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56)
556.
제르온 가문에서 레오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건 단순히 엘레나의 손님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플로브님께서 알리아님의 유품을 찾아주셨을 때 이 늙은이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저녁 만찬 자리에 앉은 노마법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연신 레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늙은 마법사를 향해 가장 상석에 앉은 엘레나는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손님 앞에서 추태예요, 베레윈.”
“알고 있습니다, 아가씨. 하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이 늙은이는…… 늙은이는…….”
베레윈 베락.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영웅으로 현재 제르온의 가주이자 인티니티 스펠러라 불리는 알테크 제르온은 물론이고 루메른 교수인 마안의 마법사 알비, 그리고 엘레나의 마법 스승이기도 한 대마법사였다.
제르온의 직계를 가르쳐 왔다면 당연히 1학년 중간고사 당시, 레오가 영웅의 세계에서 구했던 알리아 제르온도 가르쳤을 게 분명했다.
‘이명이 마혈이라고 했던가?’
이명만 본다면 피를 다루는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레오는 1학년 마법학과의 프리츠 에드곤을 떠올렸다.
그림자 출신으로 레오의 찬양자인 그도 피의 마법을 다룬다.
“알리아님은 참으로 심성이 고운 분이셨습니다. 알리아님이 살아 계실 때는 가주님도 알비님도 더욱 밝으셨죠. 재능도 몹시 뛰어난 분이셨습니다.”
“네네, 고모님에 대한 건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어요.”
엘레나가 턱을 괴고 한숨을 쉬었다.
“물론 재능으로만 본다면 엘레나님이 최고 시죠.”
베레윈이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게으르신 게 문제지만요.”
그 말에 엘레나는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플로브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베레윈의 물음에 레오가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엘레나 선배가 게으르기는 하죠.”
“어머? 선배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해도 돼?”
“사실이니까요.”
레오는 나이프로 고기를 썰었다.
순수한 재능으로 봤을 때.
엘레나는 레오가 보아온 이들 중 손에 꼽힐 정도의 천재였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말이다.
영웅의 역사에는 시대를 짊어진 위대한 영웅들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시대의 영웅은 다름 아닌 검성 칼리안.
“재능으로만 본다면 검성을 뛰어넘을 재목이죠.”
“오호?”
베레윈이 감탄했다.
그 역시 검성과 같은 시대를 산 영웅이다.
물론 검성의 위명 앞에서 그의 이름은 빛을 잃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검성 칼리안과 무수히 많은 전투에 참전했으며 도움을 주고받은 사이인 전우다.
그런 베레윈으로서는 검성을 뛰어넘을 재목이라는 레오의 말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잘 보는 친구가 한 명 있었거든요.”
레오는 리시나스를 떠올렸다.
“그 녀석에게 조금 배웠죠.”
“자신의 안목에 자신감이 있으시군요.”
“그 친구만큼은 못 해요.”
레오가 빙긋 웃었다.
엘레나는 빤히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
깊은 밤.
침대에서 레오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박- 사박-
그때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스윽-
침대 위로 누군가 올라오는 느낌에 레오가 눈을 떴다.
“깼어? 레오군?”
엘레나가 빙긋 웃었다.
그런 엘레나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선배, 지금 밤이 많이 늦었는데요?”
“알아.”
엘레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어.”
네글리제 차림의 엘레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꼬았다.
루메른의 여왕.
혹은 마녀라 불리며 학생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는 엘레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또래의 소녀처럼 보였다.
“레오군. 내가 왜 순순히 네게 학생회장 자리를 넘긴 줄 알아?”
“귀찮아서요.”
“물론 그런 것도 있지.”
엘레나가 키득거렸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완전무결한 영웅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엘레나가 고개를 돌려 레오를 바라보았다.
분홍색 눈이 반짝였다.
“넌 완전무결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 눈동자 속에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엿보였다.
“왜 완전무결한 영웅이 보고 싶었죠?”
“루나님의 세계에서 에레보스를 쓰러트린 후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난 어릴 때 동화책에 영웅보다는 구해지는 공주님 쪽이 좋기는 했지. 그쪽을 더 동경하게 되더라고.’
이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레오가 입을 열었다.
“영웅보다는 공주님이 좋다는 그 말이요?”
“응.”
엘레나가 피식- 웃었다.
“어릴 때부터 듣다 보니 지겹더라고. 영웅이 될 거라는 말이.”
누가 뭐래도 엘레나는 영웅의 시대에서 손에 꼽히는 재능일 게 분명했다.
범상치 않은 배경.
그리고 그보다 더 범상치 않은 재능.
“어려서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었거든. 루메른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말을.”
엘레나가 픽- 웃었다.
“그거 알아? 루메른님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했다는 걸?”
“그래요?”
“응, 초대 이사장의 수기에 쓰인 사실이야.”
“신기하네요.”
“…….”
레오의 시큰둥한 반응에 엘레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꽤 미지근한 반응이네?”
“엘레나 선배는 황혼의 기사를 존경했어요?”
“…….”
그 말에 엘레나가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존경해, 지금도.”
엘레나가 픽- 웃었다.
“나, 어린 시절 굉장히 가혹하게 자랐거든.”
어려서부터 제르온 가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엘레나다.
황혼의 현자를 넘어서, 황혼의 기사에게 닿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말 그대로 개벽의 후계자로 추앙받았다.
그런 만큼 엘레나의 어린 시절은 혹독했다.
“그럴 때마다 루메른님의 동화책을 봤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기사.
노예 신분에서 세계를 구한 영웅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루메른의 서사시는 말 그대로 끝없는 도전 그 자체였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힘을 낼 수 있었지. 어린 시절 내게 루메른님은 완전무결한 영웅이었거든.”
그리고 보았다.
끝내는 루메른이 좌절했다는 이야기를.
“실망했어요?”
“글쎄…… 실망했다기보다는 좌절했어.”
엘레나의 눈이 가라앉았다.
“선조의 수기에는 생생하게 쓰여 있었거든. 좌절하며 절규하는 루메른님의 모습이.”
어린 엘레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내가 목표로 했던 사람조차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렸어.”
가혹하고 혹독하다는 이름에 가려진 끔찍한 삶.
물론 제르온 가문은 엘레나를 괴롭히기 위해 엘레나에게 그런 삶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엘레나 역시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루메른의 이야기에 의지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알비 삼촌이 가문에 돌아오면서 그 지긋지긋한 훈련은 더 이상 없었지. 그 점에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
엘레나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완전히 삐뚤어져 버려서. 사람을 우습게 하는 건방진 애가 되어 버렸다니까?”
“그렇긴 하죠.”
“그럴 때는 부정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미간을 살짝 찌푸린 엘레나가 레오를 잠시 노려보았다.
잠시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좌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최근에 알게 되었어.”
“…….”
“결국 루메른님은 에레보스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신 거야.”
꼰 다리를 풀고 엘레나가 천장을 보며 한탄했다.
“허망하네. 난 뭘 위해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걸까?”
풀썩-
침대에 누운 엘레나가 레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오군을 학생회장으로 만든 건 내가 되지 못한 완전무결한 영웅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뭐, 나 따위의 도움이 없어도 그렇게 되었지만.”
엘레나가 픽- 웃었다.
“의욕이 싹 사라졌네, 그냥 학교 때려치울까?”
“그건 곤란한데요, 부학생회장 해줘야죠.”
“흐응? 그건 레오군이 날 필요로 한다는 소리?”
엘레나가 묘하게 비틀린 미소를 짓더니 몸을 일으킨 후 레오에게 다가갔다.
“레오군이 보기에 나 어때?”
“뭐가요?”
“난 굉장히 아름답잖아? 제르온이라는 배경도 있고. 능력도 출중해. 그래서 부학생회장 자리를 맡기고 싶은 거고.”
어느새 레오에게까지 기어 온 엘레나는 레오의 위에 올라탔다.
“공주는 자신을 구해준 영웅과 결혼하고 그 영웅을 위해 내조를 한다, 흔한 이야기잖아?”
엘레나의 분홍색 눈동자가 빛났다.
흘러내린 엘레나의 머리카락이 레오의 뺨을 간지럽힌다.
“어떻게 생각해?”
그 말에 누워 있던 레오가 손을 뻗었다.
레오의 손가락 끝이 엘레나의 복부에 닿았다.
엘레나의 배가 움찔, 하고 들어간다.
배를 타고 움직인 레오의 손가락이 옆구리로 향했고 그때마다 엘레나의 몸이 살짝- 살짝- 떨렸다.
그리고…….
콱-!
“아악?!”
“까불지 마, 아직 솜털도 안 빠진 꼬맹이가 뭔 어른 흉내를 내고 있어?”
레오가 같잖다는 듯 엘레나의 옆구리를 사정 없이 꼬집었다.
“이거 하극상이야? 하극상이라고!”
“학교에서는 학생회장인데 제일 높거든요?”
간단하게 엘레나를 제압한 레오가 혀를 차며 침대 위에서 내려왔다.
혼자 침대 위에 남은 엘레나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릴도 이렇게 거칠게 길들인 거야?”
“남이 들으면 오해할 말은 하지 마시고.”
팔짱을 낀 레오가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런 장난치면 다음에는 진짜 험한 꼴 당할 수 있으니 하지 마시죠.”
“아아, 재미없어. 무슨 놈의 후배가 저렇게 닳고 닳은 아저씨 같아? 놀리지도 못하잖아.”
엘레나가 코웃음을 쳤다.
‘닳고닳은 아저씨다, 이 건방진 녀석아.’
레오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린 후 말했다.
“황혼의 기사는 분명 좌절하고 포기했겠죠.”
“…….”
엘레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마 다시 일어났을 거예요.”
“뭐?”
“세상에 좌절 안 하고 포기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 놈이 있다면 진짜 미친놈이지.”
레오가 혀를 찼다.
재앙의 시대.
살아남는 영웅으로 그 누구보다 많은 좌절과 포기를 했었던 게 바로 자신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죠.”
끝내는 일어섰다.
레오에게 있어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에 끝까지 매달리는 것만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 넘을 수 없는 벽을 피해 다른 길로 달려가는 것 역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에레보스를 쓰러트리는 건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에레보스를 쓰러트리는 걸 포기하진 않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황혼의 기사는 3000년 동안 영웅의 세계에서 에레보스를 막아내고 있는 겁니다.”
‘자신은 포기했다고 생각하겠지.’
레오는 만난 적도, 이야기 해 본 적도 없는 자신의 후계자를 떠올렸다.
‘스스로 비관하지 마, 카일. 네가 살아남는 영웅이라 불리는 건…… 좌절하고 그 순간은 포기했어도. 결국에는 몇 번이고 일어서서 다른 길로 달려갔기 때문이니까. 그건 절대 포기한 게 아니야.’
리시나스의 말이 떠올랐다.
‘날 존경한다면…… 그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는데.’
레오가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멍한 표정을 짓는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황혼의 기사를 진정으로 존경한다면 루메른이 포기했다고 너까지 포기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까.”
레오가 엘레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몇 번이고 일어나. 철부지 공주님. 일어서서.”
“일어서서?”
“진짜 여왕이 되어야지. 어릴 때 좀 팍팍하게 산 것 가지고 언제까지 어리광 부릴 거야?”
엘레나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새로운 노예가 필요한 건 아니고?”
“새로운 노예는 언제나 환영이지.”
그 말에 엘레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터무니 없는 후배님을 뒀네.”
한숨을 폭- 쉰 엘레나가 침대에서 내려와 팔짱을 꼈다.
“대신, 내 마음대로 운영할 거야.”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으실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