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19)
519.
뚜벅- 뚜벅-
2학년들이 사용하는 대강의실에 무미건조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름 아닌 루메른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할린드였다.
그의 등장에 2학년 전체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영웅학 특별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 수업을 진행하는 인물이 바로 할린드 교수였다.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2학년들은 할린드와 만나게 될 일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할린드는 여전히 2학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2학년 전체가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칼 토마스.”
“예, 옙!”
벌떡-!
나직한 할린드의 말에 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엘리자 헤르긴을 깨워라.”
그 말에 칼이 흠칫하더니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엘리자가 병든 병아리처럼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었다.
평소 다른 교수들의 수업이라면 대놓고 자거나 피곤하면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엘리자였지만 할린드의 수업에서만큼은 성실하게 들었다.
엘리자도 할린드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엘리자. 일어나.”
칼이 엘리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엘리자는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3초 준다.”
할린드의 말에 흠칫한 칼이 엘리자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흔들었다.
“엘리자! 일어나!”
그 말에 흠칫한 엘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할린드와 눈이 마주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할린드는 그런 엘리자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대체 밤에 무슨 짓을 하길래 수업 시간에 조는 거지?”
“그, 그게.”
“다음은 없다.”
“예, 옙!”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답하는 엘리자를 보며 할린드가 단상 가운데 섰다.
자리에 앉은 엘리자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며칠째 새벽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레오의 훈련이 시작되고 닷새가 지났다.
그 이후부터 엘리자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 내내 뇌전의 정수의 힘을 버틴다.
훈련이 끝난 이후 명상을 통해 영력을 가다듬는다.
이후에는 육체를 단련했다.
수업 역시 늘 빠질 수 없다.
대놓고 잠을 자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언제까지 수업을 듣지 않을 순 없다.
아무리 훈련 때문에 몸이 피곤했다 해도 그것을 빌미로 성적이 떨어지는 건 엘리자의 성격상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잠을 자지 않고 공부와 훈련을 병행하는 거라면 엘리자도 이렇게까지 피로에 내몰리진 않는다.
하지만 뇌전의 정수를 받아들이는 건 엄청난 영력과 체력을 소비하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정신과 육체적으로 극한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레오는 한마디 조언도 하지 않았지만, 엘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생각이었다.
엘리자가 눈가를 지압하며 어떻게든 피로를 쫓아내려 할 때 칼이 피로회복 포션을 건넸다.
“마셔. 특별 제조한 거야. 잠이 조금은 깰걸?”
“고마워요. 나중에 계산할게요.”
“괜찮아, 서비스야.”
칼이 빙긋 웃었다.
“넌 내 단골 고객이잖아. 그리고 친구기도 하고. 힘들 땐 도와야지.”
“친구?”
엘리자가 미간을 좁혔다.
“당신은 날 친구라고 생각해요?”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기숙사면 친구지 뭐. 그리고 미래의 우량 고객!”
칼이 엄지를 척 들자 엘리자가 코웃음을 쳤다.
“칼 토마스, 잡담을 하는 걸 보니 죽고 싶은 모양이군.”
“아, 아닙니다!”
할린드의 지적에 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칼을 힐끗 바라보던 엘리자는 포션 병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는 사이 대강의실 내부는 침묵만이 오갔다.
학생 전부가 할린드에 집중했다.
오늘 영웅학 특별 수업은 갑자기 공지된 수업이었다.
모든 전공 수업 및 부전공, 교양 수업이 취소되고 대강의실에 2학년 전부가 모였다.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호기심도 컸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할린드가 입을 열었다.
“최근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쾅-!
“사태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쉬쉬하고 있지만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다!”
대강의실 문이 거칠 게 열리고 세드젠이 할린드의 말을 가로챘다.
그런 세드젠을 보며 할린드가 말했다.
“내 수업이다만? 세드젠 교수.”
“2학년은 내 담당!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 자네는 1학년 수업을 진행하게!”
“이번 수업은 학년을 가리지 않고 내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그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를 했지!”
“교수 회의에서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오도록. 셀리아 제르딩거, 듀란 모이라.”
할린드는 우등생답게 맨 앞줄에 있는 기사학과 두 사람을 호명했다.
“끌어내.”
“세드젠 교수님. 이러시면 안 돼요.”
“바깥으로 우리가 모시겠습니다.”
셀리아와 듀란이 깎듯이 세드젠에게 인사하고 그를 붙잡고 끌고 나갔다.
“이게 뭣 하는 짓이냐! 너희는 사랑스러운 내 제자가 아니었더냐! 지금 할린드의 앞잡이 노릇을 하겠다고! 이익! 놔! 놔라아아아! 너희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이제는 익숙한 광경에 2학년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드젠이 나가고 강의실이 조용해지자 할린드가 수업을 계속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일이 뭐지?”
할린드의 질문에 학생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칼 토마스.”
“세드젠 님이 다시 난입하는 겁니다.”
“나와서 머리를 박고 엎드려라.”
“죄송합니다.”
“나와라.”
칼이 울쌍을 지으며 할린드 곁에서 벌을 받았다.
“칼군은 역시 재미있네요.”
에이란이 웃으며 첼시에게 말하자 첼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칼이요? 그게 누구예요? 난 그런 애 몰라요.”
첼시가 대놓고 칼을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런 가운데 할린드는 칼 다음으로 빨리 손을 든 학생을 호명했다.
“넬라 카븐.”
“선대 영웅들이 언데드로 부활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 왜 심각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지난 50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영웅의 시대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넬라를 보며 할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할린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5000년 전, 대영웅들이 에레보스를 토벌하고 재앙의 시대를 종식한 후 세계는 비로소 평화를 얻을 수 있었지. 그 과정에서 지상을 떠난 신들은 세계에 히어로 레코드를 선물했다. 이후 신들의 인정을 받은 위업을 이룬 자들이 영웅이 되어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 왔다.”
그 말에 모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모두가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영웅이란 신에게 인정받은 고결한 자들이다, 이 말을 부정하는 자가 있나?”
할린드의 물음에 2학년 전체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과거의 영웅들이 사령왕에 힘에 의해 망자로 다시 부활해 우리에게 칼끝을 겨누는 거지?”
“…….”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신에게 고결 받은 자가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사령왕의 무기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그자는 정말 고결한 것인가?
영웅의 시대의 근간은 ‘영웅’ 이다.
영웅은 신에게 선택받은 신의 대리인이다.
재앙의 재림을 막아낸 이후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졌다.
세계를 이끄는 자.
그런데 그런 자들이 사실은 신의 대리인이 자격이 없었다면?
지금의 시대는 언뜻 보기에는 화려해 보일지 모른다.
용자 아르온과 성운의 시조 루나의 등장.
에레보스 조각의 토벌과 사령왕에게서의 승리.
히어로 레코드의 새로운 기적들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영웅은 정말로 신의 대리인이 맞는가?’ 라는 의구심이 싹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심의 싹은 믿음에 균열을 만든다.
그리고 균열은 붕괴를 초래한다.
“이 특별한 영웅학 수업을 하는 이유는 그 일들과 연관되어 있다.”
할린드의 말에 학생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바드가 손을 들었다.
“질문해라, 아바드 르왈린.”
“할린드 교수님은 지금의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희들도 알 것이다. 영웅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라는 걸.”
할린드가 혀를 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 해도 영웅은 신에게 인정받을 만한 고결한 ‘신념’을 품고 있다고 생각들을 해왔지.”
“그렇기에 신의 선택을 받은 거죠.”
“그래. 하지만 오랜 세월 루메른의 교수로 일해온 나는 의구심을 느껴왔다.”
할린드가 학생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신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말이야.”
“네?”
“영웅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학생도 영웅이 되더군. 영웅이 돼서는 안 되는 학생도 영웅의 자리에 올랐고 말이야.”
“…….”
루메른 교수로서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신이 없는 시대라고는 하나 신은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신을 따르는 자들은 없다고 하지만 신의 뜻을 대변하는 영웅이라는 존재가 있는 시대다.
신성모독.
그것은 곧 세계를 이끄는 자인 ‘영웅’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것이 설령 영웅 사관 학교의 교수라 할지라도.
무수히 많은 제자를 키워온 할린드라고 할지라도 외부로 새어나가면 교수직이 위험할 수위의 발언이었다.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언데드가 되었다면 그 또한 신의 뜻이라고 떠드는 멍청이들도 존재하지.”
할린드가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근 히어로 레코드에 변화가 있었다.”
“어떤 거죠?”
“최근 히어로 레코드에서 기록이 말소되어 영웅의 자격이 박탈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
모두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히어로 레코드의 기록 말소.
듣도 보도 못한 대사건이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볼 학생 있나?”
그 말에 학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레오 플로브.”
할린드의 호명에 모든 학생의 시선이 레오에게 쏠렸다.
“영웅이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권리. 영웅이었기에 묻지 않았던 죄. 영웅이었기에 짊어지지 않았던 책임을 지게 되겠죠.”
레오가 선언하듯 말했다.
“신들의 선택이 번복되었으니 그들의 선택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기존의 체계가 무너질 수 있고 새로운 질서가 생길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진짜’ 영웅만이 남게 되겠죠.”
레오의 대답에 할린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는 자신이 있나 보군, 레오 플로브.”
“애초에 신의 선택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거든요.”
***
사각- 사각-
어두운 지하.
순백의 화려한 옷을 입은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하기 힘든 아름다운 이가 커다란 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커다란 여백을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이윽고 기록을 끝낸 아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사아아아아아-!
그러자 책에 쓰인 글자들은 증발하듯 책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회색의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왜 기록이 자꾸 지워지는 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귀 따가우니까 그만 좀 지껄여! 뭐? 왜 피브아의 부탁만 들어주냐고? 내가 멋대로 성운의 시조의 후계자처럼 기록했다고? 루니아 엘 룬드아! 걘 내가 기록한 게 아니야! 레코드 시스템에 자동으로 쓰인 거라고! 너희도 알잖아! 그 망할 흉물 때문에 레코드 시스템이 폭주하고 있는 거!”
아이는 허공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뭐? 레오 플로브? 그건 또 누구야? 난 그런 이름을 가진 영웅을 몰라!”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은 아이가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겼다.
아이가 있는 공간은 기묘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진짜! 그렇게 답답하면 자기들이 레코드 시스템의 사서를 하던가!”
도서관을 나가려던 아이의 걸음이 멈췄다.
레코드 시스템의 가장 첫 번째 책장.
분명 불타 사라져버린 책장에 어느새 몇 권의 책이 생겨나 있었다.
“어?”
아이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카일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