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42)
542.
루니아가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템플러들의 시선이 그런 루니아에게 닿았다.
당장에라도 타오를 듯한 붉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
무수히 많은 템플러를 앞에 두고도 기가 죽은 기색이 없다.
오히려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모습을 보며 선두에 선 여인, 레이린 코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이 소녀가 루니아 엘 룬드아인가.’
재앙의 시대가 끝나고 5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성운의 시조 루나 루비넌스.
그녀는 단순히 세계를 구한 엘프의 대영웅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엘프가 시조님의 뜻에 따라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렸지.’
5000년의 역사 동안 무수히 많은 지성과 고결한 영웅들이 그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 무수한 역사에서 별과 연관된 칭호를 받은 자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녀는 ‘성운의 뒤를 쫓는 자’ 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았다.
이건 단순한 칭호가 아니다.
루니아가 받은 영웅의 칭호에 포함 된 ‘성운’ 이라는 단어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공식적으로 루나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는 뜻.
엘프에게 있어 이보다 영광스러운 호칭이 또 있을까?
“루니아 엘 룬드아 맞죠?”
“그런데요?”
루니아가 삐뚜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레이린의 눈이 꿈틀거렸다.
루니아에게서 명백한 적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레이린 코네아. 엘던의 템플러 단장입니다.”
“아, 네.”
호의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루니아를 보며 레이린이 말했다.
“루니아 엘 룬드아, 아무래도 당신의 시선에서 나를…… 아니, 우리 엘던을 향한 적개심이 느껴지는군요.”
레이린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영웅의 지위에 오른 건 알고 있습니다. 또한 대단한 칭호를 받았다는 것도요.”
그 말에 루니아가 픽- 하고 웃었다.
그 태도에 레이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럴수록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루니아 엘 룬드아.”
템플러.
각 엘프 의회에 소속된 의회 기사단의 명칭이었다.
각 엘프의 나라에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이는 집단인 만큼 템플러 단장이면 그 힘과 지위가 결코 낮지 않다.
‘얼마 전까지였다면 신경이 쓰였겠지.’
하지만 지금의 루니아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엘던의 지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봤어요.”
루니아가 싸늘하게 냉소하며 레이린을 노려보았다.
단순한 적의가 아니다.
혐오를 담아서 눈앞의 이를 노려보았다.
얼마 전까지의 루니아라면 자신의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낌 없이 적의를 드러낸다.
루니아가 엘프 나라의 의회장들 못지않은 지위인 세이룬의 학생회장이기 때문이 아니다.
루나에게 직접적으로 인정받은 후계자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 모습을 봤으니까.’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하지 않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세계의 불합리함에 결코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념을 관철해나가던 모습.
그리고 그것을 결코 희생이라 여기지 않던 루나.
그런 루나가 후대에 물려준 세계다.
루나뿐만이 아니다.
그 의지를 이어받아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세계에 받쳤던 베르키아가 있었다.
거기서 또다시 수 천 년이 지나 재앙의 재림을 이겨내고 세계를 반석에 올렸던 세이룬도 있었다.
그렇게 이어져 자신의 대에 이르렀다.
‘세계는 여전히 불합리해.’
그 불합리함에 집어삼켜진 이도 있다.
어쩌면 위대한 위인들도 이런 참상을 본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세계를 구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타협할 수 없다.
위대한 영웅들이 지켜낸 것을 짓밟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들을 응징하는 자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대한 선대들이 지켜내고 물려준 세계를 살고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우리가 증명해야 해.’
세계는 구할 가치가 있었노라고.
당신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그렇지? 레오?’
루니아의 시선이 베르키아와 대치하고 있는 레오에게 머물렀다.
루나와 헤어질 당시 절대 저 뒷모습에 결코 창피해지지 않겠다고 스스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레이닌을 바라본 루니아가 말했다.
“모범은 모범을 보일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나 보이는 거죠.”
루니아가 빙그레 웃었다.
“당신들에게 그런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
루나의 말을 들은 레이닌의 입매가 뒤틀렸다.
“역시 세상은 불합리해. 어떻게 잡종이나 다른 저열한 종족과 어울리는 네가 그런 분수에 맞지 않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거지?”
흔들림 없는 루니아의 붉은 눈동자를 보며 레이닌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째서 그런 과분한 영광을 누리는 거냐!”
“그 되도 않는 이상한 논리도 지긋지긋하네. 심지어 이제 이상한 질투까지 해?”
분노를 드러내는 레이린을 보며 팔짱을 낀 루니아가 어이가 없다는 실소를 터트렸다.
“당신 머리에 달린 건 장식이야?”
“뭐?”
“생각이란 걸 좀 해 봐.”
루니아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콕콕 찌르며 얼굴을 구겼다.
“왜 내가 성운을 뒤쫓는 자라는 칭호를 얻고 루나님께 예쁨 받는지 몰라? 진짜 멍청하네? 템플러 단장은 어떻게 된 거지? 엘던 의회 것들은 머리에 하자가 있나? 아! 하는 꼴을 보면 대갈빡이 고장 나긴 했군.”
“감히 그딴 망발을!”
레이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란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루니아 양, 점점 더 본성을 드러내는 것 같은데.’
세이룬 내에서야 거침없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루니아다.
하지만 대외적인 장소에서는 최대한 자제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내숭을 부리지 않는 루니아라.
‘정말 괜찮을까?’
에이란이 미래의 일에 조금 걱정할 때였다.
“내가 잘났으니까!”
눈을 부릅뜨며 루니아가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성운을 뒤쫓는 자라는 칭호를 얻은 것도! 루나님에게 예쁨받는 것도! 그래서 루나님의 후계자가 된 것도! 내가 다 댁들 보다 잘났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창피함을 모르는군! 자기 입으로 루나님의 후계자를 자처하다니! 분수를 알아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레이린을 보며 루니아가 대놓고 비웃음을 날렸다.
“당신, 루나님 만나 봤어?”
“…….”
“루나님과 싸워 봤어? 루나님께 직접 마법 배워 봤어?”
아무 대답도 못 하는 레이린을 보며 루니아가 대놓고 비웃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루나님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할 족속들이 바로 순혈회, 댁 같은 사람이야.”
“이익!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군! 함부로 입을 놀린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그거 잘됐네.”
루니아가 오른손을 뻗었다.
번쩍-!
환한 빛과 함께 루니아의 손에 한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레이린의 얼굴이 굳었다.
“코메테스.”
쿵-!
루니아가 손에 쥔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화르르륵!
루니아의 몸에서 붉은색 화염이 치솟았다.
고오오오오오오-!
선홍색의 화염은 이내 백염으로 변모한다.
“나도 너희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거든.”
“혼자서 엘던의 템플러들을 막겠다? 오만불손하구나.”
“너희만 할까?”
“루니아 양은 혼자가 아니에요.”
스릉-!
검과 방패를 꺼내든 에이란이 루니아 앞에 섰다.
“제가 있으니까요. 제가 있는 한 루니아 양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어요.”
“이 건방진 애송이들이.”
레이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루니아 양, 에이란 양.”
굳은 목소리로 첸 시아가 두 사람을 불렀다.
“미안한데…… 여기 맡길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죠?”
에이란이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봐야 해요.”
첸 시아가 손에 쥔 단검을 강하게 쥐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레오 도령과…… 베르키아님께.”
***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울레인의 결계에 박혀 있던 검이 뽑혀 나와 레오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울레인이 웃었다.
“이해할 수 없군요. 내 말이 그렇게 화낼 일입니까?”
울레인이 베르키아를 바라보았다.
“분명 저분은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 시조님의 제자이며 세계를 재건하여 후대에 물려 준…… 존경해야 마땅한 분이시죠.”
울레인이 베르키아에게서 시선을 뗐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울레인이 빙긋 웃었다.
“시조님의 제자라고는 하나 별의 마법을 배우지 못했죠. 분명 세계를 위해 헌신했지만 지금은 사령왕의 농간에 놀아나는 가련한 영혼일 뿐이죠.”
레오는 말없이 울레인을 바라보았다.
“엘프라면 존경해야 할 영웅입니다. 하지만 존중해야 할지는 의문이군요.”
그 말에 레오가 눈을 감았다.
“그보다 이 만남에 감사하는 건 어떨는지요.”
울레인은 레오의 감정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웃었다.
“레오 플로브, 위대한 성운의 길을 걷는 이여. 당신에게 가르침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 레오가 눈을 떴다.
울레인의 눈에는 호의가 가득했다.
“순혈회는 나를 싫어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울레인이 웃었다.
“저는 순혈회에 소속 되어 있고 순혈주의자는 맞습니다만…… 보통 순혈회는 아닙니다. 그들의 사상은 저와 맞지 않죠.”
그가 양팔을 벌렸다.
“성운의 길을 걷는 이는 모두 평등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순혈회는 오직 엘프만이 가치가 있다는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있죠. 그건 루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코네아 가문도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별의 마법을 쓰는 자는 모두 선택 받은 자. 그들의 마법을 한 대 모아 후대에 전하고 별의 마법을 진보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운의 의지를 잇는 자의 마음 가짐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양한 사상과 힘을 가진 별의 마법사들을 원합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본론부터 꺼내라.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
짜증스럽게 묻는 레오를 보며 울레인이 빙그레 웃었다.
“당신의 성스러운 피가 코네아 가문에 깃들게 해주십시오.”
“뭐?”
“제게는 많은 딸이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길.”
“…….”
레오는 조금 넋 나간 얼굴로 울레인을 바라보았다.
“은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다 하더라도 의무를 다할 필요는 없습니다.”
울레인은 순수해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말했다.
“원하시는 취향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주시길. 다행히도 제게는 다양한 종족의 피를 이은 딸들이 많습니다. 외모도 다들 출중하죠.”
그것이 옳은 일인 것마냥 울레인은 말을 이었다.
“원하신다면 제 딸아이 모두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영웅은 호색한이라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말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순리죠. 특별한 이가 많은 자손을 남긴다. 그것 역시 세계를 위한 길 아니겠습니까? 우리 가문에도 분명한 축복이겠죠.”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레오는 눈앞의 엘프가 자신이 여태껏 본적 없는 유형의 순혈주의자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도 깨달았다.
여러 종족과 자식을 낳았고 그를 통해 얻은 딸들을 모두 준다는 그 말에 거짓은 없다.
더욱이 마음속 깊은 곳의 뒤틀린 욕망은 없다.
그저 우수한 혈통의 마법사를 만들겠다는 그 마음 하나뿐.
마법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도구 취급하는 마법사.
“미친놈.”
그 말에도 울레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가능성의 위대함을 체험하지 못한 이는 제가 광인처럼 보일 수도 있죠.”
그렇게 말한 울레인이 손을 뻗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우웅-
울레인의 손바닥 위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우우웅-!
울레인의 마력이 강해져 간다.
그걸 바라보던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엄청난 마력이 울레인에게서 느껴진다.
그건 단순히 거대하다는 종류의 마력량이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명백하게 뛰어넘었어. 마치 다른 자의 마력까지 빌려오는 것 같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레오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자식.”
레오의 입에서 뿌득- 소리가 났다.
고오오오오-!
종언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울레인의 시선이 베르키아에게 향했다.
“우선 반항을 하는 가련한 영혼부터 구해드리겠습니다.”
번쩍-!
거대한 빛이 베르키아를 덮쳤다.
그 순간.
콰가가가가가가각-!
레오의 검기가 울레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예상 밖의 공격에 울레인이 빠르게 공간 이동 마법을 이용해 공격을 레오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갈곳을 잃은 종언은 베르키아에게 닿지 않고 폭발했다.
그 폭발에 휘말린 베르키아가 멀리 날아갔다.
종언에 휩쓸렸다고 해도 베르키아가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의 종언이면 타격은 불가피했을 거다.
레오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눈앞의 이가 베르키아에게 상처 입히는걸.
울레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신이 베르키아님을 존경하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건 일개 언데드일 뿐입니다. 저와 함께 쓰러트려야 할 대상이죠. 이러는 이유를 제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딸이 많다고 했지?”
“예.”
“내가 네 딸을 죽인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
“이유를 묻겠죠.”
울레인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납득을 할 겁니다.”
“그러면 절대 이해 못할 거다.”
레오가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널 죽이려는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