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86)
586.
한참 리안에게 레오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리안님.”
“예, 칼님. 명령하옵소서.”
어느새 호칭까지 바뀐 눈앞의 신을 보며 칼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눈이 제정신이 아니야.’
오랜 삶을 산 건 아니지만 루메른에 입학한 후 칼은 여러 경험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많이 봤다.
그리고 리안은 그런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광기를 갖고 있었다.
조금 전 칼이 레오의 이름을 알려주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시작의 영웅님의 새로운 존함과 존안을 알려 주시다니! 아아! 제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요? 이 하찮은 몸뚱어리! 칼님의 발 받침으로라도 써주세요!’라고 외치며 칼의 앞에 몸을 웅크리기까지 했다.
조금 전까지 칼의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취급하던 신은 온데간데없다.
지금은 오히려 신을 떠받드는 광신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칼을 그런 신의 대리자로 여기고 있었다.
‘연기를 한다던가 기분이 좋아 호들갑을 떠는 수준이 아니야.’
칼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솔직히 말하면 칼은 이런 리안이 태도가 두려웠다.
그가 자신에게 해를 입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의 광기에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친구들은 바깥에서 재앙의 불꽃과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 오래 머물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리안은 지금 에레보스를 물리칠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레오의 이야기를 모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이미 상황이 끝나버릴 것이다.
칼의 말에 리안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리안은 양팔을 벌렸다.
“이곳은 바깥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 영웅의 세계와 비슷한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바깥의 시간보다 이곳의 시안은 느리게 흐릅니다.”
리안이 빙그레 웃었다.
“루메른도 이곳에서 에레보스를 1년이나 막아냈습니다.”
“1년? 혼자서요?!”
“역시 루메른이야.”
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로디아가 감탄했다.
“그러니 칼님께서는 안심하시고 시작의 영웅님의 이야기를 제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리안의 말에 칼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곁에서는 로디아 역시 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윽고 칼의 이야기가 끝났다.
리안은 눈을 감고 여운을 즐겼다.
칼은 그런 리안에게 다급히 말했다.
“리안님. 그럼 이제 재앙의 불꽃에게 이길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 말에 리안이 눈을 떴다.
“예. 우선 칼님의 말씀을 들어 봤을 때 여러분은 그 흉물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를 한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리안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조각칼과 보석으로 조각상을 깎기 시작했다.
“첫 번째. 루니아 엘 룬드아라는 성운의 시조의 후계자입니다.”
“루니아?”
“예. 성운을 쫓는 자라고 했던가요?”
리안은 능숙하게 레오의 조각상을 만들어갔다.
“성운의 시조가 후대에 남긴 마법, [염제]. 그 마법은 현세에 존재하는 힘 중 유일하게 꺼지지 않는 재앙의 불꽃에 대응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마법입니까?”
“네.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한 후부터 최고의 마법 천재라 할 수 있는 이가 만든 마법이니까요.”
레오의 조각상을 완성한 리안은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순수의 마나 특성처럼 완벽하게 에레보스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디까지나 ‘봉인’ 이 끝이겠죠.”
조각상을 살피던 리안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조각상을 정성 들여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빠르게 만들다 보니 만족할 만한 완성도가 아니었다.
조각상을 하나 내려놓은 리안이 다시 보석을 꺼내 조각했다.
보석 가루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지금 그 루니아라는 아이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아직 미숙하니까요.”
그 말에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원래 있는 곳. 그러니까 개벽의 세계로 쫓아내는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유일한 방법이죠.”
“쫓아내는 방법은요?”
“보아하니 그 흉물은 연결 된 세계를 통해 이곳으로 침입한 모양이더군요. 그렇다면 이 세계로 넘어온 구멍…… 그러니까 놈의 핵을 찾아 파괴하는 겁니다. 지금 녀석은 본체가 아니에요. 힘의 덩어리에 불과하죠. 핵만 파괴하면 사라집니다.”
“그런 간단한 방법이었다면 루메른님께 알려줬으면 되잖아요!”
“절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신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희생해야 하죠. 승산이 있었다면 전 망설임 없이 저를 희생했을 겁니다. 하지만 승산이 없어 보였습니다.”
“예?”
“그게 루메른의 한계거든요.”
그 말을 들은 로디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칼님. 루메른은 왜 당신들에게 ‘한계를 뛰어 넘어라.’라고 말했는지 아시나요? 바로 자기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
“얻지 못하는 것에 손을 뻗고. 끝내 손에 넣지 못해 좌절했죠.”
리안이 턱을 괴었다.
“새는 하늘은 날 수 있지만 하늘 끝에는 닿지 못합니다. 닿으려 발버둥 치면 끝내 추락밖에 남지 않죠. 그렇게 루메른은 자신의 가능성을 닫아 버렸습니다.”
“……신들은 루메른님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요.”
“네, 좋아합니다. 신들은 영웅담을 좋아하지만 그만큼 영웅이 추락하는 모습도 좋아하거든요.”
리안이 해맑게 웃었다.
“개벽의 영웅은 분명 세계를 바꿨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이루지 못했죠. 결국 대영웅처럼 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 비극을 신들은 좋아합니다.”
로디아가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속이 뒤틀릴 정도의 진실이다.
그랬기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에레보스의 조각을 토벌하고 재앙의 재림을 끝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았지.’
하지만 이후 쓰러트렸던 조각이 다시 불타올랐다.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에레보스의 조각을 보며 개벽의 영웅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실패했다고.
대영웅처럼 될 수 없다고.
칼의 말에 의하면 머지않은 미래의 자신들은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연장시키는 궁여지책.
‘우린 결국…… 우리 손으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
루메른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세이룬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아조니아는 나아가지 못했으며 데미안은 끝내 가능성을 추구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지혜의 왕이 후대에 전한 것이 희망이라는 씨앗이라면.
로디아가 남긴 것은 거대한 절망이다.
그저 후대에 맡겼을 뿐이다.
“영웅은 해낼 수 없는 걸 해내는 존재입니다. 제가 루메른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한계에서 도망친 루메른을 위해 제 스스로를 희생할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
“루메른님은.”
칼은 리안의 말을 끊고 말했다.
“한계를 뛰어넘어 에레보스를 이 세계에서 몰아낼 겁니다.”
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나요?”
“잘했습니다.”
칼은 웃었다.
“알고 있어요. 레오처럼 되지 못해 좌절했다는 것도. 루메른님이 결국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도. 또 개벽의 세계에 에레보스를 가두는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에서 도망쳤다는 것도.”
“그런데도 한계를 넘어선다고요?”
“예.”
칼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대답했다.
“왜죠?”
“포기를 안 했으니까요.”
의외의 대답에 리안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포기했다면…… 영웅의 세계 속에서 끝없이 에레보스와 싸울 생각을 못 했겠죠.”
칼은 리안이 만든 레오의 조각상을 보며 말했다.
“길을 찾지 못해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벽에 부딪혀서 주저앉을 수도 있어요. 눈앞의 시련에 절망해서 후대에 미루는 방식으로 도망칠 수도 있어요.”
칼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포기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포기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다시 한번 한계에 도전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다시 믿을 수도 있고 나아가기 위해 일어서는 것도 가능하다.
잃어버린 가능성을 찾는 것 역시.
포기하지만 않았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개벽의 영웅들은 실패한 게 아니에요.”
“…….”
“미래의 가능성을 믿은 그분들의 희생은…… 결국 세계를 구할 겁니다.”
로디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루메른님은 한계를 넘어설 겁니다. 미래를 위해서.”
루메른 아카데미에서 루메른의 교육 이념을 이어받아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칼의 결론이었다.
“추할 정도로 어리석네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네, 칭찬입니다.”
리안이 품에서 보석을 꺼냈다.
그리고 보석을 눈 가까이 가져다 댔다.
보석 안에 칼의 모습이 맺혔다.
“칼 토마스님. 당신은 지금 시대에서는 영웅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보석 속에 맺힌 칼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재앙의 불꽃의 핵으니 이 세계에 난 구멍이죠. 이 세계에 넘어왔다는 것 자체가 세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걸 의미하니 균열을 없앤다면 흉물은 더 이 세계에 존재 할 수 없게 됩니다.”
리안이 자애롭게 미소 지었다.
“날 핵 속에 꽂아넣으면 됩니다.”
“예?”
리안이 칼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러자 리안의 몸이 환한 빛이 났다.
“칼님, 아니. 칼 토마스.”
“……?”
“당신을 만난 건 큰 행운일지도 모르겠군요. 부디 지금처럼 계속 새로운 시작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리안님?”
칼이 당황하며 리안을 불렀다.
빛이 사라진 후 칼의 손에는 하나의 지팡이가 잡혀 있었다.
히어로 레코드와 같은 신력을 내뿜는 지팡이를 보며 로디아가 말했다.
“나도 이제 한계인가 보네.”
“로디아님?”
로디아가 빙그레 웃었다.
어느새 서고는 사라지고 없었다.
칼과 로디아가 서 있는 곳은 지하의 신전 유적이었다.
화르르르륵-!
“재앙의 불꽃?!”
칼이 경악성을 내지를 때였다.
고오오오오오-!
로디아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내 로디아의 몸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본체로 돌아간 로디아가 손을 뻗어 칼을 잡았다.
그러더니 천장을 향해 입을 벌렸다.
구구구구구구구구! 번쩍-! 콰가가가가가가강!
로디아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브레스가 지상까지 이어진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냈다.
“대, 대박……!”
칼이 입을 쩍 벌릴 때였다.
펄럭-!
로디아가 날개를 펼치더니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끄어어어어어어억?!”
[칼 토마스.]“네에에에에?!”
[드래곤들이 영웅을 선택한다는 건 알고 있지?]“그런데요오오오오?!”
엄청난 바람의 압력을 느끼며 칼이 힘겹게 대답했다.
[넌 영웅이 될 거다.]“네엑?”
로디아와 눈이 마주친 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화악-!
어느새 하늘 높이 도착한 칼의 눈에 불타기 시작한 세계가 보였다.
“리안님은 제가 영웅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요?”
로디아가 즐겁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칼을 향해 로디아가 말했다.
[네가 다시 만나게 될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사아아아아아-!
로디아의 몸이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기대하고 있을게. 영웅이 되어 있을 널.]분명 미래의 자신은 칼을 보며 기뻐할 것이다.
자신이 영웅의 세계를 찾은 덕분에 탄생하게 된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라며.
지금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을 지닌 자들이.
미래에는 그 가능성을 개화시켜 영웅이 되었다고.
[루메른을 도와줘, 칼 토마스.]사아아-!
로디아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후욱-!
칼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그 순간.
화악-!
“칼!”
비룡을 타고 날아온 엘리자가 칼을 낚아챘다.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죠? 조금 전 그 드래곤은 뭐고요?!”
“너 나한테 말 놓기로 한 거 아니었냐?”
“지금 그게 중요해?!”
엘리자의 말에 칼이 손에 쥐어진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로디아님이었어.”
대답한 칼이 지상에서 불타오르는 재앙의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전황은 어때?”
“갑자기 나타난 루메른님 덕분에 유지는 되고 있지만…… 좋지 않아요!”
“그래.”
칼이 심호흡했다.
“그럼, 지금부터 반격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