하르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까요?”
카일은 그런 비하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기본적으로 비하르는 타인을 불신한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 없이 철저히 불행한 삶을 산 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에레보스가, 타르타로스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빼앗고 불행으로 놓아 넣었으니까.
하지만 불행뿐인 삶에 고아병으로서 비극을 쥐여준 건 그녀와 같은 인간이었다.
레오는 베르키아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베르키아는 밝은 여인이었다.
마치 태양과 같다면 비하르는 밤하늘의 달과 같았다.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많은 영웅들의 희생으로 평화를 되찾은 세계에…… 스승님과 대영웅님들의 손으로 일군 그 세계를…… 세상을 좀 먹는 구더기들이 살아가는 걸…… 저는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뒤틀린 살기를 내뿜으며 비하르가 씹어 내뱉듯 말했다.
“평화의 시대를 살아갈 자격이 없는 자들을 보게 된다면… 그런 자들이 많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많을 거야.”
카일이 덤덤하게 말했다.
절망의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에레보스가 사라진 세상이 마냥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절망의 시대 이전부터 살았기에 카일은 알고 있다.
에레보스가 없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만 않다는 걸.
가끔은 절망의 시대 보다 더욱 추악하다는 걸.
“더러운 꼴도 많이 보게 되겠지.”
카일의 말에 비하르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
카일이 웃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걸 알면서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까.”
“…….”
“분명 평화의 시대가 오게 되면 온갖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분명 리시나스 녀석도 후회할걸? ‘우리가 저딴 거 때문에 세상을 구했나?’ 라고.”
카일은 멀리 있는 리시나스를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 좋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 너희가 살게 될 시대는 어둠의 깊이보다 빛이 더 밝은 세상일 거야. 그러니까.”
레오는 손을 뻗어 비하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세상이 평화를 찾으면 평생을 어둠 속에서만 살지 마.”
“……네, 스승님.”
***
대륙 동부의 깊은 숲속.
이곳에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 있었다.
“멜라누 마을. 자연경관이 좋아 외부인들이 관광이나 요양차 찾는 마을이에요. 온천이 유명한 마을이죠.”
첸 시아가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건 놀랍네요.”
첸 시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것 보세요! 처음 보는 꽃인데 너무 아름다워요!”
에이란이 바닥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체 무슨 꽃일까요?”
첸 시아도 의아한 표정을 짓자 레오가 대답했다.
“스타티스.”
“레오 도령, 아는 꽃인가요?”
“지금 시대에는 사라진 꽃이지.”
정확하게는 재앙의 시대에 모두 사라졌다.
‘루나가 제일 좋아했던 꽃.’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직 ‘꽃을 피우는 마법’ 으로만 피울 수 있는 꽃.
레오가 꽃을 하나 꺾는 순간.
우웅-!
레오의 영력이 반응하더니 시야가 암전되었다.
그 순간 보인 건.
저벅- 저벅-
말라 버린 커다란 스타피스 꽃다발을 든 비하르가 걷고 있었다.
[스승님은?] […… 여기.]비하르의 물음에 옆에 있던 베르키아가 작은 유골함을 보여주었다.
[스승님을 루나님 곁에 묻어 드리는 게 옳은 일일까?]비하르의 물음에 베르키아가 유골함을 꼭 쥐었다.
[…… 다른 분들의 무덤을 못 찾았잖아. 최소한 두 분이라도 서로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어.]고개를 숙이는 베르키아를 보며 비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앞으로 걸어 나가는 비하르와 달리 베르키아는 그러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땅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화악-!
“레오 도령?”
“레오님!”
첸 시아가 당황하며 레오를 부축했다.
에이란은 황급히 레오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머리를 붙잡은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방금 건 영령술이었어. 그런데 누구의 기억이지?’
베르키아나 비하르.
둘 중 한 사람의 것인것만은 확실했다.
‘이 꽃과 연관 있는 건가?’
레오는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바라보았다.
기억의 출처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꽃과 연관 되어 있다는 것밖에.
‘지금 알 수 있는 건. 이 주변에 루나, 그리고 내 무덤이 있다는 사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