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25)
525.
“레오님. 이걸 봐주세요. 이건 제가 손수 손으로 깎은 검을 든 카일님의 조각상이에요. 재앙의 시대가 끝나고 1년에 하나씩 정성 들여! 카일님의 조각상을 매년 정성 들여 깎아 왔어요. 이건 마법을 쓰는 카일님! 여기 있는 건 소환술을 쓰는…….”
신은 책장 한쪽에 전시해놓은 조각상을 가져와 카일에게 보여주었다.
보석으로 조각한 동상은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이 생동감 넘쳤다.
레오는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한 붉은색 카일 조각상 하나를 들어 올렸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는 웃음.
루나가 소위 말하는 ‘재수 없는 웃음’ 이었다.
“카일님께서 적을 섬멸할 때 짓던 웃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카리스마 넘치는 미소! 아아! 저에게도 그 미소를 영접할 기회를 주실 수 없을까요?”
꺅-! 꺅-! 옆에서 작은 비명을 질러대는 신.
그 반응에 레오가 얼굴을 팍 구기더니 망설임 없이 손에 쥐어진 조각상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챙그랑-!
“나의 예술 작품이!”
새된 비명을 지른 신이 엉금엉금 기어가 흩어진 파편을 그러쥐고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흘려댔다.
절망하던 신은 이내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래! 파괴는 새로운 시작! 지금의 파괴는 카일님이 레오님으로 환생했다는 걸 의미하는군요! 이 파편들 자체가 의미가 있는!”
콰직! 드드드득! 드드득-
레오는 파편을 짓밟고 바닥에 마구 비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새로운 시작이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걸 보고 다시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은 채로 절망하는 신을 향해 레오가 싸늘하게 말했다.
“신이 할 짓 없는 족속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대체 이딴 걸 왜 만드는 거야?”
“이걸 만들면서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요.”
“일?”
“제 소개가 늦었군요.”
자리에서 일어난 신이 레오를 바라보더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제 이름은 리안. 히어로 레코드의 사서이자 기록자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사서이자 기록자라고? 히어로 레코드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정확하게는 대리 권한이죠. 이 레코드 시스템은 당신의…… 아니, 정확하게는 대영웅들의 것이니까요.”
“과연, 그래서 루나가 루니아를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할 수 있었던 건가?”
“루나? 루나 루비넌스도 현세에 환생한 건가요?”
리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감이 깃들어있었다.
“영령으로 얼마 전 잠시 지금의 세계에게 머물렀어.”
“아.”
리안이 아쉬움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반응을 보아하니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일전에 영웅의 세계에서 피브아와 만난 적이 있어.”
“피브아? 과연.”
리안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리안을 보며 레오가 물었다.
“그나저나 5000년 전의 사건으로로 신은 더 이상 지상에 머물지 못하게 된 게 아니었나?”
“네, 신은 더 이상 지상에 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지상에 있는 거지? 히어로 레코드를 관리해왔다면 5000년 동안 지상에 있었다는 거잖아?”
“예, 제가 지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히어로 레코드 덕분이죠.”
“히어로 레코드 덕분이라고?”
“예. 그 이유에 관해 설명 드리려면 히어로 레코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먼저 설명드려야 할 것 같군요.”
리안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갑자기 의자와 테이블이 뿅! 하고 나타났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방금 전 현상에 경악했을지 모를 일이다.
단순하게 아공간을 통해 의자와 테이블을 불러온 게 아니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의 법칙 개입한 것도 뒤튼 것도 아닌 그냥 법칙을 바꾼 것.
마법으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레오는 덤덤했다.
‘이 녀석은 전지전능한 신이니까.’
물론 신들은 그 전능함을 지상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신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관리자, 정확하게는 관찰자에 가깝다.
관리라고 해봐야 세계가 멸망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
즉, 에레보스를 억눌러 온 것이다.
그 외에는 힘을 지상에서 힘을 행사할 수 없게 제약되어 있다.
그렇기에 신은 전지전능하면서도 무능하다.
거기다 영겁의 세월을 살았기에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욕망이 강하다.
루나가 신을 불신하는 이유였다.
‘피브아 같은 선신은 굉장히 드물지.’
레오가 힐끗 리안을 바라보았다.
‘이 신도 미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곱게 미친 편인 것 같고. 굳이 따지자면 선신이겠지.’
선신.
선한 신을 의미한다.
물론 다른 신들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지상에서 분탕질을 치고 골탕을 먹이는 것 정도.
‘뭐, 신이라 스케일이 커서 골 때리지만.’
미쳐도 더럽게 미친 자들도 있다.
당장에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된 영웅들만 봐도 그렇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리안 정도는 아주 양호한 신이라는 걸 레오는 알고 있었다.
“아주아주 먼 옛날. 태초의 흉물과 다섯 대영웅이 있었어요.”
리안은 왼쪽 다섯 손가락 끝에 대영웅들의 형상을 한 인형을, 오른손에는 에레보스의 인형을 꼈다.
“흉물이 포효했어요. 캬오!”
“…….”
인형극을 시작한 리안은 한 없이 진지한 얼굴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정, 좀 더럽게 미친 것 같네.’
“하지만 흉물은 대영웅들에게 패배했죠.”
리안은 왼손가락을 유려하게 움직여 오른손을 마구 두들겼다.
“그거 시답지 않은 연극 언제까지 봐야 하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거든요.”
왼손가락의 대영웅 인형들로 에레보스 인형을 거침없이 두들기던 리안이 인해 왼손으로 에레보스 인형을 부왁- 부왁- 처참하게 찢어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검은 천 조각이 하늘로 치솟았다 아래로 추락한다.
“멋있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묻는 광신을 보며 레오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래.”
“아이~”
양 볼에 뺨을 감싸고 한 번 좋아라한 리안이 다시 표정을 싹 바꾸고 말했다.
“이렇게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신들은 불가능한 위업을 세운 대영웅들의 업적을 영원토록 찬양하기 위해. 또,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흉물의 재림을 대비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레코드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존과 완전히 다른 레코드 시스템?”
“예.”
리안이 양팔을 펼쳤다.
“아카샤 레코드. 세계 그 자체를 기록하는 레코드 시스템입니다. 신계로 귀환한 모든 신들이 자신의 전능을 모아 완성한 시스템이죠. 이 도서관은 그 아카샤 레코드 그 자체입니다. 이것과 같은 카피 도서관이 신계에도 있죠.”
“세계를 기록한다는 건 정확하게 무슨 뜻이야?”
의문을 표하는 레오를 보며 리안이 빙긋 웃었다.
“5000년 전부터 세계의 모든 일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특정 장소에서 있었던 벌레들의 작은 움직임부터 그 장소에서 어떤 산들바람이 불었는지…… 신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정보의 총집합이었죠. 오래전 세상을 만들고 우리에게 세계의 관리를 맡긴…… 신들도 만난 적 없지만 분명 창조주조차 이런 것이 만들어지리란 건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대단한 건 알겠어. 그런데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이유가 뭐야?”
“신들이 만들고자 한 건 ‘세계’ 그 자체였으니까요.”
“세계 그 자체?”
“네. 한정적이긴 하지만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단편적이지만 창조의 권한에 닿기 위해.”
리안이 눈을 감고 즐겁게 미소 지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지금 시간대에 ‘진짜’처럼 구현하기 위해.”
그 말에 레오의 안색이 돌변했다.
“영웅의 세계.”
“맞아요! 이 모든 것이 히어로 레코드를 만들기 위한 기초 공사였어요. 아카샤 레코드는 히어로 레코드를 이루는 기본 베이스 시스템인 셈이죠.”
리안이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아카샤 레코드에 기록된 인물 중 ‘영웅’ 이라 불릴만한 자들을 골라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했습니다. 지상의 아이들이 과거의 기록을 답습하고 선대 영웅들의 힘을 계승할 수 있도록 말이죠. 하지만 히어로 레코드는 선별 작업이 필요했고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을 할 수 있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히어로 레코드 자체를 구성할 힘의 원천도 필요했죠.”
“그게 너란 건가?”
“네. 저는 히어로 레코드의 사서이자 히어로 레코드의 일부이죠.”
“자신을 희생했다는 거잖아? 신이나 되는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히어로 레코드의 일부가 되는 것에 가치가 있나?”
“다른 신들에게는 없겠죠. 지원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왜?”
“…….”
리안은 회색 눈을 뜨고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회색을 싫어했습니다. 다 타 버려 쓸모없어진 잿빛과 같은 색이거든요.”
리안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당신도 싫어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비웃었죠. 우선은 회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져서 싫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도 없으면서 죽지 못해 사는 당신이 참으로 덧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앙의 시대 당시 세계의 멸망을 확신했습니다. 모든 신들이 그랬겠지만…… 저는 비웃는 쪽에 가까웠죠.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한 주제에 소멸은 또 싫었습니다.”
세계의 소멸은 신들의 소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세계를 구했죠. 경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안이 빙긋 웃었다.
“그래서 당신의 의지가 영원토록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이미 모든 걸 포기했던 제 입장에서는 제 존재를 아까워 이유가 없었죠.”
“나 같은 힘을 가졌더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리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지한 신들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 위업을 폄하하지 마시길. 당신을 끝까지 믿었던 동료들의 믿음을 폄하하지 마시길.”
리안이 회색 눈을 똑바로 뜨고 레오를 바라보았다.
“오직 당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건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
레오가 볼을 긁적였다.
‘신은 신이군.’
역시 쉽게 볼 수 없다며 속으로 중얼거린 레오가 물었다.
“내 존재 자체는 환생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나?”
“아니요. 그 빌어 처먹을 흉물 때문에 아카샤 레코드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오류를 일으키고 있죠. 또한 아카샤 레코드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신들조차 모든 기록을 꿰고 있는 게 아니라서요.”
리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다들 자신들이 원하는 영웅을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죠. 그래서 발견이 늦었어요.”
“레코드 기록은 네가 하는 거 아닌가?”
“네. 하지만 저도 모든 영웅을 파악할 수 없으니 신들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기록할 영웅을 선정합니다. 하지만 레오님도 아시다시피 신들이라는 족속들은 글러 먹었잖아요?”
리안이 인상을 구겼다.
“회의를 통해 영웅 같지 않은 것들도 기록이 된답니다.”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개벽의 영웅들을 바깥으로 보낸 이유는?”
“아, 그건 레오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영웅 던전을 열어 레오님이 이 장소에 오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흉물 때문에 폭주를 일으켜 제 힘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현세로 나가 버렸답니다.”
“역시 전능하면서도 무능하군.”
“아아!”
“왜 기뻐하는 건데? 칭찬 아니야.”
“전 레오님이 내려주시는 거라면 욕도 좋습니다. 아니, 제게 침, 아니 성수를 뱉어 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맞겠습니다!”
“…….”
“레오님, 이 머리카락! 당신을 숭배하게 된 이후 기존의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새로 심은 것입니다! 눈동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뽑아 버리고 새롭게 끼웠죠! 아아! 이제 붉은 눈도 가졌으니 한쪽도 뽑아야겠군요! 어디를 뽑지! 왼쪽? 오른쪽?”
‘그냥 더럽게 미쳤네.’
좋아지던 리안에 대한 인식이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레오가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히어로 레코드를 기록해 왔다면 한 가지 묻자.”
“네. 분부하시지요.”
“베르키아와 비하르에 대해서.”
“그녀들에 대해 아셨군요.”
리안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마음이 불편해지실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걸 바로 잡는 것도 스승의 일이야.”
“그럼…….”
리안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페어리 나이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