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98)
598.
“르왈린이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소!”
“제르딩거의 혈통이 그 가증스러운 르왈린과 섞이다니!”
레이나의 발언에 장로회는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르왈린.
로드렌 최고의 마법 영웅 명가이자 제르딩거와 함께 제국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이다.
기사와 마법사는 오러와 마법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순간부터 경쟁해 온 클래스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 로드렌의 양대 기둥으로 존속 해온 제르딩거와 르왈린 역시 자연스럽게 물과 기름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바드가 그랬지? 셀리아와 첼시는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툭 하면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둘이지만 제르딩거와 르왈린의 직계치고는 사이가 좋다고 했다.
그건 셀리아와 아바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입학시험 때부터 그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난간을 헤쳐 나갔으니까.’
동급생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을 경쟁 관계가 아닌 등을 맞댄 파트너 관계로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만난 르왈린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우호적이었어.’
그랬기에 레오는 제르딩거와 르왈린의 관계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라이벌 의식이 강한 관계겠더니 했다.
‘그런데 장로회의 반응을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군.’
레오는 몰랐지만, 각 가문의 방계 혈족들은 특히 사이가 더 좋지 않았다.
직계끼리의 다툼이 누가 제국 최고의 영웅 명가인가를 가리는 명예가 걸린 다툼이라면.
방계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이권이 걸린 분쟁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제르딩거 방계의 지위는 단순히 피를 이은 것만으로 유지할 수 없다.
기사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비로소 방계의 지위를 얻는다.
일단 방계로만 인정을 받아도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많다.
그렇다 보니 방계 가문들은 힘을 키워 어떻게든 방계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썼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상황의 르왈린의 방계들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제르딩거와 르왈린의 충돌은 로드렌 제국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기에 직계 가문의 분쟁으로 번지는 일은 없다.
또 분쟁이 심해질 경우 제르딩거와 르왈린에서 직접 상황을 중계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충돌이 잦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니 20년 전쯤 제르딩거와 르왈린 방계 가문들 사이에 큰 충돌이 있었다고 했지?’
그 과정에서 가세가 기울었던 방계 가문들도 있다.
지금 장로회의 엘더 나이트 중 그 당시 르왈린의 마법사와 싸운 이들도 있다.
발칵 뒤집힌 장로회를 보며 레오가 생각에 잠길 때였다.
“레이나 제르딩거! 지금 자기 욕심 때문에 가문을 저 버리고 제르딩거와 척지겠단 말인가!”
엑거슨이 분노한 얼굴로 호통쳤다.
그 말에 지금까지 생글생글 웃던 레이나의 얼굴이 돌변했다.
“말조심하세요. 난 레이나 제르딩거가 아니라 레이나 플로브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세요?”
“뭐라?”
“제르딩거를 이끈다는 장로회 분들이 어떻게 오래전에 은퇴한 저보다 세계 정세에 어두울 수가 있죠?”
붉은 눈을 번뜩이는 레이나의 기세에 엘더 나이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오래전 오러를 잃어버린 기사의 기세가 영웅의 자리에 오르거나 그에 준하는 힘을 지닌 이들을 압도한다.
고오오오오-
‘주변의 마나가 반응한다고?’
레오도 놀란 눈으로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오러를 잃은 기사의 의지에 주변의 마나가 반응했다.
그에 따라 주변 온도가 급격하게 뜨거워졌다.
오러를 잃은 기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
이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던 레가스가 입을 열었다.
“레이나. 네가 비록 가문과 의절했지만 나는 네가 제르딩거를 잊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가문을 위해 네 의견을 기탄없이 이야기 해주길 바란다.”
그 말에 레이나가 기세를 거두고 말했다.
“지금은 타르타로스가 움직이고 대영웅들이 다시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혼란의 시대라고요.”
레이나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런 시대에 시작의 영웅과 같은 능력을 가진 게 이가 바로 레오예요. 이게 무슨 뜻인지 장로회 여러분은 정녕 모르겠어요? 한 사람의 영웅으로서 레오는 이미 시대를 짊어진 영웅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예요.”
시대를 짊어졌다 평가받는 영웅은 기나긴 영웅의 시대에도 많지 않다.
그리고 레오가 곧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장로회라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위대한 대영웅과 개벽의 영웅처럼, 레오는 불멸의 이름을 남길 겁니다. 영웅 명가라면 응당 이 아이의 가치를 알아보고 뜻을 펼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겠죠. 그렇게 된다면 덩달아 제르딩거의 명성도 높아질 거예요.”
“크흠!”
“흠흠!”
레이나의 말에 엘더 나이트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렇게 되면 가문의 명성이 높아지겠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닌가?’
로드렌은 이미 대륙 서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제국이다.
그리고 제르딩거는 제국 내에서 차지하는 이권이 적지 않다.
레오를 통해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명에뿐.
로드렌 제국이 팽창 정책을 펼치지 않는 이상 제르딩거가 얻을 이익은 없다.
‘게다가 결국 직계만 좋은 일을 시키는 게 아닌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장로들의 모습을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일수록 외부의 위기를 외면하지.’
신의 시대 당시.
무수히 많은 왕족과 귀족들은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그 순간까지 세계의 재앙을 외면했다.
그 재앙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세계의 위기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지닌 이들이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야.’
장로회는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시대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영웅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위협해 온 마물 여왕이 토벌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재앙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끝내 에레보스의 조각이 부활 했다.
만약 레오가 없었다면 세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을 대사건들의 연속.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그 위기가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사라졌다고 알려진 신까지 모습을 드러냈지.’
에레보스와 직접 맞서 싸운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건 섬뜩한 위기였다.
하지만 평화로운 곳에서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희망찬 기적처럼 보일지 몰랐다.
‘영웅의 시대가 된 이후에도 세계의 위기는 여러 번 있었지.’
재앙의 재림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타르타로스의 준동으로 세계가 대혼돈을 맞이한 건 수도 없이 많다.
그때마다 위대한 영웅들이 세계를 구해냈다.
어쩌면 신의 시대가 끝을 맞이했을 때처럼.
‘권력을 움켜쥔 놈들에게는 지금 이 사건들이 위기의 징조가 아니라 재앙의 완전한 종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레오 플로브가 대단한 건 우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혼란의 시대라니. 너무 과한 생각이군.”
엑거슨이 말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레이나 플로브. 이번에 레오 플로브가 받는 것이 작다 하여 섭섭하지 말거라. 그대의 아들이 제르딩거를 위해 헌신한다면 당연히 가문에서 많은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맞소. 레이나여. 우리가 그대와 그대의 아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오.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눈 혈족이 아니오?”
“제르딩거의 핏줄이 르왈린으로 간다면 재산에 눈이 멀어 가문을 외면한다며 손가락질받게 될게요.”
“애초에 올 클래스의 능력은 제르딩거의 것. 발현된 자의 피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 자체가 큰 손해입니다.”
장로들은 레오와 레이나를 회유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커다란 영토를 받는 것도 좋지 않아. 아직 어린 만큼 졸업을 한 후에 영토를 받아도 늦지 않아.”
그 말에 레이나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세계에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데 장로님들은 세계보다 가문이 더 중요하신가요?!”
“세계의 재앙은 그대의 생각일 뿐일세. 설령 세계의 재앙이 닥친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유난을 떠는 건 쓸데없는 전력 낭비일 뿐이야. 위기가 닥쳤을 때. 많은 영웅 명가들과 연합해 막으면 되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위기가 닥친 후 죽는 이들은 어떻게 하실 거죠? 우리는 영웅 명가 이기 이전에 기사 가문이잖아요? 자신의 약자를 지키는 존재 아니던가요?”
“레이나 플로브.”
엑거슨이 빙긋 웃었다.
“그런 꿈같은 소리를 하다가 오러를 잃었는데 그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꾸욱-
레이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가스가 입을 열었다.
“너무 과열된 것 같으니 회의를 잠시 중단하도록 하지.”
그 말에 엘더 나이트들이 레가스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엘더의 회랑을 나갔다.
“레오.”
“네.”
“첼시랑 결혼해.”
“그건 첼시와 르왈린 의견도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덤덤하게 대답하며 레오는 레이나를 의자에 앉혀주었다.
그와 동시에 레이나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콜록- 콜록-”
거칠 게 기침을 시작하는 레이나에게 레오가 자신의 마나를 흘려보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레이나가 입에서 손을 뗐다.
“무리했네.”
기세를 사용한 대가는 컸다.
손에 흥건한 피를 보며 쓰게 웃는 레이나에게 레오가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아 주었다.
“우리 아들은 효자라니까.”
레이나가 레오의 머리를 토닥여 주는 사이 레가스가 다가왔다.
“대단하더구나, 마치 옛날의 너를 보는 것 같았다.”
“옛날의 저였다면 벌써 칼부터 뽑았겠죠.”
레이나의 대답에 레가스가 쓰게 웃었다.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그게 최고 장로의 일이잖아요.”
최고 장로란 그런 자리다.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며 가문의 다툼을 조율하는 심판관.
최고 장로는 잘못을 저지른 자를 응징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쓸 수 없는 권력이다.
지위에 관계 없이 죄를 저지른 자만을 심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르딩거 같은 대가문에서 꼭 필요한 자리.
“저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대가문에서 정략결혼은 의무다.
제르딩거로서 많은 걸 누리는 자의 의무.
기사라면 그 의무에서 벗어나겠지만 레이나는 기사가 아니었기에 의무를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가문의 뜻을 거슬렀고 그 죄로 가문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때 레가스는 레이나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 레가스라면 레이나를 지킬 힘이 있었다.
하지만 레가스는 가문의 법을 지키는 걸 선택했다.
누군가에게는 딸보다 가문을 선택한 냉혈한처럼 비치겠지만 레이나는 안다.
자신이 가문을 떠날 때 그 누구보다 피눈물을 흘렸던 게 레가스임을.
“아버지는 가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신 거잖아요?”
“…….”
“저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그 말에 레가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레이나, 레오를 르왈린 가문으로 보내는 건 나도 용납할 수 없구나. 그러니 그걸로 장로들을 협박하지 말거라.”
“레오의 할아버지로서 하는 말인가요? 제르딩거의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가요?”
“둘 다란다.”
덤덤히 말하던 레가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제르딩거가 뭐가 부족해서 직계를 데릴사위로 보내야 한단 말이더냐? 내가 그 마녀에게 제르딩거는 집안 단속도 못 해 직계를 데릴사위로 보낸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불효를 너는 저지르겠단 거냐! 오히려 그 첼시라는 아이가 우리 가문에 시집을 와야지!”
자신과 같은 르왈린의 선대 가주를 떠올리며 레가스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버지가 장로회를 설득해서 레오에게 어울리는 영토를 주세요.”
“그건 안 될 일이지.”
“르왈린이 잘도 별 볼 일 없는 땅을 물려받은 제르딩거 직계에게 르왈린 직계를 시집 보내겠네요.”
“사실 지금 상황에서 그 아이가 시집을 오면 그것도 집안 망신이긴 하지.”
“어쩌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레오.”
레가스는 품에서 작은 종이 봉투를 꺼냈다.
“할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종이봉투를 받았다.
“가문의 영토를 떼어주는 건 문제지만 내 사유 재산을 손주에게 물려 주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