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96)
496.
회색의 하늘 아래.
군단장과의 전투를 마무리한 대영웅들이 숨을 헐떡였다.
“이, 이번에는 정말 죽은 줄 알았어.”
아르온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동감일세. 설마 군단장 중 그런 능력을 지닌 자가 있었을 줄은.”
매사에 무던하던 드웨노 역시 전투 도끼를 내려놓으며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것으로 요르문간드에 이어 두 번째 난적을 쓰러트렸어. 모두 수고했어.”
리시나스가 심호흡하며 동료들을 다독였다.
“카일과 루나는 어디 있나?”
드웨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 구역에 있는 도서관에 갈 거라면서 루나가 카일을 데려갔어.”
“쯧. 가장 휴식을 취해야 할 사람을 가장 멀쩡한 사람이 데려가 버렸군.”
그 말에 리시나스가 쓰게 웃었다.
이번 군단장은 말 그대로 카일에게 있어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면 루나는 군단장의 권능에 대한 저항력이 강했다.
‘전투는 루나가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했어.’
리시나스도 속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그런데 왜 루나는 늘 해방 도시의 도서관에서 마도서들을 잔뜩 가져오는 거야?”
파티원 중 유일하게 마법의 문외한인 아르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법을 공부하기 위해서지.”
“루나는 세계에서 이미 제일 대단한 마법사잖아. 더 이상 배울 게 있어?”
드웨노의 설명에도 아르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그런 아르온을 보며 리시나스가 말했다.
“마법사들에게는 이런 속담이 있거든. 아무리 위대한 마법사라도 길거리 점술사에게 배울 것이 있다.”
“아하. 루나는 그럼 더 발전하기 위해 다른 마도서를 읽는 거구나.”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 하지만 그 이전에 루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거든.”
“꿈? 뭔데?”
아르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알고 싶어 해.”
“너무 터무니없지 않아?”
아르온이 입을 떡 벌렸다.
마법을 모르는 아르온도 알고 있다.
이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마법이 존재한다는 걸.
그 마법을 모두 아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다.
“터무니없지. 마법은 끝없는 미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니까.”
리시나스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루나 같은 마법사에게는 새로운 마법을 배운다는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일 게 분명해.”
휘오오오-!
메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루나에게는 아마 모르는 마법이 가득한 세상은 천국일 거야.”
***
“……여긴 천국인가?”
마법학과 2학년 도서관에 도착한 루나는 눈앞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마도서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요즘 마법사들이 배우는 기초 마도서를 펼쳐 본 루나는 팔등으로 눈을 가리고는 ‘아흑-!’ 신음성을 내뱉더니 비틀거렸다.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 아니. 죽어도 좋아.”
“넌 이미 죽었어.”
레오가 옆에서 태클을 걸었지만, 루나는 무시하고 마도서를 읽는 것에 집중했다.
‘기초 마도서에 있는 주문이라면 발동 술식 위주일 텐데.’
레오가 이 시대의 마법을 본격적으로 접한 건 루메른에 입학한 이후부터이다.
그리고 그때 발동 술식이라는 걸 처음 봤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 해도 5000년 전 수준의 마법 지식을 가졌던 레오는 당시 발동 술식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와, 미래에는 외우기만 하면 발동되는 술식도 있구나.”
하지만 루나는 발동 수식을 보고 얼마 안 있어 순식간에 구조를 파악했다.
“한번 써보고 싶은데?”
“여긴 마법학과 도서관이라 간단한 마법은 사용해도 돼.”
“그래 그럼. 호잇.”
루나가 발동 수식을 가지고 간단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대박.”
루나가 감탄했다.
불꽃을 피우는 간단한 파이어 마법.
루나는 이내 발동 수식을 즉석에서 제조하더니 파이어 마법을 파이어 볼로 변화시켰다.
“여전히 대단하네.”
“후훗.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천하의 루나님이야. 루나님.”
루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발동 수식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마스터한다.
마법을 거둔 루나가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혹시 내 미련은 무한한 마법의 가능성을 다 보지 못한 게 아닐까?”
그 말에 레오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후후. 그래. 난 마법을 탐구하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으니까.”
“처음 보는 마도서를 항상 탐욕적으로 쳐다보곤 했지.”
“너 어휘 선택을 참 이상하게 한다? 청순하고 청초한 나랑 탐욕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굉장히 어울리지.”
루나는 주먹으로 레오의 옆구리를 때렸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레오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어쨌든 마도서는 나중에 실컷 볼 수 있으니 이쯤 해 둬.”
“난 지금 읽고 싶은데?”
루나가 마도서를 품에 꼭 안으며 말하자 레오가 혀를 찼다.
“네가 만나 봐야 할 사람이 있어.”
“내가 만나 봐야 할 사람?”
레오의 말에 루나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
[아아.]5000년의 세월을 살아온 요정왕은 눈앞에 있는 과거의 맹약자를 보며 몸을 떨었다.
[이게…… 꿈은 아니죠.]“정말 많이 컸네. 실로드. 하긴. 5000년이나 지났으니까.”
[루나!]실로드는 울면서 미소 짓는 루나에게 날아갔다.
루나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실로드가 파들파들 어깨를 떨었다.
“응. 장하다. 장해.”
루나는 그런 실로드의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며 웃었다.
그런 루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루나와 실로드가 함께 있는 광경을 지금 시대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루나는 실로드가 탄생하던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순간부터 맹약을 맺었다.
맹약의 관계였지만 그 이전에 두 사람은 가족 같은 사이이기도 했다.
‘루나의 미련 중 하나는 실로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
마지막 여정을 떠나기 전.
루나는 실로드와 약속했다.
꼭 돌아오겠노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것이 미련으로 남았다면.
이 해후가 루나에게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요정왕의 거처에서 재앙의 시대 당시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베르키아는 누구랑 결혼했어?”
“평범한 엘프 청년과 결혼했어요. 의외죠?”
“평범한 엘프 청년?”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오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녀석, 자기보다 약한 남자랑은 절대 결혼 안 할 거라면서 떠들고 다니지 않았어?”
“응. 분명 그랬는데.”
루나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범하지만 굉장히 순박하고 착한 청년이었어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죠.”
실로드는 회상하듯 과거를 떠올렸다.
“옆에 있으면 편안함을 주는 엘프였죠. 어쩌면 그래서 베르키아가 마이드를 선택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선택했다니?”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의 베르키아는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실로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을 재건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무너졌던 질서를 새로 잡아야 했죠. 리시나스가 세운 가드스론의 질서는 리시나스가 사라진 후 혼돈으로 변모했어요.”
세상을 구한 대영웅들이 살아 있었다면 세상이 평화를 찾은 이후에도 큰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마지막 에레보스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대영웅들은 분명 이 세계의 구원자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억제력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일그러진 모습을 갖는다.
하지만 세상이 멸망의 직전에 선 상황에서 일그러진 본성은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리시나스는 그러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활동하던 녀석들은 내가 처리했지.’
[가드스론의 주민 중에서도 욕망에 충실한 악인으로 변모한 자들이 많았어요.]“믿기지가 않네. 가드스론은 분명 모두가 선했는데.”
루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다들 본성을 억누른 게 아닐까 싶어요.]세계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대영웅과 무수히 많은 영웅.
그들이 모범을 보였기에 멸망 직전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선하고 질서가 잡혔던 세계였다.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했다.
“우리의 힘이 무서워 본성을 숨겼다는 건가?”
레오의 중얼거림에 루나가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세계니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루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가드스론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왔어. 우리가 봤던 그 모습에 분명 거짓은 없었어.”
루나의 말을 듣고 레오는 과거를 떠올렸다.
환생을 한 레오에게는 상당히 옛날 일처럼 느껴지지만, 루나에게는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아이러니하네. 멸망을 앞둔 세계의 사람들이 더욱 선한 본성을 가진다는 게.”
“세계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겠지.”
레오의 말에 루나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세계를 재건하고 질서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았다?”
[네.]“행복했냐?”
레오가 퉁명스럽게 묻자 실로드가 빙그레 웃었다.
[마이드와 있을 때면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마치 두 사람과 함께 있을 때처럼.]“그거 다행이네.”
레오가 피식 웃었다.
“뭐야? 베르키아랑 그렇게 티격태격하더니? 이상한 남자 만나서 고생 좀 해야 철이 든다는 망언을 한 주제에 웬일로 제자 걱정을 하네?”
“넌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성 파탄자.”
루나가 방긋 웃으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런 루나를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나도 남겨진 녀석들을 걱정해. 게다가…….”
“게다가?”
“그 녀석, 나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모양이더라고.”
의외의 말에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를…… 아버지처럼?”
“그래.”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본인 입으로 말하던걸? 영웅의 세계에서 들었어.”
그 말에 루나가 빤히 레오를 보더니 푸훕- 하고 웃었다.
“은근히 어울리네.”
‘확실히 잔소리 많은 아빠와 사춘기의 딸 같은 느낌이긴 했어.’
킥킥- 거리던 루나가 살짝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난 엄마려나?”
“엄마는 개뿔. 그냥 노는 수준이 딱 똑같으니 언니 정도러 여겼겠지.”
루나는 레오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 찼다.
물론 레오는 피했다.
루나가 씩씩거리자 실로드가 웃으며 말했다.
“베르키아는 두 사람을 부모라고 생각했어요.”
“것봐! 나도 베르키아를 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고!”
루나가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딸처럼 생각했으면 교육 좀 시키지 그랬냐. 오냐오냐하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건방져졌잖아.”
툴툴거린 레오를 보며 루나는 귀를 막고 모른채 했다.
그런 루나를 보며 혀를 찬 레오가 실로드에게 말했다.
“실로드, 잠깐 둘이서 얘기 좀 하자.”
[네.]“무슨 비밀 얘기를 하려고?”
“비하르에 관한 얘기야.”
레오와 실로드는 요정왕의 거처 한켠으로 향했다.
레오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세계가 혼란스러웠다고 했지?”
[네.]“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예상은 가지만 비하르는 어떤 삶을 살았지?”
[…….]레오의 물음에 실로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을 처단하는 삶을 살았어요. 마치 그들이 삶을 누리는 걸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살았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항상 피바다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비하르를 마족보다 더 두려운 존재로 여겼어요.]***
“그렇구나. 베르키아 녀석. 나랑 레오를 엄마와 아빠처럼 여겼다고?”
원정을 떠나는 아침.
자신을 찾아왔던 제자를 떠올렸다.
‘다행스럽게도 행복하게 살았구나.’
‘절대 스승님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게요. 그리고 만약 또 스승님들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게요.’
‘우린 꼭 돌아 올 거야. 베르키아.’
‘그래도요! 돌아오신 다음에도 몰래 스승님들을 욕하는 자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놈들은 절대절대절대 용서 안 할 거예요!’
베르키아의 말이 떠올랐다.
‘아쉽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루나의 눈이 흐릿해졌다.
‘베르키아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행복하게 살았다는 걸 알았음에도 만족되지 않는다.
더한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더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베르키아가 행복했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는 걸 느끼며 루나가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좋다.’
자신들이 구한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법은 진보했다.
불과 며칠 살았을 뿐이지만 정말 행복한 세상이었다.
‘큰일 났네.’
루나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미련이 생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