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30)
530.
레오는 자신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룬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조금 의문이 담긴 목소리.
자신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 레오를 보며 룬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시작의 영웅께서도 아시겠지만, 연륜이란 많은 것을 보여주죠.”
“애석하게도 난 당신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어. 뭐,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레오를 보며 룬이 쓰게 웃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룬은 레오의 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단순히 총명하다거나 엄청난 거물로 성장할 것 같이 미래가 창창하다 같은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본 것 같은 자의 눈.
절대 영웅 후보생, 그것도 1학년이 가질 눈이 아니었다.
레오의 행보 역시 놀라웠다.
가장 놀라운 건 성운의 시조가 남긴 ‘꽃을 피우는 마법’을 복원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복원이 아니었다.
룬 역시 엘프로서 평생을 별의 마법을 연구해온 자였다.
별의 마법에 대한 이해의 깊이로만 본다면 현존하는 마법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권위자.
그런 룬이 봤을 때 레오가 복원한 꽃을 피우는 마법은 복원이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치 꽃을 피우는 마법을 원래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그저 알고 있던 술식을 적어낸 것 같았죠.”
사라져 흔적만 남은 마법들이 후대에 복원되어 세상에 다시 나오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닌 이상 복원을 해서 발동이 된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물며 꽃을 피우는 마법은 완벽하게 복원된 지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제대로 된 해석이 불가능한 복잡한 마법이다.
그랬기에 룬은 레오의 존재가 의문스러웠다.
이후 영웅 후보생으로서 레오의 활약도 심상치 않았다.
두각을 드러내는 우등생 정도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영웅 후보생에 어울리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레오의 활약에 감탄하며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가운데 드웨노의 세계를 공략했던 손녀가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 베르키아님을 뵈었어요. 그리고 있잖아요! 레오님이요!’
눈을 빛내며 선조와 레오의 영웅담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이란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리고 세이룬의 재림과 루나의 강림에 대한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는 더더욱 레오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복잡하게 얽힌 실마리를 풀어간 끝에 도달한 결론.
그것이 바로 레오가 시작의 영웅 카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생각을 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의 영웅 카일님은 전대미문의 올 클래스. 그리고 세계의 역사에서 올 클래스였던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죠.”
카일과 레오.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렸음에도 칭호를 받지 않으시기도 했죠. 생각을 해보면 ‘이미’ 칭호가 있다면…… 새로운 칭호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게다가 절대란 건 없는 법이죠. 지금 시대에서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재앙의 시대에 토벌 되었던 군단장의 등장.
그리고 과거 영웅들이 망자가 되어 살아나기도 했다.
히어로 레코드에서 이름이 말소되는 자도 있다.
더더욱 성운의 시조 루나와 용자 아르온, 혜성의 마법사 세이룬 같은 위대한 영웅들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라면 시작의 영웅이 이 세계에 다시 태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의 순간에는 항상 당신이 계셨죠.”
게다가 레오 본인 역시 남들은 평생을 세우기 힘든 위업을 계속해서 세웠다.
그중에는 기적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추측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마법이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베르키아님께서 가문에 남기신 말이죠.”
“루나가 베르키아 녀석에게 지긋지긋하게 했던 말이군.”
레오가 옛날 일을 떠올렸다.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루나님의 마법관이 베르키아님께 이어진 모양이군요.”
“전혀, 루나는 태생부터가 불가능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가 머릿속에 박힌 녀석이야. 딱히 마법관을 가진 적이 없어. 그냥 베르키아 녀석이 지지리 말을 안 들으니까 마지막까지 잔소리를 했던 거지.”
시큰둥하게 말하는 레오를 보며 룬이 빙그레 웃었다.
‘그냥 감동하게 내버려 주시지.’
스승이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조언이자 당부의 말이었다면 얼마나 그림이 좋은가?
“귀에 딱지 앉게 들었던 잔소리를 후손들에게 남겨? 정신 못 차렸군.”
물론 레오는 감동이고 나발이고 산통을 다 깨부숴 버렸다.
푸근한 미소를 짓는 룬을 보며 레오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몸을 룬에게 물었다.
“베르키아와는 만났나?”
“예.”
“…….”
레오가 눈을 감았다.
‘실망했겠지.’
아무리 룬이라도 위대하다 여겼던 선조가 망자가 된 것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룬을 쓰러트린 건 베르키아일 게 분명했다.
어느 누가 미쳐 날뛰는 선조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레오가 입술을 짓씹을 때였다.
“시작의 영웅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예상됩니다. 하지만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룬의 담담한 말에 레오가 조금 놀란 눈으로 룬을 바라보았다.
그런 레오를 보며 룬이 빙긋 웃었다.
“저는 베르키아님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에르사르 가문의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베르키아님께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레오는 말없이 룬을 바라보았다.
룬에게는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작의 영웅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는 늙은 몸입니다.”
끙차- 몸을 일으킨 룬이 탁탁- 허리를 두들겼다.
겉모습은 미청년일지 모르지만 룬의 육신은 늙었다.
그 눈에서는 연륜이 느껴지며 은연중 내뿜는 마나에서는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살 만큼 살았기에 세상이 그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요.”
룬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저 슬플 따름입니다. 제가 만나 뵈었던 베르키아님은 매우 맑은 눈을 하고 계셨습니다.”
에르사르 가문의 수장으로서 룬은 베르키아의 세계를 공략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르키아를 만났다.
그랬기에 룬은 알고 있다.
선조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지독한 슬픔을 느끼며 룬이 말했다.
“시작의 영웅님께서는 제 선조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레오는 집무실 한쪽에 걸린 베르키아의 초상화 앞에 다가갔다.
그림 속의 베르키아는 무표정했다.
원래 무표정한 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이 선 모습이다.
그 비극이 있고 난 뒤에 모습을 그린 그림이겠지.’
그림 속의 제자를 바라보며 레오가 입을 열었다.
아카샤 레코드를 통해 봤던 에르사르 가문에도 전해지지 않은 진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룬의 손이 떨렸다.
눈을 질끈 감은 룬이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그분의 슬픔과 아픔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룬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제 목소리는 베르키아님께 닿지 않겠죠.”
룬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아마 세상의 그 누구도 불가능할 것이다.
눈앞의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룬이 레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시작의 영웅이시여, 후대로서 염치없는 부탁인 줄은 압니다.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부디…… 베르키아님을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아픔을 보듬어 주십시오.”
‘너의 후손들은 50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너를 잘 알지 못하고 너에게 험한 꼴을 당했음에도 너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어, 베르키아.’
베르키아를 향한 룬의 흔들림 없는 존경심이 느껴졌다.
베르키아가 단순히 에르사르 가문의 시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걸 떠나 베르키아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란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베르키아가 이루었던 위업을 잊었다.
대영웅들의 뒤를 이어 세계를 재건했으며 다시금 절망의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한 그 위업을.
딱히 세계가 베르키아를 외면해서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잊히기 마련.
하지만 에르사르 가문의 사람들 만큼은 결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며.
베르키아가 남긴 위업을 자신들의 후예들에게 전해왔다.
‘에르사르 가문의 힘과 역사라면 베르키아가 역사에서 잊히지 않도록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았어.’
단 한 사람도 그런 자가 없었다.
‘베르키아의 유지를 잇고자 했겠지.’
세계를 위해 묵묵히 희생 했던 고결한 삶.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거니까.
에르사르 가의 사람들은 미련스럽게도 그런 선조의 뜻을 존중하고 그 뒤를 따라왔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만약 내가 후손을 남겼다면 네 후손들 처럼 되지는 못했을 거야, 하지만.’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기적이었어도 되었잖아?’
레오가 본 베르키아의 삶에서 베르키아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을 위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자신이 이룬 것을 특별하다 여기지 않았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더욱 정진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아카샤 레코드를 통해 봤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박혀 있다.
베르키아는 원래 성격이 그랬다면 이만큼 안타깝진 않았을 것이다.
‘두고 보세요. 평화로운 시대가 되면 내가 카일 스승님보다 유명해져서 카일 스승님의 명성을 가릴 테니까. 후세 사람들이 카일은 다른 대영웅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만들 거예요. 베-!’
혓바닥을 쏙 내밀며 걸핏하면 깐족거리던 얄미운 모습이 떠오른다.
‘평화의 시대가 되면 대단한 사람이 되고 루나처럼 평생 동안 후대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위인이 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하지만 후세에 널리 알려질 위업을 이루었음에도 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사죄를 하듯.
온전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자신의 인생을 세계에 바쳤다.
그건 비하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가 너희에게 짐을 떠넘겼구나.’
에레보스를 토벌하고 마지막 눈을 감던 그 순간.
레오는 세상을 걱정하지 않았다.
제자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음에도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에서 세계를 반석에 올렸다.
평생 동안.
레오는 물론이고 두 사람이 퍙생을 대영웅이 구한 세상을 책임져야하는 사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리시나스처럼.
루나처럼.
아르온처럼.
드웨노처럼.
카일처럼.
세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희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었어.’
레오가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아르온을 제외한 다른 대영웅들이 누리던 걸 빼앗긴 세대라면.
베르키아와 비하르는 누릴 수조차 없었던 세대였다.
빼앗겨 봤기에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대영웅들이 만약 살아남았다면.
그 리시나스조차 베르키아와 비하르처럼 필사적으로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일에게 당연했던 세상은 두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상이란 걸 간과했다.
너희가 모든 걸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너희의 삶도 함께 찾아서 살면 된다는 걸 알려줬어야 했다.
그것을 배우지 못한 두 사람의 삶은 너무도 지독했다.
‘우리가 너희 삶을 앗아갔구나.’
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제자들의 후손이 짊어지고 있다.
비하르의 후손들은 평생을 어둠속에서 살았다.
베르키아의 후손들은 평생을 겸손으로 살았다.
베르키아와 비하르.
두 사람이 대영웅에 뒤처지는가?
개벽의 영웅에 뒤처진다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말씀하시지요.”
“베르키아처럼 살지 마.”
“예?”
고개를 숙였던 룬이 놀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에르사르 가문이 50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지는 대충 알겠어.”
레오의 눈이 가라앉았다.
“세계를…… 엘프라는 종족을 떠받치는 초석으로서 존속해왔겠지.”
룬을 바라보던 레오가 다시 베르키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든 걸 희생하라고 가르친 적 없어. 너희 가문은 최선을 다해 왔어. 너희는…… 에르사르 가문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영웅 명가야, 그러니.”
레오가 선언하듯 말했다.
“너희를 낮추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
룬은 고개를 숙였다.
왜인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다.
‘다 늙어서 주책이군.’
하지만 5000년 동안 묵묵히 자신들이 해온 일들이.
자신들의 역사가 자신들이 아닌 다른 이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려왔다.
“베르키아도 분명 그걸 바랄 거야.”
‘선대 가주들이시여.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