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8)
【58】57
레오는 손에 들린 방 열쇠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손녀딸 방 열쇠를 외간남자 손에 쥐여주는 건 아니지 않나?’
룬의 말에 의하면 방문까지 걸어 잠그고 틀어박혀 있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 갱생이라.’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날 보고 자극이 되려나?’
루메른과 세이룬은 라이벌 관계의 학교다.
그렇다고 해도 경쟁을 포기해 버린 음침 엘프에게 루메른 1학년 대표를 대면시키는 게 자극이 되기는 할까?
‘뭐 어때. 안 되면 뭐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레오는 가벼운 마음으로 룬이 말한 방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노크했다.
일단 소녀의 방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노크에도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다음으로는 문고리를 돌렸지만 역시나 잠겨 있었다.
레오는 들고 있던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의 모습은 가관이 아니었다.
과자 봉지가 바닥에 굴러다녔고 갈아입은 옷가지는 대충 구석에 처박혀 있다.
굴러다니는 옷가지 중에는 속옷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레오가 평범한 십대 소년이었다면 꽤 자극적인 풍경이었겠지만 레오의 감성은 십대가 아니었다.
즉, 레오의 눈에 이곳은 돼지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유일하게 깨끗한 곳도 있었다.
그건 방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 사진들이었다.
‘리시나스, 루나, 아르온, 드웨노?’
사진은 지금은 대영웅이라 불리는 동료들의 것이었다.
각 종족에게 대영웅들은 자랑스러운 위인이며 가장 인기 있는 영웅담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상품이 많았다.
‘그걸 모으는 애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조금 심하게 광적인데?’
눈을 가늘게 뜨던 레오는 또 다른 깨끗한 걸 발견했다.
바로 옷장에 반듯하게 걸려 있는 교복 한 벌이었다.
‘세이룬의 교복인가?’
“할아버지. 다 큰 손녀의 방에 아무렇게나 들어오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요?”
그때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무언가가 꼬물거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히이이이익! 누, 누구세요!?
낯선 이를 본 엘프 소녀는 기겁하며 이불째로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레오의 귀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녕. 난 레오 플로브라고 해.”
레오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얼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소녀를 지켜보고 있자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오신 건가요?”
엘프 영역에 있어서는 안 될 인간 소년이 대뜸 자신의 방에 들어왔으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지금 자신이 꿈을 꾸나 싶어질 정도였다.
소녀의 물음에 레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너랑 이야기 좀 하러 왔어.”
“하, 할아버지가요?”
당황하던 에이란은 이내 뒤집어쓰고 있는 이불에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켰다.
“이, 일단 앉으세요.”
그리고 레오에게 방 한 곳에 있는 손님용 소파를 권했다.
파자마 차림을 한 엘프 소녀는 방 한곳에 갖춰진 티 세트를 향해 다가갔다.
손님에게 직접 차를 끓여 대접하는 건 엘프들의 문화였다.
차를 끓이려던 그녀는 방 이곳저곳에 어질러진 옷가지를 보고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허둥지둥 급히 구석에 몰아넣고 이불을 덮은 후 차를 준비해 레오 앞에 가져갔다.
“에, 에이란 에르사르라고 해요.”
산발이 된 긴 은발에 맑은 푸른 눈을 가진 은둔형 외톨이 엘프, 에이란은 쭈뼛쭈뼛 자신을 소개했다.
“할아버지의 손님이라고 하셨는데 인간분이 어떻게 엘살베키아에는……?”
의아한 얼굴로 묻는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차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난 루메른의 학생이거든. 엘살베키아에는 수학여행 때문에 왔어.”
“루메른이요?”
에이란이 깜짝 놀랐다.
“룬님께서 손녀가 세이룬의 학생이라고 만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셔서 이렇게 만나러 왔지.”
실상은 은둔형 외톨이인 에이란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계획이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이란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레오를 보았다.
‘인간의 영웅 사관 학교 루메른의 학생.’
처음 보는 인간인데 자신의 또래인 것도 모자라 똑같이 영웅 사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에이란은 레오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느꼈다.
‘처, 처음 보는 남자애가 내 방에……!’
또래 소년이 자신의 방에 방문했다는 상황은 사춘기 소녀에게 상당한 자극이었다.
무엇보다 에이란은 방에 친구가 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사실 내성적이라 친구도 얼마 없었다.
‘눈같이 하얀 머리카락에 루비 같은 예쁜 눈동자.’
자세히 레오의 얼굴을 살피던 에이란이 순간 레오와 눈이 마주치고 얼굴을 살짝 붉혔다.
한편 레오는 에이란과 무슨 대화를 할지 고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레오는 방 한쪽을 가리켰다.
“대영웅들을 좋아하나 봐?”
“네! 무, 무척 좋아해요!”
에이란이 두 손을 꼭 쥐고 말했다.
“세계를 구원해주신 존경스러운 분들인걸요! 어렸을 때 대영웅들의 동화를 읽고 푹 빠졌었어요! 그래서 그분들과 관련된 걸 모으는 게 제 취미에요!”
내성적이던 에이란은 어느새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레오님도 대영웅들과 관련되어 좋아하는 일화가 있나요?”
“다르노스 전투.”
“타르타로스의 군단장 티베르카를 쓰러트린 전투를 말씀하시는 거죠? 대영웅들이 처음으로 동료가 되어 벌였던 전투!”
히어로 레코드로는 남아 있지 않고 문헌으로만 남아 있는 일화였다.
“군단장 지르가의 세력을 물리친 곳이 어딘지도 알고계신가요?”
“에드벨릭. 루나가 별의 마법을 처음으로 시험한 장소지.”
“맞아요! 보통 문헌에만 있는 기록은 잘 모르던데!”
‘내가 다 겪은 이야기니까.’
레오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난 에이란은 어느새 긴장한 것도 있고 텐션이 올라갔다.
그러다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제, 제가 손님에게 쓸데없는 질문만 한 것 같네요.”
“아니야. 대영웅들도 너 같은 애가 있다고 하면 엄청 기뻐하지 않았을까?”
‘아닌 게 아니라 아르온을 제외하고는 떠받들어지는 걸 좋아해서 기뻐할 놈들이지.’
레오의 말을 들은 에이란은 더욱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에이란은 자신의 컬렉션을 소개했다.
지금 시대에 알려진 대영웅들의 모습은 모두 히어로 레코드에 남아 있는 모습을 토대로 만든 만큼 에이란의 컬렉션에 그려진 친구들의 모습은 살아생전 모습처럼 생생했다.
그 모습을 본 레오의 머릿속으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건 제가 특히나 아끼는 건데요. 대영웅분들이 최후의 원정을 떠나시기 전의 모습이래요!”
“그러네. 정말 똑같아.”
“똑같네?”
에이란이 멈칫했다.
“레오님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이야기하시네요.”
예리한 질문에 레오가 대답했다.
“인간 사회에도 이런 게 있거든. 그게 똑같다는 뜻이었어.”
“그렇군요!”
순진무구한 소녀는 쉽게 납득했다.
레오는 책상 위에 올라온 친구들의 그림을 보며 쓰게 웃었다.
“다른 사람에 컬렉션을 보여준 적은 없는 데 정말 즐겁네요.”
어느새 음침한 모습이 사라지고 환하게 웃던 에이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역사적으로 확인된 대영웅님들은 네 분이지만 어쩌면 다섯 번쨰도 실존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레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일을 말하는 거야?”
“네. 남들은 망상이라고 비웃지만…… 히어로 레코드의 기록만 남아 있지 않을 뿐. 카일님에 관한 문헌 기록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에이란이 얼굴을 붉혔다.
“레오님이랑은 대화가 잘 통해서 저도 모르게 이상한 말까지 해 버렸…….”
“내 생각도 똑같아.”
“네?”
“나도 카일은 실존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런 컬렉션을 모으지는 않지만,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카일의 행적을 연구하는 동아리 활동을 할 생각이야.”
여러 가지 일로 신경 쓰지 못했지만, 학교로 돌아가면 슬슬 동아리 활동을 시작할 생각이다.
“어, 어쩐지! 그래서 대영웅님들에 대해 잘 알았던 거군요.”
양손을 맞잡은 에이란이 감탄했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오는 어느새 경계심이 사라진 에이란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등교 거부를 할 것 같은 애는 아닌데?’
세이룬 역시 루메른과 같은 기숙사제도다.
학기가 한참인데 학교를 떠나 집으로 왔다는 건 심각한 일이었다.
룬이 오늘 처음 본 레오에게 에이란을 만나게 한 것 역시 빠른 시일내 돌아가지 않으면 퇴학 처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아예 대화를 못 할 수준인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긴 해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거기다 카일의 실존 가능성을 믿는 기특함까지 갖추고 있지 않은가?
‘그 건방진 베르키아의 후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엽고 기특한데.’
“사실은 룬님께서 네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거든.”
“아…….”
에이란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룬님의 말씀으로는 넌 성적이 무척 우수한 학생이라던데…… 학교에 안 가는 이유가 뭐야?”
룬은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한 학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레오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에이란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세, 세이룬은 저와 어울리는 장소가 아, 아닌 것 같아서요.”
“왜?”
“세이룬의 학생은 모, 모두 엄청난 노력가인 데다가…… 위, 위로 향하려는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이라서요. 그리고 진지하게 영웅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에요. 저, 저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영웅을 꿈꾸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축-! 귀까지 늘어트린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팔짱을 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웅이 되려고 한다라…….”
‘확실히 엘프들은 인간과는 미묘하게 감성이 다르지.’
엘프들의 성향은 질서를 중요시 여긴다.
그런 만큼 철두철미하게 미래 계획을 한다.
‘인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엘프들은 거의 종족 특성에 가깝지.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는 건 이상한데.’
얼굴에 그늘이 진 에이란의 얼굴을 보던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에게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건가?’
남에게 상처받는 말을 듣고 마음이 꺾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가 힐끗- 에이란의 교복을 보았다.
‘그런데 교복을 저렇게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건 아직 미련을 못 버렸다는 소리 아닌가?’
레오가 빙긋 웃었다.
“지금 베르키아에는 나 말고 우리 반 전체가 와 있거든.”
“네?”
“말했잖아 수학여행 왔다고. 걔들도 네 이야기를 들으면 널 무척 만나보고 싶어 할 것 같은데.”
그 말에 에이란이 허겁지겁 소파 뒤로 숨었다.
“저, 저저저 저를 데리고 가실 건가요? 저, 저는 방을 나가고 싶지 않은데요!”
“난 그렇게 무례한 인간이 아닌데.”
“하, 학교에서 인간은 모두 무례하다고…… 아! 아니! 레오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에이란이 허둥지둥 양손을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열흘 동안 베르키아에 머물 거야. 관심 있으면 저택에 담임 교수님이랑 부교수님이 있으니까 우리 숙소에 놀러 와.”
“…….”
에이란이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는 모양이다.
“반 친구 중에 이런 컬렉션을 모으는 첼시란 애가 있거든. 네가 없는 게 엄청 많아.”
“……! 이, 인간 사회에서 만든 대영웅 컬렉션!”
눈을 휘둥그레 뜬 에이란이 혹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너랑 이야기가 잘 통할 거야.”
레오가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대영웅에 관한 이야기로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시간이 늦어서 갈게.”
“아! 저. 그, 그러니까…… 레오님.”
“응?”
“아. 안녕히 가세요.”
“또 봐.”
레오가 웃으며 방을 나섰다.
“아…….”
레오가 나간 방을 보며 에이란이 아쉬움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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