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46)
546.
베르키아의 검이 움직인다.
이성을 잃은 언데드의 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은 아름답게 허공을 수놓았다.
그 검을 바라보는 비하르의 눈이 가라앉는다.
분명 꽃잎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검이다.
하지만 그 검은 비하르가 기억하고 있는 검과 달랐다.
따뜻함이 느껴지던 검기에는 싸늘함만이 느껴졌다.
콰가가각-!
꽃잎처럼 비산한 검기가 비하르의 분신을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비하르는 손에 있던 단검을 고쳐 쥐었다.
화르르륵-!
비하르의 검에서 불꽃의 오러가 치솟았다.
휘오오-!
그와 함께 바람의 오러가 불꽃의 오러를 휘감는다.
‘굉장해.’
의식의 저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첸 시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하르에게 육체를 넘긴 첸 시아였다.
하지만 의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움직임 하나하나.
바라보는 시선 하나하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레오 도령과 닮았어.’
베르키아와 비하르의 검투를 코앞에서 경험한 첸 시아는 베르키아와 비하르에게서 레오의 그림자를 엿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베르키아도 비하르도 사용하는 검술도 움직임도 다르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호흡과 상대의 균형을 무너트리기 위한 변칙.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과정까지.
두 사람의 검투에서는 레오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졌다.
비하르에게 몸을 맡겼기에 볼 수 있었던 영역이었다.
‘나를 가르쳐주고 계시는구나.’
이 상황에서도 비하르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걸 안 첸 시아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더욱 비하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비하르가 오러 스텝을 밟았다.
마치 물처럼 유려하게 움직인 비하르가 베르키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검과 단검의 대결.
비하르는 간격을 좁히면 좁힐수록 우위에 설 수 있다.
그 기본을 그 누구보다 착실하게 지켰다.
빠르게 베르키아의 품속으로 파고든 비하르가 손바닥을 펼쳐 휘둘렀다.
콰앙-! 쿠구구구궁-!
마치 무거운 바위 같은 일격이 베르키아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인해 주변의 땅이 움푹 꺼졌다.
하지만 베르키아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무스의 갑옷.’
첸 시아는 베르키아의 몸을 지키고 있는 마법을 보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에이란이 사용하는 것을 봤다.
분명 같은 마법이지만 방어력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때의 나는 여기가 한계였어.”
비하르가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베르키아를 향해 말했다.
“병든 육체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지.”
채앵-!
베르키아의 검을 막은 비하르가 말했다.
“그러니 네 잘못이 아니야, 베르키아.”
비하르의 몸이 스르륵- 꺼지듯 사라졌다.
일순간 베르키아가 비하르의 움직임을 놓쳤다.
첸 시아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걸 느꼈다.
명백하게 첸 시아가 허용할 수 있는 힘을 넘어섰다.
하지만 첸 시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내가 정신을 잃으면 끝이야!’
지금 첸 시아의 몸을 움직이는 건 비하르의 영령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빙의로 빌려줬을 뿐.
그런 상황에서 첸 시아가 의식을 잃으면 비하르도 육체의 통제권을 잃었다.
‘고통에는 익숙해! 그러니까 버텨!’
‘고맙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후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비하르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인다.
한때 세계를 짊어지고 부흥시킨 자의 힘이다.
‘하지만 그래도 원래 힘에는 미치지 못해.’
비하르의 눈이 냉정하게 빈틈을 노린다.
지금의 베르키아는 자신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자에게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녀와 동등한 힘을 지닌 이가 있다.
베르키아의 품으로 파고든 비하르가 양 손바닥을 베르키아의 가슴팍에 붙였다.
그리고 오러를 방출시켰다.
번쩍-! 콰앙-!
거대한 충격파가 다시 터져 나왔다.
몸이 붕 뜬 베르키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베르키아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힘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베르키아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짓던 비하르의 몸이 쓰러졌다.
첸 시아가 정신을 잃은 것이다.
푹-!
레오는 쓰러지는 첸 시아의 육체를 받아냈다.
“스승님…… 뒤를 부탁드려요.”
“오냐.”
고개를 끄덕인 레오를 보며 비하르가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레오는 첸 시아를 뒤에 따라온 에이란에게 건넸다.
이미 이쪽은 일단락이 났다.
남은 건 이제 베르키아 뿐이었다.
***
“아아아아아!”
베르키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싫다. 모든 게 싫었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간 세상이 저주스러웠다.
그런 세상을 저주하는 한편으로는 스승들이 목숨을 걸고 구한 세상을 불태우고 싶은 자신도 증오스러웠다.
자매와 같은 이의 목숨을 빼앗은 자신이 미웠다.
“아아아아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갈 곳 잃은 미아처럼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
텁-
누군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화악-!
베르키아가 검을 휘둘렀다.
아무리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건드린 이의 목 정도는 칠 수 있다.
살아있는 자는 증오스럽다.
망자로서의 본능에 충실 하려는 순간.
“뭐가 그렇게 괴롭냐, 이 망할 제자놈아.”
우뚝-!
들려온 목소리가 어딘지 낯이 익다.
“너는 충분히…… 아니, 많이 잘했어.”
“아…….”
“힘들어도 최선을 다했잖아. 최선을 다하다 못해 훌륭하게 네가 할 일을 해냈어. 그런데…….”
거칠 게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는 손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넌 그렇게 자책하는 거야?”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항상 자신을 혼내던 목소리다.
“우리가 구한 세상을 증오해서 불태우려고 한 거?”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마지막에는 늘 자기편이 되어줬던 목소리.
“비하르를 상처 입혀 죽게 만든 거?”
힘들 때면 기대고 싶었던 목소리.
“너 때문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하지만 한 번도 기대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하루라도 빨리 혼자서 나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걱정을 끼치는 존재가 아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카일 스승님은 왜 나한테 잘한다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해줘요?’
‘해줬잖아.’
‘딱 한 번뿐이잖아요.’
‘잘하는 게 있어야 칭찬을 해주지.’
‘루나 스승님이랑 아르온 스승님은 자주 칭찬해주시는데요?’
‘걔들은 네가 던져주는 음식만 받아먹어도 잘한다고 해줄걸?’
‘쫌생이.’
“잘했어.”
레오가 진심을 담아 베르키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로 잘했어.”
베르키아의 초점이 또렷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멍하니 레오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카일 스승님…….”
정신이 돌아온 베르키아의 머리에서 손을 뗀 레오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베르키아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죽어! 아주 그냥 죽어! 어릴 때도 걱정 끼치더니 커서도 변한 게 없어!”
그 모습을 보며 루니아와 에이란이 기겁했다.
“야야! 레오! 그만 둬! 이제 막 정신 차리셨는데!”
“레, 레오님! 베르키아님은 힘드셨잖아요!”
루니아는 레오의 팔에 매달렸고 에이란은 레오의 허리에 매달렸다.
그 와중에 부축하고 있던 첸 시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물론 그걸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정신 차렸으니까 때리는 거잖아! 나도 힘들었으니까 때리는 거잖아! 죽어! 아니! 한 번 더 죽어! 이 망할 제자놈아!”
“으아아아아아악!”
“진정하세요!”
분노한 레오의 포효와 루니아와 에이란의 비명이 하늘로 울려 퍼졌다.
“저래도…… 괜찮은 건가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정신을 차린 첸 시아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손가락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는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그렇게 걱정을 시켰는데 좀 맞아야지.
비하르의 냉정한 목소리에 첸 시아가 빙긋 웃었다.
‘앞으로 레오 도령을 걱정시키면 안 되겠네.’
***
도시 전체는 혼란함으로 가득했다.
의회장과 의회의 핵심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템플러 전체가 제압당했다.
지하도시에 있던 엘프들이 탈출하여 지상으로 왔다.
일행은 폐허가 된 전투 현장에서 멀쩡했던 집에 잠시 들어왔다.
거실에 앉은 루니아가 팔짱을 끼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골치 아프겠네.”
“그러게요.”
루니아의 말에 에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뒷수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저 두 분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요?”
“할 이야기가 많겠지.”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베르키아의 미련도 비하르의 미련도, 결국에는 서로인 거니까.”
베르키아는 비하르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망자가 되었다.
비하르는 베르키아를 끝까지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영령이 되었다.
망자와 영령.
되살아난 과정은 달랐어도 되살아난 이유는 서로였다.
“레오 도령이 해줄 말은…….”
“다 커 버린 제자에게 가르칠 게 뭐가 있겠어?”
레오가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있다고 해도 분명 배웠을 거야.”
그 말에 첸 시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 대화를 듣던 루니아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너희는 전혀 상관없다 이거지?”
“레오 도령과 난 루메른으로 돌아가면 되니까요.”
첸 시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루니아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왜인지 모르게 얄밉다.
그때 베르키아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다들 많이 기다렸지?”
“아, 베르키아님!”
“이야기는 다 끝나셨…….”
“어……?”
자리에서 일어나던 세 소녀의 얼굴이 굳었다.
“다행히 식재료가 많이 남았더라고.”
세 소녀는 공포에 질려 떨었다.
“베, 베르키아님. 저희는 아직 배가 안 고픈…….”
“한껏 움직인 다음에는 많이 먹어야 해. 그래야 쑥쑥 자라지.”
인자한 미소를 지은 베르키아가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걸 본 레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많잖아.”
“스승님도 많이 마르셨네요.”
베르키아가 레오의 손목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붙잡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앙상하게 뼈만 남다니요.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 같아요. 이 제자는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아직 맛이 간 상태인가?’
-스승님. 정신은 몰라도 육체는 한창 자랄 시기인데 잘 드셔야죠. 많이 드셔야 할 것 같아요.
비하르도 베르키아와 비슷한 얼굴로 거들었다.
“남기셔도 되니까 조금이라도 드세요. 제가 열심히 만들었어요.”
두 제자의 아우성에 레오가 혀를 찼다.
“그래.”
“너희는 남기면 안 된다?”
세 소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베, 베르키아님! 비하르님! 저는 세이룬이라는 학교의 학생회장입니다!”
“어머, 나도 세이룬에 대해 들었어. 대단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곳에서 학생회장이면 높은 직책이겠네?”
“네! 현재 이 엘던이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에요!”
“저런……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에요! 베르키아님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러니까…… 세이룬의 학생회장으로서 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지금 당장 가야 할 것 같다는 거죠!”
“아아.”
베르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잖아?”
“네?”
“그리고 큰일을 하려면 넌 더 많이 먹어야겠다.”
베르키아는 레오의 접시에 있던 음식을 가져다가 루니아의 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루니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세 소녀가 넋이 나간 얼굴로 식사를 할 때였다.
레오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레오의 시선이 베르키아와 비하르에게 향했다.
“너희는 옛날에 왜 툭 하면 그렇게 싸워 됐던 거냐? 평소에는 사이좋았잖아?”
그 말에 비하르가 아…… 하고 탄성을 내뱉더니 말했다.
-스승님 때문에 싸웠어요.
“나 때문에?”
-네.
베르키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스승님이 루나 스승님이랑 결혼해야 할지, 리시나스님이랑 결혼해야 할지를 두고 싸웠던 거예요.”
“그걸 가지고 왜 싸워.”
“오죽했으면 우리가 싸웠겠어요?”
베르키아와 빤히 레오를 바라보더니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대가리가 컸다 이거지?”
레오가 이를 갈며 베르키아를 응징했다.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좋네요, 이런 시간.”
베르키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영원히 이랬으면 좋겠어요.”
창밖을 바라보며 베르키아가 중얼거렸다.
어느새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