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79)
579.
화르르르르륵-!
하늘 높이 치솟았던 검은 불꽃의 기둥이 갈라져 마치 비처럼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마치 세계의 종말이라도 보는 듯한 갑작스러운 사태에 관중석 여기저기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번쩍-!
그 순간 하늘에 빛의 방벽이 생성되었다.
화르르륵-!
검은 불꽃이 벽에 가로막혔다.
-루메른을 찾아주신 내빈 여러분,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연병장 중앙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학생, 엘레나가 다소곳하게 치맛자락 끝을 잡고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무수히 많은 영웅 사관 학생들과 영웅들이 있습니다. 안심해 주시길.
엘레나의 말에 관중들의 혼란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관중들의 얼굴은 아직도 두려움에 차 있었지만 이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가운데…….
번쩍-!
후화아아아아악-!
붉은 검기가 검은 불꽃의 기둥을 양단했다.
검은 불꽃을 베어낸 검기는 그 기세를 잃지 않고 하늘로 치솟았다.
그 전율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관중들은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저게 검격이라고?”
“기사 중에 가끔 대마법사에 버금가는 위력의 공격을 하는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저건 마법의 위력을 아득히 뛰어넘었잖아?”
모두의 시선이 검기를 내뿜은 이에게로 향했다.
그곳에는 소년의 티를 막 벗기 시작한 듯한 미청년이 서 있었다.
“하르크 선배님! 멋있습니다!”
릴이 배틀 해머를 휘두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진짜 기사학과 맞아?”
“루메른의 기사학과생들은 괴물이야?”
아조니아 학생들이 경악스러운 눈으로 하르크를 바라보았다.
“흥, 모두 놀라지 마라. 저 녀석의 마나 특성은 ‘축적’이니까.”
도르베만이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 덕에 곱상하게 생긴 주제에 말도 안 되는 검기를 내뿜을 수 있지.”
물론 오러가 막대하다고 해도 한 번에 내뿜을 수 있는 출력량은 정해져 있다.
게다가 저 정도의 힘을 한 번에 내뿜으면 몸에 과부하가 걸린다.
그것을 버텨낼 수 있는 건 수련의 영역이었다.
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하르크가 모두의 시선을 받았다.
그 모습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평소에 꾸벅꾸벅 졸거나 레오에게 시달려 절규하는 모습만 잔뜩 본 루메른의 후배들도 처음 보는 하르크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엘레나가 릴에게 다가가 속닥거렸다.
“네? 그, 그건 너무하잖아요!”
“큰 도움은 될걸? 어서.”
“그, 그래도…….”
“어머? 누구랑 더 학교생활 오래 할 것 같아?”
생글생글 웃으며 협박하는 엘레나를 보며 릴은 울상을 지으며 하르크에게 다가갔다.
“뭐냐?”
하르크가 살짝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묻자 눈을 질끈 감은 릴이 물의 정령을 소환해 하르크에게 물을 뿌렸다.
촤악-! 치이이이이이익-!
물이 하르크의 몸에 닿자마자 수증기를 일으켰다.
졸지에 물을 뒤집어쓴 하르크가 릴의 멱살을 쥐었다.
“호오? 이제 졸업하니까 선배도 아니라 이거지?”
“히익! 전! 전 엘레나 선배가 시켜서!”
‘보통은 시킨다고 해도 안 하지 않나?’
상황도 잊고 모든 이가 얼떨떨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때였다.
“자자. 진정해요.”
엘레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차피 쿨링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고 물을 뿌려?”
하르크가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자, 릴을 혼내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왜 저한테 다 떠넘기는 겁니까!”
“넌 아무 잘못 없는 것처럼 말한다?”
선배와 후배의 항의를 깡그리 무시한 엘레나가 말했다.
“1학년들은 관중들과 함께 피난해.”
“선배님! 우리도 싸울 수 있어요.”
“생각은 기특한데.”
쥬엔의 말에 엘레나가 빙그레 웃었다.
“여기서 어중이떠중이는 방해가 될 뿐이야. 괜히 선배들의 발목을 잡지 마.”
엘레나의 말에 쥬엔이 흠칫했다.
“지금부터 루메른에서는 저걸 막을 팀을 짜겠어. 호명하는 학생은 모두 앞으로 나와. 호명되지 않은 학생들은 교수님들의 지시를 따르도록 해.”
거기까지 말한 엘레나가 힐끗- 다른 학교를 바라보았다.
“그쪽도 팀을 짜줬으면 하는데요.”
그 말에 다른 학교도 빠르게 팀을 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레오군은?”
“여기 있습니다.”
“……?”
엘레나는 자신의 뒤에서 나타난 레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오군?”
“네.”
“흐응…….”
눈을 가늘게 뜨던 엘레나가 빙긋 웃었다.
“후방에서 원거리 공격을 지휘해 줄 수 있어?”
“알겠어요.”
“저 녀석은 전방을 맡는 게 좋지 않아?”
“지금은 학생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엘레나는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한 재앙의 불꽃을 막아내는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레오군은 마법사와 소환사들을 지휘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
사람들이 급히 대피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선 레오는 멜리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멜리나. 드래곤들을 시켜서 루메른 내에 수상한 자를 찾아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불꽃의 중앙에 있는 건 개벽의 히어로 레코드 조각이야. 그걸 루메른에 반입한 놈이 있을 거야.
-예.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개벽의 히어로 레코드라면 분명 타르타로스에게도 필요한 물건일 텐데…….
개벽의 히어로 레코드는 개벽의 세계에 갇힌 에레보스가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통로로 쓸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루메른 한복판에 폭주시키다니?
세이룬 때처럼 레오는 그 통로를 얼마든지 막을 수 이다.
‘사령왕이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대체 무슨 꿍꿍이지?’
레오가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모든 개벽의 히어로 레코드라고 통로로 쓰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레오가 뒤를 돌아보았다.
피난하는 관중들 사이를 걸어오는 리안이 보였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리안을 피하면서도 리안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넓고 납작한 상자를 품에 안은 리안이 레오 앞에 섰다.
그러자 사람들은 레오조차도 인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혼란 속에서 리안 주변만은 고요했다.
“히어로 레코드는 신들의 힘으로 만든 물건이죠. 흉물에게는 상극의 힘입니다.”
리안이 레오 앞으로 걸어왔다.
“흉물이 개벽의 세계에 갇혔을 때. 히어로 레코드의 페이지들은 검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종이에 잉크를 쏟은 것처럼.”
“잠식시킨 건가.”
“네.”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페이지가 검게 물들기 전에 히어로 레코드를 찢었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기록이 사라지거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잠식된 페이지만 통로로 쓸 수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다만 그 흉물의 잔불이 히어로 레코드를 통해 바깥으로 뿜어져 나올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그런 현상이죠.”
리안의 얼굴이 흐려졌다.
“레코드 시스템 자체가 많이 망가졌기 때문에 일어난 오류입니다.”
“……사령왕은 그걸 알고 루메른 내에서 폭주를 일으킨 거군.”
“그럴 겁니다. 그 마족의 의도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영웅의 제전 도중에 터트린 거겠지. 그 폭발에 휘말린 영웅 후보생들을 처리하려는 생각으로 말이야.”
레오가 이를 갈았다.
“해결 방법은?”
“영웅의 세계로 들어가 옮겨붙은 잔불을 꺼트리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바깥으로 나온 불꽃을 꺼트려야겠군.”
“예. 그래서 제안드립니다.”
“……?”
“레오 플로브로서가 아니라 시작의 영웅 카일로서 사람들 앞에 서주세요.”
“뭐?”
“하계의 주민들은 이미 대영웅의 재림이라는 기적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으니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리안이 검은 불꽃의 기둥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영원히 대영웅의 이름으로 세계를 지탱할 순 없죠. 이름이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때를 대비하고 계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대영웅의 이름이 잊힌다고 해도 그 유지를 이은 이들의 이름이 후대에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 역시 언젠가 잊힐 것이다.
하지만 전해지는 유지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레오가…… 카일이 리시나스와 동료들에게 받은 것처럼.
리시나스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받았던 것처럼.
“신들이 사라진 시대에, 신들보다 위대한 위업을 이룬 당신이 다시 태어난 건 신들도 상상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리안이 환하게 웃었다.
“저는 그 기적이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세계에 다시 태어난 건 세계가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겠죠.”
리안이 공포에 질린 이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아직 레오 플로브의 이름은 이 공포를 몰아내기에 부족합니다.”
리안이 무릎을 꿇고 진상하듯 상자를 레오에게 들어 보였다.
“시작의 영웅, 카일이 다시금 세계에 재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제가 당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상자 뚜껑을 연 레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검은색 망토였다.
레오에게 너무도 익숙한 망토.
아르온이 합류하기 전.
최전방에서 리시나스와 루나를 지키기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카일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리시나스와 루나는 그런 카일의 모습에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어느 날, 리시나스가 망토를 건넸다.
“이거 받아.”
“칙칙하게 왜 검은색이야?”
“내 본체 가죽을 가공해 만든 망토야.”
“거기에 더해 내가 가호 마법을 새겼지.”
루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너 매일 상처 입잖아. 작작 좀 다치라고 나와 리시나스가 만든 거야.”
루나가 혀를 찼다.
“그나마 볼만한 건 얼굴 뿐인데 상처라도 나 봐. 마음이 아플 거 아니야?”
“반하지는 마라.”
“웃기고 있네. 네 얼굴 내 취향 아니거든? 그리고 말했지. 너한테서 볼만한 건 얼굴뿐이라고. 성격은 지저분하잖아.”
루나가 얼굴을 팍 구기고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쉰 리시나스가 말했다.
“튼튼해서 널 지켜줄 거야. 망가진다고 해도 내 마력으로 고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조금은 부상 빈도가 줄 거야.”
그리고 망토는 최후의 순간까지 카일과 함께했다.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분명 자신과 최후를 함께하며 사라진 물건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 자신의 망토였다.
“오래전 개벽의 영웅들이 당신의 세계를 공략하고 공략 보상으로 얻은 물건입니다. 루메른이 에레보스를 봉인하기 전 저에게 맡긴 물건이죠.”
레오는 말없이 망토로 손을 뻗었다.
-멜리나.
-네.
-엔에게 내 역할을 대신해 달라고 해 줘.
-네? 아, 알겠습니다.
멜리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엔에게 레오의 모습으로 변하라고 시켰다.
엔은 레오의 모습을 연극하며 루메른 학생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휘릭-!
레오가 망토를 둘렀다.
망토자락이 순간 리안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곳에 서 있는 것은 검은 레더 갑옷에 검은 망토를 두른 회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서 있었다.
“아아.”
그 뒷모습을 본 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터벅- 터벅-
레오가 검은 불꽃을 향해 걸어갔다.
“잠깐만요, 민간인은 대…….”
전투 준비를 하던 넬라는 피난 방향에서 걸어온 레오를 제지했다.
“……피를 해…… 야……?”
“넬라. 왜 그래? 응? 민간인? 이봐요! 얼른 대피해요! 여긴 왜 온 거예요?”
긴장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레오를 대피시키려던 일리아나가 멈칫하더니 팔짱을 끼고 미간을 좁혔다.
“잠깐, 이 잘생긴 오빠. 분명 어디선가 본……? 응? 엑? 에에에엑?!”
일리아나가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레오를 향해 꽂혔다.
피식- 웃은 레오가 손을 뻗어 넬라와 일리아나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어준 후 앞으로 향했다.
“긴장하지 마, 애송이들.”
모두의 경악한 시선이 레오…… 아니, 카일에게 꽂혔다.
“내가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