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91)
491.
“사령왕이시여. 어찌하여 이런 폐허에 온 것입니까?”
사령왕 헬 카이저의 곁에 서 있던 여성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피의 여왕. 엘제니에, 그녀는 타르타로스의 군단장 중 하나였다.
“이곳은 오래전 거울 여왕이라 불리셨던 군단장, 키네시님의 무덤입니다.”
엘제니에의 물음에 대답한 건 다름 아닌 장송의 대공 아트칸이었다.
엘제니에는 그런 아트칸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5000년을 살아온 대마족이라고 해도 아트칸은 군단장의 심복.
마족으로서의 신분은 엘제니에가 높다.
하지만 엘제니에는 아트칸에게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엘제니 뿐만 아니다.
현재 타르타로스의 모든 군단장은 아트칸을 경계했다.
같은 군단장이라고는 해도 모두가 평등한 위치는 아니다.
재앙의 시대부터 살아온 세 명의 군단장.
사령왕, 마물 여왕, 거인왕은 말 그대로 격이 달랐다.
그리고 엘제니에는 마물 여왕 실라투나의 심복이었다.
그녀의 심복으로 군단장의 위치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실라투나가 쓰러지자 타르타로스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지금 타르타로스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사령왕이 후대의 군단장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군단장은 없었다.
‘군단장 중 무능한 자는 언제 축출돼도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된다면 우리 자리를 꿰차는 건 저 자일 확률이 높다.’
아트칸이 지나치게 유능하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이미 군단장의 자리에 올랐을지 모를 일이다.
엘제니에가 입술을 깨물 때였다.
“거울 여왕 키네시는 5000년 전, 이 장소에서 루나에게 토벌당했지.”
사령왕이 덤덤히 중얼거렸다.
“원한의 대상이 되는 자의 무덤 흙이 필요하겠군.”
“제가 성운의 시조의 무덤에 다녀오겠습니다.”
“아뇨,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사령왕님.”
엘제니에가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었다.
“부디 저에게 명령을 내려주시길.”
“원한다면 그대가 가도록. 피의 여왕.”
“네, 실망하게 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흥건했던 핏자국을 치운 레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확연했던 고통과 피 냄새만 봐도 결코 환상이나 착각은 아니었다.
‘꿈과 관련 있는 건가?’
조금 전 꿈을 떠올려보았다.
꿈 내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이곳에 일어났었던 일이다.
아르온과 드웨노를 잃은 세 명의 대영웅이 이곳에서 에레보스와 결전을 치렀다.
‘그리고…… 패배했지.’
결과적으로 패배는 아니었다.
대영웅들이 에레보스를 쓰러트리지 못했던 것처럼.
에레보스 역시 대영웅들을 전멸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에레보스 역시 커다란 타격을 입고 물러섰다.
아르온 때도 그렇고 드웨노 때도 그랬다.
불멸성을 지녔다고 타격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아르온과 드웨노가 목숨을 걸고 에레보스에게 입힌 상처는 확실하게 남은 대영웅들에게 길을 만들어 줬다.
최후의 여정에서 있었던 다섯 번의 격전.
그것은 모두 에레보스 토벌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도 레오가 앞선 네 번의 전투를 패배라 여기는 이유는 동료를 잃었기 때문이다.
레오가 숨을 깊게 들이켰다.
‘꿈의 내용은 내 시점이 아니라 루나의 시점이었어.’
레오가 세 번째 전투를 떠올렸다.
아르온의 오러와 드웨노의 불꽃을 이어받은 레오는 전위에서 혼자서 에레보스를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
레오는 눈을 감고 5000년 전을 떠올렸다.
‘우리는 드웨노를 묻어주고 동쪽으로 나아갔지. 그리고.’
세 번째 전투가 있기 전 휴식을 취할 때였다.
‘……꼭 이기자. 꼭 이겨서 살아남자.’
루나가 다짐하듯 말했다.
‘셋이서 아르온과 드웨노의 꿈을 이루어주는 거야. 두 사람의 몫까지 열심히 살자.’
아르온이 눈을 감았을 때 루나는 울다가 혼절했다.
드웨노가 떠났을 때 루나는 울지 않았다.
감정을 죽이고 그저 에레보스에 대한 살의만을 불태웠다.
‘최후의 원정을 떠나기 직전, 우리의 생각은 다 달랐으니까.’
아르온은 친구들이 죽는 걸 두려워했다.
드웨노는 다른 이를 대신해 자신이 희생할 마음을 먹었다.
리시나스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상을 구할 것을 다짐했다.
‘나는 실패를 각오했었지.’
레오의 눈이 가라앉았다.
모두가 희생을 각오했을 때.
다섯 명 중 그 누구도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은 루나가 유일했다.
루나가 낙천적인 성격인 것도 한몫했지만, 그 이전에 루나는 아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 명 중 한 사람이라도 없다는걸.’
종족은 달랐지만 어쨌든 자신들은 가족이었으니까.
한 명이라도 잃는 걸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르온이 바랐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드웨노가 하려고 했던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자. 그래서…… 꼭 행복해지자.’
드웨노가 최후의 순간에 루나에게 남겼던 말이다.
리시나스에게는 믿는다는 말을 남겼고 카일에게는 나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루나에게는 행복해지라는 말을 남겼다.
파티에서 가장 많이 티격태격했던 루나와 드웨노.
종족 자체가 상극의 종족이었고 성격도 추구하는 것도 달랐다.
그래도 가장 절친한 술친구이기도 했다.
‘마치 조카랑 삼촌 같았지.’
그렇기에 드웨노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각오를 하지 못했던 루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자신과 리시나스에게 행복해지자며 웃던 루나.
그건 루나가 마지막으로 지었던 진심 어린 미소였다.
세 번째 결전이 시작되고.
에레보스의 모습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거대했던 태초의 악은 평범한 인간의 크기로 변해 세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달라진 마인의 모습.
세 사람은 그것이 누구를 경계해서 만들어진 모습인지 알 수 있었다.
‘놈은 루나의 마법을 가장 경계하고 있었어.’
당시 루나의 마법은 신적 존재인 에레보스에게조차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비록 순수의 마나 특성을 가지지는 못했기에 불멸의 존재인 에레보스를 죽이는 건 불가능했지만 루나의 마법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후 자신과 맞서기라도 했다면.
‘놈은 끝장이었겠지.’
그래서 몸집을 줄여 표적을 줄인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고 에레보스는 루나를 집요하게 노렸다.
‘하지만 루나는 에레보스가 예상한 것 이상의 천재였지.’
루나는 에레보스를 위협하는 종언의 마법 술식을 전투 중에 대인 마법으로 개조했다.
그 결과 에레보스는 루나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역시 루나의 마법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에레보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레오는 단신으로 맞섰다.
‘그때 쓰러트렸어야 했어.’
당시를 떠올린 레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레오는 혼자서 에레보스를 막아내지 못했다.
도리어 치명상을 입었다.
그렇게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을 대신해 리시나스가 단신으로 에레보스를 맞서 싸울 때.
루나는 안심이라도 시키겠다는 듯 레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말이 웃음이었지 울기 직전의 일그러진 얼굴을 봤을 때 직감했다.
루나도 맡기고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야……!’
‘카일…….’
‘하지 마.’
‘둘 중 하나가 살아야 한다면…… 아르온과 드웨노를 짊어진 네가 남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지?’
‘하지 말라고! 이 빌어먹을 년아!’
‘이게 최선이야. 너도 나였으면 똑같이 했을 거야.’
‘아니야……! 아니라고!’
‘나까지 떠넘겨서 미안.’
옛날 일을 떠올린 레오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이 꿈은 영령술과 연관이 있는 건가?’
리시나스에게 들은 적 있다.
영령이 겪었던 일을 꿈으로 꿀 때가 있다고.
‘꿈으로 겪은 일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꿈에서 입었던 상처가 현실에 생겨나지는 않는다.
‘심지어…… 루나의 영령이 남아 있는 게 가능한 이야기야?’
레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려 5000년 전의 일이다.
영령이란 세상이 미련이 남은 존재.
그리고 레오는 동료들이 이 세상에 미련을 남겼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비록 세상이 구원받는 걸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그들은 믿고 있었다.
남겨진 친구들이 세상을 구해 줄 것을.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구원받았다.
이것으로 동료들의 가장 큰 숙원은 풀렸다.
‘만약 그 꿈이 영령술이라면…… 루나 녀석에게 다른 걱정이라도 있었나?’
레오가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똑똑- 끼익-
“레오 도령, 일어났나요?”
노크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첸 시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일어났어.”
“네. 식사하세요.”
“그래.”
잠에서 깬 건 새벽이었지만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뭘 할 생각이세요?”
방으로 나선 레오 곁에 서며 첸 시아가 묻자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찾을 게 있어.”
“찾을 거요?”
“그래.”
“뭘 찾으시나요?”
의아한 듯 첸 시아의 물음에 레오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무덤.”
***
아침을 먹은 레오는 곧바로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레오님. 시아 양이 그러던데 무덤을 찾는다고 하시던데요. 누구의 무덤을 찾으시나요?”
“루나의 무덤.”
“아, 루나님…… 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에이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입을 뻐끔거렸다.
“루, 루나님이요?”
“맞아. 루나가 죽은 곳이 이 주변이거든.”
“세, 세상에!”
에이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는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입술에 검지를 댔다.
그러자 에이란이 황급히 입을 막았다.
“무슨 비밀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나요?”
저 멀리서 다가온 첸 시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별것 아니야.”
아직 레오의 정체를 모르는 첸 시아에게 루나의 무덤에 관한 걸 이야기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세 사람이 숲속에서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세요?”
“그것까진 모르겠군.”
첸 시아의 물음에 레오가 덤덤히 대답했다.
‘무덤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을 확률이 높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루나의 무덤에 대해 생각하던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레오 도령?”
갑작스러운 분위기가 돌변한 레오를 보며 첸 시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영웅 후보생들인가? 이곳에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이 왜 있는 걸까?”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서벅- 서벅-
수풀 밟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
첸 시아는 그 여인이 풍기는 기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평범한 마족이 아니란다, 인간 계집.”
피의 여왕, 엘제니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는 위대한 타르타로스의 군단장, 피의 여왕 엘제니에다.”
느닷없는 거물의 등장에 첸 시아와 에이란이 흠칫했다.
“군단장이 여긴 웬일이지.”
레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알려줄 이유는 없지만, 후훗. 사령왕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 왔다는 것 정도는 알려주지.”
엘제니에는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사령왕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령왕.
그 이름은 언급만으로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미 자신의 존재로 인해 극한의 공포를 느끼고 있을 영웅 후보생들에게 더 큰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피의 여왕은 극한의 공포를 심어주며 세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다.
“사령왕.”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놈이 굳이 군단장씩이나 되는 마족을 이곳까지 보낼 정도라면…… 루나의 무덤을 찾아온 거냐?”
“네놈이 그걸 어떻게?”
엘제니에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레오의 안광이 번뜩였다.
레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가공할 만한 살기에 주변이 술렁인다.
첸 시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물의 정령과 계약을 한 첸 시아에게 정령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게 느껴졌다.
에이란의 입술은 파들파들 떨렸다.
원초적인 살기.
그것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애초에 마족이 이곳에 온 순간부터 곱게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레오는 웃고 있었다.
“목적이 루나의 무덤이라면 더욱 신경 써줘야겠지.”
‘뭐냐, 이 인간은.’
엘제니에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섬뜩하다거나 두렵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피의 여왕이라 불린 만큼 그녀는 피를 다루는 능력을 지닌 군단장이었다.
그리고 레오의 붉은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조차 숨이 막힐 것 같은 피냄새가 느껴졌다.
‘마족의 피 냄새.’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압도당했다.
본능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족들을 학살해왔다는 것을.
마치 도살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오를 본 엘제니에가 본능적으로 도망치려고 마음먹은 순간.
부악-!
“끼아아아아아아아악!”
레오가 검으로 엘제니에의 목을 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