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71)
571.
“자! 골라! 골라! 루메리아 시티의 명물입니다!”
“머나먼 대륙 남부! 사막의 땅에서 온 수인들의 진귀한 음식들이 왔습니다!”
“드워프 세공사가 만든 보석을 구경하고 가세요!”
“이것은 엘프들이 짠 미스릴 천입니다.”
루메리아 시티를 가득 메운 무수히 많은 상인이 연신 호객행위를 해댔다.
애초에 세계의 중심이자 루메른이 있는 도시인 만큼 늘 많은 상인들과 인파로 붐비는 도시였지만 이번만큼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평상시 루메리아 시티의 상인들은 대부분 인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종족의 상인들이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만한 규모로 여러 종족의 상인들이 모이는 건 보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은 영웅의 제전이라는 세계의 축제가 열린 특수한 상황, 네 개의 영웅 사관학교가 모여 실력을 겨룬다는 점에서 더더욱 모든 종족이 몰려들 게 만들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상인들이 모인다.
그랬기에 이만한 상인들이 모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같은 종족이라 할지라도 무수히 많은 인파가 모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물며 가치관 자체가 다른 여러 종족이 모이면 분쟁을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봐! 이봐! 여기 넘어오지 말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요!”
인간 상인이 수인 상인을 향해 험악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짐이 많아서 잠시 놔둔 것이잖소? 게다가 지금 얼른 치우고 있는데 너무 야박한 거 아니오?”
“야박은 무슨! 남의 땅에 와서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인간 상인이 신경질적으로 수인 상인이 쌓아 놓은 상자들을 걷어찼다.
우당탕탕!
수인 상인이 준비한 음식 재료들이 모두 쏟아졌다.
그걸 본 수인 상인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흥분한 수인 상인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 모습에 인간 상인이 순간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수인이 사람을 위협하네!”
두 상인 모두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을 파는 노점을 운영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수인은 세계적으로 음식 솜씨가 좋은 것으로 유명한 종족이다 보니 인간 상인의 노점으로는 손님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게다가 수인 쪽이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매년 루메리아 시티에 행사가 있으면 특수를 노려 비싼 가격에 장사 해온 그로서는 손님이 몰리는 수인 상인의 노점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 상인이 앓는 소리를 내자 수인 상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 당신이 먼저 행패를……!”
“아이고~ 아이고! 외지 상인들 때문에 기존 상인들 다 죽네!”
인간 상인이 최대한 소리를 높여 소란을 크게 만들 때였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인파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데요?”
옅은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의 복장을 확인한 인간 상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수인 상인의 얼굴에는 낭패가 어렸다.
“아이고~ 루메른 학생님! 이것 좀 보세요! 저 짐승 같은 수인 놈이 선량하게 장사하는 저에게 행패를 부리지 뭡니까!”
“해, 행패는 당신이 먼저 부렸잖소!”
수인 상인이 항변하자 루메른의 학생, 칼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죠. 수인 상인분께서 먼저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수인 상인이 상황을 설명했다.
“음. 음. 그렇군요.”
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인간 상인에게 이야기를 들으려 할 때였다.
“설명에 앞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일단 이거 용돈으로 받으시고요.”
“어이쿠, 뭐 이런 걸다.”
칼은 자신의 품에 돈주머니를 찔러주는 인간 상인을 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수인 상인이 가증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장황한 인간 상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곤란하셨겠네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과드리세요.”
“예?”
“손님을 뺏겨서 화는 나시겠지만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되죠. 애초에 바가지를 안 씌우면 그럴 일도 없잖아요? 영웅의 제전은 종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모두 즐기자는 취지에서 개최한 축제잖아요?”
빙긋 미소 짓는 칼을 보며 인간 상인이 어깨를 떨었다.
“루메른 학생이라면 같은 인간 편을 들어야지 이게 무슨 짓이오!”
“영웅은 딱히 특정 종족 편을 드는 사람이 아닌데요?”
“아니 지금 돈주머니까지 받아먹고…….”
“어라? 이거 용돈 아니었나요?”
칼이 손가락에 돈주머니를 걸고 빙빙 돌리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익! 아무리 루메른 학생이라고 고작 2학년이 너무 막 나가는군! 자네 이름이 뭔가! 루메리아 시티 상인회에서 정식으로 항의하겠어!”
결국 발끈한 상인이 노발대발했다.
아무리 루메른의 학생이라 해도 무명 학생이 루메리아 시티 상인회에 고발당하면 제법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게다가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칼이 내심 만만해 보였기에 깔보기도 했다.
상인의 말에 칼이 볼을 긁적일 때였다.
“기가 막혀. 지금 노점상이 루메른 학생을 협박하는 거예요?”
칼의 뒤에서 옅은 갈색 피부를 가진 남부인 소녀, 쥬엔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짱을 끼고 눈을 치켜뜬 쥬엔을 보며 주변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쥬엔 토르비나 아니야?”
“루메른 1학년 마법학과 탑?”
쥬엔을 알아본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인간 상인이 당황했다.
“용감하네, 루메른 학생회장 대리를 협박하다니.”
“저건 엘리자 헤르긴이잖아?”
“그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
“그나저나 잠깐 뭐? 저 학생이 루메른 학생회장 대리라고?”
엘리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상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러니까. 나는…….”
그런 상인을 바라보며 엘리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루메리안 시티 상인회 대표들에게 전하세요. 지금 당장 루메른으로 출두하라고.”
“아이고! 몰라뵈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상인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지만, 엘리자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자, 어서 가요. 칼 선배.”
쥬엔도 칼의 등을 떠밀며 자리를 떠났다.
인파 사이로 돌아온 엘리자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자신의 신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어리석네요, 칼 토마스. 하긴 평민이라 당연하겠지만.”
“지금 칼 선배를 무시하는 거예요? 그냥 시도 때도 없이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것일 뿐이잖아요!”
자신의 말에 반발하는 쥬엔을 엘리자가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에 쥬엔이 살짝 목을 움츠렸지만 이내 반발하듯 턱을 치켜 들었다.
그런 쥬엔을 보며 엘리자가 손을 쥐락펴락 할 때였다.
“자자, 그만들 흥분하고.”
칼이 엘리자 뒤에 서서 양 어깨에 손을 올렸다.
“놔요.”
엘리자가 살짝 신경질을 부리며 칼의 손을 떨쳐냈다.
그런 엘리자를 보며 능청스럽게 양손을 든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방금 그거 일부러 그런 거야.”
“뭐라고요?”
“상인들은 원래 돈 앞에서는 목숨도 내놓는 인간들이거든.”
집안이 연금술 집안이고 그걸로 상업 활동을 하는 칼이었기에 상인의 행태에 빠삭했다.
애초에 칼은 상인 동호회 소속이기도 했으며 현재 루메른 1, 2학년들 대부분이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필요할 때면 대부분 칼의 유통망을 이용하곤 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축제인 만큼 상인회는 폭리를 취하고 싶을 거야.”
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영웅의 제전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잖아. 영웅의 제전은 모두가 즐기는 화합의 장이기도 해.”
칼은 레오의 말을 떠올렸다.
모두가 모여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칼이 걸음을 멈추었다.
무수히 많은 종족이 오가는 루메리아 시티의 거리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그래…… 마치 드웨노님의 세계에서 봤던 가드스론과 조금 닮았네.’
서로가 서로를 돕고 화합하던 머나먼 과거의 도시.
이제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전설의 도시.
‘어쩌면 레오는 진정으로 화합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걸지도 몰라.’
단순히 거대한 위협에 앞서 분열되는 걸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낸 후 후대에도 이 결속을 전하고 싶은 걸지도.’
“의외로 분열과 갈등이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거거든.”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즐기러 왔는데 바가지를 당하면 기분 나쁘잖아?”
“그런가요?”
“그깟 푼돈 그냥 주면 되는 거죠.”
쥬엔과 엘리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칼이 혀를 찼다.
“이래서 좋은 집안 아가씨들이란.”
“지금 날 철부지 취급했죠?”
“배짱 좋네요, 칼 토마스.”
쥬엔이 눈을 치켜뜨고 칼을 마구 흔들었고 엘리자는 서늘하게 웃었다.
“아무튼! 정당하게 장사를 해도 이득이 어마어마한데 폭리를 취해서 축제 분위기를 망치게 둬서는 안 된다 이거야! 소상공인 집안의 가장이신 아버지는 말씀하셨어! 모두가 즐기는 축제를 만들려면 우선 바가지를 척결해야 한다고! 이건 엘레나 선배도 동의한 이야기야.”
칼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루메리아 시티 상인회 소속 상인이 보기 좋게 학생회장 대리에게 시비를 걸어줬으니 엘레나 선배가 그걸 빌미로 상인회를 압박할걸? 애초에 마지막 준비로 바쁜 이 시기에 루메리아 시티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상인회를 압박할 건덕지를 만들기 위해서였어.”
***
“방법은 뭐든 좋으니까 상인회를 압박할 구실을 만들어 와.”
“제가요?”
“응.”
“어떻게요.”
“그건 알아서 생각해야지?”
“하르크 선배님께서 한 마디면 끝나는 거 아닌가요?”
칼이 옆에서 업무를 보는 하르크를 보며 말했다.
“루메리아 시티 시장은 왕이 아니야. 상인회에게 명령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온건적인 방법으로 회유할 수밖에 없어.”
“그 온건적인 방법이 뭔데요.”
“시비를 걸던가. 괜한 꼬투리를 잡던가.”
“그거 좋네요. 뒤탈이 없을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 온건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의 방식에 칼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감히 제르온과 리그아르드의 후계자에게 원한을 가질 루메리아 시티 세력이 어디 있겠어? 난 다르지만.’
평민인 칼로서는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루메리아 시티 상인회와 척을 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
설명을 끝낸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난 중간에서 쏙 빠지고 엘레나 선배와 하르크 선배가 건덕지를 잡아서 상인회를 박살 낼 거야.”
“나나 쥬엔 토르나를 데려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응. 시비가 붙는 순간 너나 쥬엔은 상대가 괴로울 방법으로 응징할 줄 알았거든. 하르크 선배나 엘레나 선배와 같은 이유로 너희에게 불똥이 튈 이유도 없을 거고.”
“날 이용했다 이거죠? 영악하긴.”
칼의 말에 엘리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호구처럼 당하는 줄 알았는데.’
이용당했지만 엘리자는 어딘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돈도 챙겼으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
으하하하! 미소 짓는 칼을 보며 쥬엔이 중얼거렸다.
“칼 선배, 엄청 기뻐 보이네요.”
“야야!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당연히 기쁘지! 영웅의 제전 시작하면 그 업무 지옥에서도 해방이고!”
“그런데 그거 기간 한정이잖아요.”
이미 엘레나에게 고성능 인재로 간택 당한 칼의 미래는 뻔했다.
영웅의 제전이 끝난 이후에도 뼛속까지 부려 먹힐 것이다.
그에 칼이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야. 어차피 내 성적으로는 3학년은 어림도 없어. 루메른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미에서 학생회장 대리직도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지!”
‘퇴학당한다는 게 기뻐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네.’
쥬엔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칼 선배의 성적으로는 3학년은 힘들 텐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칼이야 애초에 1학년 1학기만 버티는 것이 목표였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런데 2학년 2학기까지 살아 남았으니 칼 입장에서는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학창 생활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쥬엔으로서는 안타까웠다.
루메른 학생 기준으로 봤을 때 형편없는 마력량.
썩 좋지 못한 마법 재능까지.
연금술은 굉장하지만 마법학과생으로서 결점투성이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성적 이외에서 칼의 능력은 출중했다.
‘어떻게 칼 선배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
쥬엔이 발을 동동 굴리는 사이.
엘리자 역시 빤히 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허겁지겁 달려온 상인회 대표들을 박살 낸 엘레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뭘 시키든 다 해내잖아? 이거 진짜 만능이네.”
턱을 쓰다듬던 엘레나가 눈을 반짝였다.
“레오군. 어떻게 하면 칼군을 더 부려 먹을 수 있을까?”
학생회장실에서 엘레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 물음에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레오가 말했다.
“칼이 풀어야 할 문제죠.”
“쉬운 방법도 있어. 난 이사장 대리 권한이기도 해.”
생글생글 웃는 엘레나를 보며 레오가 빙긋 웃었다.
“안 됩니다.”
“왜? 가장 친한 친구랑 함께 다니면 좋잖아?”
엘레나가 미간을 좁히며 말하자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단순히 엘레나 선배가 부려 먹기 좋은 후배로 끝날 거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아니라는 거야?”
“사람 보는 눈을 더 키워야겠네.”
“뭐야?”
레오의 말에 엘레나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여유로운 엘레나지만 레오 앞에서는 평정심이 자주 흐트러진다.
잠시 레오를 바라보던 엘레나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머리카락을 꼬았다.
“레오군이 보기에 칼군이 자력으로 3학년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거야 알 수 없죠. 하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게 우리 학교의 교훈이잖아요?”
레오가 피식 웃었다.
“칼이라면 한계를 넘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성과를 이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