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32)
532.
흔들리는 눈동자.
앙다물어진 입술.
꼭 쥐어진 주먹.
어둠 속에서 보이는 에이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제대로 잔 게 언제야?”
“……일주일 전이요.”
에이란의 대답에 레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 한쪽에 있는 마석등을 켰다.
레오는 한쪽에 걸려 있는 수건을 가져와 젖은 에이란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아, 제가…….”
“가만히 있어.”
심드렁하게 말한 레오는 투박하게 에이란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머리에 물기가 어느 정도 마르자 레오가 침낭 쪽으로 걸어가 앉으며 물었다.
“베르키아가 많이 걱정되냐?”
레오의 물음에 에이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분을 말려야 한다는 건 알겠어요.”
에이란이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말려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어요.”
자기 몸을 감싸 안듯 양팔을 잡은 에이란이 몸을 떨었다.
“그래서 너무 무서워요, 제가 아는 베르키아님이 아닐까 봐. 그분이 끝내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베르키아님이 레오님을 해칠까 봐.”
에이란으로서는 머릿속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동경이자 목표였던 이의 타락.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또 다른 존경하는 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머릿속을 가득 메운 불안감에 의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레오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한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힘들 수밖에 없지.’
에이란으로서는 마음이 아득해질 정도의 상황일 것이다.
나약하다고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주는 압박감이 너무나 크다.
루니아와 첸 시아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첸 시아에게 언데드로 부활한 레오를 쓰러트려야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루니아에게 루나를 쓰러트려야 한다면?
‘에이란에게는 그것과 같은 상황이겠지.’
아직 어린 소녀인 에이란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압박감이었다.
레오는 말없이 에이란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자신은 베르키아를 쓰러트렸으면 쓰러트렸지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줘야 할까?
‘지금 상황서는 어떤 말도 위안이 되지 않겠지.’
섣부르게 베르키아가 원래 모습을 되찾을 것이란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건 에이란도 잘 알고 있으니까.
불안감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침묵과 어둠은 더욱 에이란을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루니아와 첸 시아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에이란을 생각해 티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두 사람 역시 현재 상황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있는 두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이겨내려던 에이란이었지만, 결국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레오를 찾아온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몸을 떨던 에이란이 고개를 들어 레오의 붉은 눈을 바라보았다.
“힘드냐?”
레오의 물음에 에이란이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는다.
‘레오님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돼.’
에이란은 알고 있다.
레오가 자신을 단순한 영웅 후보생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는 걸.
레오가 대영웅인 이상.
미래에 레오는 분명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와의 결전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레오는 에이란을 그 전장에서 싸울 영웅으로 선택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어리광을 부릴 수 없어.’
힘들 때마다 레오에게 의지하게 된다면 결국 자신은 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이겨내야 해.’
에이란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힘들었지만, 힘내 볼게…….”
“힘들면 자고 가.”
“네?”
“힘든 걸 억지로 참고 감내할 필요는 없어.”
“하, 하지만 언제까지 레오님에게 의지만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레오는 덤덤하게 말했다.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어른이니까.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옛날이야기라도 해줄까?”
그 말에 살짝 멍한 표정을 짓던 에이란이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레오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완전 어린애는 아니에요.”
“듣기 싫어?”
“그래도 듣고 싶어요.”
에이란이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오는 그런 에이란을 보며 아공간에서 예비 침낭 하나를 더 꺼내주었다.
에이란이 침낭 안에 들어갈 때였다.
“흐응~ 별일은 없으려나 보네요.”
“히익?”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에이란이 기겁하며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쪼그려 앉은 채로 에이란을 보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첸 시아가 있었다.
“시, 시아 양. 언제부터 있었던 거예요?”
“처음부터요.”
첸 시아가 빙긋 웃었다.
“밤에 남녀가 함께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내가 그런 놈으로 보여?”
레오가 혀를 차자 첸 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레오 도령은 믿죠. 제가 못 믿는 건 에이란 양이에요.”
그 말에 에이란이 눈을 크게 뜨더니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다.
“너, 너무해요. 제가 아무리 독서 취향이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아요! 제가 밤늦게 몰래 레오님을 찾아가 유혹할 엘프로 보이세요?”
“네, 충분히 그럴 엘프로 보여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에이란이 울상을 지었다.
“저도 여기서 자도 되나요?”
“넌 왜?”
“에이란 양이 레오 도령을 덮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나, 나는 그런 엘프가 아니라니까요!”
에이란이 울상을 지으며 첸 시아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옛날 생각나네.”
비하르도 곧잘 베르키아를 저렇게 놀려대곤 했다.
제자들의 후손을 보며 레오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처음 베르키아랑 비하르를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줄까?”
그 말에 티격태격하던 에이란과 첸 시아가 레오 앞에 앉았다.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은 흘러갔다.
***
이른 새벽.
어느새 눈보라가 멎어 있었다.
잠에서 깬 루니아가 심호흡을 했다.
‘에이란은 괜찮을지 모르겠네.’
절친한 친구인 만큼 에이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루니아 역시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은데.’
하지만 루니아도 섣부르게 에이란을 위로해줄 수 없었다.
루니아도 룬드아 가문의 선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성화의 불꽃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온 선조는 언제나 그녀의 긍지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선조가 사령왕의 농간으로 인해 언데드로 부활한다면?
어떤 심정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섣부르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더 큰 상처를 줄지도 몰라.’
루니아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침낭을 열었다.
지이이익-!
지퍼를 연 후 몸을 일으킨 루니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에이란? 첸 시아?”
두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루니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텐트 바깥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더 있다 오면 안 돼요?”
‘아.’
밤새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던 루니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에이란의 목소리는 밝아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루니아는 일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말았다.
“안 돼요. 레오님도 주무셔야죠.”
“그냥 레오님이랑 같이 자면 안 돼요?”
“안 된다니까요. 밤새도록 같이 있었잖아요. 우리 때문에 레오 도령이 못 주무셨으니 짧게라도 쉴 수 있게 해드려야죠.”
“레오님이 우리를 못 자게 만든 거죠. 그렇게 해주시는데 어떻게 잘 수 있겠어요?”
“음…… 그렇긴 하죠. 확실히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바깥에서 들려온 대화 소리에 루니아가 우지직- 굳어 버렸다.
텐트 문이 열리고 에이란과 첸 시아가 들어왔다.
그리고 굳은 채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루니아를 발견하고는 에이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니아 양,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 으응…… 에이란, 조금 괜찮아진 것 같네?”
“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루니아 양.”
미안한 표정을 짓는 에이란을 보며 루니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니야. 괜찮아. 그나저나…… 레오 텐트에서 오는 길이야?”
“네. 부끄럽지만 레오님께 밤새도록 위로받았어요. 그 덕분에 근심과 걱정을 많이 잊을 수 있었어요.”
“에이란 양의 어리광 덕분에 레오 도령이 잠을 못 자긴 했지만요.”
“시아 양도 같이 있었잖아요.”
에이란이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루니아의 목소리가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너너너너, 너희! 너희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온 줄 알아?”
“네? 그야 밤새도록 레오님이랑…… 아, 루니아 양도 혼자 내버려 두지 말고 같이 갈 걸 그랬나요? 미안해요! 미처 생각을 못 해서…… 다음에는 꼭 같이 가요.”
에이란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자 얼굴이 자신의 머리카락만큼 붉어진 루니아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희 말이야! 학생이!”
“루니아 양?”
“학생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레오! 걔야 아무리 어른이라지만! 아니지! 애초에 어른인 게 문제가 아니잖아! 셋? 세에에엣? 셋이이서어어어어!? 밤새도록?! 다음에는 나까지?!”
“루, 루니아 양? 왜 그러세요? 지, 진정하세요!”
“진정? 왜 그러세요? 너희는 세이룬이랑 루메른의 우등생이잖아! 행실이 단정해야지! 그런 짓을 해놓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치켜뜨는 루니아를 보며 에이란이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 그냥 레오님께 옛날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요?!”
“아무리 그런 책을 많이 봤…… 어?!”
소리치던 루니아가 일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살짝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아아, 그런 생각을 했던 거군요.”
첸 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루니아 양은 상상력이 참 풍부하네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 아니 그러니까. 나는…… 그게…….”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루니아를 보며 에이란은 상황을 파악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루니아 양.”
“미, 미안. 그러니까 난!”
“저질이네요.”
“…….”
그 말에 루니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파들파들 어깨를 떨던 루니아가 다시 발작하며 에이란에게 덤벼들었다.
“이게 전부 평소에 네가 이상한 걸 잔뜩 보니까 그런 거잖아!”
“그게 왜 내 탓이에요?! 루니아 양 머릿속이 이상한 거지!”
“아아악! 몰라! 네 탓이야! 네 탓이라고!”
서로를 향해 왁왁- 소리를 지르는 두 엘프를 보며 첸 시아가 빙긋 웃었다.
“쉿, 레오님이 다 듣겠어요.”
그 말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첸 시아는 빙긋 웃으며 루니아에게 다가갔다.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에요.”
“그, 그래.”
“그런데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어디까지 상상했던 건가요?”
루니아의 어깨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생글생글 웃는 저 입을 잡아당기고 싶다.
“이야기 해줘요. 네?”
‘얘 은근히 성격이 나빠.’
웃는 얼굴로 자신을 놀리는 첸 시아를 보며 루니아는 얼굴을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