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26)
526.
레오가 발을 들인 곳은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아카샤 레코드로 펼쳐진 과거의 일.
차디찬 대륙 북부.
그곳은 말 그대로 황폐한 땅이었다.
레오는 그 가운데 서서 말없이 땅을 가꾸고 있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레오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폐허야말로 절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폐허 속에서 희망이 싹트고 있다.
레오가 알고 있는 대륙 북부, 엘프들의 터전은 비록 혹한의 땅이지만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5000년.
그 세월 동안 엘프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을 훌륭하게 가꾸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절망은 사라지고 희망이 싹 트는 모습.
이 풍경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에레보스가 멸한 이후의 세계였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시대.’
“거기, 그렇게 하면 안 되죠!”
휙-!
누군가 레오를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뒷모습.
마지막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았다.
‘아니, 더 성숙해졌나?’
레오가 기억하는 철 없던 모습은 없다.
스승들 앞에서만 보여줬던 건방지고 의지하는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해야죠!”
이제는 어엿했고 그랬기에 믿음이 갔다.
베르키아가 힘을 써서 건물의 기둥을 바로잡는다.
어딘지 모르게 당찬 모습은 루나를 떠올리게 했다.
“아! 감사합니다, 베르키아님.”
“아뇨,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쟤한테 저런 면이 있었나?’
레오가 알고 있는 베르키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많은 엘프가 베르키아를 의지하고 따른다.
그 모습에서 리시나스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베르키아님~”
“우리랑 놀아요!”
그때 엘프 아이들이 우르르 베르키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내가 좀 바쁜데 어떻게 하지?”
베르키아가 곤란한 미소를 짓자 아이들이 귀를 축 늘어트렸다.
“그래도 잠깐만 놀까?”
“네!”
“얘가 애들을 좋아했었나?”
이건 아르온의 모습을 닮았다.
아이들과 모두 놀아 준 이후 베르키아는 다시 일을 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준다.
그 강철 같은 의지에 힘들어 엘프들이 다시 힘을 냈다.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드웨노를 닮아 있었다.
“…….”
“이곳도 많이 좋아졌네?”
“비하르?”
뒤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베르키아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서 와! 동쪽은 어때?”
“우리도 나쁘지 않아.”
비하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모양이네.”
안타까운 목소리로 묻는 베르키아를 보며 비하르가 눈을 감았다.
“여전히 배신자들은 많으니까. 매일 피를 뒤집어쓰는 나는 지금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해.”
재앙의 시대 당시.
카일과 비하르는 무수히 많은 배신자를 참살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섭다.
희망을 좀 먹는 존재는 역병처럼 생겨나고 또 생겨났다.
그리고 세계가 구원받은 이후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락한 삶을 누렸다.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뻔뻔하게 살아갔다.
“……우리는 이겼잖아. 세상은 이미 평화로워. 비하르, 그런 자들을 끝까지 쫓아가며 잡는다고 네 삶을 낭비하는 건 아깝지 않아?”
“아니, 나는 용납할 수 없어.”
비하르가 미소 지었다.
“누구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건데? 감히 뻔뻔하게 이 평화를 누린다고?”
하지만 눈에 깃든 건 명백한 증오와 살의였다.
“대가를 치러야 해.”
“비하르…….”
“어둠 속에 항상 내가 지켜 보고 있다는 걸 놈들은 알아야 해.”
마치 밤하늘의 달처럼.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야 해.”
비하르는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 비하르를 보며 베르키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사실 베르키아도 비하르와 같은 생각이다.
그녀 역시 이 세계를 좀먹었던, 아니. 언젠가 또다시 좀먹게 될 이들을 처단하고 싶다.
“넌 지금처럼 있어야 해, 베르키아.”
“…….”
“넌 나와 달라.”
비하르가 빙그레 웃었다.
마치 태양처럼 세계를 비춰야 한다.
베르키아는 그런 존재다.
“네가 세계의 어둠에 발을 담글 필요는 없어. 더러움을 알 필요도 없고. 넌 그냥 지금처럼 있으면 돼.”
“비하르, 너는 알아야 해. 세상이 마냥 더럽지만은 않다는걸.”
비하르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그게 잘 안되네.”
“…….”
비하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포기하지 말자. 스승님이 그랬던 것처럼.”
“……응.”
“다음 주에 성묘라도 갈까?”
“그럴까?”
밝게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오가 중얼거렸다.
“많이 컸네.”
레오는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다.
어느새 훌쩍 커 버려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의 모습.
그것이 밝은 세상이든, 깊은 심연이든.
자신이 정한 길로 나아간다.
각자의 방식으로 선대들이 물려준 세상을 가꾸어 나아간다.
무너진 세상을 일으켜 세우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전생에는 그저 각자의 인생을 잘 살 것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어떻게 클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믿음직한 아이들이니까 잘 살겠지.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막상 마주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정말…… 많이 컸어.”
***
시간은 흘러갔다.
레오는 베르키아의 곁에서 그녀의 일생을 지켜보았다.
엘프의 터전을 재건했다.
세계를 위해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바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빛을 되찾은 세계가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고오오오오오-!
눈 앞에 펼쳐진 타르타로스의 군단.
에레보스가 토벌되고 지금까지 세력을 유지하던 타르타로스가 다시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쳐들어왔다.
가까스로 세계를 재건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그건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세계 각지에 숨죽이고 있던 배신자들이 터전을 파괴했다.
가까스로 일군 희망이 짓밟히고 불탔다.
에레보스 토벌 이후.
수년 동안 대영웅들에게 입은 피해를 수습하고 힘을 키워 돌아온 타르타로스의 군단은 막강했다.
많은 영웅은 이미 재앙의 시대 때 눈을 감았다.
대영웅들도 이제는 없다.
있는 것은 그저 영웅의 자질을 가진 새싹들.
힘이 부족하며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세계는 우리의 터전입니다!”
대영웅들은 분명 이런 사태를 예견해 희망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받았을 뿐입니다!”
선두에 선 베르키아가 소리쳤다.
“이제는 선대들이 물려준 이 세계를 지켜야 해요!”
절망하던 새로운 영웅들이 선두에 선 베르키아를 바라보았다.
빛에서 태어나 어둠 속을 살아야 하는 이들은 빛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을 갈망하는 건 어둠에서 태어나 빛이란 걸 보게 된 이들일지 몰랐다.
“우리가 지켜서 전해줘야 합니다! 그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절망 앞에서 베르키아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베르키아가 결연하게 소리쳤다.
“싸웁시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이후 2000년간 타르타로스의 공세를 불가능하게 만들 기적적인 승리를.
베르키아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었다.
***
“예뻐. 너무 예뻐!”
베르키아는 아기 침대에 있는 자신의 아이를 보며 밝게 웃었다.
그런 베르키아를 보며 마이드가 말했다.
“누구 아들인데.”
“내 아들!”
에헴! 하고 가슴을 활짝 펴는 베르키아에게서는 레오가 알고 있던 시절의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가 사랑하는 반려, 마이드 앞에서만 보여주는 모습이다.
“내 아들이기도 하잖아?”
“응. 하지만 내 영향을 더 많이 받았지.”
레오는 한쪽에 앉아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행복해 보이네.’
이곳에서 레오는 이야기에 개입할 수 없는 관찰자였다.
하지만 그런 레오에게도 베르키아의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레오의 얼굴은 마냥 밝지 못했다.
“아, 시간이 이렇게 됐네?”
베르키아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베르키아를 보며 마이드가 다급히 말했다.
“베르키아.”
“응?”
“이제 그만 은퇴해도 되지 않을까?”
“…….”
자리에 우뚝 선 베르키아가 마이드를 바라보았다.
“이제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잖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 재앙의 시대 이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을 거야. 이미 세계의 평화는 재건 되었다고 생각해. 넌 이미 많은 걸 해냈잖아? 이제 그만 삶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
베르키아가 눈을 감고 빙그레 웃었다.
“응, 분명 그래. 세계는 분명 빛을 되찾았어.”
이미 세계는 부흥했다.
충분히 밝고 아름답다.
재앙의 시대가 남긴 상흔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거야.”
지금 시대에서 베르키아는 과거 대영웅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 있었다.
세계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무너질 뻔한 세계를 구했다.
베르키아 혼자서 이루어낸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베르키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레오는 자신의 제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좀 더 밝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베르키아가 자신의 배에 두 손을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대영웅들이…… 스승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밝은 빛을 첫째……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둘째에게…… 후대를 살 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난 좀 더 힘낼 수 있어. 걱정하지마, 마이드. 난 베르키아니까.”
자신의 스승처럼 한쪽 눈을 찡긋하고 당당하게 말한 베르키아가 방을 빠져나갔다.
“…….”
레오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베르키아…….”
그리고 걱정스럽게 베르키아의 이름을 부르는 마이드의 옆을 지나치기 직전.
잠깐 멈춰 선 레오가 말했다.
“고맙다.”
제자의 곁에 있어 줘서.
닿지 않을 감사다.
하지만 꼭 전하고 싶었다.
마이드가 아니었다면 베르키아는 진즉에 무너졌을 테니까.
레오가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베르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가녀린 어깨가 세계를 짊어지고 있다.
물론 그건 리시나스도 다른 대영웅들도 했던 일이다.
하지만…….
‘우리 때와는 달라.’
멸망하기 직전의 세계와 평화를 되찾고 커져 버린 세계의 무게는 다르다.
그리고 그 세계가 베르키아를 짓누르고 있다.
***
쾅-!
“어찌 드워프들의 이득만 생각한단 말이오!”
“탐욕에 찌든 인간이 할 말은 아니군!”
“뭐요!”
대회의.
세계의 미래를 위해 논의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모는 자리.
초창기에는 서로 언성을 높이는 자리가 아니었다.
세계의 재건을 위해.
또한 번영을 위해 사명을 다했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권력자가 되며 이제는 서로의 이권을 위해 다툼을 하는 자리로 변모했다.
원래는 고결했던 자들도 권력을 맛보고 돌변했다.
혹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그저 자리를 물려받아 이 회의에 참석한 자들도 이제는 다수 보였다.
“…….”
가장 상석에서 베르키아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뀌었어.’
베르키아로서는 화합을 등한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욕심을 관철하는 저들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의 세계는 권력이란 것이 사라졌다 다시 뿌리 내린 세계다.
권력이란 걸 본 적도 없고 이해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들은 그 힘에 너무도 취해버렸다.
그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결했으니까.
“그만하세요.”
베르키아가 나직이 말했다.
불행은 예정된 결말일지 몰랐다.
“중재하겠어요.”
고결한 그녀가 가진 권력은 너무도 컸고 여전히 공명정대했다.
또 너무도 순수했다.
욕심에 눈이 먼 자들에게는 이제 베르키아는 자신의 욕심을 막아서는 방해물이 되었다.
추악한 악의가 베르키아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더 이상 페어리 나이트가 세상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걸 지켜볼 수 없다!’
***
전쟁이 일어났다.
베르키아는 경악했다.
어떻게 종족 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불과 몇십년 전까지 함께 멸망에 맞서 싸운 사이인데 전쟁이라니!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베르키아에게 이보다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베르키아는 다급히 나섰다.
단신으로 전쟁을 끝냈다.
최악의 결말로 치닫는 건 면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터벅- 터벅-
밝은 별빛 아래를 걸으며 베르키아가 씁쓸한 미소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힘드네요, 루나 스승님.”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베르키아가 양 뺨을 찰싹 때렸다.
“카일 스승님이라면 약한 소리 한다고 엉덩이를 걷어찼을 거야. 응! 힘내자. 전쟁을 막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자.”
베르키아는 주먹을 꾹 쥐며 다짐하고 워프 게이트를 열어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화르르르르륵-
불타고 있는 저택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건.
“안녕? 오랜만이네.”
섬뜩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마물 여왕, 실라투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